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 사전 - 우주와 천체의 원리를 그림으로 쉽게 풀이한 그린북 과학 사전 시리즈
후타마세 도시후미 지음, 토쿠마루 유우 그림, 조민정 옮김, 전영범 감수, 나카무라 도시히 / 그린북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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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에 빛나는 별을 보며 온갖 상상의 나래를 다 펴는 체험이란 꼭 외가 등을 시골에 둔 이들만의 특권은 아니겠습니다. 도시에서도 운 좋게, 쏟아지는 듯한 별무리의 향연을 어쩌다 볼 수는 있습니다. 누구나 동경의 타겟으로 삼을 수 있는 별, 별, 별을 보고 자연스럽게 천문학 개론서 등에 손을 뻗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저한테도 어느 고등학생이 책 한 권을 빌려 달라고 한 적 있는데, 반응은 거의 100%로 "엄청난 좌절"입니다. 별 이야기가 가득할 줄 알았는데 전부 미적분 수식이고 따분한 광물 타령에 무슨 광학에 상대성 이론 따위의 장대한 전개입니다. 이런 체험 후에는 아마도 도시의 젊은 영혼은 다시는 밤하늘을 쳐다 보지 않을 듯합니다.

중세 이래로 여러 똑똑한 두뇌들이 그저 호기심에 그치지 않고 여러 방법을 고안하여 많은 지식을 쌓아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땅이 모니지 않고 둥글다는 점도 알고,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 뿐 그 반대가 아니라는 사실도 잘 이해합니다. 그런데 지동설 등이 사실로 입증된 후에도, 뛰어난 천문학자, 우주 물리학자들이 학문적으로 많은 성과를 내었습니다. 문제는 이후의 소중한 성과가 일반 대중에게는 쉽고 친숙하게 잘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현대 천문학의 성과뿐 아니라, 사실 케플러, 뉴턴 이후의 고전 천문학 내용도 잘 모르는 이들이 90%가 넘습니다. 중국이 달의 뒷면에 우주선을 보내 그 은밀한 광경(지구인들에게는)을 찍어 오는 시대이지만 달이 어떻게 해서 밀물과 썰물을 일으키고 달마다 차고 기우는지 어린이들도 알 수 있게 설명해 보라면 어른이라 해도 뭐 어림 없습니다. 어른은커녕 해당 분야의 전공자에게도 사실 뭘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일본인 저자들(전부는 아니지만)의 책을 읽어 보면 항상 느끼는 게, 꽤 어려운 내용을 무척 쉽게 설명하거나, 적어도 그런 쉬운 설명에 엄청 큰 사명감을 느끼고 노력한다는 점입니다. 텍스트를 쉽게 쓰는 건 해당 분야에 달통한 이라면 가능합니다. 그런데 일러스트를 곁들여 1) 본문과 잘 밀착하고 2) 개념과 내용을 쉽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건 또 별개의 과제입니다. 이 책은 그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낸, 참 쉽고 재미있게 쓰인 책입니다. 좀 과장하자면, 이 책의 장점은 텍스트도 텍스트지만 보기 좋게 잘 그려진 도해에 첫 방점이 찍힌다고 해도 과언 아닙니다.

유명한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을 보면 하늘을 가리키는 플라톤과 땅을 지시하는 (그 제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중앙에 그려집니다. 보편과 추상, 완전한 이상태를 중시하는 전자, 반대로 개별과 현상, 현실을 더 지향하는 후자의 대립은 이후 서양철학과 과학을 내내 주도해 온 굵직한 트렌드이며 프레임이었습니다. 사실 별, 그리고 천문 현상은 하늘을 응시해야만 보이는 게 아니며, 저 두 사람의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말했듯, 우리 자신을 똑바로 성찰할 때도 그 숨은 이치가 모습을 드러낼 때가 있습니다. 아득한 예전 빅뱅 이후 하나의 먼지로 시작해서는 이처럼이나 덩치를 키운 지구를 면밀히 지켜볼 때, 수만 광년 떨어진 천체에 대해서도 그 내부, 표면이 어떻겠거니 하고 유효한 짐작이 가능합니다. 이런 짐작은 이후 관측과 실험을 통해 최종적 검증이 가능해진 후 최종 진리의 세계로 편입됩니다.

티코 브라헤는 생전에 거의 광적이라 할 만큼의 열정과 엄정성으로 온갖 데이터를 모은 학자입니다. 2014년에 개봉된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면 과학의 발전이 멈춘 게 "(기후 변화 등 재앙 외에도) 더 이상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가 없다"는 사정이었습니다. 이걸 먼 미래(라기보다 다른 차원)에서 부친이 모스 부호를 통해 (책장 뒤에서) 전송하며,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게 된 현재의 연구진이 시공간을 자유로이 콘트롤할 수 있는 끝판 공식을 찾아냅니다. 데이터 없이는 사실 어떤 것도 불가능하며 모든 건 그저 SF의 영역에 머물 뿐입니다. 이 스승(이라기보다는 선배?) 티코 브라헤의 데이터를 활용해, 케플러는 엄청난 법칙 세 가지를 정립합니다. 이 공식들은 21세기인 지금도 세계의 모든 고등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합니다. 그 내용도 너무도 단순, 명쾌하여 과연 그 아득한 천체들의 운동을 모두 설명할 수나 있을지 의심이 갈 만큼입니다. 하긴 궁극의 법칙은 복잡하지 않고 가장 순수하게 명징한 모습이라야 할 것 같습니다.

단주기 행성 중 유일하게 눈으로 관측 가능한 게 핼리 혜성이고 최초 관측자의 이름을 불멸로 만든 녀석이기도 합니다. 그저 혜성 하나에 이름을 붙여 준 데서 의의가 끝이 아니라, 우주 공간을 돌다 주기적으로 이 땅을 방문하는 천체에 대해 과학적으로 설명을 찾게 된 중요한 계기라는 점이 주목할 만합니다. 한편, 20세기의 아인슈타인이 놀라운 건, 기존의 고전 물리학으로도 현상을 설명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음에도 불구, 아무도 아쉬워 않았던 그 빈틈(있는 줄도 몰랐던)을 파고들어 세상을 보는 전혀 다른 시각을 제공했다는 점입니다. "그의 말이 혹 맞다면 앞으로 이러이러한 현상이 관측될 것이다." 보란 듯이 입증이 이뤄진 후 그는 천재(genius)의 정의를 새로 쓰게 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폴 고갱의 그림 제목이기도 합니다만 데이터와 지식이 축적될수록 우리는 기원에 대해 궁금해하며 동시에 우리의 귀착, 미래에 대해서도 한편으로 불안한 탐구를 이어가려 들 수 있습니다. 가모브는 사실 철자를 저렇게 읽어냐 하나 싶을 만큼 이름부터가 좀 특이한 분이고 행적도 기인에 가까웠는데, 이분의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가 역시 현대 물리학과 천문학의 역사를 다시 정립하게 도왔습니다. 일반 대중들도 첨단 과학의 성과 그 결론 정도는 정확하게 알 권리와 의무가 있으며, 더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호기심과 창의적 사고의 발판입니다. 어려운 주제를 최대한 쉽게 설명해 주는 이런 책은 그래서 더욱 소중한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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