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미 한 생을 잘못 살았다 시작시인선 188
김사람 지음 / 천년의시작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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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처음 보았을 때 집에 돌아가 머릿속에 떠올려봤다.
어미와 자식 사이에 흐르는 먹먹한 사랑, 혹은 위로. 
아들의 머리에서 흐르던 피는 가슴으로, 옆구리에 흐르던 피가 다리로 흐르고 어미의 치마를 적시고 어미의 심장을 두드리며 깊은 곳에서부터 퍼올려지는 눈물이 아들의 배꼽 언저리로 떨어져 내리는 어떤 윤환.
그런 선재구성 같은 이미지로 남았다. 그러다 문득..
"피에타는 높은음자리표를 닮았어"라고 중얼거렸다.


빈 오선지 위에 그려진 높은음자리표. 아직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그 앞자리에 조심스럽게 그려진 어떤 시작의 증표. 

김사람 의 시집을 읽다가 문득 그 기억이 났다.
피에타와 높은음자리표. 그 첫 시집에 "시어"가 아닌 높은음자리표를 먼저 떠올리다니 야매독자가 맞다.

그의 첫 시집이라고 했다. 노래를 하는 사람. 김 사람.

시를 쓰는 사람. 김 사람.

이 생경한 시집을 우연히 발견하고 유희경의 추천사를 읽었다. 내게 슬픔은 줄줄 흐르는게 아니라 단단히 고여 맑은 결정을 이루는  투명한 결정이라는 생각을 갖게 했던 시인.

그 시인의 추천사에도 여전히 "슬픔"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어떤 색과 빛과 질감의 '슬픔'일까..

사는 것이 더 세분화되고 촘촘해지고 비대한 삶의 틀을 가진 힘있는 자들에게 밀려 자꾸만 구석으로 왜소하게 몰림을 당하는 사람과 사람과 사람들의 비명같은 슬픔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만 야위어간다.

다양하게 야위어간다. 누운 채, 뒤집어진 채, 두 눈을 뜬 채, 감긴채, 입을 열고, 이를 악물고..

이 다양한 슬픔 속에서 김사람의 슬픔은 어떤 형체일까를 궁금해하게 했다.

 

누구랑 닮았지?를 생각하게 한 몇몇의 시들..그러나 이내 아무와도 닮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정형을 거부하는 어떤 정형. 그런게 가능할까? 가능할지도 모른다는데 동의하게 된다.

 

뮤지션 김사람. 시인 김사람. 그의 시를 읽으며 피에타와 높은음자리표를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는 근거를 발견한다.

슬픔의 변주, 혹은 합주.


그의 시 <멜랑콜리 야구왕> 이랄지 <장 님, M씨는, 밤 을, 무 서워 한 다,>랄지 <그녀만의 포스트 - 잇>을 만나보면 이해할지도 모른다. 썩 괜찮은 애드립을 끼워넣고 싶거나 숨소리조차 안들리게 디크레센도로 읽게될지도 모른다. 

슬픔은 리듬이다. 그의 시들이 들려주는 리듬은 불규칙하다. 곧 심부전이 올지도 모르는 응급환자의 심장소리처럼..
그래서 아름답다. "나는 이미 한 생을 잘못 살았다"고 고백하는 그 입술에 무슨 댓구를 내어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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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5-10-27 23: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한 삶을 잘못 살았으면, 이제부터 새롭게 즐거운 삶을 지으면 되지요. ^^;;
그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 마음이 되어 새롭게 살자는 몸짓이 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