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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양의 모니카입니다
모니카 마시아스 지음 / 예담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나는 평양의 모니카 입니다.] 저자 모니카 마시아스는 아프리카 출신의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한반도인이자 이방인이기도 하다.... 그녀의 파란 만장한 삶이 단 한권의 에세이에 흘러 들어 잇지만 이마저도 그녀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로는 부족 할지도 모르겠다는 것이 책장을 덮으면서의 나의 소감 이다....
아주 생소한 < 모니카> 란 이름의 외국소녀와 체제 강압적인 북한의 < 평양>을 매치 시키기에는 조금 시간이 필요 하였다... 책의 서두와 인테넷 서점의 프롤로그를 보고 서야 대략적인 방향을 알수 있었다...
그녀는 놀라웁게도 1994 년 사망한 북한 김일성 주석의 양녀 이기도 하다 ,, 한편으론 적도 기니 ( 이부분이 궁금 하여 위키 디피아를 찾아 보았는데 , 프랑스 령이었다가 독립한 [ 기니 공화국] 과는 다른 [ 적도기니 ] 이다 ,, 인구면에서도 기니 공화국은 약 9백만명 가량 되지만 , 적도 기니는 약 50만명에 불과 하다... 아래는 적도 기니에 대한 개요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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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도 기니(스페인어: República de Guinea Ecuatorial, 문화어: 적도기네)는 아프리카 서부에 있는 나라로, 인구는 약 50만 명이며, 면적은 28,000㎢이다. 아프리카 국가 중 가장 작은 나라 중의 하나이며, 대륙 지역인 리오무니(Río Muni)와 페르난도포 섬 등 몇몇의 조그만 앞바다의 섬을 포함한 두 개의 지역으로 구성된다. 유전 개발에 따른 최근의 경제 성장은 이 나라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 있다. 과거 스페인의 식민지이기도 했던 적도 기니는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스페인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나라이기도 하다(분쟁 지역인 서사하라를 제외). 국가도메인은 .gq이다. 이름과는 달리 영토나 영해 위로 적도가 지나가지 않는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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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도기니는 독립이전엔 스페인의 식민지였다.. 따라서 초대 대통령으로서는 어느정도의 반대 세력도 있을터였고, 그를 지지하는 자들에대한 논공행상도 있었지 않을까 추론 하였다... 다만 공식적인 초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독재자의 모습 그 자체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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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아스 응게마는 스페인 식민정부 당시 몽고모(Mongomo)의 시장을 지냈으며 그 후 지방의회의 의원으로 활동했다. 1968년 적도기니의 독립 직전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결선투표까지 치른 뒤 당선되었다.
그가 대통령직을 역임하는 동안 적도기니는 "아프리카의 다하우(나치 강제 수용소)" 라는 별명을 얻었고 그 자신은 정치적 처형과 스페인에 대한 악의적인 라디오 연설로 악명을 떨쳤다. 독립전 적도기니 임시정부의 수상이었던 보니파시오 온도 에두(Bonifacio Ondó Edu)는 마시아스가 정권을 잡은 직후 투옥되어 굶주림 끝에 처형당했다. 그 밖에 전직 부통령을 비롯한 많은 정치 인사들이 구금되었으며 "자살" 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시아스 응게마의 비인륜적인 폭력으로 인해 전체 인구의 1/3이 넘는 적도기니 국민들이 이웃 나라로 달아났다. 그의 정권을 유지시킨 3개의 축은 "연합노동당"(United National Workers' Party, PUNT, 독립이전 부터 존재하던 조직을 정당으로 개편)과 소년들로 이루어진 "사병 집단", 그리고 리우 무니(Río Muni)의 "에상기 일족"(Esangui clan) 이었다.
그가 권력을 행사하는 수단이었던 군대와 대통령 경호대는 마시아스의 친척과 일족들에 의해 완전히 통솔되었다. 또한 그는 "지적인(intellectual)" 이라는 단어의 사용을 금지하고 어선을 파괴하고 어업을 금지하는 등의 편집증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1976년 마시아스는 그의 이름을 아프리카식(Masie Nguema Biyogo Ñegue Ndong)으로 바꾸고 모든 적도기니 국민들의 이름을 아프리카식으로 개명할 것을 요구했다.
