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무계약영어 - 개정판, 글로벌 시대에 꼭 필요한
김용설 지음 / 넥서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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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는 당사자 간 계약이라든가 회의 절차에 대해 규정한 어휘가 무척 많습니다. 어려운 점은 이런 어휘들이 정말 단어 하나당 한 가지씩의 뜻만 담고 있으면 모르겠는데 그런 것도 아니고 다른 단어들과 교집합을 이루기도 한다는 겁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어휘의 뜻이 변천하기도 하므로 인위적으로 뭘 바로잡으려거나 하는 노력은 불필요하겠으나, 계약 당사자는 최대한 말의 뜻, 조건의 의미를 명확하게 사전에 정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계약은 어떤 경우에 제 수명을 다하고 종료되기도 합니다. 이때 만기가 되어서 종료하는 경우는 이를 expiration이라고 합니다. 가장 일반적인 경우이며, 그렇지 않고 딱히 만기가 정해지지 않았거나 만기 도래 이전에 계약을 끝내는 경우 이를 termination이라고 합니다. 몇 달 전에 트럼프 행정부가 한미 FTA를 "끔찍하다"고 하며 개정 협상에 응하지 않으면 종료시키겠다고 했는데, 이때 쓰인 어휘가 터미네이션이며 물론 미국뿐 아니라 우리 한국도 보유한 계약상의 권리일 뿐 어떤 파격적인 협박, 횡포까지는 아닙니다. 다만 국제 정치의 현실상 미국 같은 강대국이 무슨 구실을 들어 terminate할 수는 있어도, 우리가 우리 뜻에 안 맞는다고 "이거 그냥 이제 관두죠?"라고 제안하기란 무척, 무척 힘들기는 하겠습니다.

나라 사이뿐 아니라 개인 간 계약도 일정 요건이 발생하면 이를 해제, 해지할 수 있습니다. 민사 계약법에서 해제는 소급효가 있는 종효행위라고 하며, 해지는 원상회복 같은 의무는 없고 앞으로 끝내는 효력만 발생하면 충분하다고 합니다. 근로계약은 이를 끝낸다고 해서 그간 이뤄 놓은 근로의 결과를 "원상 회복"하는 게 불가능하거니와 바람직하지도 않기에 이런 건 해지라고 합니다. 아마 우리 일상에서 이뤄지는 대부분의 termination은, 해제가 아니라 해지일 것입니다.

당사자 간 계약은 서로가 의사능력, 행위능력, 권리능력이 있는 이상 무엇이 그 내용에 포함되든 자유입니다. 그래서 구태여 어떤 사전에 정해진 사회의 틀에 맞출 이유가 없는데, 그래도 너무 파격적이고 창의적인 내용이면 일단 두 당사자가 만족하기가 힘들겠죠("이런 걸 누가 해 줍니까?""이런 조건 하에 일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관행상 보기 드물다고 바로 무효가 되거나 계약 내용이 축소되는 건 아니며, 당사자가 도장을 찍은 이상(혹은 다툼 없는 구두 계약이라 해도), 그 내용은 애초에 약속한 대로 이행되어야만 합니다.

예전에 어느 연예기획사와 소속 가수가 이른바 "노예계약"을 이유로 법정 다툼을 벌였는데, 대체 어디까지를 노예계약, 혹은 현저히 불공정한 처사로 보고 무효, 혹은 취소 사유로 삼을지는 판단이 쉬운 이슈가 아닙니다. 계약은 원칙적으로 이행되어야만 하며, 그래서 재판부도 마냥 법리로만 몰고 가면 어떤 극단적이고 당사자 모두가 불만족하는 결과가 나오기 십상이라서 조정, 화해 등으로 유도하는 일이 잦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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