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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녀굴 - 영화 [퇴마 : 무녀굴] 원작 소설 ㅣ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17
신진오 지음 / 황금가지 / 2010년 8월
평점 :
#1
종말은 없다. 영혼에는 출생도 죽음도 없다.
한번 생겨난 존재는 없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태어나지도 않고 영원하며, 항상 존재하며
죽지 않는 태고의 존재다.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 기타’
中에서.
책의 마지막 부분에 적힌
이 한 마디가 어쩌면 무녀굴이라는 작품을 관통하는 하나의 지침이었는지도 모른다. 기억을 타고 영원히 이어지며 불멸을 얻게 되는 영혼의 영속성
같은..
#2.
자전거 동호회 매드맥스의
회원들이 찾은 김녕사굴, 그곳에서 알 수 없는 일을 당하고 사람들은 실종된다. 어느 곳에서도 그들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홀연히 나타난 동호회 중 유일한 여성이었던 희진의 귀환.
사건의 중심이며 사건의
시작이며 도구로 존재하는 금주와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을 당한 남편의 친구이자 퇴마사인 진명, 그리고 그녀의 딸 세연.
이야기는 이렇게 그
시작을 연다.
뱀과 연관된 이야기는
어릴 적부터 상서롭지 못한, 풀지 못한 원한이 있는, 이승에 미련이 남아 떠도는 원혼의 이야기로 할머니로부터 혹은 ‘전설의 고향’이라 통칭되는
드라마로 들어왔고 보아왔다. 이런 이야기 탓인지 ‘뱀’은 ‘자살’이라는 말 만큼이나 억울한 누명을 쓴 부정적인 단어가 되어왔다. 터부. 뱀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순간, 뭔가 이상한 사람이 되는 느낌을 받게 되고, 차라리 입을 다물게 된다.
어쨌든 이야기는 금주의
주위의 사람들을 죽이거나 화를 당하게 하면서 진행된다.
이 비밀을 풀어가는
진명. 생환자였던 희진에게 단서를 얻으려하지만, 강력한 무녀의 영혼이라는 것 이외의 단서는 찾지 못한다.
조금씩 맞춰지는
퍼즐조각처럼, 금주의 무당 어머니와 외할머니로 되짚어가는 가계의 역사는 평범과는 거리가 먼, 차곡차곡 한을 쌓아가는 여정이었음을 알게
된다.
무녀의 영혼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진명과 금주의 퍼즐은 조금씩 맞춰지고 이 참혹한 일들을 끝내기 위한 작업을 준비한다.
정말 잘
풀어낸걸까?
이야기의 끝으로 치달으며
어서 이 상황을 끝내라고 조바심을 내며 읽는다.
그러다 마주하게 되는
반전.
섬뜩함은 바로 거기서
극대화되어졌다. 세상에..어떻게 이걸 눈치채지 못했을까?
이야기 속으로 몰입되며
나는 어쩌면 진명과 금주에게만 집중하게 되었나보다. 한번 결정된 시야는 좀 더 넓은 주변을 살피길 거부했고, 이야기의 전개만을 따라가게
되었다.
조용한 복도를 걷다가
갑자기 누군가 문을 벌컥 열고 나오게 되면? 놀라지 않을 방법이 없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라면 말이다.
작품의 말미에 전개되는
반전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문을 열고 나오는 이가 있을 수 있는데, 어쩌면 그것이 당연하데도 의심하지 않고 있다가 털썩 주저앉을만큼
놀라버리는..그런..
잘 짜여진 이야기라는
말이다. 아귀가 잘 맞아 의심없이 끌려가게 되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야마는..
#3.
영화화 된다고
했다.
책은 이미 영화
이상이다. 모든 장면들이 마치 드라마나 영화화를 예상하고 쓴것이 아닐까? 의심이 될만큼 구체적인 장면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간에 보아왔던 영화나
드라마의 이미지가 남은 것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생환자 희진에게 퇴마의식을 할 때 그녀가 보였던 행동들을 읽으며 자연스레 엑소시스트를
떠올리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스크린으로 좀 더
생생하게 본다면 어떤 느낌일까?
마지막 일전을 치루는
김녕사굴의 비밀 공간을 어떻게 그려낼지도 ..
각색하는데 많이 고생하지
않았겠다..이미 그 자체로 주인공들의 캐릭터는 살아있고 생동감 있었으니 말이다.
#4.
악령, 전설, 이런것들이
버무려진 공포물일지도 모른다.
책장을 덮으며 오싹했다면
공포물이 맞을것이다. 하지만, 애잔했다면?
오랜 시간을 더듬어,
악령이 되어서도 확인받고 싶었던 것이 사랑이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나,
의지와 상관없이 밀려나고 터부시되는 삶을 살아내는 것은 얼마나 외롭고 처참할지 가늠되지도 않는다. 고스란히 겪어야했던 삶의 무게를 어디에도
덜어낼 수 없었던 한 여인의 응어리는..오랜 시간을 걸으며 단단해지고 날카로워졌을게다.
위로받지 못한 상처.
용서할 수 없는 일들.
살아간다는 건 어쩌면
위로하고 용서하며 이생에 살았음에 남길 것 없이 청소하는 과정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떠날 것들이 떠나고, 남을 것들이 남아 살아내는,
누구도 이 질서를 교란하거나 깨고 싶지 않도록 용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생각한다. 끝나는 것은 없다. 삶과 죽음은 서로의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것이리라.
별 기대 없이 반쯤은
뻔한 내용이겠거니 읽어낸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오래 생각한다.
나는..잘 살고
있는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