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샹즈 황소자리 중국 현대소설선
라오서 지음, 심규호 옮김 / 황소자리 / 200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의 장면들이 마치 연극이나 드라마를 보듯 고스란히 그려지는 글은 흔치 않다. 독자의 상상력을 감금하는 것이 아닌 독자의 상상력이 보태어져서 싱싱하게 살아 널뛰는 글. 그런 글이 있다는 건 매우 흥미롭다. 라오서의 글이 그렇다. 극작가로서의 그의 능력이 소설에서도 발휘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라오서의 대표작이라고 분류되는, 한때는 금서였던 낙타샹즈를 다시 꺼내 읽는다. 글이 잘 안읽히고 심드렁해지면 한번씩 후르륵 읽어내곤 하는 책들 중 하나다 글이 안읽힌다고 해서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지만 늘 걷던 산책길이 어느날부턴가 재미없고 잘 걸어지지 않는다면 어쩐지 속상한 것과 비슷한 것일지도 모른다.
평생의 소원이 자신의 인력거를 갖는것인 인력거꾼 샹즈의 이야기다. 어째서 그가 낙타 샹즈라 불리우게 되었는지, 그것이 글의 제목이 되었는지, 그는 어쩌다 인력거꾼이 되었고 그의 삶은 어째서 늘 고달프기만 한지..한 사람의 삶과 시대가 엮어내는 직조가 성긴 코 하나 없이 반듯하다. 한 때 '소설을 쓰려는 사람들은 라오서를 읽어야 해. 특히나 낙타샹즈를 읽어야 해'라고 떠들고 다녔다. 모든 문장들이 군더더기 없이 짜여있는 소설이라니. 적절한 간이 배인 원재료의 맛이 살아있는 깔끔한 나물 한 접시 같은 느낌이다. 과하게 치장하지도 양념을 보태지도 않은 본연의 이야기를 생소하지 않게 거부감 들지 않게 딱딱하지 않게 풀어내는 솜씨가 일품이다.
처음 인력거꾼의 이야기라고 했을 때, 거의 반사적으로 운수 좋은 날을 떠올렸다. 학습된 것이리라. 시험을 보자고 난도질하며 외워댄 탓일지도..
어쨌든, 샹즈의 이야기는 구구절절 아득하기만 하다.
그 시기의 인민들의 삶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야만 했던 사람들, 별스럽지 않은, 영웅도 뭣도 아닌 그저 목구명에 풀칠하는 것이 소원인 사람의 이야기일 뿐인데 맛이 다르다.
논란의 여지가 많은 작품이기도 하지만 나는 샹즈의 눈물겨운 삶이 낯설지 않다.

' 이곳에는 열한두 살 때부터 이 일을 하기 시작한 이들도 있는데, 그들이 스물 이후에 멋진 인력거꾼으로 탈바꿈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어린 몸으로 무리를 하면 여간해서 건장하게 성장하기 힘들다.설사 그들이 평생 인력거를 끈다고 해도 죽을 때까지 인력거꾼으로서 내세울 것이 없었다. ( p7)'

도입부에서부터 밑줄을 그었던 부분이다.
이 글이 낙타샹즈 전체를 관통하는 복선일지도 모른다.

라오서를 읽고, 왕멍을 읽고, 바진과 마오둔을 읽었다.
내가 소개하고 싶은 것은, 작가들이 아닌 중국의 인민들인지도 모른다. 우리와 많이도 닮아있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사랑한 수학자들 - 박형주 교수가 들려주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수학자 이야기 푸른들녘 인문교양 17
박형주 지음 / 푸른들녘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수학은 어디서나 골치다. 수학은 어려운 것이고 수학은 지겨운 것이고 수학은 잘 할 수 없는 것이라는 편견이 있다 수학이 재밌다거나 수학이 좋다고 말하는 순간 별종이라는 말을 듣기 십상이고 괜히 잘난체 하려는 사람으로 오해를 받기 일쑤다.
교과과정으로 수학을 만나고 매번 해결하기 어려운 평가과정을 거치는 초등6년 중등3년 고등3년의 수학은 수학이라는 말에 진절머리를 친다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다보니 수학, 혹은 수학과 관련된 사람들과 사건에 대해서 굳이 전공을 하지 않는 한 대중적으로 알기 어렵다. 수학자들의 로맨스, 수학자들의 광기, 수학자들의 투쟁, 수학자들의 고뇌, 그리고 그들이 성취해 낸 쾌거들. 정말 흥미진진하고 애틋한 이야기들인데...
언젠가 팟캐스트 '적콩무(적분이 콩나물 사는데 무슨 도움이 돼?)'를 열심히 들었었다. 수학자와 수학자, 그리고 수학의 개념들을 풀어놓는 데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너무 재밌어서..너무 좋아서..

