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있다면 흰색이 아니라 다양한 색을 사랑했을 거라고 생각한 니키 드 생팔은 나나에게 가장 화려한 색을 거침없이 입혔다. 나나는 다이어트를 하지 않으며 풍만한 살집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검고 희고 노랗고 붉은 피부를 드러내고, 육중한 엉덩이는 생을 찬양한다. 그녀는 춤춘다. 나나는 아름답고 힘이 넘치며 더 이상 분노로 자신을 망가뜨리지 않는다.

상처처럼 보이는 성기! 즉 서양 문화에서 여성이 ‘남성‘
이라는 완벽한 성이 되려다 만, 부족함이나 장애, 결핍을 상징하는 성이었음을 기억한다면, 해나 윌키는 바로 그 지점을 패러디하고 있는 것이다. 이 혹처럼 생긴 음순은 관객들이 씹다가작가에게 준 껌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먹다 버린 껌, 씹다 만 껌.
"단물 다 빠진 껌을 누가 씹냐?" 할 때의 바로 그 껌! 바로 처녀성을 잃어버린 여자에게 붙여지는 딱지, 상처딱지처럼 붙어 있는 여성 성기 모양의 껌, "자신을 여성으로 만들어주는 신체의부분은 역사의 상흔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설명이 이해되는순간이다. 남성중심의 가부장 사회이자 자본주의 상품 사회에서 여성의 몸이 소비되는 방식에 대한 통렬한 풍자가 아닌가!!

말 그대로 여성, 당신의 몸은 전쟁터다!" 바버라 크루거Barbara Kruger의 이 작품은 낙태법과 관련해서 여성의 몸이 여성자신의 것이 되지 못하고 사회가, 국가가, 가족이 임신과 출산을 결정하고 통제하는 권력충돌의 장이 되어버린 현실을 고발하는 취지에서 만들어졌지만, 굳이 낙태법에 한정해서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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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악마도 아니지만 구원자도아니다. 남자를 죄로 이끈 것이 여자가 아니듯 그들을 구원하는 것도 여자는 아닐 것이다. 여성을 악마화하는 것이 부당하듯, 모든 것을 받아주는 영원한 어머니‘ 같은 구원자로 보는것도 우습다. 일견 위대한 어머니 여신의 발견과 계승이 여권을 신장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지만, 여성성 혐오와 억압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왜곡된 시각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된다면 모를까 여성성을 최고선으로 두고 이상화하는 것은 경계할 일이다.

돌이켜보면 언제나 그랬다. 누군가는 맘껏 상징과 비유를 썼고, 거기에서 약자들에 대한 선입견과 고정관념이 만들어지든 말든, 그들이 상처를 받든 말든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건그저 예술이라고 했다.

남성이 원하는 여성성을 연기하던 배우, 그 배우의 소모과정을 표현한 앤디 워홀, 그리고 여성성을 연기하는 자기 모습을 찍은 신디 셔먼, 여성성이라는 주제는 이처럼 끊임없는창작의 원천으로 작용하고 있다.

남성이 볼 때 모름지기 여성은 아름답게 치장해 남성의성적 판타지를 충족시켜야 하며 남성중심 사회를 위협하지 않는 선을 지켜야 한다. 그런데 여성의 짧은 머리와 낯선 염색은사회(남자)의 통제와 기준을 벗어나려는 저항으로 읽힌다. 반면 화장한 여성은 위협적인 시선을 덜 느끼므로 더 안전하다.
느끼고 자신감이 생긴다. 화장과 정반대 지점에 있는 듯 보이는 무슬림 여인들의 베일과 화장의 공통점이 바로 여기에서 발견된다.

하나의 사물에 집중하고 확대해 가장 아름답고 농염하게 그려낸 꽃을 가지고, 아름답기만 한 여성성을 ‘아름답기도 한‘ 여성성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당신들이 폄하한 아름다움을 내 식으로 펼쳐 보인다는 생각, 아름다움은 모욕이 아니라 삶의 기쁨이며, 존재의 모든 것에 깃든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일 또한 예술가의 임무라는 생각. 만약 탈코르셋의 결과가 누구나 똑같은 차림과 머리라면…… 지루하기도 할 뿐만 아니라 재미도 없을 것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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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적인 여성 캐릭터 중 대표적인 것이 메두사다. 혹자는 데 이두사가 바로 바기나 덴타타라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메두사를 묘사할 때 크게 벌어진 입, 길게 늘어뜨린 혓바닥, 멧돼지어금니처럼 뾰족한 이빨‘ 이라고 쓴다. 거기에 뱀으로 뒤덮인머리카락이라니! 상상해보라. 무성한 음모로 뒤덮인 이빨 달린 질, 영락없는 바기나 덴타타가 아닌가. 한 번 보기만 해도 돌체 럼 굳어버리게 하는 괴물. 

이러한 원초적 어머니는 프로이트가 주장하듯 거세당했기 때문이 아니라 거세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두려운 존재라고 설명한다. 이렇게 보면 메두사 신화는 남성들이 갖는 거세공포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남성을 꼼짝 못하도록 얼어붙게 만드는 이빨 달린 질을 가진 위대한 어머니 여신,모계사회와 여성의 힘에 대한 공포를 처단하는 이야기가 된다.


죽어서도 힘을 잃지 않아 누구든 그 얼굴을 보기만 하면 돌로 굳어버렸다는 메두사의 얼굴을 페르세우스는 아테나의 방패에 박아넣는다. 이 얼마나 상징적인 이야기인가. 지금도메두사는 아테나의 방패 속에 갇혀 있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남성의 직접적인 지배의 흔적을 지우고 여성을 대리로 삼아 행해지는 여성억압의 흔적으로 읽는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것은 아테나의 방패에 갇혀 있는 메두사의 머리를 끄집어내는일일지도 모르겠다.

