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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패배자에게 끌린다 - 내 취향대로 살며 사랑하고 배우는 법
김경 지음 / 달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안그래도 책 하나 읽는 데 다른 이들보다 오래 걸리는 사람인데, 이 책은 정말 오래도록 읽었다.
노란 표지위에 제목을 담은 검은 실루엣이 " 읽어낼 수 있겠어?"라고 살짝 시건방을 떠는것 같았다면 오해일까? 이 책을 표지의 유혹으로 구입해서 읽은 사람이 생각보다 꽤 많을 거라는데 한표 행사하고 싶다.
작가의 취향은 참으로 독특하고 독창적이기까지 하다.
우리가 (혹은 내가) 잘 모르는 fashion으로부터 사랑과 life style, 급기야는 사회적인것까지 다양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사실, 조금은 자신의 지적 수준과 정보의 양을 과시하며 나는 이렇다, 하는 류의 글은 멀미가 날 정도로 많이 보아오지 않았는가? 그런 글을 읽을 때마다 나는 되묻는다 "그래서? 어쩌라고?"
처음 love,와 fashion의 꼭지에서 나는 살짝 지루했다. 저마다 드라마틱한 사랑의 사건 하나쯤은 있지 않은가? 그것이 잘 포장되어지고 구석구석 닦아내어지지 못해서 그렇지 그 질량과 농도는 어슷비슷할테니 말이다.
또 fashion은 문외한이다. 이제까지 여성잡지라곤 미용실에서 내어주는 것도 읽지 않고 살았는데, 느닷없이 fashion 이라니. 아는만큼 보인다 하지 않던가? 아는게 없어 보이는것도 없다.
"고다르의 여자처럼 입고 싶다!" 이 대목에서 부터 내 눈은 반짝이기 시작했다. 고다르라니..내가 아는 그 고다르? <카르멘이라는 이름> 을 보며 나는 이 남자에게 얼마나 큰 호기심을 보였는가?
횡단보도를 안심하고 건너는데 강렬한 라이트와 함께 내 엄지 발가락 앞을 쏜살같이 지나쳐 가는 엄청나게 어이없고 충격적이며 그 가운데의 짜릿함을 느끼게 하는 자동차와 맞닥뜨린것처럼 말이다.
그후 작가의 시선을 <순진> 하게 따라가보기로 한다.
김경이 이끄는 대로 책 속을 떠다닌다.
내가 알고 있던것들을 이 사람은 잘도 끄집어낸다.
"너도 이거 알지? 나도 아는데 말야..내겐 이런 경험이었고, 이런 의미였으며 앞으로는 이렇게 될것도 같아."
혹은 내가 더 이상 진전을 보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이거..이렇게 연결시켜보면 어떨까? 이건 내 생각인데, ,,싫음 말고.."
꼬물꼬물 적어내기 시작한다. 글씨가 참 그렇지만,,그래도 오랜만에 손글씨 나쁘지 않다.
중간 쯤 읽었을때, 나는 사실 이 책을 다 읽어낼 수 있을까? 반문했다.
한 꼭지를 읽다가 다른것으로 자꾸 호기심이 옮겨가고 있으니 말이다. 밥딜런과 존 바에즈에 이르러서는 급기야 이층 창고에 박혀있던 그녀의 앨범을 찾아내기도 한다. Donna Donna 한 곡을 듣기 위해 여덟번의 튐을 견뎌내야하는 그 판을 말이다. 그것도 부족해 김민기 ,한영애와 Janis Joplin 까지 자발적(?) 으로 다시 듣기 & 추억하기를 해내고 만다. 한 꼭지 읽고 사나흘을 혼자 쑈하고 있었던게다.
이렇듯 작가의 글에 등장하는 사람과 책과 음악은 때론 우아하게 때론 세속적이게 서로 맞물리며 무언가를 자꾸 메모하게 한다. 이미 사둔 책들은 다 어쩌라고????
그래서? 나는 이 책을 거의 이주일이상 들고 다닌듯 하다. 다 읽었을까?
아니 아직 마지막 장을 덮지는 않았다. 이 긴 시간을 책 속에서 책 밖에서 나를 분주하게 만든 작가에 대한 복수(?)일지도 모른다. 내가 언제쯤 다 읽을 것 같소? 하고 말이다.
많은 부분에 작가의 시선에 동의 한다. 그렇지 않은 것도 있지만 그렇다고 어쩔건가 멱살잡이는 할 수 없지 않은가? 어쨌든 작가의 취향이고 내 취향이니..
한마디.
<진정한 재능이란 열정을 지속적으로 투입할 수 있는 능력>(p204) 이라고 적힌 대목에서 한참 읽기를 멈추었다.
나의 재능이 뭘까? 라고 고민하는 누군가 있다면 손바닥에 적어주고 싶은 말이다.
오래 걸려도 좋으니 징검다리 건너듯 뛰어다니며 퍼즐 맞추기 혹은 지적 사치를 누리고 싶다면, 이책을 권하고 싶다. 어떤이는 금방 (내 옆자리에 있는 쌤) 읽고 "좋네" 라고 이야기 하기도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오래도록 끼고 싸워가며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래서?"
"그런데?"
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아, 작가가 끌린다는 패배자. 사실은 신인류일게다.자신의 세계를 꾸려나감에 주저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고단하기만 한건 아닌, 삶을 즐기는 신인류말이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따위는 하지 말자. 세상이 내게 결투를 신청하는 판에 나는 죽으나 사나 내편이어야 하지 않을까? 세상에서 젤 쓸데없는 짓이 자신과의 싸움일거라는 생각을 하며..
남겨진 부분에서 딱 한페이지만 읽고 덮는다.
복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