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 범우사상신서 14
제레미 리프킨 외 지음 / 범우사 / 199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엔트로피'란 열화학에서 물체가 열을 받아 변화했을 때 변화량을 말한다. 열역학 제 2법칙은 바로 이 엔트로피를 정의한 법칙으로 "에너지는 한 방향으로만 움직인다" 즉, 유용한 에너지에서 무용한 에너지로의 이동이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이다. 이 책의 저자 제이미 리프킨은 엔트로피야 말로 인류가 발견한 유일한 진리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열역학 제 2법칙을 적용시켜 "모든 물질과 에너지는 사용이 가능한 것에서 사용이 불가능한 것으로, 혹은 이용이 가능한 것에서 이용이 불가능한 것으로, 또는 질서 있는 것에서 무질서한 것으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역사는 진보한다"른 말은 터무니 없는 말이며, 현재 상태로 계속 나아가면 세계는 혼돈과 무질서로 변화해 간다는 것이다.

물리학 법칙으로 그의 세계관은 시작되었지만 이 책은 물리학 책도 아니고 과학 관련책도 아니다. 사회의 변화를 촉구하는 사회 경제학책에 더 가까울 것 같다. 결국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모든 문화는 반드시 엔트로피의 전환기에 반드시 직면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에너지 고갈문제와 여러가지 사회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현실에서 유한한 자원으로 어떻게 효과적으로 분배할 것인가 하는 배분의 문제와, 고엔트로피에서 저엔트로피로 향한 전환의 문제를 역설하고 있다. 결국 인류의 기계적인 세계관에서의 탈피를 촉구하고 있다.

우리 세계는 아직까지 17세기에 구축된 베이컨, 데카르트, 뉴턴, 에덤스미스 등이 이룩한 기계만능주의 세계관에 젖어 있다. 그들의 이론에 따르면 물질적 풍요가 곧 진보라는 생각이다. 이 진보를 이룩하기 위해서 과학이나 기술은 반드시 필요한 도구이며, 이것이 기계적 세계관의 주요한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지구상의 모든 것은 혼란되어 있으며 질서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자연법칙에 의해 재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기계적 세계관은 점차 활력을 잃고 있다. 왜?? 그것은 에너지 환경이 이제 종말에 가까워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진보'라는 이름 하에 다양한 분야에 놀라울만큼 발전하고 성과를 이룩했다고 생각한다. 그 진보에 따른 편리한 기계문명에 전보다 훨씬 나은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만족할런지 모른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우린 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일하고 전보다 훨씬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간다. 기계문명으로 편리해졌다면 옛날보다 일하는 시간도 훨씬 줄어야 하고 스트레스도 훨씬 덜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결국 엔트로피 측면에서 설명하면, 현대의 우리가 생각하는 '진보'는 착각일지도 모른다. 또한, 진보를 위해 환경을 파괴해왔고, 그 환경의 고갈이 거의 막바지까지 다가왔다. 지금에서야 환경 문제를 심각하게 걱정하고 환경 보호다 대체 에너지 개발이다 노력하고 있지만, 그 대체 에너지 개발이라는 것도 결국 다른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므로 이득의 효과면에서 본다면 거의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

세계는 점점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가속되고 있다. 즉, 유용한 자원에서 무용한 자원으로의 이동... 결국 어느 순간에는 자원 제로, 즉 종말이 가까워올지도 모른다. 이것이 저자가 우려하는 논점이다. 우리가 진보를 앞당길수록 엔트로피의 증가는 점점 빨라질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기계적인 세계관에서 탈피하고 사회 전반적인 구조와 생활 패턴도 바꾸어야 한다. 그러면서 과학, 교육, 종교에 대한 반성과 개선을 촉구한다.
.

.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우린 급속한 산업화과 기계문명의 발달로 편리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그 여파로 환경문제가 지금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계속 이용가능한 새로운 에너지원을 개발하고 있지만 우리가 사는 지구의 자원도 유한할 것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그것도 끝이 올날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열역학 법칙, 즉 하나의 물리학 법칙으로 사회, 종교, 문화 등 모든 것을 너무 쉽게 통합하여 일반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물론 저자의 말대로 사회 구조와 생활패턴의 어느 정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저엔트로피로의 변화가 과연 가능할까? 마치 지금 누리고 있는 문명을 모두 뒤돌아가잔 이야기인가?

