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규는 귀연이를 사랑했다. 귀연이는 승규가 아니라 나를 사랑했다. 그리고 나는 귀연이가 아니라,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거리에 떨어져 있는 사람을 사랑했다. 승규와 귀연이와 나는 모두 열두 살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열두 살이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나이가 많았다. 나는 나의 연인에 비하면 너무나 작고 너무나 무력하고 너무나 한심하고 너무나 가난하고 너무나 추하고 너무나 더럽고……… 벌레 같았다. 

 "난 널 사랑해, 하지만 넌 날 사랑하지 않아. 넌 누굴 사랑하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입을 열었다. 아니, 입을 연 것은 내가아니었다. 내 마음속에 너무나 오랫동안 짓눌려 있던 사랑과 두꺼비가 마침내 최초로 제 목소리를 찾아내어 대답하고 있었다. 그놈은귀연이 엄마, 라고 말하지 않았다. 당골네, 라고 말했다. 내 마음속에서 작은 별이 출렁이듯 크게 반짝거렸다. 뭐? 너 미쳤어? 승규가 비명처럼 소리쳤다.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는 귀연이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녀는 백 살이나 천 살쯤 된 사람처럼 말했다. 우린 왜 늘 자기를 사랑해주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는 걸까? 승규가 시무룩하게말했다.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기도했다. 귀연이가 다시 말했다. 어째서 우리는 늘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을 소망하는 걸까? 승규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중얼거렸다. 순서대로 한다면 귀연이 엄마는 날 사랑해야 하는 건데….

사람이 살기 위해 만들어진 동네가 아니라 망가지지 위해, 서서히 죽어가기 위해, 산다는것이 얼마나 비참하고 세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 곳인지를 입증하기 위해 만들어진 동네였다

그녀를 통해 나는 한 가지 중대한 사실, 즉 이 세상이 오직 저주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저 희게 빛나는나의 연인이, 그녀를 향해 내 가슴에 타오르는 이 별이 어찌 저주일수 있단 말인가. 그 깨우침으로 나는, 나의 삶은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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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강과 완적 모두 ‘광사狂上‘로 불렸지만 완적이 세상을 피하는 피세避世의 광으로 화를 면할 수 있었다면 혜강은세상을 거스르는 오세世의 광으로 화를 불렀다." 

위진 시기를 풍미했던 현원遠, 임달任達, 광탄誕의 기풍
은 남북조까지 이어져 풍류의 여운을 남겼다. 도연명陶淵明이 관직을 버리고 전원으로 물러난 것은 바로 이러한 풍조가 마무리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는 자발적으로 세속적인 근심과 걱정에서 자유로운 전원을 선택했다. 위진남북조시기의 지식인은 궁궐에서 죽림‘을 거쳐 다시 ‘전원‘으로 나아가는 변화 과정을 통해 정신적인 안식을 찾았으니 이는 생활 방식의 전환일 뿐만 아니라 개체적 생명이 추구하는 바이자 그들의 정신적 이상이 깃든 장소로의 귀환을 의미했다. 

그러나 역사서를 자세히 살펴보면 이 시대야말로 중국인들이정신적으로 가장 풍성한 수확을 거둔 시기였다. 모든 것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이 시기는 예술과 문학 및 후대 풍류 문인의 탄생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쳤다. 철학사상은 현원遠을 탐구하면서 최정상에 올랐고, 문학의 업적은 찬란한 빛을 발하며 저마다.
최고임을 자처했다. 불교와 도교에서는 대사들이 운집했고, 역사저술도 계속 쏟아져 나왔으며, 서예와 회화도 최고봉에 오르기시작했다. 『세설신어』『문선』『문심조룡』 『수경주水經注』『안씨가훈氏家訓』『제민요술齊民要術』 『낙양가람기洛陽伽藍記』등은 모두 이 시기에 나온 중요한 저술들이다. 북방의 명문세가들이 영가永嘉 시기에 남도함으로써 중국문화의 생태지도를 일거에 바꾸어놓았으니 참으로 일대 장관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또 북방척발씨가 한족화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위진남북조 시기에중국문화가 거대하게 융합되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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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최초로 광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한 인물이다. "뜻이높으 광자는 진취적이고 절조가 굳센 견자는 해서는 안 될 일을하지 않는다" 라고 했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견해인가! 오경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광은 줄곧 형용사로 쓰이다가 공자에 이르러비로소 광 뒤에 ‘자 자가 보태진 것이다. 이때부터 응집력이 커진 ‘광자‘란 말은 중국 문화의 가치지향성을 나타내는 특수명사가 되었으니 이 얼마나 혁신적인 변화인가! 

광자는더 이상 공자의 광견사상을 근간으로 삼지 않았다. 불교와 도교사상 중에서 특히 자연을 숭상하는 도가와 도교의 관념이 어느덧 위진 지식인에게 개체적 생명의 자유로운 확장이라는 이상을심어주었다. 그들은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는 자아의 방임을 추구 하다가 마침내 나체 노출증 내지는 노출광에 빠져든다.

 보사는 ‘남이 절대 빼앗을 수 없는 타고난 재능‘ 즉 ‘지성적 오만을 갖추고 있었다. 광으로 말하자면 지성적 광과 이성적 광에 속한다. 위잉스 선생이신유가의 심리구조에 대해 논할 때, 일찍이 서양의 ‘지성性적 오만이란 말을 인용하여 신유가의 ‘양지良知적 오만을 대비시킨 바있다. 대체로 왕필에게 ‘남이 절대 빼앗을 수 없는 재능이 있다고 한 것은 분명 ‘이성적 오만과 연계되므로 더더욱 지성적 오만에 부합된다.

