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태 푸른사상 시선 105
박상화 지음 / 푸른사상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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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그로브 킬리피쉬 라는 물고기가 있다. 맹그로브 숲에 사는 작은 물고기. 물이 마르면 근처의 나무에 구멍을 파고 물이 다시 차길 기다린다. 어느 과학자가 나무 속을 살펴보니 콩깍지 속의 콩들처럼 나무의 벌레 구멍을 채우고 있었다고 했다. 평소 영역다툼이 심한편인 어종인데도 나무 속에서는 공격성이 줄어든다고 한다. 나무 속에서 먹이를 구하고 심지어 단성생식을 하며 종족을 보존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기어코 사는 어종인 것이다.

‘동태’에 실린 시들은 모두 익숙하다. 비슷한 시간을 건너 온 탓이다. 가난과 허기와 좌절과 배척과 차별과 무릎 꺽임이 무시로 반복되며 매 순간 상처를 만들던 시기를 건너 온 탓이다.
텅 빈 뼈. 바닥에서만 피는 꽃,
어쨌든 쉽게 죽지 않는 질긴 의지. 절망했다고, 다 끝난 것 같다고, 철퍼덕 주저앉아버린 것 같지만 이미 손가락 끝은 땅을 밀어내고 있고 접힌 오금엔 힘이 들어가 살아내겠다는 의지가 자신보다 먼저 반응하는 질긴 삶. 물 마른 호수의 물고기. 금방 죽어버릴 물고기로 보이지만 기어코 살아내는 물고기 맹그로브 킬리피쉬. 다 빼앗기고 기억과 혓바닥조차 빼앗겨도 숨소리로라도 불러낼 노래. 시. 삶.
그런 몸부림이 노동에 뭉개진 아비의 지문처럼 새겨진 시집 ‘동태’

비바람이 불고 바다가 꿀렁거리는 날. 시뻘겋게 고춧가루를 풀고 동태 한 마리 넣어 끓이면 참 좋겠다. 서툰 절망 따위에 글썽일 때는 이미 지났으니까..
다만 살아낼 뿐. 저절로 살아지는게 아닌 기어코 살아낼 뿐.

동태

동태는 강자였다 콘크리트 바닥에 메다꽂아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동태를 다루려면 도끼 같은 칼이어야만 했다.
아름드리나무 밑둥을 통째로 자른 도마여야 했다.
실패하면 손가락 하나 정도는 각오해야 했다
얼음 배긴 것들은 힘이 세다
물렁물렁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한때 명태였을지라도,
몰려다니지 않으면 살지 못하던 겁쟁이였더라도
뜬 눈 감지 못하는 동태가 된 지금은
다르다.
길바닥에 놓여진 어머니의 삶을
단속반원이 걷어차는 순간
그놈 머리통을 시원하게 후려갈긴 건 
단연 동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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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스 캐럴 오츠.
오츠의 책이 나오면 득달같이 선물해주는 친구가 있다. 내가 좋아하니까. 반대로 요 네스뵈의 책이 나오면 나는 번개같이 친구에게 선물을 한다. 친구도 오츠를 좋아하고 나도 요 네스뵈를 좋아한다. 그럼에도 이런 뚱딴지 같은일을 꽤 오래 해오면서 늘 즐겁다. 좋아하는걸 함께 하는 친구.
이번에도 새벽 두시에 기프티북을 받았다.
이 놀랍도록 이성적이며 그래서 순간순간 예상하고 서늘해지는 이야기라니..
70초만 기억하게 된 남자. 그를 연구하는 여자.
우연한 삶과 진정한 삶의 난투극 같은 작품을 읽는다.
역시 오츠!
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과학에서는 중요한 문제가 있는가 하면 사소한 문제가 있다.
삶의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는 수긍되지 않고 공공연하게 인정되는 사실도 아니지만 우리에게는 진정한 삶이 있는가 하면 우연한 삶도 있기 때문이다.
아마 어느 시대든 개인이 진정한 삶을 발견하는 일은 드물 것이다.
 대개는 평생 우연한 삶을 사는 것이 현실이다. 

"죽음 이후의 삶. 그건 바닷속에서 가느다란 빨대로 숨을 쉬는 것과 같아. 간신히 버티는 삶이지만 가능하긴 하지."
그녀는 죽음 이후 이런 삶을 살아가면서 혼자 속으로 말한다. 씁쓸하면서 기분 좋을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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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
목수정 지음 / 생각정원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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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글다글 끓고 아우성과 고성이 오가는 요즘.
이웃과 수다를 떨듯 그냥 조근조근 읽히는 책을 집어든다.
몇년전에 처음 읽을 때도 ‘그러니까 내 말이~‘를 몇번인가 중얼거린것 같다.
여러개의 접힌 귀퉁이와 밑줄 사이에서 두개를 고른다.
이 두 밑줄은 오래도록 유효했고 유효할것이다.
다행히도 함부로 무릎 꿇지 않는 자존감과 삶에의 책무를 잃지 않은 이들이 남았다는 것.

