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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메르세데스 ㅣ 빌 호지스 3부작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7월
평점 :
#1.
직업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이른
새벽부터 모인 자리. 그들이 가난과 싸운 시간만큼 길고 긴 줄이 이어지고 피로와 희망과 긴장이 공존하는 자리에 느닷없이 돌진한 한 대의
차.
피할 곳이 없던 사람들은 고급승용차에
희생되고 유유히 사라지는 범인. 사람들은 그를 일컬어 메르세데스 킬러라고 불렀다.
도난차량으로 결론지어진 그 차의 주인.
올리비아는 키를 꽂아두고 내렸다는 의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부주의한 행동이 참사의 무기를 제공한 꼴이 되며 시달린다.
올리비아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자살이었다.
퇴직한 형사 호지스. 무료한 일상속에
아버지의 유품을 만지작거리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메르세데스 킬러 사건을 맡아 진행하다
사건을 마무리짓지 못하고 퇴직하게 된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그런 무료한 일상 속에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발신인은 메르세데스 킬러. 일을 마루리 지어보라는 일종의 도발. 아니 조금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이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할것이니 그냥
죽어버리라는 일종의 경고이자 조롱이다. 이렇게 시작된 퇴직형사 호지스와 브래디(메르세데스 킬러, 미스터 메르세데스)의
싸움이다.
길다면 긴 600여 페이지의 이야기.
스티븐 킹의 글들이 그렇듯 영상으로
옮긴대도 하나 이상할 것 없는 힘을 갖는다. 이것이 작가에 대한 선입견이 만들어내는 착각인지 아니면 이야기가 유도하는 결론인지는
불분명하다.
분명한 건, 읽어나가면서 어떤 구체적인
캐릭터들이 떠오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CSI나, NCIS, 크리미널 마인드,
멘탈리스트, 캐슬, 본즈...
크리미널 마인드와 멘탈리스트를 조합해 조금
더 심리적으로 파헤치고 인물 설정을 보강하면 비슷해지기도 하겠구나 싶다.
독자의 눈이 이만큼 좁은 탓인지도
모르겠다.
#2.
모든 것에서 손을 뗐지만 아직 미련이 남은
사람과, 세상으로부터 버려졌다고 생각하는 범인.
아버지를 잃고, 동생을 잃고, 어머니를
잃은 브레디. 그 모든 죽음들이 사고이거나 의도적인 것이었거나 죽음을 끌어온 주체는 세상이었다.
아버지의 사고사, 몇푼의 보상금과 남은
어머니와 두 아들. 지적 장애가 있음직한 둘째와 똘똘하고 의젓한 첫째 브래디. 젊은 어머니가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은 브래디였다.
부주의한 사고로 동생의 상태는 더
악화되고, 비참해진 삶은 암묵적 동의하에 장애물을 제거(?)하게 된다. 그렇게 남게 된 어머니와 브래디.
비정상적인 모자관계는 어쩌면 피해의식과
죄의식이 만들어낸 뒤틀린 보호막이었을지도 모른다.
세상에 알려지고 세상이 자신을 기억했으면
좋겠다는 브래디의 희망 역시 잊혀지고 싶지 않고 버려지고 싶지 않다는 간절한 바람이 만들어낸 기형적 욕망이었을거다.
작은 균열은 조금씩 자라 커다란 균열이
되고 손 쓸 사이도 없이 붕괴를 시작하지 않는가.
브래디의 작은 균열은, 그렇게 커다란
붕괴를 향해 달려간다.
호지스.
익숙한 어떤 역할에서 배제되는 순간
사람들은 어떤 기분을 느끼게 될까? 퇴직.이라는 말이 주는 의미를 되새김해보게 된다.
무력감과 절망. 삶의 대부분을 채웠던
내용을 송두리째 빼앗기는 기분일까?
어쩌면 호지스의 모습은 퇴직한 가장들의
모습과 닮아있을지도 모른다. 아직 할 일이 있는데, 아니 해야하는 일이 있는데 합법적으로 그 일로부터 밀려나 모든 권한들을 내려놓아야할 때
느끼는 막막함 같은 것이었으리라. 가족도 없이 홀로 지내는 이라면 더더욱.
