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지 않은 티셔츠를 입고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21
김이듬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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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읽게 되는 책들이 있다. 읽어야지..하는 목적이나 의지 없이 식당에 가면 수저를 꺼내 앞에 놓듯 그렇게 자연스레 읽게되는 책들.
명랑하라 팜 파탈, 표류하는 흑발, 말할 수 없는 애인..정도를 읽었고 디어 슬로베니아를 읽었다. 시인의 전작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나 목표는 없다. 읽다보면 읽게될 거니까.
작년 초 어느 호숫가에 책방을 냈다고 했다. 나름의 투지를 보이며 잘 버텨온다. 원형탈모를 앓으며 아이 주먹만큼 텅빈 머리를 사진찍어 보이기도 했고 임대료에 허덕이는 상황도 공유했다. 그 와중에 페이퍼 이듬이라는 계간지도 내고..
대단하다. 라는 생각보다 먼저 ‘이듬답다‘는 생각을 했다.
(친분따위 없지만)
김이듬의 시는 꿈꾸기 좋다. 몽상의 틀이 없다고 할만큼 넓다. 시를 들고 어디로 뛰어가든 어떤색을 덮어쓰든 이상할것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때때로 마녀일까? 의심하기도 한다.
거절하기 어려운 꿈 속으로 잡아끈다. 그래서인지 시집을 덮을 때 쯤이면 뭔가 후련하다. 복잡한 실타래를 풀어내는게 아니라 예쁘게 칠하고 똘똘 말아서 가운데를 딱 잘라 휴지통에 미련없이 버리게 한다. 그상황이 우습고 통쾌해 큭큭 웃게 한다. 시를 읽으며 한켠이 저릿하기도 했고 눈물도 글썽였건만 그 역시 까마득히 잊힌다.
시는 결국 꿈 속에서 분해되어 색으로 향으로 소리로 흔적만 남긴다.

마르지 않은 티셔츠를 입고.
책방이듬을 운영하며 시를 써낸 것이 대견(!)하다. 뚝심이라고 해야할까? 이런저런 소식을 sns에서 읽었었는데 고스란히 시 속에 숨었다.
시집을 덮으며 티셔츠가 왜 젖었을까?
생각했다.
어째서 티셔츠지? 소매 넓은 하늘하늘한 검정블라우스가 아닌거지? 이듬인데? 하고 잠시 생각한다.
베를린 천사의 시가 떠올랐다.
어쩌면 뛰어 내렸나? 시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어서?

전보다는 조금 부드러운 느낌의 김이듬. 뒤쪽에 붙은 에세이에서 허수경 시인의 이야기를 읽고 그녀의 없음을 다시 확인한다. 영매처럼 시인을 잠시 불러 온 이듬.
시집이 잘 팔려서 임대료에 보탬이 되면 좋겠다.
예술혼과 장사혼 사이에서 혼이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운명은 운명적이지 않고 예술은 예술적이지 않 아서 나는 의자들을 수집합니다. 어깨가 아픈 사람을 등받이가 긴 의자에 앉히고 만취한 사람은 벤치에 눕혀요. 약을 한 내 동료는 경찰에 잡혀갔지만약을 팔고 성매매한 클럽 주인은 오늘 헬스장에서셀카를 찍죠. 나는 의자를 들고 아무도 내리찍지 않 아요.
<아르누보는 왜 의자들과 관계 있는가. 중>

속성은 무엇일까
아래는 물
위는 공기

나는 분해될 난해한 책
당장 신이 읽기에도 난처하겠지

<반신. 중에서>

그날 밤 내 수첩에는 이렇게만 적혀 있다 : 오늘나의 기억은 별로 없다. 지치고 낙심한 목소리, 목소리, 후회한다, 울음을 참은 것, 초콜릿으로 만든잔에 체리주Ginjinha를 넘치게 따르지 않은 것, 죽음은 여행이 아니라 떠나버려야 했던 것임을 아는 것,
 이국에서 죽어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타지에 묻히는 시인의 심정을 생각하다가 펑펑 운 것, 아스팔트 위의 비둘기 시체, 삶은 진눈깨비라는 노래의 마지막 리릭처럼 후회할 줄 알면서 다시 떠나는 것.
이후에 나는 수정할 수 있었지만, 수정하지 않았다.

