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건의 개요는 신문의 사설을 옮겨본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10192115275&code=990100

반헌법행위자 열전을 준비중이었다. 그가 단단히 걸려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아비 그리울 때 보라"라는 김탁환님의 산문집과 제목을 같이하는 글을 하나 읽는다.

한홍구 교수의 아버지 한만년씨가 그 아들을 탐탁치 않아한다는 조선일보의 보도 내용-역시 조잡한 짜깁기지만-을 반박하는 이 긴 글을 읽게 된다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4635

그저 한 집안의 이야기를 그저 읽어내리는 것만으로도 울컥이는 것이 있다.

끈끈한 부자의 정, 형제애, 무던한 내리사랑과 믿음이 보여짐에도 불구하고 파렴치하게도 왜곡을 해대는 것인지 ..

 

한만년의 일업일생이 궁금해졌다.

아비의 이야기가 궁금해진것이다.

   오래전 출간된 책을 이제사 알게되어 주문하고 기다린다.

 

  아비 그리울 때 보라..올 해 간행된 책들 중 가장 맘에 박히는 제목이다.

 

  우리 아버지는..어린 나를 무릎에 앉히시고 "꿈을 찍는 사진관"을 같이 읽어주셨다. 번갈아 한문단씩 읽는 그 시간을 고스란히 찍어둘껄 그랬다.

 살아가며 읽게되는 책들에 한두어가지씩 걸치게 되는 이야기들..그 이야기들을 공유할 대상이 아버지라면..뻐근하지 않겠나.

 

 

 

 

 

 

 

 

 

주문한 책은 내일 도착한다고 한다.

11월 3일.

학생의 날.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선포한 날.

 

  이 책을 사길 잘 했다. 중요한 책들을 어서 사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래저래 말 같지 않은 구실로 국정화교과서에 배치되는 내용을 담은 책들은 수거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설마 그럴라구?

그 설마의 연속을 살아내고 있지 않은가?

 

 

 

 

 

 

 

 

 

아들을 아끼는 아버지의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 책을 읽게 되겠다.

아버지를 아끼는 딸의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 재앙을 맞이한 날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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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 노래 - 가토 슈이치 자서전
가토 슈이치 지음, 이목 옮김 / 글항아리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전후 일본의 참여 지식인의 대표적 인물인 가토 슈이치의 자서전이다. 열강의 식민지전쟁이 극에 달할 시기에 태어나 비극적 전쟁의 책임이 있는 나라의 국민으로 반전을 이야기하기까지, 참여지식인으로 '함께'이지만 '자유'로운 삶을 온 몸으로 온 삶으로 겪어낸 가토 슈이치.

양의 해에 태어나서 양의 노래라는 제목을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떼를 짓지 않고 목동의 진가를 분간해 낼 수 있는 양이라니..


어린 시절부터 그가 주변인 혹은 객관적으로 상황과 사건을 바라보고 타자의 시선으로, 그러나 무책임하게 훈수를 두는 것이 아닌 깊은 통찰을 보여줄 수 있게 된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책을 읽으며 정말 이것이 어린아이의 시선이고 생각이란 말인가? 싶어진 대목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막연한 관계와 일상의 전개가 아닌 그 시간 그 장소에 있던 사람들이 어떻게 유기적인 관계를 갖으며 자신에게는 혹은 상황에 어떤 의미로 해석되어질 것인가에 대한 사고가 세밀하고 밀도있게 전개된다.


"친구들과 잘 어울려 놀지를 않더군요 " 수녀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마중 나온 어머니에게 특이한 사투리로 말했다. " 아무래도 낯을 가리니까요. 안나 수녀님. 곧 익숙해질 테죠"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그냥 이대로 조금도 불행하지 않은데, 왜 다른 아이들과 친해지거나 그들 또래 집단에 끼거나 하는 일이 필요한 걸까?'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결국 유치원 다니기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고, 그래서 다른 아이들 속에 존재하는 세상의 복잡함을 내가 발견하는 일도 없었다. (p47)


자서전이다.

스스로의 삶의 궤적을 돌아보며 정리한 글. 이렇게 치밀하고 구체적이다.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듯, 봄 볕에 덜 녹은 눈덩이가 스르륵 녹아내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을 만큼 구체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은 아름답고 우아하기까지 하다.

마치 쫀쫀하게 빈큼없이 짜낸 실크처럼 말이다.


그의 삶 전체가 고스란히 드러나며 그의 통찰과 고민과 경험과 유연하지만 강인한 신념을 이해할 근거가 되어준다.

이랬다면..그럴 수 있어. 라는 수긍이 가능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경험만이 최선의 증명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지성이 조롱당하는 시대. 돈과 권력이 사회와 사람들을 잠식해 오는 때, 가토 슈이치의 자서전은 묵직한 울림을 준다.

