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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써바이 써바이 - '온 더 로드'의 박준, 길 위의 또 다른 여행자를 만나다
박준 지음 / 웅진윙스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한 6년 전 캄보디아 씨엡립 공항에 들어서던 때가 기억난다.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할 때 쯤이면 어느 도시나 반짝이는 불빛 풍경으로 도착이 가까워옴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곧 씨엡립 공항에 도착한다는 방송이 나온지가 한참 전이었는데 밖은 여전히 어두컴컴했다. 게다가 웬지 질퍽한 물과 벌판의 느낌이 하늘 위에서도 느낄 수 있을 만큼 암담했다.(나중에 그것이 톤레삽호수라는 것을 알았지만) 캄보디아가 낙후된 나라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말 오지에 온것 같았다. 도착했다는 흥분과 기대 모든 것이 불안으로 바뀌었다. 내가 느낀 캄보디아라는 나라의 첫느낌은 바로 이런 것 이었다.
한나라의 국제선 공항이라는 것이 우리나라 어느 작은 지방도시의 버스 터미널과 같았다. 공항 관리국 사람들이 분주하게 왔다갔다 했지만 수십분이 지나도 뭔가 일이 진행되는 것 같지 않았다. 캄보디아 입국시 입국비자 같은 것을 발급받아야 했는데, 웃돈을 준 후에야 바로 입국할 수 있었다. 낙후된 나라도 나라지만 정부 관리원들의 부정부패가 굉장히 심했기 때문에 어디에서나 뇌물을 요구하는 경우는 흔하데 볼 수 있다고 한다. 더군다나 성질 급한 한국사람들에겐 효과적으로 그것이 통한다나? 어쩐다나...
베트남을 여행한 직후 잠시 들르는 차원에서 입국한 캄보디아였기에 내가 머문 시간은 고작 사흘 동안이었다. 그 사흘 동안 내가 캄보디아 라는 나라에 대해 뭘 느꼈다고 하기엔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또 거기에 사는 사람들이나 그들의 삶을 엿볼 여유도 없이 앙코르왓 같은 큰 유적지만 어떻게 더 많이 볼 수 있을까 해서 그곳에만 관심을 두고 돌아다녔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정작 다른 나라에 가서 보고 느꼈어야할 여러 가지 감정들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우연히 이 책을 보게 되었고 책속에 들어있는 여러 사람들의 삶을 통해 난 다시한번 어렴풋한 기억을 끄집어 떠올려 봤다.
이 책은 작가 박준님이 단순히 캄보디아 여행을 하고 난 후의 기록이 아니다. 여행에세이라기 보단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과 그곳에서 봉사하며 그들과 사랑을 나누며 사는 우리나라 몇몇 사람들의 생활을 소개한 책이다. 그곳에서 병자를 돌보는 우리나라 의사와 간호사,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 식사를 나누어 주는 남자, 자동차 정비 기술을 가르쳐주는 기술자 등 다양한 직종의 다양한 사람들이 그들과 함께 그 낙후된 나라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젊은 20대 초중반 아가씨에서부터 정년퇴직을 한 나이든 어르신들까지 모두 그곳에서 만족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행복하다고?? 난 처음에 그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도시생활에 익숙한 나로서는 우선 전기와 물이 안나오는 생활을 상상할 수도 없다. 게다가 밤에는 쥐와 도마뱀이 들끌고 소위 말하는 현대적 문화의 세계에서 동떨어진 생활을 하는 것은 도저히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이곳에서 캄보디아를 찾아 간 그들은 하나같이 모두 한국에서의 삶보다 캄보디아에서의 삶이 조금 더 만족스럽고 행복하다고 이야기한다. 모두 생기가 넘치고 여유로와 보였으며, 무엇보다 남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한다는 자체에 보람을 느끼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을 돕는다는 대단한 사명감 같은 것이 아니라 그들과 삶을 함께 하면서 그들로부터 진정한 마음을 나누고 자기 자신을 되찾아 간다고 했다. '내가 그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 그들로부터 내가 도움을 받는 것이다'라고 이야기 한다.
한국이나 기타 도시에서의 삶은 굉장이 팍팍하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너무 여유가 없다. 생각해야할 것들, 해야할 것들이 너무너무 많다. 돈도 벌어야 하고, 집도 사야하고, 차도 사야하며, 재태크 같은 것까지 생각해야한다. 그것이 제때 이루어지지 않으면 굉장히 불안하고 남들보다 뒤쳐졌다는 생각에 우울해진다. 회사에서 매일 쳇바퀴돌듯 고탈픈 일상에 시달려야하며, 그것도 모자라 야근에 주말마저도 내시간이 없을 때도 있다. 이렇게 아둥바둥 살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찹찹하면서도 우리는 쉽게 그 삶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아니 갑갑하다는 생각할 여유도 없이 우리는 당연한 듯 그런 삶에 익숙해져 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캄보디아에서의 삶은 좀 다르다. 그들은 가난하다. 좀더 잘 살아보자'라는 문제보다 더 급한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나라다. 하지만 그곳 사람들은 느긋하다. 냉장고가 없기 때문에 오늘먹을 음식만 생각하면 되고, 옷이 한벌밖에 없어도 상관하지 않으며, 모든 일에 급할 것이 없기 때문에 굉장히 느긋하다. 어쩌면 모든 것을 포기한 삶인 듯 싶지만 그 느긋함 속에 행복함이 있다.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서로 나눌 줄 알며, 늘 밝게 웃늘 그네들의 모습은 평화롭다. "써바이 써바이"는 행복하다라는 그네들의 인사말이다.
작가는 말한다. " 캄보디아에 왔더니 내 삶이 가벼워진다"라고.. 우리는 늘 잘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려 늘 그 수준에 못미치는 자신들의 삶을 불행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곳에 와보면 한국에 사는 것이 어렵다 해도 그 힘겨운 삶마저 감사하게 될 것이라고...
이곳에서 일하는 한국사람들이 행복하다는 것은 한국에서의 치열함 삶을 포기했다기보다 다만 '자기'라는 테두리가 조금 더 넉넉하고, 그만큼 여유롭게 사는 것이란다..
캄보디아 아이들의 해맑은 눈과 웃는 얼굴이 떠오른다. 그네들의 미소를 떠올리며, 나의 팍팍한 일상에 잠시나마 쉬어갈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겠다.(육체적이라기보다 정신적인 마음의 여유랄까.) 세계 한켠에는 가난으로 고통받는 많은 사람들이 있음을 알고 내 삶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겠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돕는 많은 사람들이 정말 존경스럽고 나또한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이라도 생각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