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 스타트업 - 지속적 혁신을 실현하는 창업의 과학
에릭 리스 지음, 이창수.송우일 옮김 / 인사이트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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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실현적 예언"이란 개념화도 있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생각 없이 툭툭 내뱉곤 하는 말 하나하나가 의외로, 정말 의외로 우리 자신의 먼 앞길을 형성하는 데에 결정적 구실을 하곤 합니다. 어떤 사람은 상사 앞에서 동료 곁에서 제깐엔 날카로운 척 결정적 한 마디를 내놓는 척하며 그 나름 "분석의 한 마디"를 꺼내는데, 이게 윗사람 보기에, 그리고 이 상사와 선이 바로 닿아 있는 동료들 보기에 여간 신경 거슬리는 게 아닙니다. 말 자체도 부정확하고 진부하기 짝이 없거니와 아무나 다 알 수 있는 뻔한 이치를 혼자 특별한 안목으로 꿰뚫어 본 양 거드름을 피우는 그 "태도"에 더 큰 문제가 있는 거죠. 이런 사람도 남이 발견한 (객관적으로 우월한) 안건의 시방화(specification)을 두고선 "아무나 다 하는 걸 말만 꼬아서 표현했다"느니 뭐니 폄훼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자기한테 할당된 기본 업무를 탁월하게 수행하고서 이런 밉상을 떨어도 떨어야 할 텐데, 일도 못하는 자가 이런 작태를 보이니 승진은커녕 제 자리 하나를 지켜낼 재간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노력을 하는데도, 재능이 있는데도 위에서 안 써 주는 게 아니라, 그 누구한테도 쓰일 가망이 없는 겁니다. 춘추 전국 시대나 중세라면 모를까, 요즘 같이 정보가 흔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경쟁상대조차 뭘 하고 있는지 바로 지득이 가능한 세상에서, 자기만의 노력을 열심히 경주하나 성과가 나지 않는 비운의 직장인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노력의 방향성보다는, 애초부터 노력의 질과 양이 남보다 처져서 도태되는 겁니다. 혹 방향성을 처음에 잘못 잡았다고 하죠. 남들이(협업이든 경쟁이든) 어떤 쪽으로 지표를 파악하는지 주변만 둘러 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사교성이 전무하고 네트워킹 능력이 없거나 뭔가 지적 장애가 있지 않은 이상, 방향성을 잘못 잡아 애써 기울인 노력이 헛되이 썩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CEO라면 혹 모르겠습니다. 예컨대 지금 해양플랜트 투자의 대패착 때문에 한꺼번에 부도를 맞게 생긴(어찌어찌 헤쳐나가겠죠) 한국 조선 3사처럼 말입니다. 그 정도 요직에 있는 이가 아니고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그런 종류의 실패는 일부러 할래야 할 수가 없죠. CEO급 과오를 평사원 레벨에서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대단한 희귀성을 지닌 경우겠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운이 결코 찾아오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실패자, 무능자는 어떤 환경에도 감사하지 않고, 어떤 사소한 우연에 의한 성과도 모조리 자신의 덕으로 돌립니다. 오너의 3세, 4세가 부서에서 이런 행태를 보여도 곱게 봐 주지 않는데 하물며 아무 배경도 능력도 없는 사원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운이 좋은 사람은 자신의 미래를 예언한다." 마찬가지로 능력이 없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과거를 윤색, 왜곡한다고 해도 되겠습니다. 모든 게 남 탓인데 이런 사람한테 무슨 발전이 있겠으며 어느 조직에서 쓰임을 받겠습니까.

일본 자계서 저자분들 중에 "운"에 대한 논급을 하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일본이나 우리나 아직 합리적인 의사 결정 문화가 자리잡지 않고(그래서 최악의 무능자가 요리조리 핑계를 댈 여지가 생기겠고요), 좁은 국토에 사람은 많고 경쟁은 덩달아 살인적이다 보니 "왜 이렇게 운에 의해 모든 게 결정되는가?"라며 한탄하는 이가 많아서겠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동시에, "운 역시 머나먼 시간 전에 당신 본인이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반대로 남탓 타령에 허송했는지의 냉엄한 응보"라며 일찌감치 결론을 내고 있더군요. 이 책 저자분은 아예 모든 토픽을 "운"이란 키워드 하나로 다 설명하고 있습니다. "운"이란 대상에 대해 이처럼 틀리든 맞든 절절히 사례 분석을 해 보면, 그 역시 다른 모든 난제처럼 통제의 손아귀에 들어 올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저자의 진정성이 과연 얼마나 문장에 배어 났느냐가 이런 책의 가치를 좌우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정성이란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정말 고민을 하고 책을 썼는지, 내가 독자라고 생각하고 정말 이 주제에 대해 절실하게 머리를 짜낸 결과 답 같은 답을 줄 수 있을 자신이 있는지는 문장을 읽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답이 어디 매번 나오겠습니까. 그러나 이렇게 성실히 쓰여진 책을 읽고서는, 독자가 혼자 나중에 정리하는 시간에 자기 생각이 전보다 발전됩니다. 아주 조금이라도요. 회삿일도 마찬가집니다. 정답이나 무슨 구원의 아이디어를 내라는 게 아니라 자기 일처럼 최선을 다해서 머리를 짜내라는 건데 어차피 망한다며 정신이 딴 데 팔려 있는 직원을 누가 데리고 있으려 하겠습니까. 행운이건 불운이건 자신이 다 자초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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