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난 다섯 남녀가 유럽에 갔다
배재문 지음 / 라이카미(부즈펌)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여행을 정말 좋아한다. 내 삶에 있어 꿈이 있다면 세계를 두루두루 돌아다녀 보는거다. 그러면서 여행 기록을 하나씩 남겨보는 것도 좋겠다. 그 기록들을 모아서 책을 내는거다.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잘 팔리면 그 돈으로 또 세계를 돌아다니는거다. ㅎㅎ 참 꿈도 야무지다. 이런 에세이를 읽고나면 몸서리치게 부럽고 떠나고 싶어진다. 물론 여행을 다니기엔 돈도 없고 시간도 없고 마음의 여유도 없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사소한 핑계에 불과하고 정작 내게 필요한 것은 용기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게 떠날 수 있는 용기가 솔직히 부러운 거다.

여행을 하는데 있어 무슨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겠느냐 마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며칠 또는 몆주일 간의 짧고 벅찬 일정으로 휙 돌아오는 여행이라기보다 몇달 정도 여유를 두고 한곳에 오래 머무르면서 그곳의 정취와 문화를 직접 내몸에 흡수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은거다. 하지만 그것은 회사에 묶여 있는 나같은 직장인들에겐 정말 꿈같은 이야기다. 막말로 직장을 그만두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거다. 실제로 주위 친구들 중에 직장을 그만두고 베낭하나 메고 그렇게 훌쩍 떠난 친구들도 있다. 지금은 그네들을 그저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기만 하지만 나도 언젠가 그렇게 떠날 수 있는 날이 올 것을 믿는다. ^^

모르는 다섯남녀가 자동차 유럽여행을 떠나다...여행은 이렇게 갈 수도 있겠구나 라고 새삼 생각했다. 늘 바쁘다는 친구들끼리 일정 맞추고 시간맞추다가 정작 계획만 세워놓고 틀어진 여행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래서 난 예전부터 줄곧 엄마와 함께 많이 다녔다. 엄마 또한 여행을 좋아하시고, 엄마와 같이 다니면 오히려 내가 더 편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B군은 유럽 여행을 생각하고 같이 갈 멤버를 인터넷 동호회 같은 데를 통해 구한 것이었다.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렇게 다섯남녀가 모인 것이다.

2007년 겨울 얼굴도 서로 모르는 이들이 공항에서도 어렵게 만나고 또 일부는 유럽 현지에서 한명씩 합류하면서 자동차를 랜트해서 여행을 한다. 자동차 여행을 하면 짐을 들고다니는 수고도 덜고 여러모로 이로운 점이 많단다. 물론 장단점은 있다. 37일동안 프랑스에서 시작하여 스페인, 이탈리아, 스위스,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를 도는 일정이었다. 접촉사고를 내고 여권을 잃어버리고 가방을 도난 당하는 등 많은 수난(?)을 겪었지만 그들은 여행을 통해 서로 우정을 쌓고 하나하나 좋은 추억을 만들어간다.

그들의 만남에서부터 사소한 다툼까지도 모두 자세히 이야기하고 있어서 내가 그들 멤버 속에 끼어 있는 것처럼 실감났다. 그래서 비교적 글이 많고 정작 글 속에 표현되어 있는 사진은 너무 작게 보여준 점들이 조금 아쉬운 부분이긴 했지만 재미있었다. 그들이 다닌 코스와 일부 여행지는 나의 지난 기억과 겹쳐져 그때의 즐거웠던 일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특히 프랑스의 에펠탑 이야기와 피렌체 두오모의 코폴라 이야기는 나또한 같은 경험을 했었기에 더욱 인상깊었다. 그리고 부러웠던 일정은 스위스에서의 스키와 주인공 B군이 일행과 따로 떨어져 돌아본 코모' 그리고 그들이 달렸던 아름다운 해변 니스'다.

