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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방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12월
평점 :
매일 아침 출근길에 가산 디지털단지과 구로역을 지나쳐 간다. 가산 디지털단지역은 옛 가리봉역이다. 지금은 역이름도 바뀌고 역 근처에 높은 고층 빌딩들이 많이 들어서서 그 옛날 공단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각종 현대식 건물과 백화점, 훼밀리 레스토랑이 있고 패스트푸드점과 커피몰 등도 많다. 공장다니는 근로자들보다는 사무실에서 정장입고 일하는 화이트컬러들이 늘었다. 사람들도 엄청 많고 근처에 쇼핑센터도 크게 들어서서 어느 역 주변보다 활기가 있다. 아침 저녁 출퇴근하는 사람들로 붐비고 늘 복잡하다. 이것이 현대의 가리봉동(현재 가산동), 구로동 주변의 모습이다. 뒷골목 쪽으로 들어가면 아직도 옛모습이 남아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몇년사이에 엄청 달라지고 발전했다.
삼십여년 전 이곳 어디메쯤 살았을 신경숙 씨를 떠올려본다. 시골에서 외사촌 언니와 함께 상경하여 큰오빠의 살림을 맡아 하며, 서른일곱개의 방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곳 어느 한방에서 살았다 했다. 그곳이 바로 신경숙씨가 말하는 외딴방이다. 그곳은 그녀가 열여섯살부터 삼년동안 낮에는 구로공단에서 일하고 밤엔 산업체특별학급에서 공부하며 살았던 방이다. 유신말기 사회적 격동 상황과 더불어 그녀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보낸 곳이다. 그 방 속에는 시대적 아픔과 더불어 그녀의 아팠던 시절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스무살 남짓의 큰오빠는 동생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돈을 벌어야 했고, 외사촌 언니와 어려움 살림을 꾸려가야 했으며 주위의 무시하는 눈길과 공순이 소리를 들으며 공부를 해야했다.사회적으로는 유신의 종말과 쿠테타가 이어졌고, 광주학생 운동과 삼청교육대 사건 등 굵직한 사건들이 지나갔다. 또 회사측의 갖은 부조리와 착취가 이어졌지만 공부에 대한 열망과 작가가 되고자 하는 꿈은 그녀의 삶을 지탱하게 하는 힘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어려움을 나누고 함께하던 희재 언니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죽음으로 얼룩진 과거는 어떤 어려운 상황보다 더 그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었고, 그녀는 고통 속에 외딴방을 도망치듯 떠났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그 외딴방 속에 갇혔다. 아니 그녀 스스로 그 속에 묻혔다.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마음의 고통에서 화해하지 못하고 그 시절 그녀는 그렇게 모든 것을 마음 속에 묻었다. 열다섯에서 바로 스무살이 되었다 했다.
이 책은 픽션과 사실의 중간쯤인 그녀의 자전적 이야기란다. 소설가로 유명해진 어느날 옛친구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그때 어려운 시절을 같이 보냈던 친구였다. "넌 우리 얘기는 쓰지 않았더구나., 혹시 네게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아니니?"라고 물어왔다. 신경숙은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많이 쓰는 것 같더라. 어린 시절 이야기, 대학 시절 이야기... 하지만 유독 십대 후반의 이야긴 없었다. 그 시절 외딴방 속에 마음을 닫아버렸기 때문인 것 같다. 그만큼 그녀는 아팠던 것이리라. 단지 그 시절 어려운 현실이 부끄러워서는 아니었을 꺼다. 그녀는 그 과거의 아픔과 마주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과거 열여섯살의 그녀와 대화한다. 그 상처와 아픔을 종이 위에 다시 배어내게 하기 위해 또 다시 아팠을 그녀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렸다.
내가 진실해질 수 있는 때는 내 기억을 들여다보고 있는 때도 남의 사진들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도 아니었어. 그런 것들은 공허했어. 이렇게 엎드려 뭐라고뭐라고 적어보고 있을 때만 나는 나를 알겠었어. 나는 글쓰기로 언니에게 도달해보려고 해. <p.197>
물질적으로 그다지 부족한 것을 모르고 살았고, 유신말기 시대적 격변기도 사실 잘 모르고 지나왔다. 또 가난 때문에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던 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못했던 적도 없었고 소중한 사람을 마음아프게 잃었던 적도 없었던 난 그 어려움과 아픔을 진정으로 알지 못한다. 이 책을 보며 현재 서른세살의 신경숙 자신이 과거의 열여섯 신경숙을 마주하며 자신의 손으로 문을 잠갔던 그래서 더욱 상처가 되었던 그 외딴방의 문을 열고 서서히 닫힌 마음을 화해해 가는 이 책의 기록들은 애처로울 만큼 연민이 느껴졌다.
지금 이 글에 마침표를 찍으려다 보니 나를 쳐다보고 있었던 사람은 나였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나 자신에게 서먹서먹하게 얘기를 시키고 있었다는 생각. <p388>
그녀를 동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지금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다. 그 아픈 성장통을 이겨내고 현재 그녀가 어린시절부터 열망하던 꿈-소설가가 되는것을 이루었으며, 그녀의 아픔은 만인들에게 읽혀 새롭게 승화되었다. 그녀가 글쓰기에 마음을 매고 있는 것이 그것으로만이 그녀라는 존재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소외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과거의 아픔을 딛고 일어섰기에 현재의 그녀가 있으며, 그녀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아니라 그녀의 아픔 과거가 있었기에 현재의 그녀가 더 빛이 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