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손 - 살아있지만 인격의 일부라고 말할 수 없는 인간적인 어떤 것에 대한 법적 탐구
장 피에르 보 지음, 김현경 옮김 / 이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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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적 표지와 제목에 끌려 구입해 읽게 된 책이다

며칠 전 읽은 '블랙미러로 철학하기'도 그랬지만 혹해서 구입한 책들이 엄청나다. 요즘 내가 책 고르는 눈이 생긴건가? 책을 하도 지르다보니 지름신도 지쳐서 딱 필요한 책만 고르게 한건가? 싶어진다

횡재한 기분으로 읽어가는 책

시작은 그렇다. 신문사 서평이나 출판서 서평에서 읽히듯 내 몸에서 잘려진 손을 누군가 임의로 처분했다면 이것은 절도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방대한 대답인 셈이다.

절도라는 것이 성립하려면 손은 물건이어야 한다. 인체를 물건으로 보는 것이 맞는가? 그렇다면 시체는 물건인가?

사실 이 문제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딱 봐도 간단치 않은 문제인데..왜 이런말을 굳이..)

세계 최초의 시험관 아기가 태어나고 세상은 놀라움과 우려로 넘실댔다.

생명의 탄생은 신의 영역이라 생각했는데 그곳을 인간이 침범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던 까닭이다.

생명윤리랄지 신성에 대한 도전이랄지 하는 이야기들이 많아졌다.

그렇다면 인간의 몸, 인간의 생명을 무엇으로 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이 시작되는건 당연하다

 

수혈의 예만 들어도 장기이식의 예만 들어도 그렇다. 판매가 아닌 증여라는 형식을 갖겠지만 그렇다면 내 신체는 물건인가? 누군가에게 내어줄 수 있다면 그것은 내 것인가? 증여받은 이의 것인가?

인간의 신체에 부여된 성과 속의 의미들에 대해서도 이야기 한다.

이것을 민법과 의료법으로 혹은 종교적 문제와 접목시켜 풀어내는 과정이 매우 방대하고 치밀하다.

고대 로마법, 유스티니아누스의 법전과 그 이전의 성스러움에 대한 기원까지 파고 들어가는 시간적 양만으로도 방대하기 짝이없다. 철학적 인문학적 인용과 논증은 이루어지지 않으며 오로지 성과 속에 대한 논증으로만 써내려간 글임에도 충분한 사유와 사고를 필요로 한다. 게다가 서사의 힘이 막강하다

대단한 사람이다. 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어느 부분에서는 '이거 완전 의식의 흐름대로 쓰는건가?' 라는 생각도 든다 . 하지만 이내 그것이 치밀한 장치였음에 놀라워하게 된다

 

역자가 혼자 읽다가 너무 흥미로워서 번역을 결심했다고 한다. 의료나 법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어서 자문을 구해가며 번역했다고한다. 그 수고로움이 얼마가 되었든 감수하고라도 번역하고 싶었다는 의지였으리라

과연 그럴만 한 가치가 있는가?

있다.

 

내 몸에 대한 소유권, 그것은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가도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잘린 손은 물건인가? 그렇지 않다면 잘린 손에도 인격이 있는가? 나의 인격이 잘려져 나간 신체에도 존재한다면 떼어낸 신체조직 일부가 어딘가에 전시되거나 더 잘려서 연구용이 된다면 나의 인격은 존중되고 있는가? 인격은 언제 존재하는가? 생명이 있는 순간동안이라면 생명이 사라진 이후에 시체를 (몸을) 파기하는건 괜찮은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시체조차 함부로 하지 않는다면 시체는 인격인가? 물건인가?

 

오래전 미라를 갈아서 약으로 쓰거나 성인의 관에서 나오는 물을 받아 마시거나 하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고 들었다 그들을 치료한 것은 성인의 몸인가? 그의 성스러움인가?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아버지를 낫게 하기 위해 시신의 다리를 잘라온 며느리(아들?)를 단죄해야 한다면 그 죄명은 무엇이어야 하며 성인의 관에서 나오는 물을 마신이들은 어떻게 다른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물음과 현란하고 치밀한 답변이 과연 압권이다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가차없는' 글이다.

여지를 주는 것 같지만 결국 그 여지를 닫는다.

쉽지 않은 질문이니 쉽지 않은 대답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중요한건 나의 몸은 나의 소유인 것이 분명하다는 것.

그것을 놓치지 않고 읽으면 되겠다.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다. 할로윈 분장을 한 채로 말이다. 나의 코스튬은 시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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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틴어로 사케르 Sacer는숭배해야 하는 것과 두려움을 일으키는 것을 동시에 가리킨다. 이는, 루돌프 오토에 따르면, 무시무시하면서도 매혹적인 어떤 신비에대한 직관이다.게다가 성스러움은 또 다른 점에서도 양가적이다.
성스러움은 숭고하기까지한 초자연적인 것과 접촉하며, 동시에, 혐오스러운 심연을 내포하는 현실적인 것과도 접촉한다. 시체의 복잡한 상황은 이를 잘 보여준다. 시체는 성스럽다. 그러면서도 음식이자 약이자 공해이다.