그들은 겨울에 여행을 떠났지만 난 그들과 같은 해 여름 이주일 일정으로 그곳을 돌고왔다.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스위스는 그들의 여정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 그들은 추위에 떨었지만 난 정말 뜨거운 태양아래 내 살이 이글이글 타는 더위 속을 헤매고 다녔다. 특히 로마에서 40도 가까이 올라가는 기온 속에 그 넓은 곳곳을 두발로 걸어서 돌아다녔던 말그대로 '개고생'은 잊을 수 없다. 이주일의 짧은 일정과 성수기 시즌으로 인한 붐비는 관광객 그리고 타는 듯한 더위였지만 내 생애 처음으로 밟은 유럽땅이라 아직도 그때의 여운을 잊을 수 없다. 너무 짧은 일정이라 아쉬운 마음 뿐이다. 다음에 내가 유럽땅을 밟는다면 이주일보다는 조금 여유 있는 일정으로 또 그들과 같은 자동차로 한번 달려보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난 다시 강렬한 여행의 유혹에 빠졌다. 그래서 나의 여름 휴가계획을 생각했다. 이번에는 오래간만에 동남아로 가볼 생각이다. 눈부신 태양과 아름다운 해변 특히 열대과일의 향기가 그립다.

아 ~ 여행이란 것, 생각만으로도 설레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도 이메일을 자주 쓰던 때가 있었다. 매일 보는 가까운 친구들과도 이메일로 이야기를 주고 받았고, 온라인 상으로만 사귀는 이메일 친구들도 생겼다. 재미있는 일도 있었다. 우연히 알게 된 이메일 친구가 같은 학교 선배였다. 나보다 한살 위의 선배였는데, 법대생이었다. 같은 학교 선배라 만나려고 하면 얼마든지 쉽게 얼굴을 볼 수 있는 사이였지만 그냥 오랫동안 메일로만 서로 연락을 주고 받았다. 중앙도서관 피씨실에서 한참 이메일을 쓰고 나면 바로 답장이 왔다. 지금 수업끝나고 중앙도서관 피씨실에 와서 답장을 쓰고 있단다.  한 공간에서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이메일을 주고 받는다는 것에 웬지 가슴 두근거리는 쓰릴이 느껴졌다. 주위를 돌아봤다. 과연 나에게 이멜을 쓰는 선배는 누구일까? 설마 내 옆사람은 아니겠지? 그러면서 난 허둥지둥 피씨실을 빠져나왔다. 

이 책을 읽고나니 갑자기 오래 전 즐거운 일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이 책은 특이하게도 처음부터 끝까지 두 남녀가 주고받는 이메일로만 구성되어 있다. 자칫 지루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나의 기대는 책장을 넘기기 시작한 순간부터 깨졌다. 책을 덮기 싫을 정도로 너무 재미있었다. 웹디자이너인 에미 로트너라는 여자와 언어 심리학 교수인 레오 라이케라는 남자가 이 책의 주인공이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도 모른다. 나이도 모른다. 만난적도 없다. 서로의 개인적인 신상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들이 모르는 것은 독자도 모른다. 하지만 1년간에 걸쳐 매일 대화를 나누 듯 이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어느 덧 친구가 된다.

이메일을 주고받게 된 계기는 에미가 잡지구독 취소 이메일을 철자법이 틀린 실수로 레오에게 잘못 보내면서 시작된다. 몇번을 보내도 취소처리가 되지 않자 에미는 다소 공격적인 이메일을 보내게 되고, 잘못된 이메일을 자꾸 받게되는 레오는 '제가 대신 구독을 취소해드릴까요?'라는 답메일을 보내며 그 둘사이의 우연한 인연의 시작된다. 그들의 메일로 하는 데이트는 묘하면서도 유쾌했다. 컴퓨터 앞에서 서로 와인을 나눠마시기도 하고, 굿나잇 키스를 나누기도 한다. 그들의 감정은 점점 고조되고 서로에 대한 궁금함에 만남도 약속해 보지만 온라인 상의 이상이 실제 현실에서 깨질까 두려운 마음에  쉽게 이루어지지 못한다.

