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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 박스
조시 맬러먼 지음, 이경아 옮김 / 검은숲 / 201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1. 보이지 않음.
책을 읽으며 자꾸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를 떠올렸다. 갑자기 사람들이 눈이 보이지 않게
되는..이제까지 잘 보이던 세상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외부에서 침투한 바이러스에 의해 보지 못하게 된다는 건 두려움과
당혹감일것이다.
느끼지 못하겠지만 눈으로 본다는 것은 일종의 선제적 안전장치인 것이다. 위험한 것들을 미리 인지할 수
있는..
그것을 타의에 의해 차단당했을 때 느끼는 공포는 엄청난 것이리라.
그런데,
그 엄청난 공포를 스스로의 힘으로 선택한다면?
즉, 살아남기 위해 눈을 감고 보지 않아야 한다면 어떨까? 매 순간 확인하고 싶은 눈 앞의 세상을
보아서는 안되는 상황.
에우리디케를 저승에서 데리고 나오던 오르페우스도..결국 뒤를 돌아보고야 말았지
않던가.
보이지 않음. 보지 않음 사이에서 충돌하는 파장은 생각보다 공포스러울 수 밖에
없다.
살기 위해 눈을 감는다. 생존은 그 어떤 대의명분을 앞선다. 서편제에서는 득음하기 위해 눈을 멀게도
했다. 하물며 생존의 명분 앞에서..
#2.
먼 러시아에서부터 소식은 전해진다. 사람들이 서로에게 폭력을 행사하다 스스로 삶을 마감한다. 자살하는
것이다.
상냥하고 따뜻했던 이웃이, 가장 사랑하는 가족이 어느 날 문득 이웃을 죽이고 가족을 죽이고 스스로
죽는다.
그저 먼 어느 도시의 삭막한 이야기려니 덮어두려하지만 그 잔혹함은 마치 징기즈칸의 군대처럼 빠르게
번지기 시작한다.
어느 덧 맬로리의 부모님의 동네까지..맬로리의 동네까지..번져온다.
사람들이 변하기 전, 죽음으로 온몸을 던지기 전 무언가를 보았다는 제보에 두려운 이들은 눈을 가리기
시작한다.
두려움은 말라버린 강물에 내리는 비처럼 순식간에 번져나가고 흡수되기 시작한다.
사실, 맬러리는 원치 않게 갖게 된 아이에게 모든 신경이 쏠려있다. 다른 이들의 죽음에 집중할 여유가
없다. 언니 새넌의 죽음을 마주보기 전에는 말이다.
살아야 했다.
신문 귀퉁이에 난 작은 공지. 맬로리는 그 주소로 찾아간다. 두 눈을 감고 말이다.
생존한 사람들과 매 순간 그들이 눈 뜬 순간을 노리는 크리처들..그 공포의 줄다리기가
시작된다.
공황상태에 빠져 예민할대로 예민해진 그들을 통솔하는 톰. 사람들의 모인 곳에는 늘 있는 부정적 캐릭터
돈, 그리고..사람들.
극한의 공포 속에서 맬로리는 출산을 한다.
이야기는 아이들의 눈을 가리고 강으로 떠나는 맬로리와 아이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들이 눈을 가린채 소리를 정확히 듣기 위해 훈련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씩 교차되며
진행된다.
엄마인 맬로리의 미소까지 듣고 판단할 수 있게 된 보이와 걸..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눈을 멀게 할까? 갈등하게 했던 아이들과 맬로리의 생존투쟁이다. 상징적인 의미가
아닌,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싸움이다. 크리처를 피해 안전한 곳으로 ..
두려움과 공포. 그러나 아이들의 엄마로서 아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해야하는 책임과 사랑. 그 한가운데 눈을
가린 맬로리는 급류위의 배처럼 위태롭기만 하다.
#3. 버드박스.
노아의 방주처럼 혼란의 시대를 대비한 사람의 집으로 모여든 사람들.
그러나 끝이 보이지 않는 혼란과 죽음 속에 부족한 것은 늘어만 간다. 위험이 다가온다는 경고조차 없이
서로에게 의지한채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
결국 밖으로 나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찾아온다.
그들이 그나마 안전한 집에서 나가 겨우 두 블록의 거리를 며칠동안 헤매다 구해온 시베리안 허스키
두마리와 버드박스.
무언가 가까이 다가가면 큰 소리로 울어대는 버드박스는 그들에게 좋은 경보기였다.
아이들과 맬로리를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치 않지만 줄곧 그들의 배를 따라오며 위협을 가하는
존재.
머리위를 날던 새들이 비처럼 떨어져 내리기 시작한다. 동물에게도 크리처는 영향을
주는걸까?
새들이 미쳐버린 것처럼 서로에게 부딪고 물어뜯으며 떨어져내린다.
커다란 새장 속에 들어온 것만 같다.
어째서 제목이 버드 박스여야 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좀 남았다. 버드 박스가 나오기 전까지의 이야기에서
언급되지 않았던 것들..그 이후의 상황에서도 새가 쏟아져내리기 전까지는 이야기 속에서 '새'의 의미는 그렇게 뚜렷하지
않았다.
히치콕의 '새'가 잠시 연상되기도 했다.
하지만 쏟아져 내리는 새의 사체라는 참담한 이미지와 잠깐 겹쳐진것 뿐..
이야기의 몰입도는 좋았다. 맬로리의 심리상태와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 사이에 드러나는 균열에 대한
묘사는 탁월했다.
모든 상황이 수긍이 되었다고 하면 과언일까?
나는 어쩌면 돈과 같은 반응이었을거라고..
#. 4
세상은 불가해한 곳이다. 위험은 어디에나 도사리고 있고, 공포는 언제나 공격의 준비를 끝낸 채 기회만을
엿보고 있다.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너무 많은 것을 듣고,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는 지금. 우리는 스스로를 미치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차라리 눈을 감고 온몸으로 느끼며 진심으로 살아내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는지도
모른다.
세상도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정화해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영화 킹스맨에서처럼 인간이 지구를 망치는 바이러스일지도 모를일이다.
인간은 세상을 미치게 하고 세상은 인간을 미치게 한다.
인간은 세상을 죽이고 세상은 인간이 스스로를 죽이게 방조한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기 위해 애쓰지 않고, 스스로 세상의 일부분으로 살아내는 것으로 그 역할을 순응할
수 있다면..좀 나아질까?
생각이 많아지는, 여러가지 장면들이 한꺼번에 떠오르는 작품이다.
버드 박스는..외부의 것이 침입하려한다는 경고이기 이전에, 삶에 대한 공동의 책임에 대한 경고일지도
모를일이다.
시끄럽지 않은..새 두마리쯤 키워보고 싶다.
내 욕심에 반응하는 것이면 더 좋을 일이다.
크리처가 세상을 파괴하긴 했을까? 그 크리처가 나와 이웃이 아닐거라는 확신은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