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총사 청소년 모던 클래식 3
조정훈 편역, 알렉상드르 뒤마 원작 / 구름서재(다빈치기프트)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고전 <삼총사>는 그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설렙니다. 본디 프랑스어 원어로는  <Les Trois Mousquetaires>이며, 영어 번역어도 대개 비슷합니다만, 왠지 소지한 무기 기종에서 연원한 저 이름에서는 "총사"가 풍기는 자긍심 넘치는 환기가 안 생길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이는 착각이며, 우선 한자어로도 寵士가 아닌 銃士(거의 직역에 가깝죠)이므로 선입견과는 달리 사실은 좀 살벌한 뜻입니다.

또, 무엇보다 이 책을 직접 읽으시면 알 수 있듯, 불어 mousquetaires(영어로는 musketeers)에도 어원과는 무관하게, 오랜 언중의 사용 속에서, 맥락 속에서 추가된 감성적 뉘앙스가 또 따로 있습니다. 아니라면, 왜 다르타냥(이 책의 표기를 따르며, 또 이 표기가 규정상 맞습니다)이 그처럼 "총사" 타이틀(과 신분)에 목을 매겠습니까? 신분적 특권과는 무관하게, 그 이름은 그저 음성의 울림만으로도 한 청년의 가슴을 벅차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모르겠습니다. 이 청년이 혹시, 아주 욕망과 허영심에 찌든, 젊은 나이에 걸맞지 않은 속물이라면, 파리라는 번화한 도회에서 한몫 잡아 보려는 찌들어빠진 동기에만 사로잡혔다면, 총사란 타이틀은 그저 신분 상승의 구차한 욕구를 상징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우리가 다르타냥을 좋아하는, 혹은 좋아해 왔던 이유는, 그런 건 전혀 따지질 않고 돈키호테처럼 자신이 믿는 대의와 자존을 위해 그냥 미친 듯 몸을 던진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 작품보다 세르반테스의 그 고전이 훨씬 이전에 나왔지만, 세르반테스의 그 고전이 다분히 풍자적 의도에서 쓰여진 반면, 이 작품이야말로 후대인들에게 "진짜 기사도"가 무엇인지 일단은 알려 주겠다고 작심한 양, 가장 순일하고 호탕한 남자들의 계산 없는 우의와 순정을 잘 표현하는 예이기도 합니다. 물론 훨씬 이전 시대의 그야말로 판에 박힌 스타일의 기사도 예찬이야 아닙니다. 사조로서의 낭만주의를 정확히(의도이든 아니든 간에) 표방하며, 인간 감정의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면까지를 드러내며, 귀족과 그에 기생하는 간악한 무리들의 이중성도 적나라하게 폭로합니다. 그런가하면 내내 거악(巨惡)의 본산일 줄만 알았던 OOOO와 나중에 총사들이 타협하는 결말을 제시함으로써, 뜻밖의 리얼리즘까지 독자들에게 일종의 반전으로 선사하는 플롯 기법상의 성숙함도 지녔습니다. 이런 점에서, 세르반테스의 안티테제였던 "그 흔해빠진 기사도물"과는 차원이 다르며, 세월이 이만큼이나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전으로서, 또 어쩌면 장르문학으로서, 대중들에게 사랑 받고 평론가들의 분석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아버지 뒤마)에 대해, 이른바 공장형 창작의 원조였다면서 호되게 비판하는 일각의 움직임이 있고, 또 그런 비판의 상당 부분은 사실로 보입니다. 허나 설령 작가 명의에 의혹이 있고, 작가의 착취적 상업적 행태가 비판 대상이 되어도, 작품만을 놓고서는 정당한 평가가 이뤄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뒤마의 공장에서 혹사당하며 재능을 갈취당한 그 무명씨(그런 사람이 정말 있다면요)를 대신 예찬한다 해도 말입니다. 아무리 배경이 미심쩍어도, 작품이 재미있고 여전히 사람 설레게 만드는데야 어쩌겠습니까? 우리 독자가 원하는 건 이야기의 재미, 건전한 감동, 완독 후에도 적정 수준으로 우리 감정을 정화할 여운 등이겠는데, 이 <삼총사>는 그런 점에서 완벽한 읽을거리입니다. 이 <삼총사>는 너무나 재미있고 유익하기까지 하며, 그래서 새로운 감성의 현대적 번역이 끊임없이 이뤄져야 할 이유를 다시 확인시키기도 합니다.