예술혼과 장사혼 사이에서 혼이 나간 마리가 사드렁하게 에리카를 바라본다.
 비현실적일 정도의 사랑의 관계는 비현실적으로임시적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랑은 인더스티얼하다.
하지만 마리는 규정을 극도로 싫어하므로 보류하는 체질

<정오의 마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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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공녀 강주룡 - 제2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박서련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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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노동운동가 강주룡. 을밀대에 몸을 묶고 싸운 여성.
아침에 문득 강주룡을 떠올렸다.
도로공사 점거싸움 소식을 읽고 분했다. 직접고용하라는 대법원의 판결을 싹 무시하는 도로공사 사장의 횡포. 그에 맞선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요구. 그걸 진압했다. 농성자들보다 많은 수의 경찰들이 왔고 버티던 여성들이 웃옷을 벗고 저항했다고 했다. 그럼에도 경찰들은 빤히 보며 심지어 사진을 찍었다고 했다. 여럿이 다치고 체포되었다.
이게 뭐지?
이건 박정희때부터 보아왔던 익숙함이다.
따지고보면 1930년대 강주룡이 싸울때도 다르지 않았다.

강남역 사거리 김용희씨도 고공투쟁중이다. 울산에서도 영남의료원에서도..

다를 줄 알았다. 박근혜를 끌어내리고 세운 정부다. 더 많은 이가 굶고(강주룡은 아사투쟁이라고 했다) 더 많은 이가 높은 곳에 올랐다.
법무장관이 되는가 마는가 난리통을 겪으면서 누구도 높은 곳에 오른 이들, 낮은 곳에 앉은 이들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다.

도로공사 점거 투쟁 뉴스 밑에 달린 댓글에 눈물이 날 뻔했다.
‘대통령 발목잡는 노동자들 없었으면..‘
세상에..이게 무슨?
이런 세상을 살고 있다는 게 아팠다.

높은 곳에서 강주룡이 내려다 본 세상. 아직도 ‘판가리‘ 중이다.

이는 우리의 마지막 판가리싸움이니......
그러니 인민 여러분, 내 목숨을 내걸고 외치는 말을 들어주시라요.
마흔아홉 파업단 동지들의, 이천삼백 피양 고무 직공의 조서이모든 노동하는 여성의 단결된 뜻으로 호소합네다.

시방까지 배운 바론 노동자가 으뜸이구 근본 되는 계급인데 실지로는 에리뜨들이 계도와 계몽의 대상으로 보구 있다. 이거이 최근나의 불만입네다.

내친김이니 내래 할 말이나 시원하니 다 하구 갈랍네다. 경찰 감시 삼엄하구 기런 거이는 문제가 아니 됩네다. 댁들 같은 인텔리들이 속으로는 쁘로레따리아 계급을 무시하면서 저희들이 가르쳐야하는 족속으로 여기는 거이 제일의 문제입네다. 

내래 배워 아는 것 중 으뜸 되는 지식은, 대중을 위하여목숨을 바치는 것처럼 명예로운 일이 없다는 거입네다. 하야서 내래 죽음을각오하고 이 지붕 우에 올라왔습네다. 평원 고무 공장주가 이 앞에 와 임금감하 선언을 취소하기 전에 내 발로 내려가는 일은 없습네다. 끝내 임금 감하를 취소치 않는다면 내 고저 자본가 압제에 신음하는 노동 대중을 대표해 죽기를 명예로 여길 뿐입네다.
기러니 여러분, 구태여 날 예서 강제로 끌어 내릴 생각은 마시라요. 뉘기든 이 지붕 우에 사닥다리를 갖다 대기만 하면 내래 즉시 몸 던져 죽을 게입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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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여성 단편소설선 글누림 비서구문학전집 3
하이파 비타르 외 지음, 샤무엘 시몽 엮음, 조애리 외 옮김 / 글누림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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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저들이 그런 짓을 저질렀을까요?" 내가 물었다. 이번에는 부인이 주위를 살피지 않았다. "가난한 사람들은 늘 지배자들에게 불쏘시개밖에 안되지요. 지배자들 어깨에 권력을 실어준 건 가난한사람들인데 말이죠."

사람들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크게 소리쳤다. "배짱도 없고 줏대도 없는 이 바보들! 당신들은 자신을 위해 당당히 맞서는 것을 언제부터 그렇게 창피한 일로 여겼소?
잔인한 말이었고 상처를 주는 말이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폭력적인 언사는 그곳에 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심하게 흔들어 놓았다.

