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 플라톤의 대화편 ㅣ 현대지성 클래식 28
플라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11월
평점 :
소설을 읽다보면, 시를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멀리 나와 앉아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 시작은 소설이었고 시였지만 인간에 대한 물음과 현실의 불협화음 사이를 서성이다 의문은 깊어지고 답을 찾아내고 싶은 열망에 휩싸이는 것이다. 니체로 스피노자로 들뢰즈로 돌아다니다보면 어느 순간 고대의 어느 광장에서 끝없이 이야기하는 사람들과 마주하게 된다.
거기, 답이 있는 것도 아닌데 자꾸 되돌아오는 이유는 뭘까.
거기 물음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최초의 물음들..그 사이에서 지혜를 다투는 사람들 사이에 소크라테스가 오랜 화석처럼 서있곤 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혹은 소크라테스의 변론으로도 유명한 플라톤의 대화는 오랫동안 꾸준히 번역되어왔고 연구되어왔다. 어느 한부분쯤은 읽어봤으리라. 수없이 인용되고 차용되어지느라 조금씩 변형되거나 본래의 의미가 왜곡된 것도 있었을거다.
성경처럼. 누가 번역했느냐에 따라 찍혀지는 방점이 다르고 방점의 위치에 따라 해석이 달라졌으리라.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이라는 어쩌면 가장 최근에 옮겨졌을 책을 읽는다.
법정에 선 소크라테스. 사형이 선고된 소크라테스. 탈옥을 제안하는 크리톤. 소크라테스의 마지막을 본 파이돈. 그리고 향연에 이르기까지 ..
이야기들의 가독성이 좋다. 소크라테스씨의 폐활량이 대단했던걸까? 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길고 긴 문장들을 읽는데도 걸리는 것이 별로 없다. 긴 문장 속에서 조금씩 말을 틀어가는 소크라테스의 언변이 놀랍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했다.
지금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설득되지 않는 부분도 분명 있을테지만 토론에서 보여지는 투지(?)만큼은 대단하다.
한 번도 아테네를 떠나지 않은 소크라테스는 도망가자는 사람을 설득하며 아테네와 아테네의 법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낸다. 자신이 살아왔고, 혹은 자신을 살게 한 아테네와 아테네의 법을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 그것은 아테네를 부정하는 것이며 배반하는 것이라는 입장에서 소크라테스는 반박할 수 없는 논지를 펼쳐낸다.
문득. 법은 공정한가. 법은 꼭 지켜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는다.
위대한 소크라테스씨의 이야기는 아테네의 시간과 공간에서 다시 없을 명문이었을것이다. 일정부분 현재에도 그 힘이 닿아있을것이다.
법을 수호하고 법을 집행하는 자들을 믿을 수 있을 때, 그 법이 모두에게 공정할 때, 지켜내야 할 가치와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법을 남용하고 법을 오용하는 자들에게 법이 볼모로 잡혀있는 상황이라면 그 법 또한 지켜내야 하는가? 라고 물어보고 싶었나보다. 검사가, 판사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면 법이 과연 공의를 위한 잣대가 될 수 있는 상태인가?
그렇다면 그 때의 법은 어떻게 해야하는가? 막연하게 외면할 것이 아니라면 법은 어떻게 제자리를 찾아야 하는가? 지혜는 법을 어떻게 풍요롭게 할 것인가? 등등의 물음들이 머릿 속을 맴돌며 소크라테스씨에게 물어볼 목록만 길어진다.
여자와 노예와 외국인이 아닌, 남자이며 시민이며 내국인인 소크라테스의 신분이 그의 변론의 일정부분 동력은 아니었을까도 의심해본다.
"그저 사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사는 것"이라는 말이 우리에게 여전히 타당한지, 그렇지 않은지도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 말은 우리에게 여전히 타당하네
제대로 산다는 것이란 명예롭고 정의롭게 산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라는 말도 웅리에게 여전히 타당한가?
그 말도 여전히 타당하네
그렇다면 우리의 생각이 지금까지 서로 일치한 것들을 토대로 해서, 아테네 사람들이 나를 방면하고자 하지 않는데도 내가 이곳을 빠져나가고자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농담삼아 그런 말들이 돌았던 적이 있다. 배 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겠다. 라는
근래 읽는 소크라테스는 가끔 배부른 소리를 했던 것도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의 사상들을 읽는 건 유의미하다.
특히 '무지'를 인정하고 끝없이 탐구하는 자세는 삶을 꾸려가는 몇가지 자세 중에 꼭 넣어둘만한 가치가 있다.
알지 못하는 것을 모른다고 인정할 수 있고 그것으로부터 배움의 틀을 짓는 일. 끝없이 의심하고 묻고 답을 찾아내려 고민하고 공부하는 것. 그것을 내가 알고 있다는 걸 남들이 모른대도 상관없는 '앎'의 삶. 거기에 신념이라는 것이 싹 틀 자리가 준비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생각이 끼어들기 좋은 책이다. 딱딱하지 않게 옮겨진 글은 생각없이 죽 읽기에도 좋다.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다소 싱겁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여태 읽어 본 소크라테스 중 가장 가독성은 좋은 것 같다.
근데 변명 하나도 이렇게나 길고 길다니..더 길고 길게 천 하루의 밤동안 이야기를 이어가 목숨을 부지한 세헤라자데처럼 천일 쯤 변론을 이어갔으면 소크라테스씨도 조금 더 살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