자신을 틀어쥐고 제 삶의 주인으로 살아내는 법.

억압과 고통 속에 찌그러지지 않도록 자신을 틀어쥐고 상황 속의 의미를 곰곰히 되짚어 행동할 수 있는 동력을 만드는 법.


사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가토 슈이치의 어린 시절의 상상을 초월하는 통찰에 내심 질투 같은 것도 생겼지만, 결국 그는 그 속에 무리짓고 안주하지 않는 자유로운 양이 되길 자처했지 않은가.

이 부드러운 강렬함과 예리한 아름다움을 아마 다시 읽어내고 싶어질 것 같다.


"이 천지간에는 너의 철학이 몽상하는 것보다도 훨씬 많은 것이 있다."(p543)"

훨씬 많은 것이 있다는 걸 알지만..알고만 있으니 내 몫의 경험치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토 슈이치를 따라 걸은 긴 시간과 통찰의 길에 떨어진 양털처럼 주워모은 공감과 배움이 자유로운 삶에 썩 괜찮은 동력이 되어줄 것 같다.


잘 그려진 담채화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본 것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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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미 한 생을 잘못 살았다 시작시인선 188
김사람 지음 / 천년의시작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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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처음 보았을 때 집에 돌아가 머릿속에 떠올려봤다.
어미와 자식 사이에 흐르는 먹먹한 사랑, 혹은 위로. 
아들의 머리에서 흐르던 피는 가슴으로, 옆구리에 흐르던 피가 다리로 흐르고 어미의 치마를 적시고 어미의 심장을 두드리며 깊은 곳에서부터 퍼올려지는 눈물이 아들의 배꼽 언저리로 떨어져 내리는 어떤 윤환.
그런 선재구성 같은 이미지로 남았다. 그러다 문득..
"피에타는 높은음자리표를 닮았어"라고 중얼거렸다.


빈 오선지 위에 그려진 높은음자리표. 아직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그 앞자리에 조심스럽게 그려진 어떤 시작의 증표. 

김사람 의 시집을 읽다가 문득 그 기억이 났다.
피에타와 높은음자리표. 그 첫 시집에 "시어"가 아닌 높은음자리표를 먼저 떠올리다니 야매독자가 맞다.

그의 첫 시집이라고 했다. 노래를 하는 사람. 김 사람.

시를 쓰는 사람. 김 사람.

이 생경한 시집을 우연히 발견하고 유희경의 추천사를 읽었다. 내게 슬픔은 줄줄 흐르는게 아니라 단단히 고여 맑은 결정을 이루는  투명한 결정이라는 생각을 갖게 했던 시인.

그 시인의 추천사에도 여전히 "슬픔"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어떤 색과 빛과 질감의 '슬픔'일까..

사는 것이 더 세분화되고 촘촘해지고 비대한 삶의 틀을 가진 힘있는 자들에게 밀려 자꾸만 구석으로 왜소하게 몰림을 당하는 사람과 사람과 사람들의 비명같은 슬픔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만 야위어간다.

다양하게 야위어간다. 누운 채, 뒤집어진 채, 두 눈을 뜬 채, 감긴채, 입을 열고, 이를 악물고..

이 다양한 슬픔 속에서 김사람의 슬픔은 어떤 형체일까를 궁금해하게 했다.

 

누구랑 닮았지?를 생각하게 한 몇몇의 시들..그러나 이내 아무와도 닮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정형을 거부하는 어떤 정형. 그런게 가능할까? 가능할지도 모른다는데 동의하게 된다.

 

뮤지션 김사람. 시인 김사람. 그의 시를 읽으며 피에타와 높은음자리표를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는 근거를 발견한다.

슬픔의 변주, 혹은 합주.


그의 시 <멜랑콜리 야구왕> 이랄지 <장 님, M씨는, 밤 을, 무 서워 한 다,>랄지 <그녀만의 포스트 - 잇>을 만나보면 이해할지도 모른다. 썩 괜찮은 애드립을 끼워넣고 싶거나 숨소리조차 안들리게 디크레센도로 읽게될지도 모른다. 

슬픔은 리듬이다. 그의 시들이 들려주는 리듬은 불규칙하다. 곧 심부전이 올지도 모르는 응급환자의 심장소리처럼..
그래서 아름답다. "나는 이미 한 생을 잘못 살았다"고 고백하는 그 입술에 무슨 댓구를 내어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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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5-10-27 23: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한 삶을 잘못 살았으면, 이제부터 새롭게 즐거운 삶을 지으면 되지요. ^^;;
그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 마음이 되어 새롭게 살자는 몸짓이 되자고..
 