위대한 여신이었다가, 악마와 붙어먹는 사악한 존재였다가, 메두사나 스핑크스 또는 세이렌이었다가, 마녀가 된 여성이라는 타자는 현대에 오면 유대인이 되고, 난민이 되고, 흑인이 되고, 성소수자가 되고, 그리고 페미니스트가 된다. 이들이 사회에 악을 퍼뜨리고 망가뜨린다고 한다.

파우스트는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끈다 Das ewig Weibliche zieht uns hinan"고 외쳤다. 문학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 영원히 여성적인 것‘에 대한 환상.
남자들을 현세의 관능과 쾌락에 빠지게 만들어 죄로 이끄는 것도 악마 같은 그녀지만, 오직 그녀의 순결한 사랑의 힘이 그를구원하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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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어머니 여신 티아마트는 마르두크에 의해 살해당한후 다시는 살아날 수 없었다. 따라서 티아마트의 살해는 ‘위대한 어머니 여신의 세계사적 패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비록 티아마트가 마르두크에게 패배했지만 마르두크는 티아마트 없이는 우주를 창조할 수 없다. 우주는 바로 티아마트의몸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아테나 탄생 신화를 모계적 가치규범에서 가부장적 가치규범으로의 전환‘을 상징한다고 설명한다. 흥미롭게도 아테나는 다른 어떤 자식들보다 제우스의 가치를 충실히이행하는 ‘파파걸‘로서 긍정적으로 묘사된다. 일반적으로 마마보이는 어머니 치마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지질한 남성으로묘사된다는 걸 떠올린다면 파파걸에 대한 이러한 긍정적 평가는 다분히 편파적이다. 가부장 문화는 그렇게 여신들을 주변으로 몰아내거나 남성적 가치로 흡수하고 딸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며 공고화된다. 그리고 그렇게 없애려고 했는데도 죽지 않고 살아남은 고대 여신들을 악마로 전환시킨다.

인류 문명 초기에 위대한 어머니 여신은 생명을 가져다주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거두어가는 존재이기도했다. 혹시 그에 대한 두려움이 이빨 달린 질로 형상화된 것은아닐까

이렇게 서양미술과 문화는 여성과 자궁을 괴물과 연결짓는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거세공포라고 설명한다. 바기나덴타타는 아마도 성욕에 빠져 다른 일을 그르칠까 하는 두려움, 여자에게 모든 정력을 빼앗겨 쇠약해질지 모른다는 걱정,
여자에게 좌지우지되어 남성다움을 잃지 않을까 하는 공포, 여자에게 지배당하지 않을까 하는 경계심이 합쳐져서 만들어진형태일 것이다. 

문명사회로 접어들면서 생물학적인 남성성에 대한 거세공포는 사회적 거세공포로 진화한다. 즉 사회에서 누리는 남성성의 우월한 지위를 여자 때문에 잃게 될까봐 공포에 떠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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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감정과 내면 표현이 아닌 사회의 객관적 실체를 담아내려 했기 때문에 세밀묘사에 기반해 약간 과장된 형태와 강렬한색채를 사용해서 당대의 불편한 현실과 타락한 사회상을 폭로하려 했다. 그들은 모두 자기가 사는 시대의 증인이 되고 싶어했다. 전쟁에 나갔다가 불구가 된 병사들, 거리의 창녀들, 지식인이나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위선과 부도덕을 폭로하는 그림들을 통해서 말이다


‘실은 이렇듯 젠더적으로 불공평한 시각이 서양미술에서 넘쳐난다. 정의롭지 못하고 불평등한 사회에 대해 날카로운시선을 던지는 작가라도 세상의 절반인 여성들이 처한 현실에는 둔감하기 짝이 없다. 젠더 문제에서는 진보와 보수가 따로없다. 

눈을 될 수 없도록 아름답지만 절대로 순종적이지 않은여자 남자의 말을 무조건 따르지 않는 여자. "우리가 동등하다.
면 네가 왜 항상 내게 명령하는가" 라고 생각 할 줄 알고 의문을 제기하는 여가, 자신의 성욕을 인정하고 욕망과 쾌락을 포기하지 않는 여자, 편안하지만 종속적인 낙원을 스스로 박차고나간 여자는 악마로 내몰리고 악마의 더불어 살아간다. 여자를동등한 인간으로 인정하지 못하는 아담과 사느니 악마와 사는걸 선택했다니, 통쾌하지 않은가! 이로써 릴리트는 인류 최초의 페미니스트가 된다.

현대에는 ‘릴리트 콤플렉스‘라는 단어도 생겼다. 릴리트 로 상징되는 자유 본능‘을 지나치게 억압하는 문화에서는 남 녀 모두 불균형한 행동과 정신적 고통이 나올 수 있다는 생각 에서 명명되었다. 

요컨대 이 여신들의 이야기를 쭉 따라가면 수메르의이난나가 곧 바빌로니아의 이슈타르이고 유대 신화의 아스리테이자 릴리트이면서 그리스 신화의 아프로디테, 로마 신화의베누스, 디아나와 연결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간과 지역을달리하면서 이름은 바뀌지만 성과 사랑과 다산, 전쟁을 주관하는 신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고대 사람들은 삶과 죽음을 순환하는 것으로 보았다. 땅 이 품지 않으면 씨앗이 자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고, 죽은 사람의 시신이나 동물 사체에서 식물이 자라는 것을 보았으며,
여인의 성과 사랑으로 다산이 이루어짐을 경이롭게 여겼을 것이다. 그러므로 위대한 어머니 여신은 태초부터 그냥 존재하는 신이다. 그녀의 몸에서 태어나는 모든 것은 선악을 넘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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