그의 심장을 뛰게 하는 일은 무엇일까?
퇴직이라는 말은 시한부선고보다 엄청난 파괴력을 갖는 말이겠거니 생각하게 된다.
시한부는, 언제까지 살 수 있다는
말일테다. 퇴직은 이제부터 죽어가는 것이라는 말일거다.
극단적인 비유인지 모르겠으나 느껴지는
무게감은 그랬다.
메르세데스 킬러의 도발을 받아들인
호지스.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 그 사람들 속에서 만나게 되는 살아도 좋을 이유들.
이 이야기는 어쩌면 범죄수사라는,
탐정소설이라는 맥락보다 삶을 이해하는 방법이라는 맥락으로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행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장애는
누구에게나 있으며 수치심은 누구에게나 발현한다.
문제는 얼마나 치명적인가인데 이것은 불행과
장애와 수치심의 문제가 아니라 과녁의 문제이다.
단단한 강철 과녁인가 물렁한
과녁인가..이렇게 말하면 너무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건가? 여기서 단련이라는 말이 필요할게다.
사람은 관계속에서 단련된다.
호지스나 브래디. 모두 시작은 혼자였다.
호지스가 넓혀가는 관계속의 사람들도
혼자였다. 올리비아도, 제니스도, 홀리도..
닮은 상처를 향해 내미는 손, 그 손을
잡고 이어지는 관계들, 그 속에서 조금씩 단단해지는 사람들..
이들과 맞서야하는 끝가지 혼자였던 브래디.
안타까웠다. 또한 그의 고통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가 도출해내는 파괴적 결론을 응원하기도 했다.
관계를 만들어가는 건, 정말 피곤한
일이니까 말이다.
책을 읽는 내내 브래디를 응원한다.
성공하지 못할거라는 암시들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호지스의 연대는 강력했고 치밀했다.
#3.
참 다양한 사람들의 표정을 만나는 재미가
있다.
보여지는 모습에서 진저리를 치거나
비호감으로 낙인을 찍어놓게 되지만, 어느 순간 그를 이해하게 된다.
이해한다는 건
어떤것일까.
판단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 특히나 어떤
사람에 대한 판단은 말이다.
내 판단이 옳다는 건 어떻게 증명하며
인정받게 되는가.
생각이 많아진다.
올리비아는 부주의하지 않았다. 브래디가
영악했다.
제이니는 안타까웠다. 브래디가
허술했다.
프랭키는 차라리 잘되었다. 브래디는
간교했다.
엄마는 그럴거라고 생각했다. 브래디가
불쌍했다.
올리비아는 부주의하지 않았다. 호지스가
미련했다.
제이니는 안타까웠다. 호지스는
강해졌다.
제롬은 남자가 되었다. 호지스가 힘이
되었다.
홀리는 홀리가 되어간다. 호지스가 이해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위로받고 싶고,
위로받아 마땅한 사람들이 서로를 위로하거나 위로를 갈구하는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끝없이 기억되는 것에 집착하는 브래디.
브래디의 마지막,
#4
미스터 메르세데스를 읽으며 사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브래디가 안타까웠다. 어쩌면 처음부터 호지스와 상대가 되지 않을거라는 예감때문이었거나 '정의가 승리한다'거나 '범인은 꼭
잡힌다'따위의 암시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증거물들이 쌓여가고 추론해가는 것보다
심리를 이용하는 과정이 더 많다.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제롬과 홀리와 함께 폭발적인(?) 추리를 해내는 과정은 흥미진진했다.
홀리는 어쩐지 NCIS의 에비를 자꾸
떠올리게 했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혹시 후속작이
나오는건가? 하는 기대를 갖는다.
그 마무리가..그렇다.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 후속작은 조금 더
치밀해지거나 조금 더 잔혹해도 좋겠다.
수없이 많이 쏟아지며 점점 진화해가는
수사물에 독자들도 영악해지고 있다는 걸..아니면 아주 클래식하게 풀어도 나쁘진 않겠다. 머독 미스터리처럼..
p.s
P314. L.18- '그는 소동이
벌어지지 모르겠다고' 오탈자이지 싶다. '벌어질지'가 아닐까?
뜬금없는 지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