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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없는 나라 - 제5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이광재 지음 / 다산책방 / 2015년 10월
평점 :
#. 몇가지 키워드 - 녹두장군, 파랑새, 동학, 민중, 보국안민, 현실, 봉기.
혼불문학상을 탄 작품이라고 했다. 지칠대로 지친,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조차 불분명한 시간을 살아내고 있는 지금, 이대로는 못살겠다 들불처럼 일어난 이들과 현실의 '나'는 얼마나 큰 거리를 갖고 있을까?
교과서에서 몇줄 배운 그 이야기가 어쩌면 교과서에서 아주 사라질지도 모를판에..
민중의 이야기를 더듬어보면 오랜 민란의 역사를 짚어낼 깜은 안되도, 동학과 4.3과 전태일과 광주를 떠올리곤 한다.
가장 가까이 맡아낼 수 있는 눈물과 피의 잔향때문일게다..
책을 펼친다.
의고체의 문장들. 한 문장 한 문장이 예사롭지 않다. 어쩌면 내가 아는 단어일까? 그 의미를 찾아가며 읽는다고 초반에 고생을 좀 한다.
하지만, 결국 그 세세한 의미찾기를 포기한다. 어느 결에 그들의 말을 느끼기 시작한 까닭이다. 그 척박함이, 서러움이, 절박함이 느껴지는 그이들의 말을 느끼기 시작했다.
대원위대감과 전봉준의 만남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몇가지의 소설적 구조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고부군수의 수탈이 시작되고, 처절하게 짓밟히는 민초들의 삶에 대한 서술로 시작되는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이 대장정의 시작에 위기에 봉착해 돌파구를 찾는 대원군과 한 목숨 지펴 민초들의 삶을 바꾸고자 하는 이의 만남이 놓여있다.
소위 지도자라 지칭되는 두 계급의 마주함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 지향이 다르고 목적이 다르고 전략이 다를지라도 서로에게 기대어 아픈다리를 절룩여야 하는 시국이었다.
시작부터 팽팽한 긴장감과 함께 시작되는 서사는 실로 허투루 읽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의연함이 느껴지는 문체는 다소 지루할수도, 곤혹스러울수도 있는 옛체의 문장에서 민초들의 억양과 권세가의 억양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이런 입체감과 현장감을 그려내기 위해 작가는 얼마나 자신을 몰아세웠을까? 단 한마디도 어긋남없이 아귀가 들어맞게 고치고 고치며 말이다.
어릴 때였다.
외할머니에게 노래를 하나 배웠다.
눈치챘겠지만 그렇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간다"
노래의 의미도 뒷얘기도 몰랐지만 노래를 따라부르며 꽤나 훌쩍이곤 했다. 청포장수를 청포도장수일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우습게도 녹두꽃이 떨어지는데 청포도장수가 왜 울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았다.
그저 노래였고, 노래였다.
의미도 모르고 그저 흥얼흥얼 따라부르던 노래가 한없이 슬펐던 것은 사실이다. 시퍼런 녹두를 맺는 녹두꽃이 그렇게 시퍼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알게 된것도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억압과 수탈의 시절, 목숨을 내놓아야 무엇이든 요구할 수 있었던 시절, 단단하지만 작고 작아 온 사방으로 흩어져버리는 민초들을 묶어내어 커다란 함성으로 힘으로 묶어 적들의 심장에 박히는 화살이 되고 죽창이 되게 했던 전봉준.
전설처럼 신화처럼 듣고 읽었던 그이도 사실은 그저 사람이고 사내였음을 본다.
이야기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 전봉준의 갈등과 떨림과 두려움과 결의를 보게 된다. 그는 그저 우리 이웃집 아저씨였을지도 모를일이다.
보국안민 , 제폭구민.
반외세 반봉건.
뭔가 오래 전 이야기 같지만 지금도 겪고 있다. 그 양태만 조금 달라지고 그 수탈의 방법이 교묘해지고 치밀해졌을 뿐이다.
왜곡된 자본주의와 시장경제, 신자유주의적 상황에서 권력과 자본의 결탁. 여전히 우리는 수탈의 대상이며 하소연할 곳조차 갖고 있지 못하다.
끊임없이 뒹굴고 있지만, 그래서 헬조선이라는 자조적인 언어들이 같이 구르고 있지만 뾰족한 수는 없다.
주권국가로서 흔들림없이 국가의 길을 가는가. 이 역시 부정적이다. 여전히 강력한 외세에 협조,혹은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안된다 소리 한마디 못하고 고스란히 손해를 보면서도 그 손을 놓지 못하고 있다.
닮았다. 그들이 일떠설 수 밖에 없던 그 때와 말이다.
다만..우금치에 함께 드러누워도 좋을 녹두장군이 우리에게 없다는 것.
잘 쓰여진 책이다. 다소 어렵게 읽히는 부분도 있지만, 그것은 순전히 내 언어이해력의 문제일게다.
처음 도입부에 고생을 살풋하고 나니..그 다음엔 어디서 한 번 들었던 노래를 쉬이 따라부르게 되는 것처럼 읽혀졌다.
시원스레 읽고..마음에 뻐근하게 남는 것은 그가 지금도 간절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얼마다 더 기다려야 그가 나타날까.
가늠되지 않는다. '그'일지도 모른다고 환호하던 많은 사람들이 안겨준 실망이 깊어서일지도 모른다.
백성이 살아내지 못하는 나라. 백성을 품어주지 않는 나라. 백성이 죽음으로 백성이고자 하는 나라.
그런 나라를 과연 '나라'라고 할 수 있는가.
나라 없는 나라의 백성이 아니라고 말 할 수 있는가.
이젠..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노래나 불러보자..이런 노래가 있었다.
<붉은 노을 한울에 퍼져 핍박의 설움이 받쳐/ 보국안민 기치가 높이 솟았다 한울북 울리며
흙묻은 팔뚝엔 불거진 핏줄 황토벌판에 모여선 그날/ 유도불도 누천년의 운이 다했다 농민들의 흐느낌이다.
저 흰산 위엔 대나무 숲을 이루고 봉황대엔 달이 비춘다 / 검은 해가 비로서 빛을 내던 날 황토현의 햇불이 탄다
하늘아래 들판의 산 위에 가슴마다 타는 분노는 무엇이었나 / 갑오년의 핏발어린 외침은 우리 동학 농민피다
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 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