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 보이 - 2018년 제14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
박형근 지음 / 나무옆의자 / 2018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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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보이"는 물론 이 소설에서 실제 우주인 노릇을 하고 지구에 귀환한 주인공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작품 전체를 잘 읽어 보면,  그 자신도 스스로의 정체성이 뭔지 내내 헷갈리면서 세상이 무중력 상태처럼 떠받치고 도는 "유명인 놀이"에 결국은 완전한 환멸에 도달하는, 아직은 좀 철이 없어 보이는, (역설적이지만) 철부지 상태에서 어떤 깨달음에 도달하는 서른 살 청년의 이야기를 한 줄로 압축한 어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책 띠지를 보면 정이현 작가가 "어깨에 힘 다 빼고 쓴 소설"이라든가 허세 없는 작품 등으로 평한 구절이 나오는데요. 읽어 보면 정말 모든 문장이 잡담처럼 술술 읽힐 만큼은 아닙니다. 아직 젊은 작가가 여튼 고뇌와 사색을 많이는 하셨구나 같은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어깨에 힘을 뺀 건 작품 자체라기보다, 젊은 나이에 거의 모든 것(현대 한국 사회의 피상성을 감안할 때)을 얻었다고 해도 될 주인공 "신 씨"의 무념무상 초탈 해탈 소박털털한 순정입니다.

테드 창의 어느 작품을 보면 한 개인의 가장 지옥같은 기억을 끄집어내는 게 살인 필살기라는 재미있는 설정이 보이는데, 이 책의 외계인(들)도 그런 인간의 약점을 잘 알고, 기억의 메커니즘을 가장 쉬운 말로 주인공에게 설명하고는, 주어진 행운과 재능을 잘 쓰라는 당부와 함께 지구로 돌려보냅니다. 그러니 "우주인(지구에서 미션을 받고 우주로 나갔다가 돌아온 이)"은 그냥 말로만 우주인이 아니라, 외계인과 진짜 컨택을 하고서 종전과는 다른 존재가 되었기에 우주인인 셈입니다.

이뿐 아니라 "저 사람 외계인 아냐?" 같은 말을 듣는 탁월한 기량의 소유자라든가(하필 이 책에서는 축구 선수 메시 이야기만 드네요), 천재라든가 하는 사람들은 다 외계인한테 한번 끌려갔다 풀려나와서, 그 기억도 모두 잊은 채 불가사의한 솜씨를 발휘한다는 겁니다. 미국에서는 이처럼 "외계인 납치" 테마가 꽤 인기를 끄는 편인데 우리 한국인들로서는 잘 이해가 안 되기도 합니다. 무튼 작가께서도 혹시 외계인에게 납치라도 되셨다가 풀려난 건지(농담입니다) 이 테마에 아주 몰입해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 주고 있네요.

소설 평을 보면 "진짜 압권은 주인공이 지구로 귀환한 후반부부터이다."란 말이 있는데, 후반부가 재미있긴 합니다. TV를 보며 어쩜 저렇게 얼굴이 작을까, 근육은 대체 사람이 맞을까 싶게 오밀조밀 잘 만들어서 대중은 선망과 좌절감을 느끼곤 하죠. 그런데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새로 계약한 기획사 베테랑들의 말을 빌려, "다 경락치료빨이다. 다 약물빨(스테로이드라네요. 헉)이다." 등등 평범한 소시민들을 그저 안심하게 만드는 충격적인(ㅎㅎ) 설정이 가득합니다. 아마도 많은 독자들은 이런 대목에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 같습니다(다 그렇지는 않으니 괜한 오해는 없어야겠습니다). 주인공을 두고 "귀여운 반항아 같은 이미지"라고 한다는데, 이 주인공이 반항하는 건 권력이나 재력 같은 전통적인(?) 타겟이 아니라, 천박한 상업주의, 속임수, 생각 없이 트렌드에 열광하며 사람을 들었다놨다 하는 대중의 여론, 소셜 미디어의 폭력 등입니다. 이 소설에 깊이 빠져드는 층은 아마 주인공이 선택(이라기보다 천성이지만)한 그 반항의 지향점에 공감해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실제로 주인공은 돈 주고도 얻을 수 없는 모든 걸 갖고도, 그 과정의 위선과 허위와 경박성에 질린 나머지 애써 가꾼(소속사가 가꿔준) 이미지를 모두 팽개치고 일종의 자폭 행각에 나섭니다. 그뿐 아니라 "로또 번호"를 공개하여 많은 이들에게 행운을 던져 주고 (자기 말로) "이 시대의 예수"가 됩니다. 딱히 과장도 아닌 게, 예수 역시 당대의 위선을 질타, 비판하가 미움을 사 인민 재판에 희생되었으며, 굶주리던 대중에게 이른바 "오병이어"를 통해 포식의 기적을 행했는가 하면, 그 자신이 어린이와도 같은 마음가짐의 소유자였으니 말입니다.