에너지가 한 방향으로만 흐르듯이 시간도 되돌릴 수는 없다. 또한 우리가 한번 누려온 문명을 다시 거슬려 되돌리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단지 주위를 되돌아보고 한박자 쉬어가는 것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이 책이 주장하는 내용들이 쉽게 인식은 되지만 모든 것을 수긍하기에는 조금 껄끄러운 점이 많았다. 하지만 21세기의 새로운 문명을 엔트로피로 설명하는 저자의 세계관에 조금 색다른 느낌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질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4
알랭 로브그리예 지음, 박이문·박희원 옮김 / 민음사 / 200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렇게 숨이 막힐 정도로 감각적으로 팽팽한 긴장이 느껴지는 소설은 처음이다. 감각적이란 것과 팽팽한 긴장이라는 말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임을 안다. 하지만 나의 부족한 어휘력으로 적당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또한 이런 소설은 처음이라 경악스럽기까지 하다.(써놓고보니 '경악스럽다'라는 말도 뭔가 표현이 이상하고 부족한 듯 하다.) 하여간 적당한 단어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분이 이상하다.

이 소설에는 세명이 나온다. A라는 여자와 프랑크, 그리고 시중을 드는 보이...하지만 이외에 한명이 더 있다. 소설 속에는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고, 그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다. 단지 의자의 개수와 찻잔의 개수를 통해 추측해볼 수 있는 유령같은 존재...보이지 않는 그의 존재는 이책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 강렬하게 느낄 수 있었다. 어떨 땐 몸에 소름이 쫙 끼칠 정도로 그의 존재감은 강한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보이지 않는 그의 존재가 바로 이 소설의 매력이었다. A가 편지를 읽는 모습, 머리를 빗는 모습, 그리고 프랑크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 등 이 책속에 나오는 모든 장면은 그의 눈을 통한 것이다. 그들의 일거일동을 마치 멀리 떨어진 곳에 숨어서 그들의 행위를 감시하는 듯한 ....그 강한 긴장감이 이 소설의 축을 이루는 감정...바로 '질투'였다....

관찰자의 시선은 집요하다. A와 프랑크를 둘러싼 주위 배경을 하나하나 너무나 세밀하게 관찰하고 있다. 테이블과 의자의 위치 주변 모습 등 단순한 배경 묘사를 넘어 테라스의 각도 지붕의 모서리 그림자 지금 어떤 형태인지까지 설명한다. 마치 내가 그곳에 서서 눈으로 보고 있는 것보다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었고, 묘사의 선을 넘어 주위의 모든 것을 세밀하게 꿰뚫어보고 있는 것이었다. 관찰자의 강한 집착이 느껴졌다. 아니 집착을 넘어 자폐적일 정도로 강한 정신병적인 느낌까지 들었다. 덕분에 나 또한 주위의 세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단지 알 수 없었던 것은 관찰자가 굳이 표현할 필요가 없는 A와 프랑크의 얼굴 생김새 뿐이다.

소설은 모든 장면장면의 세밀한 관찰이다. 마치 사진으로 찍은 듯한 세밀한 주변 관찰은 고통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리고 그 내면엔 질투와 집착의 감정을 포함하고 있기에 꽤 불편했다. 그리고 여느 소설에서와 마찬가지로 어떤 이야기의 흐름을 기대했던 나의 마음을 그냥 뭉개버렸다. 이 책이 관찰자의 시선으로 모든 것을 세밀하게 추적하고 관찰해가면서 정작 중요한 책속 남녀의 생김새는 관찰자 말고는 알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충격이었다. 그렇다... 이책은 소설같지 않았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책속에 나오는 남녀가 아니라 바로 제 3의 공간...책 밖의 남자...바로 '그'였다는 것이다. '그'는 A의 남편이다. A와 프랑크와의 관계를 끊임없이 의심하며, 관찰하고 있는 것이다.  


