가이 포크스 : 플롯 가이 포크스 1
윌리엄 해리슨 아인스워드 지음, 유지훈 옮김 / 투나미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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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 포크스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저항의 아이콘입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아마 나탈리 포트만 주연의 <브이 포 벤데타>이 큰 역할을 했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17세기 영국에서 도도한 역사의 흐름을 바꾸려 들었던(좋은 쪽으로건 나쁜 쪽으로건) 열정적인 활동가였고,요인의 대거 살상을 통한 국면 전환을 꾀했다는 이유로 삼백 년 넘게 역적으로 취급되었습니다. 나쁘게 말하면 테러리스트였고, 다르게 보면 조선의 홍길동이나 멕시코의 조로처럼 초인적인 면모, 의로운 협격의 개성이 있습니다.


가이 포크스 사건이 터지고 이백 년 가까이가 흐른 후, 영국에서는 가톨릭 교도의 공직 취임을 금지하던 심사율이 폐지되고 가톨릭 교도 해방령이 내려졌습니다(1829). 이 소설은 1805년에 태어난 윌리엄 H 아인스워스가 1841년에 완성한 장편으로서, 여태 역적으로 오명을 쓰고 있던 가이 포크스를 영웅, 주인공으로 전면에 내세우는 대담한 태도로 유명했습니다. 


소설을 읽어 보면 잘 나오지만 당시 영국이란 나라는 아직 국가 기반이 확고하던 시절이 아니었습니다. 엘리자베스(1세)가 훙서하고 나서 후계자는 엉뚱하게도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6세가 지명되었습니다. 두 왕실, 또 저 두 왕이 나이 차가 나는 친척 관계이긴 하나(법적으로 계승권 주장 가능)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는 수백 년 간 앙숙이었는데 적국의 왕이 나라를 다스리러 왕으로 온다는 건 충격이었죠. 


그러나 제임스 1세(이제는 잉글랜드의)는 그런 난점을 잘 알고 새로 맡게 된 나라까지 잘 다스리는 통합 군주로서 존경을 얻고 싶어했습니다. 또 스코틀랜드=가톨릭, 잉글랜드=프로테스탄트 같은 공식은 일찌감치 깨어져서, 스코틀랜드 사회도 어느덧 주류를 장로회 신도들이 장악하게 되었습니다(여전히 가톨릭도 강함). 따라서 이 시기 브리튼 섬은 종교, 민족 등 여러 복합적 요소를 띤 고차원 본쟁을 암암리에 벌이고 있었습니다.


소설에는 제임스 1세 등 스튜어트 왕조의 군주들에 대해 부정적 묘사가 가득합니다. 예를 들면 할 일 없는 스코틀랜드의 건달들이 왕을 따라 잉글랜드로 와선 현지인들을 뜯어먹으며 민폐를 끼쳤다는 서술이 있죠. 그런데 신교도들이야 잉글랜드의 지배층(아직 위상이 확고하진 않았습니다)이니 (가뜩이나 굴러온 돌 주제인 왕이) 함부로 대할 수 없고, 만만한 게 가톨릭 교도였습니다. 이때로부터 백 년 전 헨리 8세는 브리튼 식 종교개혁을 단행하여 가톨릭을 혹독히 탄압했습니다. 이런 국가 정책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교도들은 여전히 믿음을 고수했는데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recusant라고 불렀습니다. "거부하다"라는 라틴어 recuso, recusare 에서 온(정확하게는 그의 현재분사꼴) 단어죠. 이 책에서는 "거부자"라고 옮기고 있네요. 

 

p14를 보면 험프리 채텀의 대담한 언동이 나옵니다. 험프리 채텀은 책에 "맨체스터에서 거부로 유명한 장사꾼의 아들"이라 소개되는데 물론 여기서 거부는 巨富이며, 영국 국교회 신앙을 거부한다는 拒否가 아닙니다^^ 


<브이 포...>에서 주인공 브이(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활약하는 혁명가) 못지 않게 중요한 인물이 젊은 여성 이비(나탈리 포트만이 연기)인데, 여기서는 비비아나 래드클리프라는 젊고 당찬 여성이 등장하여 온갖 역경을 헤쳐가는 스토리가 작품 전체의 중요한 흐름 하나를 이룹니다. 물론 이 세상은 남자 위주로 짜여진 비정하고 폭력적인 곳이기에 비비아나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 못 하며, 말그대로 홍길동처럼, 또는 저 영화의 "브이"처럼 신출귀몰하며 대의명분(그들 입장에서)을 구현하려는 영웅이 바로 가이 포크스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가이 포크스는 이백 년 넘는 시간 동안 내내 역적 취급이었으며 (영화에도 나오지만) 리멤버 리멤버 더 핍스 오브 노벰버 라는 노래는 가이 포크스의 위대한 저항 정신을 기리자는 게 아니라, 그 반대로 "저런 천하의 역적을 결코 잊지 말고 애국심을 다지자"는 취지의 동요였습니다. 아무리 이백 년이 지났다고는 하나 이런 논란의 인물을 소설 주인공으로 받들고 그 행적을 환상적으로 묘사하니 반발이 대단했을 겁니다. 