마시아스 응게마는 일생동안 많은 대마를 피웠고 그로 인한 과대망상과 자기숭배를 즐겼다. 그는 스스로 "기적의 사나이(Unique Miracle)" 혹은 "교육, 과학, 문화의 최고 달인" 이라는 수식어를 붙혔다. 페르난도포 섬은 그의 이름을 따 "마시에 응게마 비요고 섬" 이라는 아프리카식 이름으로 개칭했다. 1979년 그가 권좌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비오코 섬" 으로 다시 이름이 바뀐다.
권력의 확장
1971년 5월 7일 마시아스 응게마는 415조치를 발표하는데 이 조치는 1968년 제정된 헌법을 무효화하고 입법, 사법, 행정의 모든 권한 및 내각 구성권까지 모두 대통령에게 직접적으로 부여했다.
1971년 10월 18일 반포된 법령 1은 대통령이나 정부에 위협을 주는 인물은 예외없이 사형을 부과하도록 규정되었다. 1972년 7월 14일 그는 헌법 1을 반포해 자신을 종신대통령에 임명했다. 1973년 7월 29일 그는 1968년 헌법을 완전히 무효화 하고 마시아스 응게마와 그의 정당에 절대적인 권력을 주는 새로운 헌법을 반포했다.
헌법 6(Decree 6)을 반포, 사교육 혁파를 주장하고 모든 종류의 사교육을 금지시켰다. 그의 통치기간동안 적도기니에는 어떠한 경제개발 계획도 세워지지 않았고 공공기금 조성 체계도 존재하지 않았다. 응게마가 중앙은행의 총재를 살해한 이후 그는 국보로 지정된 모든 보물들을 자신의 집에 끌어 모았다.
쿠데타
1979년 8월 3일 그는 조카인 테오도로 오비앙 음바소고(Teodoro Obiang Nguema Mbasogo)에 의해 축출된다. 테오도로는 비오코의 군사 지도자를 역임했고 적도기니군의 부사령관 이었다.
마시아스와 그의 방위부대는 한때 쿠데타에 저항하기도 했으나 결과적으로 마시아스는 버림받았고 8월 18일 숲 속에서 생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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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대통령이긴 하지만 권력에대한 인간의 의지는 박약할수 밖에 없다는 것에 공감한다...아니면 그 자신이 아니더라도 주변의 심복들 혹은 추종 세력의 견제로 말미 암아 권좌에서 평화롭게 내려 오지 못하는 예를 우리는 역사에서 흔히 본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지금의 한국 현직 대툥령의 아버지인 박정희 또한 그러하였고 결국 1979년 10/26일 총탄에 서거하는 운명을 맞는다.. ( 우연 하게도 마시아스 응게마의 사망 시기도 1979년 9월 이다. ) 아직 까지도 독재자와 대한 민국 경제 건설의토대를 갖춘 인물이라는 두가지 양면성을 띄면서 말이다...
어쩌면 이런 숙명적인 역사의 뒤안길에 개인으로서의 <모니카> 가 너무나도 상처 받거나 상심해하지 안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다시 그녀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 그러한 아버지의 비극적인 운명이 있기 얼마 전에 그녀의 삼남매는 평양으로 어머니와 함게 오게 되고 , 이후로 삼남매의 고군 분투기이다.... 적도 기니와는 남북한이 동시 수교 국가이기난 하나 북한이 우리 보다 빨라서 1969.1 월에 남한이 1979.8월에 수교 하였다... 따라서 북한 김주석쪽이 초대 대통령으로서는 심적으로나 물리적으로 가까운 사이였는지도 모르겠다....
