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개의 바다 : 바리
정은경 지음, REDFORD 그림 / 뜰book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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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결정적인 판단을 해야 할 경우가 생깁니다 늘 최선의 선택을 순간마다 했다고는 하지만, ‘그때 이랬다면‘이라는 후회와 미련도 종종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수정 불가입니다
물론 그것 때문에 발목을 잡힐 이유는 없지만요

이런 생각을 저만하는 걸까요
어쩌면 더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삶을 그대로 때론 모방하고 상상력을 추가해 조합해놓은 이야기책들을 보면 그런 느낌이 들지요

이미 만들어진, 전해져오는 이야기지만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 때론 결말이 마음에 안들 때도 있거든요

우리가 명작으로 알고 읽어온 공주 시리즈들이 대표적이고 오늘 소개해드릴 열세 개의 바다 바리가 또 그렇습니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생명이라면 그것이 또 옳은 것인가 싶으면서도 존재만으로도 소중한 부모와 자식의 연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멋진 기사님이나 거대한 드래곤은 등장하지 않지만 우리나라 전래동화에서 볼 수 있는 도깨비들과 엉뚱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벼리였으나 바리로 살아야 했던 아이의 이야기: 왜 이 책이 ‘딸들을 위한‘ 타이틀과 ‘이 세상 모든 어머니들을 위로하는 동화라는 수식어가 생겼는지 느껴보세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작가 모두 애니메이션 분야에 몸담고 있어서인지 표지부터 등장인물 소개 그리고 삽입된 그림도 여름방학 특선 애니메이션 한 편을 보는듯한 느낌입니다

힘겹게 출산을 했지만 곧 숨을 쉬지 않는다는 말에 아이를 바다에 띄워보낸 이승의 바다를 다스리는 용왕, 그리고 물에 떠밀려온 아이를 먼저 떠난 남편의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공덕이 벼리이자 바리인 아이의 어멍입니다

둘 다 그들이 지탱해야 하는 삶이 있기에 선택한 것이지만 얽힌 운명의 매듭은 풀기가 어렵습니다

우연찮게 죽은 줄 알았던 벼리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된 용궁에서는 용왕의 병을 낫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벼리에게 있음을 알려줍니다 다 예상하는 것처럼 바리가 과감하게 구하러 갔고요 (바다가 이승의 바다와 저승의 바다로 나눠져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낳아준 엄마를 구하기 위해 떠난 바리의 선택이 섭섭하고 속상하면서도 또 그럴 수밖에 없는 바리의 마음을 인정하는 공덕은 위험에 처한 바리를 돕기 위해 목숨을 담보로 저승의 바다로 떠나죠

설화라는 게 말로 전해져오는 이야기라 다른 이야기들과 비슷한 부분도 많고 겹치는 요소도 많지만 또 그런 이유로 나름의 재미가 있습니다

공덕이라는 이름의 제주의 상인이었던 만덕을 떠오르게 하고요 데미테르와 페르세포네가 나오는 신화도 생각나네요

책의 절반 이상을 읽을 때까지는 바리데기 설화를 환타지 요소를 가미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데 푹 빠져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엄마를 위로해 줄 만한 감동은 어디에‘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바리를 도와주러 떠난 공덕의 모습이 소녀의 모습인 것, 저승 바다에서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과정에서 변화하고 있는 바리의 성장이 예고하는 건 무엇이었을까요??

저승의 바다 제일 밑바닥을 지키고 있던 동수자의 비밀, 바리가 해골초(용왕의 병을 고칠 수 있는 꽃)를 구하러 간 진짜 이유, 바리의 마음과 행동을 걱정보다는 진심으로 믿어주고 응원하는 공덕을 보면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우리는 늘 뭔가를 그리워하고 원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끔은 지금 내 곁에 있는 것이 가장 소중한 것임을 잊고 살기도 하고요 간절히 원했던 그것이 늘 가까이에서 지켜봐 주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는 늦어버린 경우도 많지요

공덕은 늘 바리에게 공부를 하라고 했지요 바리에게는 더 대단한 능력과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의지가 있음을 살펴주지는 못했죠
저는 어떨까요?? 저 역시도 그렇습니다
잘하는 것, 늘 하는 것에 대한 칭찬은 야박하고, 더 잘해야 한다고, 뒤처지면 안 된다고 질책을 합니다

바리가 제주 바다와 열두 개의 바다에서 시련을 겪고 해골초를 얻게 됐다는 게 결말이었다면 뻔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지만 작가는 현대판 엄마와 딸의 참 모습을 보여줍니다

저는 오늘 딸과 함께 우리만의 열네 번째 바다를 건너고 있습니다
비단 상어가 되기 위해서요

˝비단 상어는 사는 곳에 따라 크기가 변한대 작은 물에서 살면 새끼손가락보다 더 작게 자라고, 큰 물에서 살면 무한대로 커져!˝ 본문228

˝바리야... 어멍은 너에게 어떤 바당이었을까

비단 상어처럼 ......, 큰 바당에서 큰 물고기가 되어 마음껏 헤엄치거라˝ 본문247


사춘기에 접어들기 시작한 딸과의 대화가 버겁거나, 엄마와 딸로 태어난 인연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다면 제주 푸른 바다가 넘실거리는 열세 개의 바다 바리
를 펼쳐보세요

소담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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