직접 설명해주거나 표현해주어야 그나마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는 조금은 둔한 나인데, 책속에 단 한줄도 적혀있지 않는 질투의 감정이 이렇게 강력하게 느껴진다는 것이 충격이었며, 동시에 이 소설이 소름끼쳤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과학을 배반하는 과학 - 과학을 둘러싼 오해와 편견 100가지
에른스트 페터 피셔 지음, 전대호 옮김 / 해나무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난 과학을 좋아했고, 과학을 공부했으며, 과학을 하고 있다. 내가 과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실험과 연구를 통해 얻어낸 명확하고 확실한 결과와 무엇보다 객관적이고 미래를 향한 학문이라는 것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오히려 알 듯 모를 듯 애매한 학문이란 것을 느낀다. 길버트 체스터턴은 "무언가를 많이 보면 볼수록 그것을 더 조금 이해한다"고 했다. 어떤 것이 든지 조금 깊이 들어가면 사실 그것에 대해 뭔가 더 깊이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알게된 작은 진실이 그동안 내가 알고 있었던 어떤 체계를 흔들어 놓음으로써 정말 그것을 알기 전보다 더 모르게 되는 경우가 흔히 있다.

얼마 전 읽었던 <지상 최대의 과학 사기극>처럼, 진리로 믿어왔던 것들에 의심이 가기 시작하면 그 의심은 그동안 쌓아온 나의 지식체계를 단번에 흐트러트린다. 이 책 속에는 그레이엄 벨 이외에도 멘델이나, 페니실린을 발견한 플레밍 조차 과학 사기극의 한 일면으로 말한다. 멘델 법칙으로 유명한 멘델은 정작 그 법칙을 만든 사람이 아니고 플레밍의 경우는 페니실린의 각주에 들어갈만한 거의 관계없는 인물이란다. 과학적 마케팅이 성공적으로 먹힌 사례라 들 수 있다. 정작 진실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 것인지 찜찜하다. 과학이야 말로 절대적 지식이며, 그 어떤 학문보다 명확하다고 믿어왔던 나의 과학에 대한 막연한 어린시절의 동경이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과학이란 학문을 맹신하는 경향이 있다. 과학적 지식이야말로 고차원적이고 획기적이며, 늘 진보를 향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틀린말은 아니다. 그래서 노벨상에 대한 것도 문학이나 다른 분야에 대해선 후보발표 때부터 수상까지 늘 논란이 있어왔지만 과학 분야 만큼은 거의 깔끔하다. 그들이 인류의 발전을 위해 뭔가 대단한 발견을 해냈다는 것에 경의를 표한다. 하지만 관심은 거기까지다. 특별히 과학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작년 누가 노벨화학상을 받고, 물리학상을 받았는지 아무도 모른다. 문학상은 몇년 째 끊임없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지 않는가...

그만큼 과학은 웬지 일반인들보다 조금 위에 떨어진 동떨어진 학문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과학을 잘못 이해하고 오해하여 잘못 쓰는 경우도 많다.이 책에서 일반 사람들의 과학적 남용에 대한 재밌는 '양자도약'에 대한 예를 소개한다. 경제학 분야에서 획기적인 매출의 상승을 이룩하고자 할때 '양자도약'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물리학적으로 이야기하면 양자도약은 반대의 의미일 수도 있다. 원자가 양자 도약을 하면 빛을 방출하는데, 원자는 위로 뛰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 뛰기 때문에 대부분 기저상태에 이르고 이어 움직이지 않고 그 상태로 머물기 때문이다. 이런 잘못 사용되는 오류가 굉장히 많다. 이 책은 과학에 대한 많은 편견과 오해에 대해 지적하고 또 풍자도 하며,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많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래 발전적인 과학, 그리고 시대의 혁신을 일으키는 과학의 긍정적인 면보다는 대중을 호도하고, 불안을 야기시키며, 상상력을 꺾는 현대 과학의 어두운 점을 끄집어내어 알리고, 깊이없이 과학의 한 일면만으로 전체를 조장하여 대중을 혼란시키는 매스미디어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리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당연하다는 듯이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 "정반대로 생각해보기"를 하며 편견의 틀을 깨버린다. 가장 인상적으로 읽었던 부분은 지구 온난화가 지구 기온 하강의 원인이 된다는 주장이었다. 얼핏 이해가 안가는 문구지만 이글을 통해 보면 충분히 납득이 간다.

