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규는 귀연이를 사랑하여 그녀에게 입맞췄다. 귀연이는 나를 사랑하여 나에게 입맞췄다. 나는 당골네를 사랑했으나 그녀에게 입맞출 수 없었다. 나는 당골네의 달 같았다. 당골네를 중심으로 공전(公轉)하였다. 귀연이는 나의 달, 나를 중심으로 공전하였고, 승규는 귀연이의 달, 귀연이를 중심으로 공전하였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결국당골네를 축으로 하여, 그녀가 움직여가는 궤도를 따라 나와 귀연이와 승규가 서로를 중심으로 공전하며 우주를 유영하고 있었다. 가난뱅이들이 짓밟힌 몸뚱이를 눕히기 위해 도시의 버려진 산자락에 가까스로 마련한 달동네는 우리의 우주였다.
터덜터덜 쓰레기밭을 걸어내려오며 나는 이 사이에 쓰디쓴 침이고여드는 것을 느꼈고, 그와 더불어 그때 이미 깨달아야 했다. 나의꿈은 결코 현실과 화해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집세가 밀리면 집주인 여자가 어미에게방을 빼라고 호통을 쳤고, 어미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건드리면 죽은 체하는 거미처럼, 바보 흉내를 내며 멍하니 서 있다가 내가 눈에 띄면, 어서 들어가서 공부 안 해 이 똥통에 처박았다가 뙤약볕에 말려 죽일 놈아, 하고 고함을 질렀으며, 동네 사람들은멸시의 눈총으로 흘끗 쳐다본 다음에는 저주가 전염될까 두렵다는듯 우리집 쪽을 외면하고 다녔다. 그들은 불운이 얼마나 전염성이강한지를 잘 아는 사람들이었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