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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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메일을 자주 쓰던 때가 있었다. 매일 보는 가까운 친구들과도 이메일로 이야기를 주고 받았고, 온라인 상으로만 사귀는 이메일 친구들도 생겼다. 재미있는 일도 있었다. 우연히 알게 된 이메일 친구가 같은 학교 선배였다. 나보다 한살 위의 선배였는데, 법대생이었다. 같은 학교 선배라 만나려고 하면 얼마든지 쉽게 얼굴을 볼 수 있는 사이였지만 그냥 오랫동안 메일로만 서로 연락을 주고 받았다. 중앙도서관 피씨실에서 한참 이메일을 쓰고 나면 바로 답장이 왔다. 지금 수업끝나고 중앙도서관 피씨실에 와서 답장을 쓰고 있단다.  한 공간에서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이메일을 주고 받는다는 것에 웬지 가슴 두근거리는 쓰릴이 느껴졌다. 주위를 돌아봤다. 과연 나에게 이멜을 쓰는 선배는 누구일까? 설마 내 옆사람은 아니겠지? 그러면서 난 허둥지둥 피씨실을 빠져나왔다. 

이 책을 읽고나니 갑자기 오래 전 즐거운 일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이 책은 특이하게도 처음부터 끝까지 두 남녀가 주고받는 이메일로만 구성되어 있다. 자칫 지루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나의 기대는 책장을 넘기기 시작한 순간부터 깨졌다. 책을 덮기 싫을 정도로 너무 재미있었다. 웹디자이너인 에미 로트너라는 여자와 언어 심리학 교수인 레오 라이케라는 남자가 이 책의 주인공이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도 모른다. 나이도 모른다. 만난적도 없다. 서로의 개인적인 신상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들이 모르는 것은 독자도 모른다. 하지만 1년간에 걸쳐 매일 대화를 나누 듯 이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어느 덧 친구가 된다.

이메일을 주고받게 된 계기는 에미가 잡지구독 취소 이메일을 철자법이 틀린 실수로 레오에게 잘못 보내면서 시작된다. 몇번을 보내도 취소처리가 되지 않자 에미는 다소 공격적인 이메일을 보내게 되고, 잘못된 이메일을 자꾸 받게되는 레오는 '제가 대신 구독을 취소해드릴까요?'라는 답메일을 보내며 그 둘사이의 우연한 인연의 시작된다. 그들의 메일로 하는 데이트는 묘하면서도 유쾌했다. 컴퓨터 앞에서 서로 와인을 나눠마시기도 하고, 굿나잇 키스를 나누기도 한다. 그들의 감정은 점점 고조되고 서로에 대한 궁금함에 만남도 약속해 보지만 온라인 상의 이상이 실제 현실에서 깨질까 두려운 마음에  쉽게 이루어지지 못한다.

결국 그들은 한번 만나기로 약속을 정하는데, 직접 만나는 것이아니라 사람이 붐비는 카페에 각자가 그냥 가보기로 한다. 후에 이메일로 거기서 봤던 남자(여자)들의 인상착의와 그들이 상상하는 상대의 모습을 이야기는 장면은 정말 재미있었다. 또 서로의 목소리가 궁금해져서 그들은 각자가 쓴 이메일을 소리내어 읽고 상대의 자동응답기에 목소리를 남기로 한다. 직접적인 만남이나 통화가 아닌 그들의 데이트는 기묘하지만 즐거웠다.

사실 에미는 한 남편의 아내고 두 아이의 엄마다. 그리고 레오는 얼마전 헤어진 여자친구와 다시 관계를 회복하려 애쓰는 중이다. 서로가 깊게 빠지게 되면 안돼는 이유가 있다. 하지만 매일 주고 받는 메일 데이트 속에서 그들은 서로 그리워하게 되고 애틋한 감정이 생기게 된다. 온라인 상의 사랑과 현실 사이에서 괴로와한다. 그들의 사랑이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이 주고 받는 메일은 나의 마음까지 설레게 했고 안타까운 현실에 가슴이 아프기까지 했다.

현실과 가상현실(온라인) 사이에서의 갈등..그리고 사이버 공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관계 같은 것은 인터넷 강국이라는 우리나라 젊은이들이라면 공감되고 한번쯤 경험해 봄직한 이야기다. 가볍고 재미있게 읽었지만 아주 긴~ 여운이 남았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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