북한 평양에 약 16여년간 머물면서 외양으로는 완전한 조선 소녀로 성장을 하지만 내적으로는 자신의 정체성에 갈등을 겪는 ,
그러한 딜레마를 1994년 까지 이어 오다가 드디어 자본주의 세상을 맞닦뜨리게 된 그녀에게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 진다..
그러나 그토록 가고 싶었던 고향의 엄마와는 계속 서먹한 체로 , 그리고 쿠데타로 새로이 집권한 현 대통령에 대한 증오심으로
정착지는 스페인 마드리드가 된다.. 다행이도 북한에서 배워 두었던 < 의복 피복과> 는 디자이너에게 생명인 패션 감각을 그녀 에게 주었고 , 천성이 부지런하고 붙침성이 좋은 그녀를 지지하는 사람들에 의해 무난히도 새로운 삶의 정착이 시작 된다. 이후로도 뉴욕을 거쳐서 우연히 서울에 거주 하는 사람들과 친목을 쌓게 되고 , 그러한 인연이로 서울 압구정동의 회사에까지도 입성을 한다... 지난한 세월 약 16 여년간의 누물어림을 보상 하기라도 하듯 열심히 일했고 그에 대한 보상도 기대치에 다다른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지울수 없는 것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 이는 같은 민족이나 , 타향살이 이방인에도 마찬 가지일터,,, 적도 기니로 돌아가 그간 못만난 엄마와 형제들도 만나고 , 스페인에서 정착한 마르벨 언니와도 연락이 된다...
< 모니카> 그녀가 직접 부딛힌 세상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누구에게도 손벌릴사람이 없는 이역 만리 타향 땅에서 그녀는 억척 스럽게도 가정부 일자리나 파트 타이머 주말에는 자신이 좋아 하는 < 댄서> 를 하면 서도 여유를 즐기면서 인생을 살아 나갔고,
더욱 척박한 미국 자본주의 경제의 집결지라는 <뉴욕>에 입성 해서는 더욱 당당하게 세상을 향해 자신의 정체성과 의지를 확인 시켜 나갔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스페인어와 영어를 할줄 아는 여성 , 종종 북한의 평양 , [만경대혁명학원 ] 출신이거나 , [ 평양 경공업대학 ] 출신 이란 것으로 외면하거나 거리를 두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모든 난관을 그녀만의 특유의 낙천적인 기질로 해결 하고 풀어 났갔다..... 아프리카 적도 기니출신이고 , 정작 본국의 적도 기니 말은 할줄 모르는 ? 이방인 적인 그녀이지만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사랑하고 무엇보다 소중한 당신의 가족들을 생각하고 품에 안아 보려는 , 그누구라도 비난하는 [독재자 아버지 -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 이지만 가족이기에 사랑하고 소박한 가족의 꿈을 ,, 꾸는 그녀의 미래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다시보자면 , 미국 유명 쇼진행자인 [ 오프라 윈프리]와도 닮은 꼴이 있지 않을까도 생각 해 본다... 자신의 어린 시절 역경을 슬리의 발디딤돌로 극복한 그녀들만의 이야기는 이제는 전혀 새롭지 않는 성공 스토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모쪼록 , 그녀의 고향 한반도 ? 에서 북한 , 남한과 어루림의 한마당이 이루어져 소원대로 남북간 자유 왕래가 될 그날을 기다려 본다... 그리고 그녀의 한류 사업에도 가열찬 성공이 이루어져 , 새로운 한류의 지평을 그녀의 힘으로 아시아 유럽 대륙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에도 뿌리 내리기를 성원 드린다....
에필로그] 때때로 , 소설의 스토리에서조차 짐자 하지 못하는 방식의 논픽션 이야기들이 실제 한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사람들이 가보지 못한곳 ,경험하지 못한 것을 경원해 마지 않는 그런 관점으로 , 서로 저마다의 다른 관점으로 보아지는 삶의 모습들 조차 지구상 어디에서나 노력이나 성공의 공통 분모는 존재 한다라는 [ 황금률]을 나는 믿고 싶다... < 책력거 99 > 느낌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