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에 늦잠을 자고 교회에 간 엄마와 경아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가끔 성경에 나오는 마리아와 마르타 자매의이야기를 생각했다. 어느 날 예수가 그 자매의 집에 방문했는데, 언니인 마르타가 예수와 다른 손님들을 대접할 음식을 준비할 동안 동생인 마리아는 예수 앞에 앉아 예수의 가르침을 듣고 있었다는 이야기. 마르타가 마리아에게 이리와서 언니의 일을 도와달라고 했더니 예수는 오히려 마르타를 나무라며, 마리아가 지금 하는 일이 마르타 당신의 일보다 덜 중요한 게 아니라고 했다던가. 그런 식이다. 신데렐라의, 콩쥐의, 마리아의 자매는 나쁜 사람으로 기록된다. 선하고 지혜롭고 아름다운 여자에게는 악하고 게으르고 시샘 이 많은 자매가 있다. 그렇다고들 한다. 

매우 간단한 얘기였다. 힘점을 찾으면 된다. 무엇이든그렇다. 힘점이 어디 있는지 파악하면 간단히 무너뜨릴 수있다

모두들 죽음에서 가 장 마땅한 이야기를 추출하고 싶어 한다는 것. 연인의 유 해에는 그들의 자세처럼 견고한 로맨스가 어울리기에 근육 이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굳이 꺼내지 않지만, 자위남의 유해에는 어쩔 수 없는 과학적인 사연이 있었다는 이야기를덧붙여 그의 명예를 조금이나마 지켜주고자 하는 것.

사람의 악의나 비틀린 호의를 짐작하는 버릇 때문에 늘 신경이 곤두서 있는 나에게 언니는 너무어려운 사람이었다. 단순할 만큼이나 좋은 사람. 그처럼 어려운 상대는 없었다.

경아가 화장품 선물을 하면서 포스트잇에 썼던 것처럼 경아가 화장을 해줬다면 좀 나았을까. 그렇지만내가 지금 화장을 해야 하는 이유는 경아가 없어서가 아니고… 경아가 없어서였다. 이런 말장난 같은 것을 생각하면서 멍하니 거울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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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 또 울음을 터뜨렸다. 카레집에서 울던 것을 회상할 때부터 이미 눈물이 날 것 같았고, 카페에서 들은 얘기를 복기하는 동안에는 오히려 견딜만했다. 경아의 임신 가능성을 생각하는 동안에는 이유를설명하기 어려운 화가 났고, 끝내, 경아가 무슨 일을 겪었든이제는 상관이 없다는 사실에 생각이 닿자 비로소 눈물이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경아에게 일어난 일은 이미 하나도돌이킬 수 없게 되었고, 그건 경아에게 일어난 마지막 사건때문이었다.

똑바로 앉아 무릎에 얹은 주먹에 힘을 준 채로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속으로는 대학살을 벌였다.
 어떤 기분 또는 생각, 같은 것보다는 말로 잘 표현되지않는 충동이 몸속에서 회오리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주먹으로 노트북 모니터를 치고 싶었다. 눈앞에 있는 거라면아무거나 내동댕이치고 악을 쓰고 싶었다. 찢어 죽이고 갈아버리고 불을 붙이고 밟아 터뜨리고 싶었다. 목적어로 무엇이든 쓸 수 있었다.

돌아가는 길에 백업 폰 앱에서 해시태그 #리아야 사랑해로 검색을 돌리니 무수한 결과가 나왔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경아를 추모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감흥보다 경아를 이용해 앞다투어 한마디씩 하려고 난리들이 났구나하는 삐딱한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루 사이, 짧은 시간 내에 너무 많은 감정을 소모해서인지 더 이상은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스스로 생각해도 미친 소리지만, 아예 후련한 것 같기까지 했다.

우리가 연년생 자매라는 조건이 전혀 상관없는 요소는 아니겠지만, 우리 사이가 좋은건 연년생 자매라서가 아니고 임수아랑 임경아라서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때 경아의 생각은 어땠는지 알 수 없었다.
앞으로도 알 길이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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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숨을 잃은 사람도 있는데 내가 불운하다고 말하는 건웃기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계속 살아야 하고 .
나의 목표는 변하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보상을 수 없는 수 없는손해는 구덩이처럼 남아 있다. 막막하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자려고 누웠더니 눈물이 났다. 똑바로 눕는 것이 어색했다. 경아가 입관할 때의 이미지를 뇌리에서 떨쳐낼 수가없었다. 돌아누우면 돌아눕는 대로 눈물이 오른쪽, 왼쪽으로 흘러내렸다. 뒤척이는 기색이 옆방까지 들렸는지 벽에서 쿵쿵 주먹질 소리가 났다.
미친년이 또 지랄이네.
늘 하던 것처럼 속으로 욕을 하고 나니 이상하게도 마.
음이 놓였다. 이런 것이 일상이겠지, 또는 이런 것이 일상이라니.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시 똑바로 누웠다.

"환기 좀 할게."
매니저가 블라인드를 조금 올리더니 창문을 열었다. 앞으로 당겨서 여는 안전창문이었다.
"나 이거 열 때마다 실비아 플라스 생각한다."
"왜요."
"오븐 여는 것 같잖아."
"나쁜 농담이네요."