결국 그들은 한번 만나기로 약속을 정하는데, 직접 만나는 것이아니라 사람이 붐비는 카페에 각자가 그냥 가보기로 한다. 후에 이메일로 거기서 봤던 남자(여자)들의 인상착의와 그들이 상상하는 상대의 모습을 이야기는 장면은 정말 재미있었다. 또 서로의 목소리가 궁금해져서 그들은 각자가 쓴 이메일을 소리내어 읽고 상대의 자동응답기에 목소리를 남기로 한다. 직접적인 만남이나 통화가 아닌 그들의 데이트는 기묘하지만 즐거웠다.

사실 에미는 한 남편의 아내고 두 아이의 엄마다. 그리고 레오는 얼마전 헤어진 여자친구와 다시 관계를 회복하려 애쓰는 중이다. 서로가 깊게 빠지게 되면 안돼는 이유가 있다. 하지만 매일 주고 받는 메일 데이트 속에서 그들은 서로 그리워하게 되고 애틋한 감정이 생기게 된다. 온라인 상의 사랑과 현실 사이에서 괴로와한다. 그들의 사랑이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이 주고 받는 메일은 나의 마음까지 설레게 했고 안타까운 현실에 가슴이 아프기까지 했다.

현실과 가상현실(온라인) 사이에서의 갈등..그리고 사이버 공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관계 같은 것은 인터넷 강국이라는 우리나라 젊은이들이라면 공감되고 한번쯤 경험해 봄직한 이야기다. 가볍고 재미있게 읽었지만 아주 긴~ 여운이 남았던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캐비닛 -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3호 캐비닛'에 대해 굉장한 상상을 할 필요는 없다.
혹시라도 이 책을 끝까지 읽어볼 생각이라면
'13호 캐비닛'에 대해 우아하고 낭만적인 상상을 떠올리는 짓은 
일찌감치 집어치우기를 권한다.
그런 상상을 한다면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하를 보게 될 것이다.<p.6>


이 책은 작가의 이런 문구로 시작한다. 도입을 얼럴뚱땅 넘겨 읽고 이 말뜻을 책을 다 읽고나서 깨닫다니 마치 갑자기 뒤통수를 맞아 멍한 기분이 든다. 작가는 이 문구를 시작으로 쌩뚱맞게도 상피에르섬의 어처구니 없는 거짓말쟁이 루저 실리바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마치 앞으로 할 자신의 이야기는 사실만 있다는 것처럼 착각하게...진짜 기가막힐 정도의 구라쟁이는 바로 작가 김언수씨였다. '귀싸대기 맞을 각오는 되어 있다.'라는 작가의 소감에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나온다.

세상엔 별의 별일이 참 많다. '세상은 요지경'이란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가끔 해외 토픽이나 믿거나말거나 같은 데에 오르내리는 이야기들을 보면 과학이나 상식으로 도저히 설명이 안돼는 불가사의한 일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런 현상들에 대해 평소에 제법 관심있게 지켜본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과연 이런일이 가능한 걸까?'라는 많은 의심을 가지면서도 나름 진지하게 생각했다.  새끼 손가락에서 은행나무가 자라는 사람, 혀 안에 도마뱀을 키우는 사람, 휘발유나 유리 철근을 먹는 사람, 고양이로 변신하고 싶어하는 사람,  남녀 생식기가 모두 붙어 있어 자가 임신을 할 수 있는 사람 등등이 소개된다. 그들을 '심토머(symptomer)라 부른단다. 현재의 인간과 새로 태어날 미래 인간 사이, 즉 종의 중간지에 이르는 사람들이란다.

심토머라.. 매우 그럴싸하게 포장도 했다. 게다가 토포러'라든가 메모리모자이커, 타임스키퍼 등 제법 전문적으로 보이는 용어들을 늘어놨다. 이 책에 등장하는 중요한 소재 '캐비닛 13호'속엔 바로 이런 심토머들의 데이타들이 정리되어 있다. 각각의 심토머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어떨 땐 웃기도 하고 섬뜩하기도 하며 또 슬픔과 연민이 느껴지기도 했다. 다소 엽기적(?)이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그들은 인간이지만 인간으로서 대접받지 못하고 현대사회에서 점점 소외되어가는 삶을 살아간다.