작가는 이 점을 다분히 의식하여 "기존 작품 중 하나를 고의로 왜곡 해석하고, 필자의 의도와는 사뭇 다른 의도와 목적을 작품에 끼워 맞춰 온 독자(에게)라면 (이 작품) <가이 포크스>는 또한 정당한 대우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p6)."라고 서문에서 밝힙니다. 그러나 소설 창작 시점으로부터 다시 두 세기 가량이 흐른 현대 한국의 독자들은 영문 모른 채 홍길동 같은 이 협객의 활약을 마음껏 즐길 수 있겠죠. 우리가 소설의 박력 넘치는 무용담을 무협지처럼 받아들이기만 해도 이 소설은 이미 "정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겁니다.


"케이츠비는 나이도 그렇지만, 방종하고도 자유분방하게 살아온 인생과는 걸맞지 않게 용모가 준수했다(p42)." 고전 소설을 보면 인물의 외양 묘사에 다분히 작가 자신의 인물관을 투영하는 대목이 많죠. 이때로부터 오십 년 뒤쯤에 쓰여진 코난 도일 경의 <빈 집의 모험>을 보면 세바스천 모런 대령을 두고 "호색한 특유의 턱"를 가졌다는 문장이 있는데 이런 걸 읽고 나면 사람을 볼 때 길쭉히 자란 턱을 보고 "이분 어지간히 밝히고 살았나 보다" 같은, 근거 없는 혼자만의 생각에 낄낄거리게도 됩니다. 저는 역사물인 이 소설에서도 작가 특유의 그런 인물관을 행간에서 읽으며 이 작가분(아인스워드)이 "사람을 어떻게 보는 분일까" 하는 점을 곰곰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실 역자 서문? 같은 부분을 좀 둬서 작품 배경 설명이 있었으면 더 좋았겠다 싶기도 했습니다. 아마 구태여 역사를 알지 않아도 그냥 로맨스 모험 소설로 읽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하신 걸 수 있겠죠. p174 같은 데를 보면 라이트가 형인지 동생인지를 밝히기 위해 괄호 안에 "형"이라고 따로 적고 있습니다. 원문에서는 the elder Wright라고 적혀 있는데, 번역에서 이렇게 처리한 게 오히려 가독성이 좋은 것 같네요. 물론 존이 형이고 크리스토퍼가 동생입니다. 


p158 중간쯤에 보면 "혀가 입천장에 붙어 말을 할 수 없어.."라는 문장이 있는데 이는 구약 시편 22:15에 있는 구절을 의식한 언급입니다. 이 무렵 소설들은 성경 구절을 적절히 인용하여 문학성과 권위를 높이는 방법으로 썼습니다. p249 중간쯤에 보면 "끝장을 보던가"가 있는데 "보든가"로 바뀌어야 맞겠습니다. 


p62에 보면 "예수회 사제이자 반역죄..."라는 대목이 있는데 예수회 사제는 그 신분 자체가 형사 죄목이었다는 뜻입니다. 이때로부터 시간이 좀 지나면 예수회는 프랑스 같은 구교국에서도 불온시되어 탄압당하는 일이 벌어지죠. 


역사를 전혀 모르는 독자가 보면 과연 "아씨" 비비아나와 그녀를 지키는 가이 포크스가 펼치는 모험 그 결과를 모르기 때문에 더 흥미진진하게 소설을 읽을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말이죠. 그런데 이 1부 중간쯤(p108)을 보면 수수께끼의 닥터 디(가이 포크스보다 40살 정도 나이가 더 많은 실존인물)가 수정구슬을 꺼내 공모자들(국회 의사당 폭파 음모를 꾸미는 이들)의 미래를 점치는 대목이 벌써 나옵니다. 


이미 불길한 징조가 여럿 나왔고 객관적으로도 가망이 없는 작전이지만 참다운 신앙(그들 입장에서)을 회복하고 자신들의 정당한 자존과 재산을 지키려 드는 주인공들의 눈물겨운 분투에 우리 독자들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습니다. 작가 서문에도 나오지만 비비아나는 이 소설에 매력을 더하기 위해 고안된 가공의 인물입니다. 조지 크뤽솅크의 원본 삽화들도 이 책에 그대로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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