아무려나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하는데 도무지 쉽지가 않았다. 고맙다는 말 한 마디로 퉁칠 수 없을 만큼 고마운 게 많았다. 그래도 매니저가 내게 바라는 건 그 말 한 마디밖에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걸 알기 때문에 그 말을 하기가 더 어려운 것 같았다. 이 사람은 사실 고분고분하고 사근사근한 나보다, 자기가 기대하는 것을 잘 들어주지 않는 나를 좋아하니까. 잘은모르겠지만 나도 이 사람이 나를 계속 좋아해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임경아는 임수아 동생이니까, 임수아에게는 자기를 그렇게 믿어주는 임경아가 있으니까, 우리는 되게 중요하고 강한 사람들이 된 것 같았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그나이 무렵에는 더더욱, 스스로를 특별하게 생각할 근거가필요하다. 경아와 나는 서로를 특별하게 여길 근거였다. 거 창할 것 없이 실로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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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을 받아 들고 고개를 끄덕이는 등의 기계적인 동작은 가능했지만 온몸의신경이 마비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코감기로 하염없이 코를 풀고 나면 기압 차 때문에 먹먹해지는 귓속 같은 감각.
말하자면 온몸이 그런 기압 차를 겪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아깝고 자신이 없었다면 아르바이트를 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정확히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나를 믿었다. 다들 무리하는 거 아니냐고 했지만, 내가 커버할 수 있다고 판단했으니까 하기로 한 것이다. 다들, 이라고 해봐야 경아와 카페

세상에서 가장 임경아답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당연히 임경아 본인이다. 설령 임경아가 세계 최고로 임경아답지 않은 짓을 벌인다 해도 임경아의 일인 이상그건 임경아다운 일이 된다. 이제 세상에 임경아가 없다고할 때, 그나마 가장 임경아에 가깝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굴까. 나는 재고의 여지 없이 그게 나라고 믿었다.

‘내게 남하고 다르거나 좀 나은 점이 있다면 이것이다.
나는 내가 얼마나 할 수 있는지를 거의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물론 나는 인간이지, 경험치와 레벨에 비례한 능력값이딱 떨어지게 수치화되어 있는 게임 캐릭터가 아니므로, 체력과 정신력이 현재 몇 퍼센트 남았는지, 얼마나 쉬어야 완 전히 회복되는지 같은 것은 당연히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나의 한계다.

-자기의 한계를 정확히 알면 장기 또는 단기 목표를 현실적으로 수립할 수 있고, 현재의 집중력이 얼마나 지속될지, 지금 취하고 있는 자세 또는 행동을 얼마나 더 유지할수 있을지 같은 것을 고려하게 된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와 그렇지 않은지를 구분할 줄 알면, 실현 가능성이 불확실한 일에 자원을 낭비하는 대신 달성 가능한 눈앞의 목표에 집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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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 미래의 어느 날, 아마도 여느 때보다 깊은 외로움이 밀려오는 날, 내 외로움은 노파의 오래된 하루를 빌려 그렇게 완성되어 갈 것이다. 내 것인지 노파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저쪽으로 전가되었다가 다시 이쪽으로 전가되는 실타래 같은 외로움이 인생은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쏜살같이 지나가고 그 밑바닥에 정제되어 남는 건 외롭고 쓰라린 것…….
미안하지만, 때로는 그것이 인생이야, 나의 아가.

백복희로 태어났지만 스테파니로 살이 오나와 넘버 원 닮은 여자. 우리의 닮은 구석은 눈매나 입매만은아닐 터였다. 삶의 어느 장면에서 우리는 같은 자세로, 같은표정으로, 같은 생각을 하며 투명한 벽 앞에 서 있곤 했을 것이다. 얼굴의 일부가 아니라 생애의 접힌 모서리가 절박하게닮은 사람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빠는 무늬의 의미가 있는 문‘이라는 글자를 좋아하셨던것 같아요. 그래서 언니에게도 그 글자가 들어간 이름을 지어준 거겠죠. 문‘이 무늬라면 남는 건 ‘주‘인데, 제 생각에 아빠는 우주의 주‘를 염두에 두지 않았나 싶어요."
"우주요?"
웃으며, 나는 물을 수밖에 없었다. ‘우주의 무늬가 내게는놀라운 우연의 결과란 걸 알 리 없는 문경은 사뭇 진지하게 말을 이어 갔다.


추연희(秋慈禧), 그리워할 수 있어서 행복했던 사람, 나는이제 그 이름을 내 삶이 끝날 때까지 기억할 것이다. 그 이름을 망각하지 않는 것, 그것은 우주를 키우는 일과 함께 내가이 세계 앞에서 지켜야 하는 예의가 되리라.
연희가 죽었다.
그녀는 암흑으로 돌아갔다.

그 순간, 또다시 태동이 지나갔다.
연희가 살았던 곳으로 우주가 한 뼘 더 다가와 있었다.
그들 사이에, 두 세계의 무게중심에, 나는 서 있었다.
나는 바람을 내 가슴으로 끌어왔다. 품에 들어온 한 줌의 바람에서 온기가 전해졌다. 누구의 온기인지, 나는 당연히 알고있었다. 너구나,
속삭였다.
우주
우주, 라고 나는 또 한 번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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