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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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에서 큰 소리로 웃고 떠드는 건 가장 큰 무례일 수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 그것이 망자와 유가족들에 대한 최상의 배려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소중한 생명을 부여받아 이 거친 세상, 때로 더할 수 없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열심히 부대끼며 사는 중입니다. 그 와중에서 우리를 가장 슬프게 하는 건 바로 "죽음"이라는 운명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죽음이란 무서운 관문을 넘어설 수 있을까요?

그에 대한 답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죽어야 할 운명이며 이를 피해갈 방법은 전혀 없죠. 그런데 우리가 품위 있게 이 비참한 운명을 접대하고 잘 정리할 방법은 있습니다. 바로 달관입니다. 그리고 그 달관이 가능하려면, 어느 정도는 여유를 갖고 이 죽음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죽음과 웃음은 경우에 따라 매우 잘 어울립니다. 이 유쾌한 소설은 바로 이 점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그때는 살짝 엉덩이가 처지긴 했어도 전체적으로 괜찮은 몸매였는데(p175)." 한창 때의 여성은 마치 초원을 활짝 아름답게 수 놓는 꽃처럼 아름답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지구를 밝히는 미의 결정체이구나 싶게끔요. 한창 때 여인의 환한 미소를 보면 세상 근심 걱정이 다 없어집니다. 체형은 마치 터질 듯 부풀어오르면서도 절묘한 균형을 잡아 보는 사람이 다 흐뭇합니다. 거친 세상에서 먹을 것을 마련해 오는 수고는 남성들이 대개 도맡습니다만, 세상 살 맛을 제공해 주는 건 아름다운 여성입니다. 여성의 아름다움은 삼라 만상의 존재 이유를 구성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여성도 어느 새 전성기가 지나 쭈글쭈글한 할머니가 되어 냉혹한 죽음을 언젠가는 맞아야 합니다.

"아우야, 바위는 산의 일부였을 적을 기억하는 법이야(p338)." 우리 모두는 기억을 갖고 삽니다. 그 기억은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고, 위기를 맞았을 때 중요한 참고 자료를 제공하기도 하며, 힘든 순간이 닥쳤을 때 이를 이겨낼 감정적인 힘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어떤 기억은 우리에게 큰 웃음을 선사합니다. 그런 유쾌한 기억은 죽음 앞에 섰을 때조차 우리에게 무한한 용기를 제공합니다.

미겔 엔젤 역시 그런 기억에 기대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들의 일원입니다. 그는 하필, 가장 기쁜 순간을 기념해야 할 자신의 생일에 존속의 죽음이라는 비극을 맞습니다. 우리도 흔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라든가,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라는 표현을 씁니다. "크루스"는 스페인어로 십자가라는 뜻인데, 저들 문화권의 중요한 원천이었던 기독교에서는 "누구나 다 자신만의 십자가를 지고 간다"는 가르침을 공유합니다. 그 십자가는 결코 자신이 감당 가능한 범위를 넘지 않는다고도 가르칩니다. 만약 그 범위를 넘는다고 느낀다면, 그때 비로소 우리에게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웃음"이 필요한 순간입니다.

얼마 전 등장한 트럼프하라는 정치인이 두 나라 사이에 쌓은 장벽. 그 장벽의 이편과 저편에서 갖가지 양태로 살아가는 "우리들"이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책의 작가도 그렇고,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사람들도 국경의 이편저편을 넘나들며 갖가지 양상으로 삶과 부대끼며 살아갑니다. 가장 축복받은 인생은 그의 주변 인물들이 조용한 박수를 쳐 주며 그가 모은 재산의 다과에 무관하게 언제나 응원을 보내 주는, 그런 흐뭇한 장노년이 아닐까 싶습니다. 빅 엔젤은 정말 인생 제대로 산 분입니다. 그에게 설령 남은 인생이 얼마나 되었건 간에, 그는 자신의 주변에 잔잔한 웃음을 주고 꺼지지 않는 햇살을 비춘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가 그를 향해 미소를 띄울 때, 우리 자신들도 아마 언젠가는 찾아올 우리들의 죽음을 놓고 아마 보다 편한 마음이 되어 있을 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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