또 오랫동안 갈등을 일으켜왔던 종교와 과학, 철학과 과학, 그리고 현대 우리 사회에서 윤리 문제에 대한 과학과의 갈등에 대한 여러가지 사례와 다양한 학자들의 의견을 제시하고 설명한다. 또한 서양이 동양보다 과학이 발달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윤리적 차이의 근거를 들어 설명한다.

이 책을 통해 과학의 다양한 부분에 대한 오류와 편견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냥 무조건 절대적 지식이라고 믿어왔던 나의 편견의 틀을 깨인 계기가 되었다. 생각의 틀을 한쪽 방향으로만 흐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생각해보면 여러가지 정반대의 결과을 얻을 수 있다. 그 정반대의 결과가 사실은 진리일 수도 있다.  실제 과거에 절대적 지식으로 오랫동안 믿어왔던 진리가 사실은 정반대로 밝혀진 경우도 많았다. 과학 또한 많은 부분에 있어서 절대적 지식이 아니었으며, 때론 이것일수도 저것일수도 있는 알 수 없는 것이 될 때도 많았다. 또 '정보에서 존재로'가 아니라 '존재에서 정보로(it from bit)'라는 물리학자 존 휠러의 말이 이제서야 이해가 갔다.

과학 인문서를 이책저책 몇권 읽고 또 읽다 팽개친 책들도 많았지만 이책만큼 통쾌하고 재밌는 과학서는 간만이었다. 과학의 부정적인 측면을 많이 다루고 있어서 처음엔 조금 실망했지만 과학에 대한 편견의 틀을 거꾸로 생각하여 깨가는 과정은 정말 즐거웠다. 또한 무엇보다 마음에 든 것은 다양한 주제를 다루되 그것이 수페이지를 넘지 않게 담아내어 자칫 어렵고 지루해질 수 있는 부분을 간결하게 처리하여 집중도를 높였고, 보통 책보다 조금 작은 사이즈는 손안에 들고 넘겨읽기에 딱 맞춤이었다. 보통 책 사이즈도 조금 작아졌으면 좋겠다. 두께는 상관없다. 가방에 쏙, 손안에 쏙, 정말 맘에 든다. ㅎㅎ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망고 스트리트
산드라 시스네로스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망고스트리트... 제목만큼이나 상큼한 오렌지색 표지..
흐뭇한 따뜻함이 물밀듯이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나의 어린 시절도 떠올려 보게되고...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서 몸부림 쳤던 그 순진하고 철없던 시절의 일들도 생각나고...
어릴 때부터 바라던 나만의 소박한 꿈도 다시 떠올렸다...
어른이 된 지금의 난... 
그 꿈과 순수함을 많이 잃어버리고 산 것 같지만...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내 자신과 내 주변을 되돌아보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에스페란자 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눈을 본 받고 싶었다...


상큼한 제목과는 달리 '망고스트리트'는 미국 뒷골목의 어느 거리의 이름이다. 이곳은 멕시코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빈민가다. 희망보다는 절망이 그리고 어두침침하고 안타까운 일들이 시시 때때로 일어나는 음흉한 동네다. 이곳에 에스페란자라는 이름의 소녀가 살고 있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계속 옮겨 다니다가 이곳에서 처음 맞는 진짜 '우리집'은 정말 볼품없고 구질구질했지만 소녀는 이곳 '망고스트리트'에서 밝고 천진난만하게 살아간다.

'망고스트리트'에 와서 그녀가 새로 사귄 친구들, 주변 사람들은 모두 행복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아버지에게 구타당하고 친구들에게 따돌림 당하는 친구도 있었고, 남편에게 구타당하는 여자도 있었으며, 우울증에 걸린 사람, 하루하루를 고달프게 살아가는 가난한 노동자 등 모두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다. 밑바닥 인생에서 자신을 구원해 줄 남자만을 기다리며 사는 여자도 있었다. 그들에게 '희망'이라는 단어조차 버거워보였다. 하지만 생활에 지친 밑바닥 인생들의 안타까운 일상의 이야기가 그녀의 이야기를 통하면 웬지 흐뭇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어떨 때는 피식피식 웃음까지 나왔다. 이 모든 것이 세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들여다 보는 에스페란자의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이었다.

