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는 어디 있나요
하명희 지음 / 북치는소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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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여덟개의 작품들이 눈 내린 아침 담장 위에 쪼르르 앉은 눈사람들처럼 모여 있다.

소설집이라고는 하지만 작품의 갯수가 '?' 싶을만큼 적지 않다.

 

문학평론가 김명인님은 추천사를 통해 '하명희의 소설들은 따뜻하다'라고 했다. 세상을 따뜻하게만 보려는 사실상 방관하는 온정주의와는 거리가 먼 확실한 방향성을 가진 따뜻함이라고 한다.

보통은 추천사나 해설을 잘 읽지 않는다. 책을 읽기 전에는 선입견이나 과한 기대를 품게 만들기도 해서..다 읽고 나서는 내가 읽은 것과 엄청난 괴리를 보이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 어느 해 겨울을 강타했던 유행어 '내가 이러려구 책을 읽었나, 하는 자괴감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설집에 대한 추천사에는 동의한다.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 아마 그 즈음일거다. 엄마는 지금으로 치면 공방처럼 뜨개질한 옷과 소품들을 수출하는 일을 하셨다. 아침을 먹고 나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실과 도안이 넘쳐나는 작업장에 앉아 하루 종일 자신이 맡은 부분을 뜨기 시작했다. 소맷단만 뜨는 사람, 오른쪽 소매, 왼쪽 소매, 앞판, 뒷판, 제일 늦게 출근해서 제일 늦게 퇴근하는 시아게 아줌마까지. 커다랗게 틀어놓은 라디오 소리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바늘과 바늘을 따라 나서는 색색의 실들은 공간을 가득 채웠다. 시아게 아줌마가 두툼하게 썰어놓은 생선살 같은 작업물을 모아 하나씩 이어붙이면 가디건도 되고, 스웨터도 되고, 조끼며 망토가 되었다. 마지막에 도달해서야 비로소 확인되는 정체들.

책을 읽으며 열 여덟 개의 조각들이 만들어 가는 고요의 정체를 떠올렸다.

 

어쩌면 그림자의 이야기. 어쩌면 너무 꾹꾹 눌러놓은 탓에 저도 모르게 흘러버린 이야기들일지도 몰랐다. 엄마한테 잔뜩 혼이 난 원두(반려묘)가 의기소침하게 앉아있는 그림자. 그 그림자는 원두의 설움과 서운함과는 관계없는 배트맨의 모습과 닮아있었다. 용감한 정의의 용사(?)

이야기는 바로 거기에서 싹이 나고 열매가 되는 건 아닐까? 서러운 현실과 그림자 속 정의. 그 간극을 비집고 새어나오는 이야기.

고요는 어디있나요? 헐겁게 대답하자면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스치듯 지나가버렸던 시간과 길과 사람들 사이에 오도카니 앉아있었을 고요. 너무나 고요해서 눈치채지 못했던 고요.

하명희의 글은 내가 지나왔던 길모퉁이 어디쯤에서 서성이던 고요를 깨닫게 한다.

..거기 있었구나. 거기 있었겠구나.

 

천천히, 어느 가을 날 길의 시작부터 끝까지 나뭇가지에 노란 리본을 묶어가며 걷듯 읽었다.

기억할께요’ ‘기다릴께요’ ‘죽지 않을께요혼잣말을 보태며 읽었다.

 

소란하고 소란한 세상의 틈에 오도카니 박혔던 고요를 만나는 일. 사람의 눈과 그림자의 이야기를 만나는 일. 하명희의 글은 그런 일이었다. 사람이 사람에게 돌아오는 일.

세상에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은 없다는 걸 확인하는 일. 고요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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