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년에 그녀는 자기 거울을 아프로디테에게 바쳤다. "나 자신을 지금 모습대로 보고 싶지 않지만 과거 모습대로 볼 수도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짧은 인생은 자연이 내려준 가장 큰 축복이라는 대 플리니우스의 말이 전혀 놀랍지 않다. 정신과 신체의 기능 쇠퇴로 고통 받는 사람들은 살아도 산다‘고 하기가 어렵지 않은가.

로마에 항상 일거리가 있긴 했어도, 최저생활 수준으로 사는사람들은 육체적으로 또 아마도 정신적으로 상당한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온갖 위험한 장소에서 날이 좋거나궂거나 고된 노동에 시달렸으니 상해 및 사망률이 오늘날 기준으로 봤을 때 그야말로 아주 높았을 터이다. 

아테네에서 공직은 30세를 넘긴 모든 성인 남성에게 열려 있었고 최종 임명은 추첨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공직자로 이름을 올리기에 앞서 수많은 질문에 답변해야 했는데, 그중 하나가
‘부모님을 잘 모시는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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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네카는 편지 말미에 훗날 세상을 파괴할 대재앙을 빼어나게 묘사한다. 그렇게해서 세상은 스스로를 새롭게 하리라는 것이었다. 세상도 언젠가 끝난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큼 큰 위로가 있겠는가? 

키케로의 슬픔이 온통 그의 딸만을 향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할 듯하다. 그는 죽은 외손자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호메로스는 종종 노년을 ‘혐오스러운‘, ‘비참한, 가혹한‘ 이라는 말로 묘사했다. 청년기의 달콤한 아름다움이나 순수성과 대조되는 노년기의 신체 상태, 그리고 이 시기에 당할 수 있는 참혹한 일들 두 가지 모두를 가리키는 표현이었다. 

시인 호라티우스는 문학작품 속 인물들이 흔히 보이는 능력의 종류를 이렇게 설명했다. "청년은 행동하고, 전성기의 사내는 논의하며,
노인은 기도한다." 결국 노인이 할 수 있는 기여라곤 기도가 전부였던 셈이다. 하지만 재미를 위해서라면 얘기가 달라졌다. 역사가 타키투스는 어느 도시를 습격한 군인들의 행동을 이렇게묘사한 바 있다. "그들은 늙어빠져 죽을 때가 다 된 남녀들을 끌고 나왔다. 전리품으로는 가치가 없을지언정 한바탕 웃음거리로 삼기엔 충분했으니까."

따라서 평온한 삶을 원하면 선한 사람이 되길 빌라, 행운의여신은 우리에게 줄 것이 없으니, 그녀를 신으로 만들어 천상 에 둔 것은 우리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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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인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았고, 그들의 시선은 늘 확고하고 흔들림 없었다. 오늘날 우리를 겁에 질리게 만드는 노년과죽음에 관한 모든 문제들은 사실 이미 2천 년 전 그들이 다루었던 것임을 쉬이 확인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품게 된다. 과연 현대인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능력이 있을까?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란 ‘당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로마인들이 자기네만의 독특한 관습이라고 여긴 것 하나는파테르파밀리아스(paterfamilias) 즉 가장의 지위였다. 파테르파밀리아스는 초기 라틴어로 한 가정(familia)‘의 ‘아버지(pater)‘를 뜻한다. 로마인은 가장이 집안의 모든 사람과 물건에 대해 완전한 권리를 소유한다고 간주했다. 

고대 사회에서 유용한 구실을 못하는 사람은 설 자리가 없었다. 

이렇듯 철학적인 말이 오가는 가운데 시인 호라티우스는 여르이 시작되면 발생하곤 하던 위험에 관해 가볍게 쓴 시구로 뭇사람의 마음을 울렸다.

첫 무화과 열매가 맺히고 뜨거운 열기가
검은 옷의 장의사와 그의 수행단을 살찌우면,
모든 아버지와 애정 가득한 어머니는 행여 자식을 잃을세라 
얼굴이 창백히 질린다.

 그리하여 키케로가 (다양한 고대 철학자의 말을 인용하며) 제안한 전략들은 다음과 같다. 죽음을 전혀 나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또는 크게 나쁘진 않은 것으로, 또는사실상 좋은 것으로, 또는 전적으로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여겨야 한다. 그리고 애도는 정당하지도 않으며 의무적이지도않다고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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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피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정말 어려운 것은 비겁함을 피하는 것입니다. 비겁함은 죽음보다 더 빨리 달려오기 때문이지요. 

여러분을 비판하는 자들을 사형에 처해서, 자기 삶이 올바르지 않다고 누군가가 비판하는 것을 막으려고 한다면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비판을 모면하려는 시도는 가능하지도 않고 고상하지도 않습니다. 가장 고상하고 쉬운 길은 여러분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입을 막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가장 선량한 사람이 될 수 있을지 직접 관심을 갖고 스스로 그렇게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판관 여러분, 여러분은 죽음을 나쁘게 여기지 말고 좋게  여겨서 선한 희망을 품어야 합니다. 신들은 선량한 사람들이 행한 일을결코 잊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그 어떤 해악도 당하지 않는다는 이 한 가지 진실을 명심하십시오.

이제는 떠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나는 죽기 위해 떠나고, 여러분은살기 위해 떠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나은 곳을향해 가고 있는지는 오직 신神 외에는 아무도 모릅니다.

 게다가 우리는 "그저 사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사는 것"이라는 말이 우리에게 여전히 타당한지, 그렇지 않은지도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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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위로 하늘에있는 것과 아래로 땅 아래에 있는 것을 탐구하고, 신들을 믿지 않으며,
궤변을 정설로 둔갑시키는" 자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사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도, 자신들이 무엇인가를 아는 척하다가 무식이 탄로났다는진실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내게 유죄판결을 내릴 것입니다. 내가 유죄판결을 받는다면, 그것은 멜레토스나 아니토스 때문이 아니라, 많은 사람의 모함과 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선한 사람이 그런 모함과 시기로 유죄판결을받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어떤 사람이 스스로 좋다고 생각해서든, 아니면 지휘관의 명령을따른 것이든 어느 자리에 있게 되었다면, 그는 죽음이나 다른 어떤 것보다도 치욕을 가장 중시해서, 죽음을 비롯해 온갖 위험에 맞서 그 자리를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

어떤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그는 지혜로운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지혜롭지 않으며, 무엇을 아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허락된 모든 복 중에서죽음이 최고의 복일지도 모르는데, 사람들은 마치 죽음이 최악의 재앙임이 확실한 것처럼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자기가 알지도 못하는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비난받아야 할 무지가 아닐까요?

내가 진실을 말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충분한 증거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나의 가난과 궁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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