모든 인간이 물건과 닮아 간다는 피노키오의 이야기나 인간에서서 감정을 느낄 수 없어서 고양이가 되고 싶어하는 남자의 이야기들에서는 마치 현대의 단절된 인간관계의 모습에 연민을 가지면서 동시에 시니컬하게 비판하는 것 같았다. 또한 심토머들뿐만 아니라 표준이라 일컬어지는 평범하게 보이는 사람들조차 사회와 단절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남녀가 그렇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애인과 헤어지고 십년동안 키운 개가 죽는 등 한꺼번에 닥친 불행을 견디지 못하고 백칠십팔일동안 집안에 틀어박혀 맥주만 마시고 살았다는 남자와 뚱뚱한 몸에 남들에게 무시당하는 삶을 살면서 이십오만원이나 되는 특대 초밥을 목구멍에서 넘어올때까지 밀어넣은 여자...그들 또한 스스로 평범하기를 거부하는 심토머가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물론 이 책속에 나오는 심토머들의 이야기는 작가가 모두 꾸며낸 이야기란다. 하지만 뻥이야기라고 단순히 웃어넘기기엔 껄끄러운 뭔가가 남았다. 그들은 각박해져가는 사회와 단절된 인간관계 속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또다른 도플갱어'들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리 마음 속에 꿈꾸는 기발한 상상같은 것들 말이다. 모든 생물들은 초기 발생 단계에서부터 서서히 진화해 왔는데, 인간도 변화하는 현실에 맞춰 적응하고 변이해 간다는 이야기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알 수 없는 앞으로의 미래에서는 인간도 변종된 돌연변이체가 생기지 않으리라는 장담을 어떻게 하느냔 말이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토포러나 타임스킵 메모리모자이커 같은 이야기였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과거를 뛰어넘는다거나 불행한 과거를 새로 재창조한다던가..ㅎㅎ 물론 의학적으로 이야기하면 일종의 정신병증이겠지만...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과 입담에 비교적 재밌게 읽었지만 뒷맛의 씁쓸함과 엽기적'이다라는 느낌은 어쩔 수 없다. 작가의 도입말 처럼 우아하다거나 낭만적인 감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라면 일찌감치 이 책을 읽지 말 것을 권유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성의 아이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북스피어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몇년 전 <십이국기>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소설 속의 독특한 세계관과 사상에 매혹되어 한동안 십이국기의 후유증에 깊게 빠졌었다. 현재 국내에 11권의 소설이 나왔고 아직 완결이 안된 내용이라 하루빨리 소설의 끝을 보고 싶지만 당분간은 무리한 기대가 아닐까 싶다. <십이국기>를 통해 <마성의 아이>란 책을 알게됐다. 작가 오노 후유미씨가 십이국기를 구상하기 전에 이미 <마성의 아이>란 작품을 완결하였다. 십이국기 중 3,4 권에 이르는 내용 일부가 <마성의 아이>란 소설을 토대로 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싶어서 여러 방면으로 알아보았지만 그당시엔 이미 절판되었더라.. 그런데 최근에 다시 이 책이 재출간되었다. 반가운 마음에 바로 구입하여 읽었다. 

<십이국기>는 12국가에 12왕, 그리고 12기린, 봉산, 요마 등이 나오는 독특한 세계관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방대한 스케일은 아직도 끝이 안났다. 12국가에 이르는 일들과 그에 따른 각각의 어마어마한 에피소드들은 '어떻게 저런 이야기를 구상할 수 있을까'라고 절로 감탄이 나올 정도로 재미있다. <십이국기>라는 소설을 먼저 모두 읽었기 때문에 <마성의 아이>란 책을 무리없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독특한 세계관의 배경을 이미 다 파악하고 난 후라 처음부터 어렴풋이 결론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성의 아이>란 책을 결코 싱겁게 읽은 것은 아니다. 호러와 쓰릴 그리고 판타지를 적절하게 혼합한 내용은 이 더운 여름날의 늘어지는 시간을 긴장과 흥미로 금새 지나기게 만들었다.