나라 없는 나라 - 제5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이광재 지음 / 다산책방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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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가지 키워드 - 녹두장군, 파랑새, 동학, 민중, 보국안민, 현실, 봉기.


혼불문학상을 탄 작품이라고 했다. 지칠대로 지친,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조차 불분명한 시간을 살아내고 있는 지금, 이대로는 못살겠다 들불처럼 일어난 이들과 현실의 '나'는 얼마나 큰 거리를 갖고 있을까?

교과서에서 몇줄 배운 그 이야기가 어쩌면 교과서에서 아주 사라질지도 모를판에..

민중의 이야기를 더듬어보면 오랜 민란의 역사를 짚어낼 깜은 안되도, 동학과 4.3과 전태일과 광주를 떠올리곤 한다.

가장 가까이 맡아낼 수 있는 눈물과 피의 잔향때문일게다..


책을 펼친다.

의고체의 문장들. 한 문장 한 문장이 예사롭지 않다. 어쩌면 내가 아는 단어일까? 그 의미를 찾아가며 읽는다고 초반에 고생을 좀 한다.

하지만, 결국 그 세세한 의미찾기를 포기한다. 어느 결에 그들의 말을 느끼기 시작한 까닭이다. 그 척박함이, 서러움이, 절박함이 느껴지는 그이들의 말을 느끼기 시작했다.


대원위대감과 전봉준의 만남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몇가지의 소설적 구조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고부군수의 수탈이 시작되고, 처절하게 짓밟히는 민초들의 삶에 대한 서술로 시작되는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이 대장정의 시작에 위기에 봉착해 돌파구를 찾는 대원군과 한 목숨 지펴 민초들의 삶을 바꾸고자 하는 이의 만남이 놓여있다.

소위 지도자라 지칭되는 두 계급의 마주함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 지향이 다르고 목적이 다르고 전략이 다를지라도 서로에게 기대어 아픈다리를 절룩여야 하는 시국이었다.

시작부터 팽팽한 긴장감과 함께 시작되는 서사는 실로 허투루 읽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의연함이 느껴지는 문체는 다소 지루할수도, 곤혹스러울수도 있는 옛체의 문장에서 민초들의 억양과 권세가의 억양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이런 입체감과 현장감을 그려내기 위해 작가는 얼마나 자신을 몰아세웠을까? 단 한마디도 어긋남없이 아귀가 들어맞게 고치고 고치며 말이다.


어릴 때였다.

외할머니에게 노래를 하나 배웠다.

눈치챘겠지만 그렇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간다"

노래의 의미도 뒷얘기도 몰랐지만 노래를 따라부르며 꽤나 훌쩍이곤 했다. 청포장수를 청포도장수일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우습게도 녹두꽃이 떨어지는데 청포도장수가 왜 울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았다.

그저 노래였고, 노래였다.

의미도 모르고 그저 흥얼흥얼 따라부르던 노래가 한없이 슬펐던 것은 사실이다. 시퍼런 녹두를 맺는 녹두꽃이 그렇게 시퍼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알게 된것도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억압과 수탈의 시절, 목숨을 내놓아야 무엇이든 요구할 수 있었던 시절, 단단하지만 작고 작아 온 사방으로 흩어져버리는 민초들을 묶어내어 커다란 함성으로 힘으로 묶어 적들의 심장에 박히는 화살이 되고 죽창이 되게 했던 전봉준.

전설처럼 신화처럼 듣고 읽었던 그이도 사실은 그저 사람이고 사내였음을 본다.

이야기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 전봉준의 갈등과 떨림과 두려움과 결의를 보게 된다. 그는 그저 우리 이웃집 아저씨였을지도 모를일이다.



보국안민 , 제폭구민.

반외세 반봉건.

뭔가 오래 전 이야기 같지만 지금도 겪고 있다. 그 양태만 조금  달라지고 그 수탈의 방법이 교묘해지고 치밀해졌을 뿐이다.

왜곡된 자본주의와 시장경제, 신자유주의적 상황에서 권력과 자본의 결탁. 여전히 우리는 수탈의 대상이며 하소연할 곳조차 갖고 있지 못하다.

끊임없이 뒹굴고 있지만, 그래서 헬조선이라는 자조적인 언어들이 같이 구르고 있지만 뾰족한 수는 없다.

주권국가로서 흔들림없이 국가의 길을 가는가. 이 역시 부정적이다. 여전히 강력한 외세에 협조,혹은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안된다 소리 한마디 못하고 고스란히 손해를 보면서도 그 손을 놓지 못하고 있다.

닮았다. 그들이 일떠설 수 밖에 없던 그 때와 말이다.

다만..우금치에 함께 드러누워도 좋을 녹두장군이 우리에게 없다는 것.


