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 칼로, 내 영혼의 일기를 선물 받았다. 거의 뺏은거나 다름없지만..내가 읽고 싶은 책이 있다고 징징대면 거의 대부분 기프티북을 쏘는 친구가 있다. 얼마 전에도 울지마 아이야를 사려다 게공선을 사는 바람에 아쉽다고 징징댔더니 이내 보내주었다.

이는 곧 복수로 이어졌고, 친구의 위시리스트를 훔쳐보곤 바로 책 한 권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책..

이렇게 일면식도 없이 책 하나로 아낌없이 내어주고 보태주지 못해 안달인 친구가 있다는 건..행운이며 신기하기까지 하다.

 

 

 

 

 

 

 

 

 

 

 

 

 

 

 

프리다 칼로의 책..이 책을 옮기고 엮은 안진옥님이 대단히 섬세한 분이구나 싶다. 프리다칼로의 심경까지 읽어낼 만큼 심미안이 대단하다는 생각..응구기 와 시옹오의 책은 두 말하면 입아프다..노벨상 수상 예상 투표같은 걸 하면..나는 늘 시옹오를 뽑는다. 이만큼 문학적이며 뚜렷한 세계를 그려낼 수 있는 이가 있을까?

프리다 칼로의 책을 받고 욕심은 또 이것 저것 책들을 고르게 한다.

 

 

  발음도 힘든 작가의 우크라이나 이야기. 인성을 만들어준다고 ..??

  어쨌든 한동안 신화와 민화에 빠져지낸 탓에 눈이 갔다. 그러다 그림을 그린 이가 박건웅이라는것을 발견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어느 물푸레 나무의 기억을 그렸다.

 

 

 

 

 

 

 

 

 

 

 

 

 

 

 

박건웅의 그림은 이야기를 한다. 모든 그림이 '나는 말야..'라고 말을 거는 것 같다.

그린 이를 보는 순간 이 책을 데려와야지 했다. 박노자선생이 추천사를 쓰셨다.

확실히 데려와야겠다.

480개의 이야기가 있다니 두께가 장난 아니다. 거의 벽돌책의 반열에 들 것 같다.

 

   그리고..빅보이. 파랑색을 좋아하는 것을 들켜버린 것 같다.

 이 표지를 보고 숨을 잠시 참는다. 하..이쁘다

 

 

 

 

 

 

 

 

 

 

 

 

그림을 잘 볼 줄 모른다. 그냥 좋으면 좋다. 문학적 소양 따위 없듯, 미적 소양도 없다.

그냥 좋은 것.

 

그냥 좋은 그림.

그냥 좋은 글.

그냥 좋은 사람..

 

사람을 기억하고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는 단순 명쾌한 동기가 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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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돌머리
임명희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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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돌머리를 찾아봤다.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음 영탑리라는 지도가 하나 나온다. 작가가 서산 출생이라는데 여기가 맞겠구나.

작가의 유년시절을 회고하며 적어낸 글. 단순한 회고록이 아니라 한 시기를 지나온 사람의 역사를 적은 듯 했다.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이 설핏 스쳐지나갔던 글이다. 비슷한 시기의 서술은 비슷한 색감으로 읽히겠으나 이것은 작가가 책을 펴내며에  '수두룩한 엄살들은 내 방식의 사모곡일시 분명하겠다' 라고 썼듯 어머니와 가족과 형제들이 함께 걸었던 시기에 대한 애정이며 애증이었다.

산문집이라는 구분이 무색할만큼 소설적이기까지 한 서사는 진심 때문일것이다. 자신의 삶의 시작과 과정을 들여다보는 일은 때로 휘청일만큼 감상적이거나 적잖이 왜곡하여 위안삼기도 한다. 기억의 왜곡이 주는 일종의 환각일지도 모를일이다. 한국전쟁 이후 함께 겪어야 했던 혼란의 시기를 자란 작가와 형제들, 그리고 생존의 기둥이었어야 했던 어머니의 이야기는 낯설지 않다. 드라마에서, 소설에서, 영화에서 질리게 보아 온 것들이다. 기승전애국으로 이어진 글들..고진감래를 증명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글들의 불편함과 달리 여전히 강팍하고 애절한 시대를 살고 있음을 반증하는 글. 그래서 수긍하게 된다. 어떤 치장도 포장도 없이 고스란히 적어내린 역사와 사람의 서술.

어쩌다 보니 엄마는 3.15 부정선거에도 개입하여 한 몫을 하게 되고, 친척집이라도 동가숙서가식하며 눈치를 보게 되었다.