그는 나이 든 작가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제발 대답 좀 해봐요. 세상에는 자신들의 손가락으로 대담하게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직접 만지면서 진정한 삶을 경험하는 사람드 이 있는 반면, 평생 자신과 관계없는 사건들을 구경만 하면서 살아온, 오래전에 과부가 된 나이 든 여자들도 있지요. 우리가 이들 과부와 다른 게 도대체 무엇일까요? 우리는 물에 젖는 것이 두려워 바다에 가까이 가는 것을 주저하고 있지만 이들은 바다로 직접 뛰 어들어 뼛속까지 물에 흠뻑 젖지요. 우리의 삶은 가망 없이 순결하기만 할 뿐이에요. 우리는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그저 구경만하고 이를 바보처럼 종이 위에 적기만 하죠. 우리는 우리가 쓴 글과 함께 지옥에나 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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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 베트남과 전쟁의 기억
비엣 타인 응우옌 지음, 부희령 옮김 / 더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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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있어서 기억과 망각의 기본적인 변증법은 단순히 어건이나 사람을 기억하고, 또 어떤 사건이나 사람을 잊을지 선택하는문제가 아니다. 기억과 망각의 기본적인 변증법은 우리의 인간성을 기억하고 비인간성을 잊는 것이다. 역으로 상대의 비인간성을 기억하고 인간성을 잊는 것이기도 하다. 그 대신 공정한 기억은 윤리적 기억에 서 변증법의 마지막 단계를 요구한다. 자신의 기억을 상대방의 기억으로 움직이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 내부에서 비인간성이 어떻게 서 식하는지 보고 기억하는 윤리적 인식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존재에 대한 부재의 관계는 눈으로 보이지 않는 기억의 비대칭적차원이다. 그것은 강대국들이 약소국의 기억을 지배하는 눈에 보이는차원과 나란히 존재한다. 강대국이든 약소국이든, 각 나라의 전쟁기 계와 기억 관련 산업은 기억 자체를 통제할 방법을 확립하려 한다. 

영어의 용서하다 forgive는 예전에는 증여와 인정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현대의 용서에는 증여의 의미와 함께, 체념 혹은 더 이상억울함이나 분노를 품지 않는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이러한 정의에서 항복은 패배가 아니며, 더 이상 싸우지 않는 것으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용서하는 것은 또한 범죄를 사면하거나, 보상 청구권을 포기하거나, 채무자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거나, 부채를탕감한다는 의미다. 증여와 용서에 대한 이러한 규정은 개인적이고정서적이며, 영적인 의미일 뿐 아니라, 물질적이고 경제적인 의미도 있다. 빚을 탕감해줄 수 있지만, 그것 또한 주는 것이므로, 빚을 지는 것.
이 된다. 수혜자는 호의에 보답할 필요를 느낄 수 있고, 선물을 받는것이 일종의 굴복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 또한 선물에도 교환이나상호호혜에 대한 기대가 들어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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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과 불법연행 고문과 조작이 개가 전봇대에 오줌을 싸는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던 유신치하의 이야기다.사실 읽은지는 좀 됐는데 이게 과연 과거의 일이라고만 할 수 있는지 의문이들었다.
의혹이 있어서 수사를 하기보다 다른 정치적의도로 의혹을 만들고 사실인양 포장하고 기득권의 안위와 안정적인 지위확보를 위해 하는 위협과 협박.
육체를 고문하지는 않지만 전방위로 사람을 옭죄고 위협하는 행태는 오히려 진화했다. 그 한 축을 언론이 단단히 버텨주고..
문득 이 책이 다시 생각났다.
오탈자도 제법 있고 이건 뭔소린가 싶은 문장도 있다.
‘음악은 현악기를 앞세우고 파도처럼 좋겠다‘같은..문장이 빠졌거나 술어가 잘못붙었을거다.
공작과 폭력이 사람을 파괴하는 과정이 디테일하게 그려진다.
경험해보지 않았지만 누군가 종이에 베였다는 말을 들으면 저절로 낮은 탄성과 소름이 돋는것처럼 움찔거리며 읽게된다.
고통도 이식되고 전이되는게 분명하다.
두려움과 함께..

앞산 지하실은 절대로 안 간다, 아니 못 간다. 개처럼 죽기 싫다, 서인석처럼 죽긴 싫다. 개새끼라니, 저 깍두기머리는 영원히 나를 개새끼로 아는가. 난, 개가 아니라 인간이다.
인간 하진무다. 영혼이 자유로운 대학생이다. 오인희를 사랑하는남자 하진무다! 깍두기머리, 당신은 가죽 잠바 입은 나를 지하실로끌고 가지 못한다. 당신 손에 내 목숨을 맡기지 않을 거다. 공포가하진무를 부르짖게 했다. 개자식들아, 나는 개가 아니다! 철길을 쿵쾅대는 쇠바퀴 소리가 드높아질수록 그는 고래고래 악을 썼다. 그러나 입에서는 아무 소리도 터져 나오지 않았다.

모든 국민은 사생활을 침범당해서는 안된다고 헌법에도 나와 있지 않은가. 유신독재 치하고 나발이고 나는 자유로운 인간이다. 그거 하나만 잊지 않기로 했다. 나는 가끔속으로 부르짖곤 했다. 박정희라는 한 개인 때문에 사천만 명이 지옥을 겪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한 인간 때문에 수많은 사람의 영혼이 상처를 입는 현실을 용서해서는 안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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