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과 올해들어 유난히 저자 싸인본 책을 얻게(?)된다. 이벤트라는 명목으로..그 기간 안에 책을 구입하면 싸인본으로 보내준다는..그런 것들이었다.

김연수님의 싸인본, 김중혁, 은희경,정이현, 기타등등..

저자 싸인본이 그렇지 않은 책들과 남다르게 다른 것이 있다면..글쎄..한 번 더 저자의 손을 거쳤다는 것? 

저자의 싸인이 누구에게 보내지는 것인지 모른 채, 자신의 책을 벽처럼 두른 공간에서 무던하게 싸인을 하고 있을 저자들이 눈에 그려졌다. 행복할 수도, 고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 그들의 넓고 깊은 아량으로 독자를 위해 무언가 하나 더의 의미를 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이 못내 고맙기도 안타깝기도 하다.


싸인회며 강연회며 낭독회..여기저기 후기들을 읽어보면..일단 체력적인 부담이 얼마나 클까? 싶기도 하다.


직접 내 이름과 혹은 닉네임을 적어 준 두 권이 책이 있다.

물론 택배로 받았지만..다른 싸인본보다 애착이 가는 것이 당연하겠다.


그런데 ..

어째서 싸인본이란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건지..때때로 몇권의 싸인본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삼아 드러내고..진심으로 부러워하기도 한다. 책을 살 때, 늘 안타까운건, 내가 내는 책값이 그들의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댓가일까? 그들이 말린 피와 흘린 땀과 갉아먹은 영혼의 댓가로 정당하게 지불되고 있는걸까?를 생각한다. 오지랖일테지만..

그렇게 따지면..억만금을 줘도 책 한 권 사지 못할게 분명할게다. 그래도..가끔은 미안하고 그렇다.

좀 더 많은 구매를 유도하기 위해서 가장 효율적인 마케팅이라서..? 아마 싸인본의 범람(?)이 일어나고 있는건 아닐까..작품을 마무리 하고, 자기 손을 떠난 작품과 적절한 이별을 작가는 했을까? 돌아올 소식들을 맘조리며 기다리는 것이 참 진빠지는 일인데..그만큼의 회복은 되어있는 것일까? 가끔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오늘..싸인본 하나를 받았다.

시원시원하게 적어내린 작가의 글씨. 그 성정이 보이는 것도 같다.

어쩐지 작가와 좀 더 가까운 느낌? 그, 혹은 그녀가 적어준 내 이름..이런 짜릿함? 


건방진 생각이겠지만..마케팅 과정에서 작가의 수고가 적어졌으면 좋겠다. 

책이 나오고..얼마 지나지 않아..싸인본 이벤트가 열리고..그러고 나면..낭독회 혹은 만남이 이어지고..그리고 나면 세일이 진행되고..그러다보면..품절,혹은 절판이 되고..이런 일들이 한순간에 이어진다고 느껴진다.

어쩌면 품절, 혹은 절판, 혹은 재쇄.(하, 재쇄가 시작되면 재쇄기념 뭔가를 하는 곳도 가끔 있더라..)까지가 작가의 몫일까?


독자를 만나고..그들과 호흡하고..그들의 응원을 받으며 기운을 차리기도 하겠지만..물리적으로 강행군은 아닌걸까? 자꾸 걱정이 된다. 쓰잘데기 없이.


싸인본..그것은 정말 특별한 의미였으면 좋겠다. 

치토스를 사면 나오는 팽이같은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싸인본 잘 받고..괜히 투정부린다. 나만 갖고 있는 책이고 싶나보다..이런 약아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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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한적한 시골에서 시내로 출퇴근을 하며 집,직장만을 오가는 남들은 지루하겠다고 혀를 차지만 나는 전혀 지루하지 않은 일상을 보내며 산다. 그렇게 오가는 시간과 비는 시간에 책을 읽다보면, 2,3일에 한권은 뚝딱 읽어내기도 하고, 때론 영 속도가 나지 않는 책을 만나, '그래서 어쩌라고? 어떻게 되는거냐고?'를 속으로 외치며 읽어대다보면 일주일을 훌쩍 넘기곤 한다.

일상이라는게 그렇다. 집에서 일을 하고, 나가서 일을 하고, 바보상자의 최면에 수긍해주다가 손전화에게 손과 눈을 모두 잡히기도 하고..그러다보면 책을 읽는 시간은 상대적으로 짧다. 게다가 아까 본 드라마의 장면과 겹치기라도 하면..삼천포로 빠지는 건 일도 아닌게 된다.
자연히 늦은 밤을 저당잡히게 되고, 그렇게 잠을 잃은 하루 하루가 쌓여 때때로 예민한 송곳같은 사람이 되기도 한다.
책을 읽는 외적 폐단이다.
늦은 밤, 식구들이 잠든 시간, 혼자 앉아 책을 읽는 건 때때로 외롭다. 책읽기란 외로운 작업이라고 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앞에 앉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의 경우는 그렇다.
위로 받고 싶은 것, 해소하고 싶은 것, 즐겁고 싶은 것.
감상의 과잉이라는 불치의 습관을 갖고 있다보니..스스로에게 스스로가 치이고 상처받고 하는 일도 있고, 작고 사소한 일에 아파하기도 한다. 별것 아니라는 평가를 받는 일에도..나는 온전히 아파하곤 한다. 이런 생기다 만 성정을 치유하는 책들이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책들..산문을 읽으며 호흡을 다스린다. 내 호흡의 결을 따라 글들이 오가는 것을 보고, 그 울림에 생각을 내려놓는다. 그렇게 떨림과 침잠의 시간은 위로와 치유를 내어준다.


