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내 마음을 흔들었던 단어들이 있었다.
어느 해에는 기억. 이라는 단어가 어느 해에는 탄핵이라는 단어가 또 연대 혹은 승리라는 단어들이 일년을 관통하거나 종지부를 찍는 단어가 되곤 했다.
작년, 그러니까 2019년엔 딱히 잡히는 단어가 없었다. 그러다 '고요'라는 단어에 꽂히게 된다.
황규관시인의 새 시집 이번 차는 그냥 보내자 에 있던 시였다. 고요.
간절함은 그렇게 표현되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내내 들끓던 심사를 가라앉히고 싶다는 간절함. 도무지 진정되지 않는 울렁임과 역겨움 같은것에 휘둘리다보니 차라리 고요하고 싶었던지도 몰랐다.
어제는 책을 읽지 않았다.
종일토록 고양이 네마리와 함께 자고 뒹굴고 기지개를 켜고 각자의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며 어슬렁거리며 하루를 보냈다. 사람이라는 생각, 새 해라는 의미규정 따위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다. 그저 몸이 가는대로 마음이 움직이는대로 내버려두었다. 고양이들 사이에 누워 볕바라기를 하다 문득 '고요'를 감각했다. 무어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숨을 쉬고 있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는 어떤 정적. 시공의 개념이 모두 사라지고 오롯이 느껴지는 고요.
그거면 됐다. 잠깐의 감각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했고 충분히 만족스럽고 충분히 평온했다. 진공관 속에 들어앉은 것 같은..
그래서 오늘은 책을 읽는다.
온전한 고독.
고요는 어디있나요를 꺼내려다 내려둔다. 그건 내일쯤..혹은 모레쯤..읽어야지.
책 열권을 선물로 받아놓고 여유만만한거다.
새 해. 새 날. 시간에 붙는 과한 의미들이 늘 나를 지치게 했던 시간이 있었다. 그까짓것 모르고 지나가도 되는데..애써 의미부여하지 않아도 되는데..겁이 났었던건지도 몰랐다. 시간을 잊거나 놓쳐버리면 시간이 나를 잊고 놏하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주인되지 못한 삶의 태도였으니까..
담담하게 시작하는 날들은 별일없이 평온하다.
책에 욕심내지 않고 책이 없으면 빈 손을, 하늘을, 세상을 읽는 것도 괜찮지. 라고 생각했지만..존 버거의 책 소식에 그런 우아함(?)은 잠시 내려놓기로 한다. 존 버거의 책을..그들의 노동에 함께하였느니라 3부작이 다시 나온 것으로 짐작된다. 이번에는 놓칠 수 없다. 게으름을 부리다 결국 구하지도 읽지도 못했던 책.
코 끝을 스윽 지나쳐가는 바람처럼 '고요'의 감각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욕심많은 책벌레의 본능이 움찔거린다.
사람이 되려면 아직 멀었나보다..사람이 된들..
어쨌거나 또 새로운 날은 시작되고 있다.
올 한해 나를 붙들, 혹은 나를 흔들 단어는 어디에서 찾아질지 사뭇 기대가 된다.
겨우 이틀 지났는데 2019년은 작년이라는 호칭 속에 왠지 낡아져 보인다.
오늘도 내일은 낡아져있겠지?
또...읽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