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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전쟁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뛰어난 두뇌로 엘리트의 정석코스를 달리던 이태민. 그에게 거는 기대는 대단한 것이었다. 누구도 그의 성공을 의심하지 않았으며 세계적인
학자가 될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그는 돌연 전공을 바꿔 무기중개상이 된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서 남북한의 관계를 누구보다 실질적으로 해석해냄으로 능력을 인정받고 시쳇말로 한몫 잡은 후 편안한 말년을 보낼 것을
계획한다.
야망과 영민함으로 무장한 이태민은 거물과 거래를 하게된다. 그러나 방산비리 수사에 연루되어 중국으로 피신하게 되고, 그곳에서 킬리만자로라
스스로 별명을 붙인 소설가 전준우를 만나게 된다.
물론 말 한마디 섞지 않은 사이였지만 어느날 전준우로부터 전해받은 USB. 그는 태민에게 USB를 넘긴지 얼마되지 않아 살해된다.
조국으로부터 쫓기고 살인사건의 중요한 단서를 쥐게 된 이태민의 이야기.
그동안 김진명의 소설처럼 정치소설, 혹은 역사소설의 형태를 가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고구려, 천년의 금서, 싸드..
이야기의 첫 장면은 북의 고위간부의 총살 순간이다.
권력의 마지막. 역사로 기록될 것인지 반역으로 기록될 것인지가 결정되는 순간이 아닐 수 업다.
그것도 절대 흔들림 없을 것 같은 북의 최고위 간부의 총살.
시작부터 숨을 삼키게 한다.
이태민의 성장과정을 읽어내려가며 도대체 이 서사와 "글자"는 어떤 관계가 있는것인가. 무기거래상과 글자. 준엄한 역사의 현장 가운데서 묻는
'글자'의 유의미성에 대한 의심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글자의 이야기는 전준우에게 건내받은 USB를 읽어가며 하나씩 제기되기 시작한다.
현재와 소설이 교차되어 서술되는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어쩌면 이 책을 읽는 이들이 그랬을거라는 생각을 한다.
전준우의 소설만 먼저 후루룩 읽어버리는..마치 맛있는 핫도그를 손에들고 조급증을 이기지 못하고 소시지를 먼저 꺼내먹는 우를 범하듯이
말이다. 그럼에도 그렇게 하는 건, 그래도 핫도그는 맛있다는걸 알기 때문이다.
전준우의 소설이 시작되고 얼마되지 않아. 이태민은 내 시야에서 잠시 사라졌다. 전준우의 다음 이야기가 너무 궁금했던 까닭이다.
그렇게 소설 속 소설을 먼저 읽어버리고 한숨을 돌린다.
그리고 나서 다시 읽는 이태민의 행적과 사고의 변화.
긴장감을 다소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왔겠지만 후회는 없다. 전준우의 소설은 끝을 맺지 못했다. 그 뒤가 궁금해졌다.
얼마전에 한글과 한자를 병행표기 하는 문제로 시끄러웠다. 한글의 우수성을 이야기하며 민족의 얼과 정체성을 이야기했다.
일제강점기에도 지켜낸 한글. 천민의 글이라는 기득권자들의 괄시를 이겨내고 천민으로부터 강인한 생명력을 부쳐받아 오히려 강인해진 한글. 그런
한글의 우수성이야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제국주의의 침탈을 받아 식민지로 지냈던 대부분의 나라가 독립을 이룬 후에도 자국의 언어가 아닌 지배국의 언어를 혼용하여 쓰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글자는 그런 것이다. 지배하려는 자는 자신의 언어를 심어두려하고, 지배당하는 자는 자신의 언어를 잃지 않으려하지만, 무력이
동원되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지켜낸 한글. 그것만으로도 자부심과 자긍심을 가질 이유는 분명하다.
그렇기에 한자를 굳이 병행해야 하는가에 대한 회의적입장들이 많았다.
남의 나라 글자를 굳이 같이 써야만 하는가에 대한 문제제기. 그 문제제기는 올바르다.
그러나 만약 남의 나라 글자라고 했던 한자가, 우리나라의 것이라면? 그렇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소설속의 가정이라지만 김진명식의 구체적인 근거들과 치밀한 연구는 마치 그것이 사실일지도 모르겠다는 호기심을 발동시킨다.
세상의 모든 글자를 만들었다는 창힐. 그 글자를 얻어다 쓰는 주변국은 글자를 쓰게 해주는 것 만으로도 감지덕지한다.
기록할 수 있다는 건, 학습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것이 기록으로 이어질 때 영속성을 보장받게 된다.
기록이 분명할 때, 역사적으로 갖게 되는 지배국으로서의 지위는 얼마나 강고해질 것인가.
이런 지위는 후대에 걸쳐 여전히 힘을 지니게 할 것이고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국가적 우위를 점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글자를 누가 만들었는가는 중요하다.
이미 있는 글자를 없앰으로서 자신들이 만든 글자가 시작이었음을 주장하려는 세력은 또 얼마나 잔인한 세력인가.
자신들의 글자로 대체하기 위해 같은 뜻과 음의 글자를 먼저 쓴 부족을 모두 죽이는 일도 서슴치 않게 된다면 말이다.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전준우는 그의 소설에서 써내려간다.
마무리 짓지 못하는 누구의 글자인가에 대한 소설 속의 소설은 충분히 흥미롭다.
글자는.
한 나라의 역사를 기억하는 가장 효율적이고 진정성있는 도구일 것이다.
그것에 국가의 얼이랄지, 힘이랄지 하는 것이 실리는건 당연한 일이다.
지켜내고 발전시켜야 할 글자. 우리의 글자는 잘 지켜지고 발전되고 있는가.
어느 강대국의 글자를 부러워하고 그 글자를 쓰게 해 준다면 고맙겠다는 비겁한 생각은 하지 않는가.
수많은 의문들이 머리속에 맴돌았다.
무기거래상으로서의 이태민의 등장이 적확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전쟁이었다. 두뇌싸움도 심리전도 아닌 말 그대로 글자를 사용하는 백성들이 목숨을 걸었던 바닥으로부터의 전쟁이었던 것이다.
언제나처럼 바닥에서부터 지켜지는 역사와 글자.
길고 긴 고구려라는 대하소설을 집필하던 중에 써냈다는 말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그러나 써야했을 것이다.
그의 이야기가, 그의 이야기가 선택한 글자가 얼마나 단단한 뿌리를 지니고 있는 것인지, 강대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동북공정에 힘을 쏟는
중국의 움직임에 , 그들이 기고만장함에 주눅들 필요가 없음을 짚어내야만 했을것이다.
그 먼 옛날 우리의 조상들이 뿌려둔 글자의 가지들을 자랑스러워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을테니말이다.
글자는..
온몸으로 지켜내는 것이다.
전준우의 끝내지 못한 소설이 못내 아쉬운..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