내가 사랑한 수학자들. 우리가 한번쯤은 들어봤을 슈바르츠나 힐베르트, 튜링을 비롯해 여성 수학자 에미 뇌터를 만날 수 있다. 열 세명의 수학자들의 이야기. 여성은 수학자로 인정받을 수 없었던 시대의 이야기. 그들이 성취해 낸 성과들을 이해하려면 수학적 소양이 있는 것이 더 좋겠지만, 그런 것이 없다 하더라도 읽어내기에 불편함은 없다.
조금 껄끄러운 건, 천재성이 드러난 수학자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라는 것. 보통의 수학적 사고를 갖고는 넘볼 수 없는 그들만의 세계인가? 하는 심술이 슬쩍 치밀기도 한다.

수학 공부를 하는데 도움이 되진 않을거다. 흥미를 가질 수는 있겠지만..현재의 교과과정으로서의 수학은 '활용'이라는 것을 억지로 끼어넣은 것에 불과하다. 의문을 품고 사고하며 수치가 아닌 관계로 이해하는 과정을 가르치지 않으니까.

오랜만에 재미나게 읽었다. 수학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증명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궁극적으로 사람과 세상의 관계를 말이다. 어쩌면 머리 아플 책이지만..수학 is 뭔들 어렵지 않으랴. 어차피 어려운거 얼마나 어려운지 들여다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재밌다. 이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의 비밀
홍명진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홍명진의 단편집이다. 낯선 이름.낯설다기보다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다. 글 깨나 쓴다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요즘인데도, 어딘가 비슷한 이름이 있었을법도 한데..어쩐지 낯설다. 작가의 약력을 꼼꼼히 보지 않는 야매독자인지라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그닥 큰 기대를 갖고 읽은 건 아니다. 사 놓고 이리저리 치이다 어떤 의무감(?)처럼 읽기 시작했다. 요즘 삶창의 책들이 잘 나온다. 첫 단편부터 움찔했다. 충격적이거나 반전이 있거나 전투적이어서가 아니라 습습 스며들어버리는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뻔하고 빤한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했고, 뻔하고 빤한 이야기임에 분명한데 눈알이 뻑뻑해지도록 읽게 하는 힘.
모든 이야기의 맛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정직하고 세밀한 글.
그냥 그런 사람들이 있대, 라던가 누구한테 들어서 알게된 사실들이 아니라 파헤치고 들어간 것이 분명한 이야기의 현실성은 '이 사람 도대체 뭐야?' 하게 한다. 책을 읽다 문득 떠오르는 익숙함. 뭐지? 분명히 다른데 뭔가 닮았어. 내가 손꼽는 몇 작품 중 하나인 '숨비소리' 그 저자였던것이다.

세련된 상처는 없다. 우아한 멍도 없다. 아름다운 비명도 없으며 빛나는 절망도 없다. 그렇다면 상처는 세련되게 쓰여서도 안되며 비명이 아름답게 포장되어도 안되고 절망이 빛날 변명도 굳이 필요하지 않다. 고스란히 상처를 이야기하는 글들이 순정하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것들을 눈여겨 보는 건, 그것들과 그 사람들과 공명하는 건 결국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는 것들이다.

이 책은..정말 좋다. 너무 좋아서 편집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이 책 물건입디다요!"