잘 쓰여진 책이다. 다소 어렵게 읽히는 부분도 있지만, 그것은 순전히 내 언어이해력의 문제일게다.

처음 도입부에 고생을 살풋하고 나니..그 다음엔 어디서 한 번 들었던 노래를 쉬이 따라부르게 되는 것처럼 읽혀졌다.

시원스레 읽고..마음에 뻐근하게 남는 것은 그가 지금도 간절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얼마다 더 기다려야 그가 나타날까.

가늠되지 않는다. '그'일지도 모른다고 환호하던 많은 사람들이 안겨준 실망이 깊어서일지도 모른다.


백성이 살아내지 못하는 나라. 백성을 품어주지 않는 나라. 백성이 죽음으로 백성이고자 하는 나라.

그런 나라를 과연 '나라'라고 할 수 있는가.


나라 없는 나라의 백성이 아니라고 말 할 수 있는가.


이젠..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노래나 불러보자..이런 노래가 있었다.



<붉은 노을 한울에 퍼져 핍박의 설움이 받쳐/ 보국안민 기치가 높이 솟았다 한울북 울리며

흙묻은 팔뚝엔 불거진 핏줄 황토벌판에 모여선 그날/ 유도불도 누천년의 운이 다했다 농민들의 흐느낌이다.


저 흰산 위엔 대나무 숲을 이루고 봉황대엔 달이 비춘다 / 검은 해가 비로서 빛을 내던 날 황토현의 햇불이 탄다
하늘아래 들판의 산 위에 가슴마다 타는 분노는 무엇이었나 / 갑오년의 핏발어린 외침은 우리 동학 농민피다
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 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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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뜩 긴장한 채로 지내는 밤은 길고 예리했다. 솜씨없는 견습 마녀가 휘젓는 주걱처럼 잘 섞이는게 아니라 한쪽으로 맥없이 쌓이는 생각들은 고약한 냄새를 내며 눌러붙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눈은 따가웠고 잠은 잘 수도 없었고 오지도 않았다. 베인 손가락을 입에 물고 두리번대다 발견한 반창고처럼 가방속에 처박혀 있던 책을 꺼내 읽는다.
살아있음과 죽었음의 경계를 아슬하게 그려내는 솜씨가 일품이다.
꽤 오래 화를 누르고 서러움을 누르고 지냈다. 누군가에게 쏟아내고 싶다는 생각만 검은천을 덮어쓴 콩나물처럼 자랐을 뿐 결국 한 마디도 꺼내지 못하고 속을 끓였다.
그 답답하고 꾀죄죄한 단어들을 보고 있자니 한심하기까지했다. 
작가는 나의 것과 다르지 않은 말들을 솜씨좋게 펼치고 모으고 까불고 달래서 새로운 말들을 펼쳤다
조금 더 파고들어 끝장을 보는건 어땠을까 싶은 아쉬움이 남기도 하지만 어려운 이야기들을 어렵고 진하게 풀었다.
읽을 순 있지만 읽혀지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그건..내 속의 양심 혹은 덜여문 정의감의 부끄러운 속살을 드러내야만 읽혀지는 부분이어서였는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말들로 내가 알지 못했을 법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버릴 것이 거의없는..
손끝이 야무진 어미의 도시락같은 맛이다.

혈육이라는 말을 발음하며 비릿하고 고소한 선짓국이 먹고 싶어졌다.
'뭐라도 먹어'
'알았어'라고 대답만하고 자꾸 거르는 끼니와 끼니 사이에 먹고싶다는 의지가 생긴것은 오랜만이다. 살고 싶은것이다.
나는..작가의 꾐에 넘어가고 싶은것이다.
살아있음의 참혹한 의미를 기꺼이 마주하고 싶어졌다.

중환자보호자 대기실에서 꾸역꾸역 읽었다.
혈육들의 걱정과 기도가 술빵처럼 부푸는 그곳에서..

 

문득 내민 손끝에 잡혀와 하릴없이 읽혀지는 어떤 책들은 예기치 않은 곳에서 스쳐지나간 이상형처럼 오래 잔향이 남곤 한다.

주말 내내..읽으며 상처의 위치를 확인한 책이다.

상처는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확인한다. 어디쯤 있는지 왜 생긴건지를 기억하고 기억하는 것일 뿐이다.

 

오늘 손에 잡힌 책은..사십사와 양철북.

  그리고, 얼마전 쓰러졌다는 시인 이흔복의 시집이다.

 

 

 

 

 

 

 

 

시간은 늘 사선으로 흐르고 나는 하릴없이 베이고 있는건 아닌지 싶어지지만, 상처의 위치와 깊이를 가늠하는 것으로 고통을 덮으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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