때때로 이렇게 놀기도 한다.


 













이 두 권의 선택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조합이다.

 카미유 드 페레티는 조르주 페렉에게 아마 이 작품을 헌정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 조르주 페렉의 <인생사용법>에 이행된 제약들을 이 소설에서 따르고자 한다고 밝힌다" 그리고 진행되는 이야기..

전체를 64개로 나누고 64개의 에피소드를 시간별로 배치하는 행마법을 사용한다

멋지지 않은가.

페렉의 글은 또 얼마나 기발하고 환상적인 배치와 내용의 구조를 갖고 있는지..페렉의 한 아파트의 이야기는 99개의 서로다른 장별 제목을 갖고 있고, 역시 체스의 행마법에 따라 서술해간다. 배경과 이야기가 하나의 거대한 퍼즐이 되어지는 묘를 발휘하는 것이다. 이 두권의 책을 들고 오래도록 즐거웠다. 


때때로는 이런 것을 들고 즐거워 하기도 한다.


 시인의 질문에 혼자 대답하거나..그러게 그건 왜? 이렇게 같이 반문하며 시간을 보낸다. 많은 생각들과 대답들이 오가는 시간. 한 면에만 인쇄가 되어있는 책의 편집. 그래서..그 여백들을 이런 저런 대답으로 채운다. 아. 날짜를 적는다.

같은 질문에 시간이 지나며 달라지는 대답을 보며 내 의식의 흐름을 읽는다.

멋지지 않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냐면..그러다보니..리뷰를 쓴다거나 하는 일에 방점을 찍지 않는다. 

서재를 드나들며 드는 생각 중 하나는..매일 처럼 리뷰를 쓰는 대단한 사람들이 참 많다는 것.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게을러터진 한량적 사고를 하는 나로서는 의문일 수 밖에 없다.


나의 책읽기는 다독도 아니고..정독도 아니고..그저 樂讀 이니 말이다.

대단한 사람들이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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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은 어떤 것일까..


좋아하는 뮤지션 타블로의 노트에 그런 말이 있었다.

"난 왜 잘하는 게 없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까."

맞는 기억인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아마 비슷한 내용이었을거다.

조금쯤 기억의 왜곡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자신이 믿고 싶은대로

보고, 듣고, 기억하니 말이다.


어쨌든..최선은 어떤 것일까의 의문은..남는다.

시집을 이리저리 들여다보며 문득 어떤 대화를 엿듣는다.

다만 몇개의 시를 엮어 곡해하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지만..나는 그 대화가 마음에 들었다.

 



초록 물결 사이 드문드문 비치는 보랏빛 오동꽃 보며


라고, 그가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상행선 기차, 검진하러 가는 길


미친 복사꽃 지나

오동꽃 문드러지는 한나절 타고

짓이긴 꽃물 구성지게 번진 한판 세월

(....)

(p25)



꽃피는 날 전화를 하겠다고 했지요


꽃피는 날 전화를 하겠다고 했지요

꽃피는 날은 여러 날인데 어느 날의 꽃이 가장 꽃다운지

헤아리다가

어영부영 놓치고 말았어요

산수유 피면 산수유 놓치고

나비꽃 피면 나비꽃 놓치고


꼭 그날을 마련하려다 풍선을 놓치고 햇볕을 놓치고

아,

전화를 하기도 전에 덜컥 당신이 세상을 뜨셨지요.


모든 꽃이 다 피어나서 나를 때렸어요.

(...)

(P65)



저, 저, 하는 사이에


(....)

그런 때가 있는 것이다

아니라 아니라 못하고 발목이 빠져드는 데도 

저, 저, 하면서

아무 말도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그런 때가

있는 것이다.

(P16)



나무가 나무를 모르고


(...)

살구나무가 언니처럼 무슨 말을 하진 않았지만

매실나무도 제 딴에 이유를 남기지 않았지만

그냥 존재하는 것으로 한쪽은 아프고 다른 쪽은 미안했던 것

나중 먼 곳에서 어느 먼 곳에서 만나면

우리 인생처럼


그 나무가 나무를 서로 모르고


(P24)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자꾸만 남는 몇개의 시를 묶어 그리운 누군가에게 소식을 전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때론 아프고 때론 멋적고 때론 그 마음이 너무 깊어 완벽한 날을 잡지 못하고 자꾸만 미루고 미루다 아무말도 하지 못하는 그런 때가 기어코 올것만 같아서..그러다..그러다..결국은 알아보지 못하는 그 날이 올것만 같아서 말이다.