<마성의 아이>에 나오는 주인공 고등학생 다카사토는 어릴 때 가미카쿠시(어린아이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지는 현상)의 경험이 있다. 1년만에 다시 되돌아왔지만 1년동안의 기억은 전혀 갖고 있지 않다. 다카사토는 말이 없고 모범생인 소년이지만 무표정한 얼굴의 남들의 시선을 끄는 기묘한 느낌을 가진 소년이다. 그는 늘 혼자였는데, 주위 친구들은 그를 무시하여 왕따를 시킨다기보다 '재앙을 가져온다'며 두려워하며 경계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다카사토에게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드는 일을 한 경우의 사람들이 모두 다치거나 죽었기 때문이다. 누구도 그에게 쉽게 접근하지 못했고, 다카사토에게 좋은 의도로 충고를 하는 사람들 조차 하나씩 죽어나갔다. 다카사토의 가족들도 그를 외면하기 시작했고, 학교에서도 그를 거부했다. 이때 그를 이해하고 마음으로 신경써주는 히로세라는 교생이 있었다. 히로세는 다카사토를 보호하며 여러가지 기묘한 사건들의 전말을 파헤쳐 간다.

사실 예전에는 추리소설류는 즐겨 읽었었지만 판타지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책이든 영화든 현실과 어느정도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감동도 받고 깨닮음도 얻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판타지는 말그대로 현실과 동떨어진 '뻥이야기'이며 굉장히 유치한 것이라 여겼었다.  그땐 정말 판타지의 진정한 매력을 몰랐었을 때였다. 그리고 나의 정서가 그만큼 메말랐었으며, 나의 상상력이 부족했었던 것임을 느낀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갑갑함을 느낄 때, 그리고 뭔가 독특한 체험을 느끼고 싶을 때 판타지만큼 좋은 탈출구는 없다. 단순한 상상이야기를 넘어 그 속에도 독특한 철학과 깨닫는 메세지가 있다. 그래서 요즘은 나름 판타지류도 즐기고 있다. 그래서 그토록 경멸하던 애니메이션에도 빠져 있다. ㅎㅎ

<마성의 아이>와 <십이국기>..어떻게 보면 두 소설이 서로 연결된 듯이 보이지만 조금 다르다. <십이국기>가 저쪽세계의 이야기라면 <마성의 아이>는 이쪽 현실세계의 이야기다. <마성의 이야기>와 <십이국기> 두 소설 중 어떤 것을 읽어도 상관이 없을 것 같다. <십이국기>가 좀더 판타지하고 <마성의 아이>는 조금 호러 이야기에 가깝긴 하지만.. 여기 쓰여진 내용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간다면 두 소설 모두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무더운 여름날 더위에 지친다면 이런류의 소설로 기분전환이 되지 않을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외딴방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매일 아침 출근길에 가산 디지털단지과 구로역을 지나쳐 간다. 가산 디지털단지역은 옛 가리봉역이다. 지금은 역이름도 바뀌고 역 근처에 높은 고층 빌딩들이 많이 들어서서 그 옛날 공단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각종 현대식 건물과 백화점, 훼밀리 레스토랑이 있고 패스트푸드점과 커피몰 등도 많다. 공장다니는 근로자들보다는 사무실에서 정장입고 일하는 화이트컬러들이 늘었다. 사람들도 엄청 많고 근처에 쇼핑센터도 크게 들어서서 어느 역 주변보다 활기가 있다. 아침 저녁 출퇴근하는 사람들로 붐비고 늘 복잡하다. 이것이 현대의 가리봉동(현재 가산동), 구로동 주변의 모습이다. 뒷골목 쪽으로 들어가면 아직도 옛모습이 남아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몇년사이에 엄청 달라지고 발전했다.

