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미래의 어느 날, 아마도 여느 때보다 깊은 외로움이 밀려오는 날, 내 외로움은 노파의 오래된 하루를 빌려 그렇게 완성되어 갈 것이다. 내 것인지 노파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저쪽으로 전가되었다가 다시 이쪽으로 전가되는 실타래 같은 외로움이 인생은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쏜살같이 지나가고 그 밑바닥에 정제되어 남는 건 외롭고 쓰라린 것……. 미안하지만, 때로는 그것이 인생이야, 나의 아가.
백복희로 태어났지만 스테파니로 살이 오나와 넘버 원 닮은 여자. 우리의 닮은 구석은 눈매나 입매만은아닐 터였다. 삶의 어느 장면에서 우리는 같은 자세로, 같은표정으로, 같은 생각을 하며 투명한 벽 앞에 서 있곤 했을 것이다. 얼굴의 일부가 아니라 생애의 접힌 모서리가 절박하게닮은 사람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빠는 무늬의 의미가 있는 문‘이라는 글자를 좋아하셨던것 같아요. 그래서 언니에게도 그 글자가 들어간 이름을 지어준 거겠죠. 문‘이 무늬라면 남는 건 ‘주‘인데, 제 생각에 아빠는 우주의 주‘를 염두에 두지 않았나 싶어요." "우주요?" 웃으며, 나는 물을 수밖에 없었다. ‘우주의 무늬가 내게는놀라운 우연의 결과란 걸 알 리 없는 문경은 사뭇 진지하게 말을 이어 갔다.
추연희(秋慈禧), 그리워할 수 있어서 행복했던 사람, 나는이제 그 이름을 내 삶이 끝날 때까지 기억할 것이다. 그 이름을 망각하지 않는 것, 그것은 우주를 키우는 일과 함께 내가이 세계 앞에서 지켜야 하는 예의가 되리라. 연희가 죽었다. 그녀는 암흑으로 돌아갔다.
그 순간, 또다시 태동이 지나갔다. 연희가 살았던 곳으로 우주가 한 뼘 더 다가와 있었다. 그들 사이에, 두 세계의 무게중심에, 나는 서 있었다. 나는 바람을 내 가슴으로 끌어왔다. 품에 들어온 한 줌의 바람에서 온기가 전해졌다. 누구의 온기인지, 나는 당연히 알고있었다. 너구나, 속삭였다. 우주 우주, 라고 나는 또 한 번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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