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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독서 - 바람구두 인생 서평
전성원 지음 / 뜨란 / 2018년 1월
평점 :
바람구두 인생 서평이라는 말을 이마에 붙인 책을 오래 기다려 읽는다. 전성원. 저자의 약력은 굳이 말하지 않으려 한다.
책이 나오고 대단히 대단한 분들의 서평과 추천이 이어졌다. 변방의 야매독자 따위가 말 한마디 거드는 것은 표시도 안 날 뿐더러 잘 정돈된 밥상 귀퉁이에 이빨빠진 종지 하나 얹는 일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서평도 아니고 굳이 정하자면 나의 글은 '사용후기' 같은 것이다. 제품에 대해 상세설명은 할 수 없으며 내가 써보니 이런게 좋더라, 라는 후기. 상품의 용도와는 다르게 썼지만 그런 용도도 있더라 하는 식의 후기일지도 모르겠다. 설겆이 용 고무장갑을 사서 설겆이할 때는 잘 안써서 모르겠지만 이게 꽉 닫힌 유리병 열때 좋더라구요. 호호호..하는 후기를 쓸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 '좋아했다'라는 과거형이 적당할 것 같다. 아직도 책을 잔뜩 쌓아두고 읽고 있으며 새로운 책이 나오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책을 살피기도 하고,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어떻게 해서라도 손에 넣어 읽어야 직성이 풀린다. 하지만 책을 읽는게 늘 즐겁고 만족스럽지는 않다. 저자들의 필력이 기대만큼 강력하지 못해서도 아니고 내 눈이 노쇠한 탓이다. 즐거움으로 책을 읽던 시기는 찰나였다. 어느 순간부터 습관처런, 고집처럼 책을 읽었다. 중독된 사람마냥. 책을 읽지 않아도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건만 책을 탐하는 것은 어떤 허기때문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이 지식이건 감동이건 지혜건간에 아무것도 내 것이라 움켜쥘 수 없는 현실에서 오롯이 나에게만 남는 것, 독후감(책을 읽은 후의 감상, 혹은 의미)의 맛을 알아버린 것이다.
책은 채워가는 것이고 담아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삶이 다듬어지고 생각이 정리되고 간단없이 행동할 수 있는 용기와 정당성을 얻는 일.
그렇게 읽어 온 책은 아집을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다. 궤변과 적절한 말장난으로 다른 이의 눈과 귀를 후리기에 모자람이 없었던거다.
책을 읽는 것이 '고백'이 된다는 것을 <길위의 독서>를 읽으며 알아챈다. 그쪽 업계(?)에서는 다독가로 유명하다는 저자. 개인 블로그에 써놓은 500여편의 서평들 중 간추린 것이라 했다.
서평을 읽는 건 가끔 참 재미없다. 제일 재미없는 서평은 '출판사 제공 서평'이지만 말이다. 재미없을 수 밖에 없다. 저마다의 소용이 다르고 필요가 다르니까.
라면을 끓일 때 제조방법대로 계량해가며 타이머 놓고 끓이는 이가 몇이나 되겠나. 저마다의 방법과 저마다의 입맛과 취향이 작용할 수 밖에 없다.
어쨌든 책을 받아들고 내가 읽었던 책들을 이 사람은 어떻게 읽었는지 궁금했다.
확실히 결이 다르다.
문화 전반과 당시의 정세와 읽는 이의 세계관과 현실이 하나로 잘 비벼진 글은 어느 한군데 어긋나지 않는다. 그것이 실력이라면 실력이고 연륜이라면 연륜일게다. 내가 이런것도 아는데~하는 거드름은 없다. 자연스레 이어지는 연결이 일품이다.
가장 압권인건 모든 책에 녹아든 그의 삶의 '고백'이다.
평탄치 않게 살아온 그의 모진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어쩌면 책을 읽는다는 건, 자신을 '고백'하는 행위인지도 모른다. 문장의 행간 사이에 걸린 제 삶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애써 화해하거나 무겁게 인정하는 과정을 훈련하는건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그런 발견과 인정이 책과 나를 연결하는 통로가 되고 사유의 기반이 되며 고백, 혹은 진술의 단초가 되는 것일게다.
내 안으로 꾸역꾸역 쌓아두기만 하는 저장강박이 아닌, 잘 정돈된 삶의 구획정리쯤은 되지 않을까.
책을 읽는 내내 말을 하고 싶어졌다.
책을 읽으며 행간에 비춰진 내 그림자를 보고 모른체 한 죄, 내 몫의 삶이었지만 내것이 아니라 부정한 죄, 한껏 욕심부리며 책을 학대한 죄..등등등 고스란히 고백하고 싶어졌다. 머리에 책을 이고 고통받고 있는 성자의 제단이 있다면 말이다.
잘 꾸려진 책이다. 굳이 저자의 약력이나 살아온 길 을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책 속에 그려지는 그의 진솔한 고백을 읽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다. 어떤 판단도 없이 '전성원'을 읽을 수 있다.
전성원이 읽은 책이 아니라 '그'를 읽을 수 있는 책.
오랜만에 즐겁게 책을 읽었다.
책을 좋아한다. 라고 현재진행형으로 말 할 수 있을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