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디자인 - 공유경제의 시대,미래 디자인은 어떻게 변화하는가
김영세 지음 / 한국능률협회컨설팅(KMAC)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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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말할 때 "디자인"은 우리가 아는 좁은 의미 외에도 "계획, 의도, 큰 설계"라는 뜻이 따로 있습니다. 영화 <기생충> 덕분에 유명해진 어느 대사 "OOO는 계획이 다 있구나!"라고 할 때의 그런 의미입니다. 속된 선입견으로 디자인이라고 하면 그저 잘된 제품의 마무리 장식 같은 뜻 이상이 아니며, 이 때문에 "디자인이 좋다"는 말은 그 속에 "품질은 별로다"란 뜻을 은근 감추는 식으로 곡해되거나 통용되기도 합니다. 저자 김영세 소장님의 "빅 디자인" 이론은 이런 우리의 천박한 선입견을 사정 없이 깨부숩니다. 제가 읽고 나서 얻은 결론은 "디자인은 뒷마무리, 치장 정도가 결코 아니며, 오히려 기능과 퀄리티를 미리 담은 그릇이고, 나아가 모든 것이다."였습니다.

우버와 에어비앤비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 모바일 시대 혁신의 아이콘에 속합니다. 이들은 차량을 대량 보유하거나 호텔 체인을 가진 업    체가 아닙니다. 많은 물량과 시설로 승부하는 거대 자본의 생존 방식은 이미 지난 세기의 유물에 불과합니다. 우버와 에어비앤비는 야심 가득한 젊은 창업자가 그저 아이디어, 컨셉 하나로 세상에 도전장을 내고 대승을 거둔, 혁신과 창의, 그리고 빅 디자인의 시대에 멋진 모범 사례입니다. 저자는 이를 두고 "기존의 발상에 구애받지 말고 솔직한 감성으로 모든 사물을 재해석하라"는 충고를 던집니다. 가진 것 하나 없이 남의 소유물을 임차해 다른 이들에게 빌려 줄 생각을 품는 건 봉이 김선달의 도둑질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사는 지혜입니다.

실리콘 밸리는 1980년대부터 혁신의 전초 기지로 여겨져 왔습니다만 거의 반 세기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 모든 개혁과 도약의 온상이라 할 만합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를 두고 "디자인 트랜스포메이션 시대"의 도래라 규정합니다.(p42) 대체 어떻게 해야 좋은 아이디어가 생길까요?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엡스타인 단장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좋은 트레이드를 위해서는 내가 필요한 선수가 누구인지 생각하기에 앞서, 다른 구단이 필요로 하는 선수가 누구일지를 먼저 떠올려 보라." 동양식으로 말하면 역지사지입니다. 저자는 비행기에서 겪은 사소한 불편까지도 승객 보편의 불편함으로 차원을 넓혀 생각하여 시장을 놀라게 한 디자인 안(案)을 도출한 분입니다. 시장과 고객의 니즈가 무엇인지만을 자나깨나 생각하는 이와 그렇지 않은 두뇌 사이의 격차가, 4차 산업 혁명을 앞둔 이런 세상에서 더욱 크게 벌어지리라는 점은 자명하지 않겠습니까.

책에서는 지멘스 CEO 조 케저의 말을 옮겨, "4차 산업혁명은 단지 산업이나 기술에 대한 게 아니라 사회에 관한 것(p29)"이라 선언합니다. 앞선 1, 2, 3차의 산업 혁명이 생산 섹터, 공급자 사이드에서 크나큰 혁신이 일어난 후 그 파급 효과가 소비 섹터에까지 미친 것이라면, 다가올 4차 산업 혁명은 반대라는 겁니다. 회사는 소비자 입장에서 모든 것을 새로 생각해야 하며, 그것이 바로 생각의 틀과 삶의 틀을 함께 바꾸는 "빅디자인"의 초석이라는 뜻이죠.

저자 김영세 소장님은 해외 유수의 권위 있는 상이란 상은 다 휩쓴 분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분은, 혹시 삶에서 실패나 좌절 같은 건 한 번도 겪지 않고 평탄한 꽃길만 걸으셨을까요? 이에 대해 그는 마이클 조던의 명언을 인용하여 답합니다. "수많은 슛의 실패가  수많은 슛의 성공으로 이어졌습니다. (p127) 이는 마치 토머스 에디슨이 남긴 유명한 고백,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뤄진다"와도 비슷합니다.

안트러프러너십(p130)이란 무엇인가. 우리말로는 보통 "기업가 정신"으로 옮겨지는데 사실 이 단어는 그 이상의 무엇을 담았습니다. 성공이란 어떻게 보면 동기 부여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 일을 못하면 죽고 만다는 절박감을 갖는 것도 물론 좋습니다. 그러나 "긴 선상에서 큰 그림으로 본 인생을 보다 알차게 꾸리기 위해" 조금은 여유를 갖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과제, 혹은 환경을 보면 더 좋은 컨셉트가 떠오를 수도 있고 그게 바로 빅 디자인입니다. 작은 것에 집착하면 스몰 디자인밖에 안 나오고 이는 곧 졸작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티냉자스"란 말을 들어 보신 적 있습니까? 러시아는 한때 미국과 더불어 세계를 양분하던 엄청난 강대국이었지만 현재의 위상은 매우 초라합니다. 우리 한국인들도 아마 러시아 정도는 은근 깔고 보는 경향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책에도 나오듯이) 전체 국내총생산 규모는 우리와 비슷한 나라인 러시아에 대해 갖는 그런 자신감은 과연 근거가 있을까요? 저자가 말하는 근거는 바로 "티냉자스"입니다. TV. 냉장고, 자동차, 스마트폰을 잘 만드는 나라가 바로 선진국의 척도라는 건데, 생각해 보면 이 네 분야에서 모두 강한 나라가 별로 없습니다. 1980년대만 해도 전자 제품 하면 일본이었고 일본은 이 시기 마치 전 세계 돈을 다 빨아들이는 하마와도 같았습니다. 현재 TV 시장은 한국의 두 기업이 세계를 반분하다시피합니다. 자동차 역시 여러 어려움이 있긴 하나 꽤 선전하는 편이며 스마트폰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혹자는 소프트웨어에 약하다며 근본적인 한계를 지적하지만 최근의 애플은 "혁신에 꽤나 지쳐하는" 모습입니다.

세계 시장을 제패하는 히트 상품은 물론 품질도 품질이지만 디자인의 탁월함이 반드시 어필되어야 합니다. 무기를 잘 만드는 러시아, 자원 부국인 사우디 등이 비록 국부 전체는 대단한 수준일지 모르나 죽어도 한국을 따라올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러시아에는, 혹은 사우디에는 과연 김영세 같은 디자이너가 있을까요? 우수한 엔지니어는 수학 잘 가르치고 공학 교육이 보편적인 인도 등지에서 다수 배출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수한 디자이너는 선진국에서만 나옵니다. 오늘 뉴스에 보면 중국이 대외적으로 발표만 못 할 뿐 심각한 경제난과 외화 부족에 시달린다는 징후가 발견된다고 합니다. 저가품과 모방 제품은 대규모 자본을 인위적으로 투입하여 만들 수 있어도, 정말 퀄리티 있는 히트작은 쉽게 나오는 게 아닙니다. 저자가 말하는 빅디자인은 첫째 기존의 사고를 과감히 허무는 도전 정신과 창의성, 둘째 매사를 여유와 긍정의 마음가짐으로 볼 줄 아는 자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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