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여름을 기억해줘>

여름을 기억해달라는 제목. 여름이라..바닷가에 바글바글 모인 사람들, 고속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들, 계곡마다 빼곡하게 들어찬 인파, 고기 굽는 냄새, 시원한 은행,

이런 형편없는 장면들이 기억에 잡힌다. 조금 더 먼 시간으로 기억을 보내놓고서야 초록과 노랑과 빨강이 보이기 시작했다. 참외밭의 원두막, 가지마다 주렁주렁 달린 자두, 빨갛게 익어가기 시작하는 사과 떫을게 분명한 작디 작은 어린 감. 청량하고 기분좋은 기억이 퍼진다.

아이들은 하루종일 첨벙거리며 물장난을 했고,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놀았다. 산엔 산딸기도 있었고, 머루며 칡까지 목마름과 허기를 달래줄 것들이 있었다. 산에는, 신비로운 이야기를 담은 바위도 있었고 수천년을 살았을 염험해 보이는 큰 나무도 있었다. 어느 날 우연히 발견한 으스스한 폐가는 온갖 이야기를 만들어낼 멋진 ‘꺼리’였다.

기억을 돌아나와 창 밖을 보니 숨이 막힌다. 인간의 편의와 발전이 가져온 환경은 온기를 잃었고 편한 숨을 빼앗는다.

나즈막한 집터들 대신 우뚝 솟은 아파트들은 효율적이긴 했다. 한 가족이 살 만큼의 터에 수십 수백의 가족들이 살 수 있으니까. 게다가 수십 수백의 재산이 되기도 했으니 쌀 한 줌을 튀겨 바구니 그득하게 채우는 뻥튀기와 다를 바 없다. 자동차들이 헤아릴 수 없이 늘었고 집집마다 가전제품들이 즐비하다 그 모든 동력은 인간의 기술이 충당한다. 인간이 위험만 감수한다면 문명화라 이름 붙여진 놀라운 편의는 오래도록 지속될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행복한가?

산하와 정서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며 아주 오랜만에 살아있는 색들이 넘쳐나는 풍경을 본다. 나무들과 새들과 밤하늘과 나비들, 그리고 그 사이에 풍경처럼 같이 스며든 사람의 자리를 본다. 세상의 것들과 세상을 떠난 것들까지 품어 안는 사람의 마음을 본다. 그리고 돈 귀신이 붙어 귀신보다 더 악랄해진 사람의 욕심을 본다.

그러다 현재를 사는 우리가 미래세대에게 무엇을 남겨줄 수 있을까를 생각 한다.

발전이라는 말이 숨긴 날카로운 발톱을 보지 못하게 하는 돈 귀신의 교묘함을 생각한다
18층 지옥보다 나을 게 하나도 없는 현재를 위장하는 말. 발전.개발. 성공.

누구나의 기억 속에 있을 잎새 무성한 나무 한 그루는 누가 베었을까?
세상에 지쳐, 슬픔에 겨워, 숨이 막혀 휘청이다 널부러지듯 주저 않게 되는 나무 그늘. 튼실한 기둥에 등을 기대고 잠깐 졸고 나면 가슴이 후련해지고 무릎에 힘이 들어가게 하는 나무 그늘. 그런 그늘이 있는 나무.


작품 속의 모든 것들이,초록과 노랑과 빨강과 파랑과 검정과 회색이 거짓 없이 제 색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순박하게 묻는다. ‘같이 살면 어때?’ 라고 말이다.

우리의 여름을 기억해줘. 라고..

너의 여름을 잊지 말아줘 라고..

순한 눈의 정서와 호기심 그득한 산하의 목소리가 묻는다.

같이 살면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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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과 닭 -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소설집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지음, 배수아 옮김 / 봄날의책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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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리시 리스펙토르. 배수아 옮김.
‘나에 관한 너의 이야기‘의 기억과 교차하며 읽는다.
역자에 대한 생각이 길어진다.
샤데크 헤다야트와 페소아.제발트의 번역에서 보였던 배수아의 역량이 집약된 느낌?
리스펙토르의 책이 좀 더 번역되면 좋겠다.
별의 시간(Hour of the Star)은 정말 읽어보고 싶은데..
호불호가 명확할 작가.
언어쓰레기로서 자괴감이 든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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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과 닭 -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소설집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지음, 배수아 옮김 / 봄날의책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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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사랑이 삶을 풍요롭게 해주리라는 믿음을 갖고, 자발적으로 사랑에 뛰어드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이다. 사랑은 궁극의 가난이다. 사랑은 갖지못함이다. 게다가 사랑은, 사랑이라고 여겨오던 것에 대한 환멸 이다. 사랑은 상이 아니다. 그래서 사랑은 자만하게 만들지 않는다. 사랑은 상이 아니다. 사랑은, 그것이 없다면 개인적 고통으로달걀을 상하게 만들어버릴 자들에게만 허용되는 하나의 조건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랑이 영예로운 예외는 아니다. 

 단지 내가 나쁘기 때문에 선할 것이라고 상상하는 한, 나는 영영 아무것도 사랑하지 못하리라. 그건 그냥 내 방식으로 스스로를 고발하는 행위일 뿐이다. 나, 최소한 자기 자신도 철저히 탐색하지 못했으면서내 반대편을 사랑하겠다고 이미 선택을 마쳐버린 나는, 그 반대편을 신이라고 부르기를 원한다. 나, 자신에게 절대로 익숙해지지 못할 나는, 세계가 나를 분개하게 할 일이 없기를 희망했다. 나는, 나 자신에게만 굴복했으므로, 나는 나 자신보다 훨씬 더 가차없으므로, 그래서 나보다 덜 과격한 대지로 스스로를 상쇄하기를소망했다. 자기 자신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신을 사랑하는 한, 나는 주사위가 될 것이고, 더 위대한 삶의 게임은 일어나지않는다.  내가 신을 발명해내는 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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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시간 여행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고상숙 옮김 / 북레시피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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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오츠가 읽히는 작품.
오츠라는 건 너무 분명한데 낯선 구석이 있다.
화장법을 바꾸고 나타난 연인 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오츠!‘ 다

그래도, 그가 존재하는 곳에 같이 있기만 해도 행복하고 충만했다. 나는 그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 나와 함께 살고 있다는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심리학에서는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이 본인의 질환에 대해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병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육체적으로 아픈 사람도 본인의 질환에 대해 이해하지만 병은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울프만과 사랑에 빠졌는데 만약 울프만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다면 얼마나 가슴 아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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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날들이 쌓여 오늘 이 모양이 된 거니까요. 사람이 사람이 되고 삼이 삼이 되려면 특별함이라곤 전혀 없는 하루하루가 필요한 법입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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