가감없이 써내려간 글들은 때론 한숨을 때론 안타까움을 때론 희미한 미소를 짓게 한다. 그랬지, 이런 시기를 살아왔지. 좀체로 나아지지 않는 처지에 그래도 이만큼 살게 된게 어디냐며 최면을 걸듯 읊조리며 살아왔지. 그래서 남은건 뭘까?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낸다. 단지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정형화된 표현을 빌자면 역사의 수레바퀴를 눈꼽만큼씩 밀고 있는 것이다. 더 빨리 더 멀리 가자고 재촉하는 채직을 감내하며 이것이 대의라고, 이렇게라도 살아내야 한다고 이를 악물고 말이다.

내 유년의 시절과 지리적 차이가 있고, 시기적 오차가 있지만 다르지 않음을 발견하며 읽어낸다. 어쩌면 이럴까..

형태만 달라진 전쟁은 여전히 진행중이고 사람들은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매일처럼 죽음과 숨바꼭질을 하면서..


가끔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젊었던 엄마를, 병약했던 아버지를, 완고했던 할머니를, 쌀쌀맞던 고모를, 한없이 다정해서 가난을 애인처럼 끼고 살던 작은 이모를..

어린 눈에 비친 어른들은 하나같이 답답했고, 하나같이 무서웠고, 하나같이 미웠다. 내가 몇살이 되야 저 사람들이 없는 세상을 살게 될까하는 끔찍한 생각도 했었다. 내 모든 불편과 불행과 부당함에 이유가 저들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 터무니없는 적의가 어떻게 생긴건지도 모를 초파리처럼 자꾸 머리 속에 꼬여들곤 했다.

내가 그들만큼의 나이가 되어 과거의 어떤 사건들을 떠올릴 때, 그 사건의 현장과는 아무 상관도 없을 것 같던 엄마가, 아버지가, 할머니가, 고모가, 작은 이모가, 외할머니가 개입한다.

어린 나를 이불 속에서 끌어안고 옛날 이야기 대신 4.19를 이야기 해 준 아버지, 국민학교에 입학하자 애국자가 되라며 '국민교육헌장'을 반듯한 글씨로 적어오라던 할머니, (그걸 액자에 넣어 벽에 걸어두셨던..) 박정희 대통령 장례식에 동원되어 울며불며 태극기를 흔드는 여학생이 되었을 때 옆에 서서 사탕을 우물거리며 박수를 치다 경찰에게 끌려나간 작은 이모, 6.10 민주화 항쟁 때 명동성당 밖에서 까치발을 하고 딸을 찾던 엄마. ..

그 후로 오랫동안 선거철만 되면 아웅다웅 다투는 엄마와 나..하나님의 나라가 되게 해 달라고 새벽기도를 하는 엄마와, 사람의 나라가 되어야한다고 눈을 치켜뜨는 딸년의 전쟁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한 사람의 시간은 평면이 아니다. 입체적이며 역사적이다. 방구석에서 책만 읽어대는 지금의 모습도 내 아이들이 기억할 '그 때의 엄마'의 한 조각일 것이다.


산문집을 읽을 때는 습관처럼 천천히 읽는다. 생각을 다지듯..

빗돌머리는 그런 습관을 잠시 미루게 한다. 개별 에피소드들이 연결되며 큰 그림이 되고 큰 사람이 되고 큰 공감이 된다.

무조건 적인 헌신, 사랑, 믿음..이런 것이 가족이 아니라 실수하고 상처를 주고 투닥거리며 단단하게 단련시키는 동지이며 도반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 아이들..내가 책임져야 할 아이들이 아니라 같은 시대를 손잡고 건너는 동지일게다.

내 부모와 친천들..나를 지치게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나의 근원이 되어주는 시작일게다.


빗돌머리..재밌다.

개인의 역사가 시대의 역사와 다르지 않다면 어떻게 살아내야할지를 고민하게 한다.

나라에서 하는 일에 개인이 나설게 아니라는 말을 더는 못하게 할 구실이 찬찬히 쓰여졌다. 임명희, 이 사람의 다른 책들도 읽고 싶어졌다.