이 소설은 상당 대목에서 이른바 homosocial 분위기를 풍기기도 합니다. 게이 코드라는 뜻이 아니라(그렇긴커녕 극과 극이죠), 남성들끼리만 통하는 어떤 의기투합과 공감대로 문제를 해결하고 주제를 부각하는 작품 내 분위기를 뜻합니다. 이론상으로는 "여성들끼리"로 정반대 분위기를 잡을 수도 있고, 실제 문예나 영화에서 그런 예가 많이도 발견됩니다, 이제는요.

어쨌든 이 책 p172에서, 아토스가 다르타냥에게 여성에 대한 회의, 혐오적 견해를 드러내며, 자신의 친구에 얽힌 실화(?)를 들려주는 대목이 있습니다. 고귀하기 짝이 없는 혈통의 귀족(자기 아니고 자기 친구 얘기랍니다 ㅋㅋ)이었는데, 여자 하나 잘못 만나 신세를 망칠 뻔하고, 호된 방식으로 교훈을 배운 후, 다시는 색욕에 눈도 안 돌렸다는.... 다르타냥은 시골 출신의 순박한 청년이라(저기 2011년 영화에서 로건 레먼 버전의 다르타냥은 너무 뺀질뺀질하게 묘사되었죠), "큰형님" 아토스의 이 말을 기냥 곧이곧대로 100% 접수하고 치를 떨기까지 하죠. 이걸 보고 아토스가 하는 말 들어 보십시오. "요즘 젊은 놈들은 도대체 술 마실 줄을 몰라. 하지만 이놈(다르타냥)은 그중 괜찮은 녀석이지." 이런 실감 나고 캐릭터 개성이 그대로 구현되는 에피소드가 풍성하기에, 우리는 여전히 매혹되며 이 작품을 읽는 것입니다.

아버지 뒤마의 소설을 보면, "밀레디"니 "밀로드"니 하는 표현이 자주 나오죠. 그 중에서도 이 작품은 아예 "밀레디"가 캐릭터의 이름처럼 쓰입니다. 영국은 근대에 와서만 강해진 게 아니라, 백년 전쟁에서도 알 수 있듯 본디 대륙에 하나의 근거, 지분을 가지고 깊은 영향력을 행사해 온 나라입니다(단, 다들 국민국가는 아직 아닐 시절이지만). 그러니 대륙의 하층 계급에게 저런 용어들을 상용 어휘로 만들어 낼 만큼 유력자의 왕래가 잦았다는 뜻이죠(마이 레이디, 마이 로드와 같습니다). 이 고전에서 밀레디 캐릭터는, 다르타냥이나 삼총사 못지 않게 독자에게 엄청난 인상을 각인한 불멸의 존재입니다. 2011년 영화에서는 밀라 요보비치가 맡았죠. 팜 파탈의 아득한 원조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원저를 보면 분량이 상당한데 이 책은 다소 슬림합니다. 이유는 원작의 수많은 에피소드 중, 진주인공 다르타냥의 행보, 동선에 맞추어 발췌역을 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영화를 즐기기 위한 선행학습 독서라면 구태여 완역본을 볼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 원작이 구태여 진주인공 다르타냥을 젖혀 두고 "삼총사"로 이름을 단 것도, 시대배경이나 총체적 영웅담, 음모, 정치적 활극을 전달하려는 의도가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차피 다르타냥과 삼총사의 활약에만 초점을 둔다면, 이 발췌역본으로 대의를 파악해도 큰 지장은 없습니다. 어색한 한자어가 없고, 뜻이 선명하게 통하는 문장이라 가독성도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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