요즘 워낙 대중서로 뇌과학 이야기가 많이 다뤄지다 보니 웬만해서는 대화 자리에서 이 소재로 다들 한 마디씩 합니다. 전혀 안 되던 게 왜 어느날 자고 일어나면 멀쩡히 되는 걸까? 주인공은 천진하게 묻고 외계인은 답해 줍니다만 이 정도는 국내 권위자들도 충분히, 오류 없이 해결해 줄 수 있는 의문이죠. 둘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외계인은 실제로 주인공의 뇌를 어루만지며 원하는 바가 가능하도록 신경의 매듭을 이어 줄 능력이 있다는 점 정도입니다(이 소설엔 관련 학계에서 즐겨 쓰는 전문 용어가 거의 없고 쉬운 말로 다 풀어 놨던데 확실히 "어깨에 힘을 뺀" 태도이긴 합니다). 주인공은 정말 일렉기타를 잘 치고 싶었는지, 아니면 보드 타는 기술이 가장 절실했는지, "소원은 신중하게 빌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귀한 기회에 고작 생각한다는게 이런 소박한 것들뿐입니다. 이런 순진한 태도에 외계인님께서 특히 호감을 가졌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그러나.... ㅠ).

나의 가장 아픈 기억은 무엇일까? 사람은 자신이 처한 비극적 운명을 내내 모르고 살아 오다, 어느날 한순간에 내키지 않는 진실에 직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쩌면 가장 무서운 심연의 비극은 바로 스스로가 왜곡하고 감춰 둔 기억 속에 도사리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주인공은 무모한 건지 용감한 건지 스스로 자신의 기억을 캐어 들어가는데, 아무리 파고 파도 그 자리에는 여인 한 명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불x친구이자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인 그녀는, 이제는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남의 여인이 되기 직전입니다. 세상을 단순하고도 솔직하게 살아온 그였기에 이 기억 말고 그를 아프게 할 다른 어떤 약점도 없습니다. 여성들은 물론 심지어 게이들 사이(이걸 근데 딱히 강조하는 이유가 뭘까요? 대안으로서 생각은 하고 있다는 뜻입니까?)에서도 최고 인기남이 된 그이지만, 가장 갖고 싶은 걸 못 가지는 그이기에 마음이 하나도 편하질 않습니다. 기억의 심연에서 찾아낸 가장 내밀한 욕구 혹은 상처가 고작 이런 것뿐이라면 예수까지는 몰라도 진정 달관 득도한 자인지도요.

처음부터 우주인으로 선발된 게 프로젝트의 상업적 효과를 노렸을 뿐 다른 어떤 배경이나 자격이 있어서가 아님을 스스로가 잘 알고, 대성공을 거두고 귀환한 후엔 자신에게 덧씌워진 그 모든 허상의 이미지에 환멸을 느끼는 그. 이처럼 주인공은 세상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가장 밀도 높은 소통(비록 가짜지만)을 누리지만, 세상과 철저히 유리되어 고독 속에 감금됩니다. 이런 그이기에 결국 그녀 역시 설령 기회가 주어졌더라도 제대로 합일하지는 못 했을 듯한데, 뇌경색으로 불구자가 되고 나서도 여튼 그를 찾아준 건 엄마 말고는 그녀뿐입니다. 그를 100% 이해는 하는데 역시 그 단순함에 질려 결국 옆을 지켜 줄 자신은 또 없는 그녀. 명품은 어려서부터 좋아했는지 결국 자신이 그 사건의 범인이었음을 자백하는 그녀. 혹 속편이 나온다면 두 불x친구의 과거를 다루는 프리퀄이었으면 어떨지 생각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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