진심은, 건강한 사람에 대한 애정은 어떻게 쓰여지는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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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14 14: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타샤 2016-06-14 14:03   좋아요 0 | URL
ㅇㅇ..안그래도 어제 커피집 포스팅 보면서 브론테구나..했어. 잘지내지? ^^

2016-06-14 14: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타샤 2016-06-14 14:45   좋아요 0 | URL
ㅎ..생각이 나긴했구나..고맙네~^^
 
죽음의 자서전 틂 창작문고 1
김혜순 지음 / 문학실험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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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소복 같은 표지를 벗기면 관처럼 검은 표지가 숨어있다. 습관적 그리움이 솟기 시작한다.
죽음과 죽음의 이야기와 죽음의 형태와 죽음의 목소리, 죽음의 죽음에 대한 변주.
마흔 아홉개의 글은 하루, 이틀, 사흘..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마흔아흐레로 마무리 된다. 49제를 마친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할머니는 할아버지 영정 앞에서 울었다. 울며불며 노래했다.
"아이고~~이~ 세상에~ 나만 혼자 떨구고~~발길을 거두는~무정한~~사람아~아~아~ 살아생전에도~~무정하드니~~가는 길도 무정허네~~이 년의 팔자~ 어디 가서~ 한을 풀꼬~~누굴~ 잡고 원을 풀꼬~~아이고~~아~이~고~~~기다리지~마~소~이승일랑~잊어~먹고~ 이~년도 잊어먹고~ 자식들만~~기억하소~~자식들~~만 "
할아버지와 특별히 정이 없던 어린 손주년은 할미의 가락이 신기했다. 우는 건지 노래하는 건지 꺼억꺼억 숨을 들이 쉬고 내 뱉고 눈물 범벅이 된 입은 오히려 웃는 듯 보였다. 할머니는 정말 슬픈걸까? 맹랑한 손주년은 의심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를 묻고 돌아와 한 이틀을 누워 앓던 할머니는 이틀 후 이른 새벽 밥을 짓고 겉절이를 무쳐 맛나게 한 그릇을 드셨다. 머리에 수건을 쓰고 몸빼바지를 입고 밭에 나가 여느때와 다름없이 김을 맸다. 할미는 분명 슬퍼보이지 않았다. 아무일도 없는것처럼 보였다.
참으로 막걸리를 내오라는 말도 평소처럼 던져두고 가셨다.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할머니는 슬프지 않다.

시집을 읽으며 자꾸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이 생각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도 생각났다. 편안하게, 이기적이다 싶게 편안했던 아비의 표정을 용서할 수 없었던 어린 내가 생각났다.
내 기억 속에, 삶의 여백마다 여지없이 꽂혀있던 '죽음'을 발견했다. '죽음'은 언제나 화두였고 갈망이었고 최후의 목표였다. '꼭 죽고 말테야'라고 나는 사춘기무렵 결심했다. 죽음은 결코 끝나지 않는 지루한 과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죽어버리면 끝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죽음은 기록되고 저장되고 변이되어 사체가 썩어가듯 제 형체를 잃어가며 원망과 환상으로 조금씩 휘발된다. 아주 조금씩..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조금씩..
영생(永生)보다 어려운 영사(永死)를 갈망했다. 완벽하게 처리되는 삶의 흔적. 수천년이 지나서도 또 기억되고 또 떠올려지는 삶의 체취가 아닌 단 한번의 썩어문드러짐으로 끝나는 죽음. 더이상의 재생되는 기억도 찾아지는 흔적도 없는 죽음. 그런것이 필요했다. 그것이 목적이었다.
사춘기 무렵..나는 까뮈를 읽었다. 그게 다였다.

죽음의 소문과 죽음의 실체를 이렇게 적어내린 시는 새롭다. '꼭 죽어야겠다'라고 다시 생각하게 된다.
살아있음이 지루하고 덧없고 하는 패배적이고 회의적이며 염세적인 관념이 만드는 망상같은 죽음이 아닌, 실체로서의 죽음. 완벽한 멸절을 꿈꾸게 한다.
바로 이거야.
나는 비로소 말 같지 않은 말이라며 내 죽음을 조롱하던 입들에 대꾸할 근거를 만났다.

마요
     - 마흔아흐레

 공중에 떠가는 따스한 입김 하나가 너를 그리워 마요
 너보다 먼저 윤회하러 떠난 네 어릴 적 그 입술에 살랑 닿는 바람이 너를 그리워 마요

 무한 창공 떠가는 아파서 죽은 그 겨울 그 여자의 얼음 심장에
 가느다란 바늘이 가득 꽂히면서 너를 그리워 마요
 떨어진 이파리들이 언 강물 위에 지문을 가득 붙여가면서

 1백 층 2백 층 건물이 일시에 무너져 내리면서
안경은 안경끼리 신발은 신발끼리 입술은 입술끼리
 눈썹은 눈썹끼리 발자국은 발자국끼리 커다란 서랍 속으로 쓸려가면서 너를 그리워 마요