성물에 대한 기독교 교의 전체는 인류가 하나의 유일한 신체를 이룬다는 관념에서 출발한다. 이브를 만드는 데 사용된 살은 아담에게서 떼어낸 게 아니었던가? 그리고 우리는 모두 최초의 부부의 자손들이 아닌가? 이 육체적 결합에,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신비로운 몸corps mystique 안에서의 기독교인들의 결합이 덧붙여진다.
이러한 접근은 아주 중요하다. 왜냐하면 성물과의 접촉이 갖는 치료효과에 대한 믿음은 처음부터 일종의 이식 적합성 이론에 의해 정당화되었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이 최초의 입장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성자의 몸은 성자가 신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 덕택에 치료적 효능vertu을 갖는다. 그리고 전체의 효능은 부분들(성물 들) 속에서 재발견된다. 

시체를 연구함으로써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특히 견고한 명제들은다음과 같다.
명제 1. 시체는 물건이다.
명제 2. 시체는 성스러운 물건이다.
명제 3. 시체는 음식이자 약이다.
명제 4. 시체는 해롭다.
명제 5. 시체의 처리는 자연스럽게 사제와 의사가 나누어 맡는다.
명제 6. 민법학자는 시체의 처리에 개입하기 싫어한다.

시체의 성스러움 (명제 2)을 다루어야 하는 사람들은 시체가 음식이자 약이라는 점(명제 3) 및 시체가 해롭다는 점(명제 4)을 떠올리지 않으려 한다. 반면 시체의 해로움(명제 4)을 과학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사람들은 그 성스러움(명제 2)을 불편하게 여기며, 시체를 음식과 약으로 쓰는 것(명제 3)의 야만성에 대해서도 거북함을느낀다. 
사제(명제 2)와 의사 (명제 3, 4)는 서로 협의 아래 행동하지만, 시체에 대해 정반대로 접근한다는 점에서 경쟁관계에 있다.(명제 5) 성스러운 물건은 해로운 물건/음식/약을 검열하고 후자는 역으로 전자를 검열하는데, 이는 최종적으로 물건 자체를 검열한다.
민법학자가 오랫동안 머물렀던 주변적 위치(명제 6)는 시체의 현실에 대한 그의 분명한 언급 (명제 1)과 대조를 이룬다. 여기서 우리는다시 한번 악순환의 형태를 띤 검열을 발견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다음을 증명하고 싶다. 로마법에서 나온 분류 방식들을 고려했을 때 살아있는 인체는 물건의 범주에 들어가야한다는 것, 인체의 법적 성격은 죽음의 순간에도 바뀌지 않는다는것, 그리고 인체의 구성 요소들은 몸에 붙어 있는 아니든 동일한 실체적 성질을 지닌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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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말 이래 국가는 의학을 신학적, 법적 후견으로부터 해방시키려고 노력해왔다. 19세기에 의료 권력은 공중보건학의 형태로 나타났는데, 이는 나치 독일 하에서 인종적 위생학으로 끔찍하게 변형된다. 하나의 의학적 프로그램이 대학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발견은 너무나 심각한 트라우마였기에, 세계의 의사들은 다시금 법적 후견에 의해 보호받기를 원했다. 

몸이 인격의 토대 Substratum로서 "놀리 메 탄게레" noli metangere(나를 만지지 말라)에 의해 보호된다거나, 인간이 "자기 자신의주인, dominus membrorum suorum이고 "스스로에 대한 권리"jus inse ipsum 를 갖는다는 따위의 언명은 모두 인간이 자기 몸의 소유자임을 노골적으로 말하지 못하게 하는 종교적 검열의 존재를 폭로한다.
 실로 프랑스 법의 독트린은 몸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몸이 상품이 되는 것을 막는 사명이 자신에게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사실 자신의 몸과 자기에게 속한 모든 것을 소유권에 의해엄격히 보호받는 것과 몸에서 떨어져 나온 모든 것이 (황금으로 바뀔 수도 있는) 쓰레기로 취급되는 것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인간에게불명예스러운 일이겠는가? 

시체가 성스러운 것은 물건이기 때문이다.

