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집에는 돈이 모이지 않는다. 모아둔 여윳돈이 있다는 것은 곧 통째로 쏟아부을 큰 일이 생길것이라는 암시같은 것이다. 강물이 바다로 흘러들듯 가난한 돈들은 큰 자본의 주머니로 흘러들어가고 그마저도 자주 끊기곤 한다.

그 와중에 일점호사주의도 아니고 책읽기를 즐겨하는 가족은 큰 짐이다.

책을 읽는 건 현실적인 타산과 타협이 동반되는 행위이다. 가끔 나는 책으로 계산을 하곤 한다.

택시를 타야 할 때..와 그 택시비면 시집이 한 권인데?

고양이 캣타워를 사며..책 세 권 값이야.

하는 식으로..사랑하는 이웃부족의 여인에게 줄 뼈다귀 장신구를 구하기 위해 조개껍데기 한 무더기를 주워 온 원시의 어떤 사내처럼 내게 돈은 늘 의미없는 어떤 물질이 되어진 것 같다.

연말이 다가오니 온 시내 도로를 파헤치고 있었다. 올 해 책정된 예산을 다 써야 내년에 많이 청구할 수 있다는 말을 어디선가 듣긴 했지만..내 세금이 발 밑에 바퀴 밑에 의미없이 쏟아부어지고 있구나 생각하니 속이 상했다.

저게 다 얼마야? 책이 몇권이냐구?

 

내 사정을 눈치 챈 친구가 메시지를 보냈다.

 

 

고마운 친구의 메시지..나는 그 선의를 받기로 했다.

열 권의 목록을 전했다. 그 중에서 두어권, 혹은 서너권쯤 서로 부담스럽지 않을 범위에서 선물 받기로 한다.

친구는..

다 보낸다. 사지 마라. 라는 쪽지를 다시 보냈다.

 

 

 

 

 

 

 

 

 

 

 

 

 

 

 

 

 

 

 

 

 

 

 

 

 

 

 

 

 

 

 

 

 

 

 

 

 

 

 

 

 

 

 

 

 

 

 

 

 

 

 

 

 

알라딘과 교보와 기타 서점에서 가장 빨리가는 순서를 찾아 잘라서 보낸다고 했다.

간식을 눈앞에 둔 만화 속 강아지캐릭터처럼 구미가 당기는 책을 보고 군침을 줄줄 흘릴 내 모습을 떠올렸으리라.

어차피 저 책들을 다 읽으려면 꽤 시간이 필요할텐데 한꺼번에 받는데도 한꺼번에 읽을 수는 없는데..친구는 한시라도 빨리 보내주고 싶었나보다.

 

라틴어 교재와 사전을 사는데 이번 달 도서구입비를 탕진해놓고 까닭모를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책이 어디로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다음달에 사면 되는데..

장바구니에서 구출되지 못한 이백권도 넘는 책들을 보면 다음달이라는 약속이 얼마나 무력한지..알고는 있다.

 

심드렁한 성탄. 가난할 성탄..

사랑하는 친구의 선물로 풍성하게 넘친다.

지난달엔..어떤 적립금 덕분에 수월하게 책을 구입해 읽었었다. 감사하게도..

 

2020년은 코앞으로 다가왔다.

억울하게 나이만 먹게 생겼다.

 

그래도..감사한 성탄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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