 80센티미터로 강물이 얼어붙고, 그 위로 탱크가 지나가고, 그 얼음 밑으로 물고기들이 너를 그리워 마요

 담배 가게 앞에 14년째 전봇대에 묶인 개가 거를 그리워 마요

 커다란 바람이 미쳐서 죽은 여자 수천 명을 데리고 날아가는데

 내 일생의 '너'들이 웃어젖히는 소리, 쏟아지는 머리칼

 겨울 풍경 전체가 울며불며 회초리를 휘두르며 너를 그리워 마요

 눈발이 수천 개 수만 개 수억만 개 쏟아지며 너를 그리워 마요

 온 세상에 내려앉아서 울며불며 수런거리며 눈 속에 파묻힌 눈사람 같은 네 몸을 찾지 마요, 예쁘게 접은 편지를 펴듯 사랑한다 어쩐다 너를 그리워 마요

 너는 네가 아니고 내가 바로 너라고 너를 그리워 마요

 49일 동안이나 써지지 않는 펜을 들고 적으며 적으며 너를 그리워 마요.



마지막 시를 읽으며 유언처럼 적어두겠노라 생각한다. '너를 그리워 마요. 나를 기억하지 마요. 완벽하게 죽도록..해..줘..요.'
투명한 유리잔에 담긴 맑은 물, 그 위에 덜어뜨린 검은 잉크 한방울이 번져가듯 수많은 곡선들이 춤을 추는 시집을 읽는다. 말랑하고 구불구불한 뇌를 가진 이유가 납득이 되었다. 그렇지 않다면 죽음은 오랫동안 제가 머물 자리를 탐색하느라 고생할테고 삶은 더없이 지루하고 길어질 것이니까. 맛없고 양 많은 쫄면을 받아든 것 처럼..
말랑하고 구불구불한 머릿 속 어디든 눈치채지 못하게 스며들 수 있는 죽음이어서 다행이다.
모른척 하자면, 완벽하게 죽으려면 완벽하게 살아내야겠다. 죽음을 삶처럼, 삶을 죽음처럼..
김혜순의 송진같은 시를 씹는다.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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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를 읽다

국어도 겨우 하는 신세지만..오자일 것이라는 생각.

나는 더 이상 책을 잃을 수가 없다..라니.

아, 그러고보니 얼마 전 읽은 것도 같다.
오자인듯 싶다는 글을.
무심하게 지나쳤는데 이렇게 마주치니 피식하게 된다.
하필 표제작에서..

한편 부코스키 책이라면 괜찮겠다, 오히려 부코스키스럽다는 생각도 한다.

톰 존스가 대체 누구요?
라는 시에서
피와 오줌....(blood and piss....)
을 blood and peace 처럼 읽고 시가 더 맛있어졌다.
피터지게 싸우는 여인들과 목격자인양 평온한 화자는 그런 느낌이었다. 제목 마저 심드렁하지 않은가?

이미 다양한 경로로 출판사에 제보 되었을테고 2쇄가 찍힌다면 반영되겠지만 이 오자가 부코스키스럽다고 생각하니 이대로도 재밌겠다 싶다.

나는 더 이상 책을 잃을 수 없다. 괜시리 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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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6-06-11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옥의 티를 찾았군요!

나타샤 2016-06-11 14:14   좋아요 0 | URL
티가 더 매력적이라서 흡족합니다~^^
 
틸라, 츄비박과 하늘을 나는 기차 튼튼한 나무 11
파트리시아 슈뢰더 지음, 에다 스키베 그림, 김희상 옮김 / 씨드북(주)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발명가의 딸 틸라. 늘 다투는 부모님을 떠나기로 한다. 사이좋게 지내는 걸 알게 되면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열 살짜리 틸라와 커다란 박쥐(심지어 타고 날기도 한다) 츄비박이 떠나는 여행.

21세기판 말괄량이 삐삐라고 생각했다. 원숭이 닐슨과 작은 아저씨 알폰소(말) 대신 츄비박.
엄청난 힘과 보물 대신 아빠의 발명품. 첫 정착지에서 만난 친구들은 토니와 아니카와 겹쳐졌다.
빨간머리에 파랑과 초록의 오드아이, 주근깨. 틸라의 모습이 저절로 그려진다.

새 친구 펠릭스,메를레 남매와 함께 동네 보육원 원장의 악행(?)을 밝혀내는 것 또한 낯설지 않다.

아버지의 발명품들은 정말 환상적이다. 이런거 진짜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간절~~

초등학교 4~6 학년? 혹은 말괄량이 삐삐와 성장한 사람, 또는 일상이 지루해서 해맑기라도 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주말 자투리 시간에 읽어봐도 좋겠다.

해맑아진 1인^^

p.s 츄비박은 비스킷이라는 뜻이라고..비박,친박과 관계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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