다시 읽으니 좋다.

역사 앞에떳떳한 계급과 역사를 계속 매장해야만 비로소 고개를 들 수 있는계급의 두 사람이 손을 맞잡는 건 불가능하다. 비루하게 왜곡된역사가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청산되지 못한 역사, 거짓이 계속 거짓을 부르게 만드는이 고단한 시대의 패배자는 속죄의 길을 찾지 못하여 계속 비굴할 수밖에 없는 그들이다. 나는 당신들의 계급을 동정한다.

높은 곳에 있을수록 덜 자유롭다. 떨어지기를 두려워하게 되 기 때문에, 그리고 높을수록 진실에서 멀어진다. 발이 땅에 닿지 않기 때문에. 땅에 발을 딛고 있는 자들에게는, 머리를 날려 허공에 떠 있는 자들이 현실을 깨닫도록 만들어야 하는 고단한 임무가 있다. 마르크스는 그것을 계급투쟁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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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로 읽는 류큐 왕국
정진희 지음 / 푸른역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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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는 뭔가 동질감 같은 것이 읽히는 곳이다.
일본으로 여행을 취소하고 자제하는 와중에 일본 본토의 피해상황들이 조금씩 보도가 되고 그 지명들 사이에 보이는 오키나와에 안타까웠다. 작년인가 즈음에 읽었던 ‘두 섬‘도 생각나고..
어쩌면 반일,반제의 선봉일지도 모를 오키나와의 이야기. 신화로 읽는 이라고는 하지만 큰 골격일 뿐 광범위 하게 연결되고 해석되는 정치적.역사적, 인문학적 서술이 읽을만 하다.
멀고도(일본본토) 가까운(오키나와) 인접국의 이야기.

류큐라는 역사를 지닌 채 일본의 일부가 된 오키나와는 일개 지방이아니라 제국 일본의 내부 식민지였다. 제국 정부는 오키나와를 때로는동화, 때로는 차별의 대상으로 삼았고, 종국에는 태평양전쟁 때 일본국토 내의 유일한 전장戰場이었던 오키나와를 버렸다. 일본제국의 패전 이후 오키나와는 미군정하에 놓였다가, 미국과 일본의 군사적 이해관계에 따라 1972년 다시 일본의 일부가 되었다. 조국 복귀‘라는 미명하에, 일본 열도에 있던 미군 기지의 대거 이전과 함께,
오키나와는 일본인데 일본 같지 않다. 일본 내 미군 기지의 태반이그 작은 섬에 몰려 있다. 그 이유는, 오키나와가 품은 이런 역사 때문이다. 오키나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때 그 역사의 주연이었던 류큐 왕국, 류큐 왕조를 도외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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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꽃반지
김성동 지음 / 솔출판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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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동만이 쓸 수 있는 글이다. 고비고비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 먼 비극의 시대를 빌려오거나 불러온 것이 아니다.
겪어온 것이고 견뎌온 것.
뼈를 깍아 피를 찍어 써낸 글이 사무치는 살부빔으로 읽힌다.
어머니. 아버지. 이웃들.
별 말이 아닌데도 울컥하게되는 순한 사람들이 말이 빼곡하게 쓰였다.
서러움이 그리움이 자꾸 밀려든다.

사상이란 다른 게 아닙니다. 사람이라는 숨탄것이 다른 미적 이들과 다른 점이 뭣이것습니까? 여러가지가 있것지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그러니께 그리움이란 감정에 있을 겁니다. 뭣인가를 그리워할 수 있던 글력이 있기 때문이지유. 뭣인가를 그리워허기 위헤서넌 뭣버덤두 먼저 생각할 수 있던 글력이 있어섭니다. 이 생각을 뚜렷헌 질 따러 일매지게 봐낼 수 있넌 글력을 가리켜사상이라구 허지유.
뭣이 옳구 뭣이 그른가? 뭣을 일러 아름답다구 허구, 뭣을 일러드럽다구 허넌가? 사람이란 뭣인가? 워치게 살어가넌 삶을 가장아름답구 훌륭헌 삶이라구 허넌가?
사상이루버텀 정치체제가 나오구, 경제구조가 짜여지며, 모둠살이 횡태가 맨들어지게 됩니다. 예술이 나오구 좀교가 생겨나게된다 이런 말이올시다. 슨악시비럴 나눌 수 있구, 아름답구 추헌것을 가려낼 수 있넌 눈이 생겨나게 됩니다. 소위 세계관이라넌것이 생겨나게 된다 이런 말씀이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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