마치 이 시처럼..


사라진 왕국


감각은 어떤 순서로 몸을 나가는지

신경이 죽어가는 어떤 환자를 깨우려

의사가 환자의 젖꼭지를 비틀 때,


때때로 너무 세게 비틀어

젖꼭지가 떨어져 나가기도 한다


그렇게 되도록 무얼 했을까


다 떨어져나가도록 우리는,


서랍 속 엽서를 만지작대기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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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표 인문학자,

고려대학교 신창호 교수가 풀어낸

누구나 쉽게 시작하는 『한글 논어』


시대를 초월한 삶의 교과서를 한글로 만나다




인문 정신의 활성화와 인문학의 대중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고려대학교 신창호 교수는 한글로 문명을 일구어 나가는 우리가 왜 고전을 온전히 한글로 탐닉하지 못하는가에 의문을 던진다.


이미 『논어』는 세계 각국의 다양한 언어로 소개되고 있으며, 한자를 사용하는 중국인들조차 현대 중국어로 『논어』를 다시 번역하여 읽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판미동에서 출간된 『한글 논어』는 바로 그 고민의 결과물이다.

 


▶ 책 속에서



#1 . 공자가 말하였다.


“지혜로운 사람은 미혹되지 않고,

열린 마음을 지닌 사람은 근심하지 않으며,

용기 있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유명한 ‘지인용(知仁勇)’의 정의이다. 삶의 길을 제대로 터득한 지혜로운 사람은 세상일에 함부로 흔들리거나 쉽게 사기를 당하지 않는다. 열린 마음으로 덕망을 갖춘 사람은 걱정하지 않는다. 정의를 용감하게 실천하는 사람은 두려울 것이 없다. 이렇게 ‘지→인→용’의 순서로 인격의 성숙을 고민하는 것은 배움의 과정과 연관된다. — 252p. 제9편 「자한」 28절



#2 .


“당신은 공자 제자요?

자로가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그러자 걸익이 아니꼬운 듯 말하였다.


“당신들 참 한심하오. 지금 세상이 아주 어지러운데 누가 이를 바로잡을 수 있겠소? 나쁜 제후들을 정면으로 상대하지 않고 저 공자처럼 쓸데없이 피해 다니며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래서야 세상을 바꿀 수 있겠소? 차라리 세상을 피하는 사람을 따라다니는 것보다 세상을 피하는 사람을 따르는 것이 더 낫지 않겠소?”


그러고는 쳐다보지도 않고 고무래로 씨를 덮으며 밭일을 계속하였다. 자로가 이들이 한 말을 공자에게 전해 주었다. 그러자 공자는 하늘을 한 번 쳐다보고는 실망스런 표정을 지으며 한참 후에야 말하였다.


“사람이 인간 사회를 피해 짐승 무리와 같이 살 수는 없다. 세상에 인간의 길이 제대로 실행되고 상식이 통한다면 나도 이를 바꾸려 하지 않을 것이다. 왜 쓸데없이 여러 나라를 두루 돌아다니겠는가?” — 52p. 1부 「공자, 그 삶의 희로애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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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의 책들 중, 유난히 아끼는 몇권의 책이다. 팔, 다리에 어떤 패티쉬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표지에서 주는 느낌이 좋다.

세계적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나보코프의 롤리타. 그의 지성이 녹아든 글들을 처음 읽을 때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어째서 이게 무슨 의민지 모르겠지? 왜?..오기로 다시 읽고 다시 읽고 소리내어 읽으며 그의 장치들과 문장에 매료된다. 롤-리-타..발음을 하면서 윗니를 치는 혀끝에서 나보코프가 그토록 좋아하고 오래 연구했던 나비의 날갯짓을 떠올릴 수 있었다면..과대망상일까? 


 


 




또한 조엘 디케르의 장편에 나오는 노라와 해리 쿼버트의 이름 사이에서 롤리타와 험버트의 그림자를 보았다면..억측일까?










갤러웨이의 상승..저 위태로운 줄 위의 걸음을 어찌하면 좋을까.




 좀 더 멀리서 보는 좀 더 아슬한 줄타기..멀리서 볼 수록 위태로운건 줄타기뿐만은 아니겠지.











디어라이프와 눈송이의 손이 향하는 방향은 서로 반대다. 아래로 향한 채 편안한 표정의 디어라이프의 손의 방향과 하늘을 향한 눈송이의 손의 방향은 어쩐지 시리다.

두 손을 포개어 주고 싶어진다.


손과 다리로부터 시작된 오늘의 꿈은..이렇게 몇개의 표지들을 들추어내고 그 표지들을 들추었을 때 드러났던 속살같은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그 막막했던 기억과..먹먹했던 감상과..또한 애틋하고 명료했던 기억들을 말이다.

때때로..책의 표지는..내용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해주기도 한다. 내용과 상관없는 꿈을 꾸게도 한다.

늘 다른 내용을 꿈꾸게 한다. 


오늘은 몇권의 책을 펼쳐두고 징검다리 놀이를 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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