좋네. 진짜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의 눈, 벌레의 눈
김해자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 안에는 내가 아는 모든 단어와 내가 모르던 단어들이 새롭게 펄떡인다. 시를 읽는다는 건 어떤 것인가. 감성이 진동하는 것이라는 일차적 반응을 넘어 시가 파고 들어 사유의 중심을 뒤흔드는 경험이 이어진다. 고결한 어떤 것이 아닌 어디에나 눈치채지 못하게 떨어져 있는 각질같은 언어들. 숨을 쉬고 움직일 때마다 교묘히(?) 떨어져 흔적을 남기고야 마는 징글징글한 삶의 얼룩. 그것이 피이고, 땀이고 눈물이고 짙은 한숨이기도 했고, 그것이 함성이고, 웃음이고, 노래이기도 했다. 반듯하게 읽어낸 김해자의 눈. 그 눈을 통해 다시 읽어내는 시들.
함부로 혹은 허투루 전해서는 안되는 신탁을 전하듯 반듯하게 읽어주는(?) 시인의 글이 다부지다.
가끔, 시를 읽고 어떤 풍경과 장면이 떠오르면 같잖게도 이야기로 써보곤 했다. 염치와 부끄러움을 조금은 알기에 공공연하게 드러내지는 않지만 비밀스러운 공간에 적어두곤 했다. 일종의 전리품처럼..
한동안 시를 읽지 않았다. 입술로 읽기에는 좋았으나 늘상 뒷맛이 좋지 않았다. 시심이 깊지 못해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깊어지면 뭐하나 허우적대다 매몰되고 그대로 죽는거지. 하는 얼토당토 않은 생각도 들었고.
시평에세이라고 명명한 이 책은 연대기처럼도 읽힌다.시의 진화를 정리한, 시의 위치와 이 시대에 시의 책무에 대해서도 엄중하게 묻는 것 같았다.
어찌되었든 시는 또 하나의 기록이다.
시대의 기록이고 사람의 기록이어야 한다.
아..시를 읽어야겠다.
마음으로, 영혼으로 읽는게 아닌 사람의 눈으로 읽어야겠다.
시는 마음으로 읽는게 아니다. 다부지게 촛점을 맞춘 눈으로 읽는게 맞다.
시의 눈, 벌레의 눈. 기어코 살아내는 기꺼이 죽어가는 그런 시. 그런 벌레처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며칠 전 신간 알림 메시지를 받고 예약 구매를 한 책이 오늘 도착했다. 친구에게도 보내고..친구가 좋아할지 말지는 그냥 믿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니까 좋아하지 않더라도 싫어하진 않을게다. 착한 아이니까..

 10월에 게세르를 읽고, 에다 이야기를 다시 읽고 어쩌다 보니 일본과 중국의 고전에 빠져 지냈다.

 바진, 마오둔, 라오서, 왕멍, 츠쯔젠, 류전윈..어떤 자극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책읽기는 늘 맥락없이 튀는지라 놀랍지도 않았다.

스토리텔링으로서 세계 신화..신화라는 분야에서 신뢰할 수 있는 작가로 김남일을 꼽는다. 주관적인 기준에서 그렇다. 연구하는 폭과 양은 말할 것도 없고, 작가 자신이 즐겁다. 이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고는 못배기겠다는 느낌. 그래서 쉽게 쓴다. 그렇다고 내용이 헐거운 것은 아니다. 지독하게 파고 든 사람이 들려주는 충분한 이야기. 그것이다.

 

 

 

얼마 전 책정리를 하다 발견한 이윤기의 책. 이 책을 읽었을 때의 감상은 '국산'과 '국내산'의 미묘한 차이 같은 것이었다.  우리 신화 에세이지만..어쩐지..

 

 

 

 

 

 

 

 

 

 

 

 

 

김남일의 신화. 믿고 읽는 만큼 기대가 크다. 훑어만 봐야지 하다가 어느새 3부를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일은 해야하는데..책을 놓고 싶지 않다.

만약 이 책을 구입하고 읽는다면..단숨에 읽을 시간을 확보한 연후에 읽으라고 조언하고 싶다.

 

  신화는 비현실적이거나 기복을 위한 어떤 상징에 대한 앙망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인간의 이야기에 투영체는 아닐까 늘 생각했다. 마당놀이처럼..오래 구전되어 내려오는 이야기들이 때론 각색되고 호도되기도 하지만-, 예를 들어 이슬람의 여왕처럼..해적이 되었던 알프히드 공주가 한 남자에게 정복되었다는 사회, 정치, 종교적 이유로- 그 바탕에 흐르고 있는 정의와 평화, 혹은 평등에 대한 갈망은 인간의 삶과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결국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백 개의 아시아를 다시 찾아놓아야 겠다. 분명 읽고 싶어질거다.

꽃처럼 신화를 읽으면서 점점 더 간절히 읽고 싶어질거다.

 

 

 

 

 

오래 바빴다. 이사도 했고, 수능도 끝났고, 책을 읽어댈 시간만 빼꼼하게 남겨두고 지냈다.

맨 손으로 시간을 뺏어먹는 악마들을 처치해야만 신과 맞설 수 있다는 퀘스트를 받은 가녀린 인간처럼 지냈다.

그 인간은 결국 이겨낼 것이고 신과 협상을 하게 될것이다.

그리고 여유롭게 책을 읽으며 휴식을 가져도 좋을 보상을 받게될 것이다.

그래야 신화니까. 신화는 정보가 아니라 이야기니까.

 

한 석달만인것 같네..서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