 왕사탁의 『회옹을병일기海翁乙丙日記』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지금 생각하면 왕필과 하안의 죄는 걸 주의 배가 넘고, 석가와 노자의 죄는 10배가 넘으며, 주돈이週敦硬, 이정二程(정호程·정이程碩), 주희朱熹, 장재張載의 죄는 100배가 넘는다. 이치에 가까울수록 더 쓸모가 없다. 헛된 미담으로 혹세무민하니 걸 주의 난이 겨우 수십 년이었던 것과는 비교가 안 된다."

첸중수는 최종적으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사람의 전반적인 욕망과사사로운 욕망은 자신을 죽이고 남을 죽일 수 있으니, 이를 체계적인 법도로 널리 퍼뜨려 천리와 공리로 삼고 온 세상의 준칙으로 삼아 백 대에 모범으로 드리우면 천하의 후손들을 죽일 수있다." 4 다시 말하면, 노자와 장자는 누군가를 살인한 적이 없고, 송대의 주돈이, 정이, 주희, 장재 역시 누군가를 살인한 적이없다. 그런데 문제는 통기統紀에 있다. 만약 통기‘를 넓게 해석하여 일가의 학설을 ‘천리‘ 내지 ‘공리‘로 삼고 온 세상의 준칙으로삼아 백 대에 모범으로 드리우게 되면 천하의 후손들을 죽이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참으로 대단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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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광자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평가함과 동시에 통상적인 ‘광에 대해서는 도덕적으로 분명한 선을 그었다. 공자가 제창하고자 했던광은 바로 뜻 있는 자의 덕성적 ‘광‘, 즉 한 사람의 독립된 정신과독립된 생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실제로 이러한 광자정신은 전통적 사인혹은 사대부들의 언행에서 자주 보인다. 

「공자가 말씀하셨다. "언행이 중도에 부합되는 사람과 함께하지 못할 바에야 광견의 인물과 함께 하리라!" 또 말씀하셨다.
"광자는 진취적이고 견자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지 않는다." 이들은 아무래도 완전무결함을 추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쪽 편을 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한즉, 하지 않는 바가 있으면 장차 반드시 하는 일이있게 된다. 진취적이라 해도 역시 취하지 않는 것이 있다. 

광자인 척하는 ‘양광‘이야말로 역대 은자들이 세상을 피하고 자신을 보전하는 유효한 수단이었음을알 수 있다. 첸중수錢鍾書는 이러한 ‘피세遊世‘와 ‘양광‘의 방법은
"일종의 임기응변식이지만 행적은 진실된 듯하고 마음은 참되나거짓되게 하며 비웃음을 감내하고 의심이나 시기를 피하려 하는것이다" 라고 했으니 아주 적절한 표현이다. 

 공자는 일찍이 "은나라에 세 명의 인자가 있었다" 라고 말 한바 있다. 세 명의 인자‘ 가운데 "머리를 풀어헤치고 미치광이 노릇을 하다가 붙잡혀 노예가 된" 인물이 바로 자신을 온전히지켜냄으로써 끊임없이 역사서에 이름을 올린 은자정신의 창시자 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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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구분한 중행·광狂·견·향원 등 네 가지 품성가운데, 광자의 특성은 감히 생각하고 감히 말하며 감히 행하는데 있으니 일반 사람들의 행위를 뛰어넘는다. 견자의 특성은 떠들썩하게 나대지 않고 사회적 조류를 따르지 않으며 세속을 따르지 않고 지조 있게 홀로 나아가면서 자기 주장을 고수하는 데있다. 광자와 견자의 공통점은 독자적으로 행동하고 창조 정신이풍부하다는 것이다. 만약 현대적인 의미로 해석하자면 상대적으로 광자는 자유의지가 강한 인물이고 견자는 독립의지가 강한인물이다. 따라서 학문적으로 그 의미를 고찰해보건대 독립은자유의 근간이고 자유는 독립의 확장이니 양자를 분명하게 나눌 수 없다.

천재들의 사유가일반 사람들과 다른 것은 ‘비정상‘ 즉 정상이 아닌 데 있다. 여기서 비정상은 반중용과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다. 

이 책을 쓰면서 내가 개인적으로 얻은 큰 수확은 향원과 중행 간에 지극히 ‘비정상‘ 적인 관계가 성립될 가능성이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향원의 품성이 겉으로는 중행과 상당히 닮아 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향원은 광과 견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이미 중행과 떼려야 뗄수 없는 동맹관계에 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광자‘와 ‘견자‘의 개념은 바로 공자가 처음으로 밝힌 의미를 근거로 한다. ‘광‘과 ‘견‘의 특징은 기본적으로 안정적이고 안전한 것四平入隱‘을 추구하지 않는다. ‘광‘은급하기만 해서 일을 되도록 빨리 처리하려고 하고, ‘견‘은 현실에맞지 않는 것을 고집하는가 하면, 어떤 일이든지 반드시 다 해야한다고 여기지 않는다. 따라서 ‘광‘이 앞서 나가는 것이라면 ‘견‘은 멈출데를 아는 것이라고 할 수있다. 요컨대 광과 견 모두 독립적인 사상과 독립된 인격의 표현이다.

 ‘광‘에도 법도가 있고 분수가 있어야 한다고 염원했던 공자는광이 다른 덕성과 잘 어우러져야 한다고 여겼다. 단지 ‘광‘ 하기만 하면 솔직함이 부족하다. 이는 곧 ‘광한데 곧지 않다而不라는 의미로 공자는 이들을 다루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람이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지 짐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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