탄생과 달리, 물리적 죽음과 법적으로 공증된 죽음의 구별이있을 수 있지만, 죽음의 순간을 특정하는 문제는 임신 과정 속에서인간 존재의 출현 순간을 특정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그리하여 우리는 시간 순서와 관련된 문제를 없앨 수 있다. 시체는 계속 시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체는 어떤 면에서 가장 나무랄 데 없는 몸이다. 산 자는 인간이지만, 죽은 자는 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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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로마법으로부터 법의 세계를 인격과 물건으로 나누는전통을 물려받았다. 우리는 로마의 법률가들과 그 후계자들에게이 이분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일단 인격은 법적 무대에서 개인 신체와 영혼을 식별하기 위한 이론적 가공물로서 나타났다고 말해두자. 하나의 사법체계 안에서 인격은, 권리주체‘(권리들을 향유할 수 있는 주체)라고도 일컬어지는데, 현실적으로 실존하는 존재일 뿐 아니라, 법인, 즉 개인들의 집합을 대표하는 권리주체(회사, 조합)나 재산을 대표하는 권리주체(재단)의 모습을 필 수 있는 비물질적인 실재이다. 법적 무대에서 인간을 대표하는자연인은 법인과 똑같이 비물질적이다. 자연인은 신체와 동일시되는 인간을 대신하여 존재하기에, 신체의 검열을 가져온다. [인격이 신체를 대신하기 때문에 신체는 인격 뒤로 사라진다는 의미] 살인, 폭행, 상해의 억제는인격에 제공되는 보호의 파급 효과를 통해 간접적으로만 신체를 보호한다. 도둑맞은 손에 대한 가정은 특히 이 점을 잘 보여준다.

이런 관점에서는 손이 잘렸든 몸에 붙어 있든, 인간은 자기 손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잘린 손의 절도는 절단과 같다. 이렇듯 우리가 인격 또는 권리주체라고 부르는 추상적 관념은 자기 몸의 소유자일 것이다. 몸은 신체적‘이라는 형용사가 온전히 적용되는 유일한 물건이다. 또한 너무나 귀중한 나머지 그것의 사용과 처분, 그리고 그것을향한 공격으로부터의 보호가 엄격하게 정의되는 물건이다.

프랑스 법의 독트린은 공리적인 단 순함과 야심찬 소명의식 속에서 표현되었다. "몸이란 곧 인격이다.‘

인격과 물건의 기초적 구별로 말하자면, 2 천 년 전부터 그런 구별이 존재했다고 말해야 정확하다. 이 이분법 의 발명은 법을 탈육체화했고, 덕택에 법학자들은 몸의 사소함과 신 성함 둘 다에서 벗어나 통찰을 전개할 수 있었다. 이 평온한 상황을교란시킨 것이 생명공학의 폭발적 발전이다. 생명공학은 법학자들에게 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것을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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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도의 기온 상승이 농민 자살자 수의 증가와 관련이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연구팀의 연구 결과이다. 이를 인용하지않더라도 농민에게 기후 문제는 당장 하루하루의 생계 문제이고 절박한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다. 기후변화는 농업의 형태, 농작물의 종류, 작부체계, 수확량, 농작물의 품질, 농민의 소득 등모든 것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자유무역으로 생산비도 못 건지는 가난한 농민을 더욱 가난하게 만드는 것이 기후변화이다.

전여농이 소속되어 있는 비아캄페시나(국제농민운동조직) 역시"소농이 지구를 식힌다" 라는 구호를 걸고 기후위기를 해결하기위한 대안으로 소농을 보호하고 육성하는 운동을 국제사회에호소하고 있다. 소농은 세계 인구의 70퍼센트에게 식량을 공급하고 있지만 에너지는 30퍼센트밖에 쓰고 있지 않는 생태적인농사를 짓는다. 초국적 농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농업 시스템이아니라 지역공동체 속에 살고 있는 소농의 자립적이고 안정적인 삶을 보장하는 것이 결국은 지속가능한 지구, 지속가능한 인류를 위한 길이다.

이와 같이 사회경제 시스템의 생태적 전환과정에서 발생하는사회적 비용을 노동자, 저소득층, 취약계층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과도하게 부담하는 것을 방지하고, 그러한 비용을 사회 전체적으로 공평하고 정의롭게 배분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노동운동이 주장하고 있는 원칙이 ‘정의로운 전환‘이다. 정의로운 전환‘은 국제노동기구ILO, 국제노총ITUC도 받아들여 지속가능한 사회경제 시스템 생성의 원칙으로 삼고 있으며,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기술보고서도 노동력의 정의로운 전환과기후위기 완화정책의 상관관계를 다루고 있다. 정의로운 전환은 이제 사회경제 시스템의 생태적 전환에서 공유된 원칙이 된것이다.

그 일을 해야 할 행정부와 국회는 우리나라가 2018년 온실가스배출 7위의 가해자국‘이 될 때에도(라고 쓰지만 평범한 시민들을 가해자이며 동시에 피해자‘로 만들고 있을 때에도, 라고 읽는다) 부끄러운 줄 모르고 고요했다. 오히려 기후위기를 가속화하는 석탄발전소, 4대강 사업, 제주 제2공항, 밀양 송전탑 공사 등을 기획하고, 예산을 승인했다. 노동자들이 기상이변에 목숨을 잃는순간에도 쾌적한 국회에 들어앉아 부질없는 정쟁을 일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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