삼십여년 전 이곳 어디메쯤 살았을 신경숙 씨를 떠올려본다. 시골에서 외사촌 언니와 함께 상경하여 큰오빠의 살림을 맡아 하며, 서른일곱개의 방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곳 어느 한방에서 살았다 했다. 그곳이 바로 신경숙씨가 말하는 외딴방이다. 그곳은 그녀가 열여섯살부터 삼년동안 낮에는 구로공단에서 일하고 밤엔 산업체특별학급에서 공부하며 살았던 방이다. 유신말기 사회적 격동 상황과 더불어 그녀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보낸 곳이다. 그 방 속에는 시대적 아픔과 더불어 그녀의 아팠던 시절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스무살 남짓의 큰오빠는 동생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돈을 벌어야 했고, 외사촌 언니와 어려움 살림을 꾸려가야 했으며 주위의 무시하는 눈길과 공순이 소리를 들으며 공부를 해야했다.사회적으로는 유신의 종말과 쿠테타가 이어졌고, 광주학생 운동과 삼청교육대 사건 등 굵직한 사건들이 지나갔다. 또 회사측의 갖은 부조리와 착취가 이어졌지만  공부에 대한 열망과 작가가 되고자 하는 꿈은 그녀의 삶을 지탱하게 하는 힘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어려움을 나누고 함께하던 희재 언니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죽음으로 얼룩진 과거는 어떤 어려운 상황보다 더 그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었고, 그녀는 고통 속에 외딴방을 도망치듯 떠났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그 외딴방 속에 갇혔다. 아니 그녀 스스로 그 속에 묻혔다.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마음의 고통에서 화해하지 못하고 그 시절 그녀는 그렇게 모든 것을 마음 속에 묻었다. 열다섯에서 바로 스무살이 되었다 했다.  

이 책은 픽션과 사실의 중간쯤인 그녀의 자전적 이야기란다. 소설가로 유명해진 어느날 옛친구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그때 어려운 시절을 같이 보냈던 친구였다. "넌 우리 얘기는 쓰지 않았더구나., 혹시 네게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아니니?"라고 물어왔다. 신경숙은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많이 쓰는 것 같더라. 어린 시절 이야기, 대학 시절 이야기... 하지만 유독 십대 후반의 이야긴 없었다. 그 시절 외딴방 속에 마음을 닫아버렸기 때문인 것 같다. 그만큼 그녀는 아팠던 것이리라. 단지 그 시절 어려운 현실이 부끄러워서는 아니었을 꺼다. 그녀는 그 과거의 아픔과 마주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과거 열여섯살의 그녀와 대화한다. 그 상처와 아픔을 종이 위에 다시 배어내게 하기 위해 또 다시 아팠을 그녀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렸다.

내가 진실해질 수 있는 때는 내 기억을 들여다보고 있는 때도 남의 사진들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도 아니었어. 그런 것들은 공허했어. 이렇게 엎드려 뭐라고뭐라고 적어보고 있을 때만 나는 나를 알겠었어. 나는 글쓰기로 언니에게 도달해보려고 해. <p.197>

물질적으로 그다지 부족한 것을 모르고 살았고, 유신말기 시대적 격변기도 사실 잘 모르고 지나왔다. 또 가난 때문에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던 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못했던 적도 없었고 소중한 사람을 마음아프게 잃었던 적도 없었던 난 그 어려움과 아픔을 진정으로 알지 못한다. 이 책을 보며 현재 서른세살의 신경숙 자신이 과거의 열여섯 신경숙을 마주하며 자신의 손으로 문을 잠갔던 그래서 더욱 상처가 되었던 그 외딴방의 문을 열고 서서히 닫힌 마음을 화해해 가는 이 책의 기록들은 애처로울 만큼 연민이 느껴졌다.

지금 이 글에 마침표를 찍으려다 보니 나를 쳐다보고 있었던 사람은 나였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나 자신에게 서먹서먹하게 얘기를 시키고 있었다는 생각. <p388> 

그녀를 동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지금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다. 그 아픈 성장통을 이겨내고 현재 그녀가 어린시절부터 열망하던 꿈-소설가가 되는것을 이루었으며, 그녀의 아픔은 만인들에게 읽혀 새롭게 승화되었다. 그녀가 글쓰기에 마음을 매고 있는 것이 그것으로만이 그녀라는 존재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소외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과거의 아픔을 딛고 일어섰기에 현재의 그녀가 있으며, 그녀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아니라 그녀의 아픔 과거가 있었기에 현재의 그녀가 더 빛이 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