천진난만한 에스페란자의 꿈은 '나만의 집'을 갖는 것이다. 어쩌면 버거운 현실에서 조금 벗어나고 싶은 소녀 자신의 소박한 '희망'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곳 '망고스트리트'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희망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그 작은 꿈에 대한 이야기는 책 속 곳곳에 묻어난다.

나를 위한 현관과 나만을 위한 베개와 예쁜 진홍색 페투니아가 있는...
내 책들과 내 삶의 이야기들이 있는... <중략>
언제나 눈처럼 조용한 집.
나만을 위한 공간.
시를 쓰기 전의 깨끗한 종이 같은.....<p.194>

하지만 그녀는 '망고스트리트'가 언젠가는 다시 돌아오게 될 곳이라 이야기한다.
그곳은 그녀의 추억이 묻어 있는 곳이며, 그곳이야 말로 "내 책들과 내 삶의 이야기들이 있는" 곳임을 알기 때문이다.

결코 즐거운 소설이었다 말할 수 없다. 안타까운 주변 환경과 사람들 이야기는 슬프기까지 하다. 하지만 곳곳에서 느껴지는 에스페란자의 순수함과 따뜻함이 나의 마음까지 포근하게 감싸주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다 읽고 난 지금의 느낌은 꽤 훈훈하다. 
한편의 산문시같이 이루어진 44편의 모든 구절들이 마음에 와 닿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슈테판 츠바이크의 메리 스튜어트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이마고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내가 유럽 역사 그리고 유럽 왕조에 대해 처음으로 흥미를 가졌던 것은 프랑스 혁명과 비운의 왕비 마리앙투와네트였다. 어릴 때 봤던 <베르사유의 장미>라는 애니메이션을 너무나 가슴 아프게 본 기억도 있었고, 프랑스 혁명으로 일국의 왕비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일이 너무나 비극적으로 와닿았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유럽 왕족사에 대한 여러 가지 책들을 뒤져보기 시작했다. 한때 어찌나 열중했었던지 세계사 교과서에 나오는 여러가지 일들이 공부하지 않고도 저절로 머릿 속에 들어와 있었다. 심지어 1789년 7월 14일 프랑스 혁명 발발일은 아직도 그 날짜까지 기억하고 있다.  정말 이런식으로 스스로가 좋아서 몰두하다 보면 저절로 공부가 되는 것도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마리앙투와네트만큼  비극적인 왕비가 스코틀랜드에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바로 메리 스튜어트이다. 유럽 역사상 최초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여왕이다. 이 여왕의 사건은 당시 잉글랜드 여왕 엘리자베스 1세와의 대립과 더불어 더 비극적으로 끝나게 되는데, 이 책에서도 두 여왕의 갈등 관계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는 대립할 수 밖에 없었으며, 카톨릭을 신봉하는 메리와 개신교를 신봉하는 엘리자베스와의 종교도 중요한 갈등으로 작용한다. 또한 태어날 때부터 왕관을 머리에 쓰고 나온 메리와 헨리 8세의 사생아로 목숨의 위협을 받으며 불행한 어린시절을 보내고 가까스로 왕권을 손에 넣은 엘리자베스는 자라온 환경부터 너무나 달랐다.

메리는 여왕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인 이유가 아닌 사랑으로 배우자를 선택하여 결혼하였고, 엘리자베스는 평생 미혼의 여왕으로 남는다. 하지만 메리의 감정적인 첫사랑은 금새 변해 두번째 남편인 헨리단리를 살해하는 음모에 가담하게 되고, 그를 살해한 보스웰과 사랑에 빠져 결혼하게 되며, 이 전반의 사건은 그녀를 잉글랜드로 도망가게 만든다. 그렇자나도 메리로부터 왕권의 위협을 받던 엘리자베스는 이 사건으로 메리를 자신의 손아귀에 틀어쥘 기회로 만든다. 하지만 불운한 국제 정세와 종교 갈등은 그녀로 하여금 모반의 음모에 가담하게 만들고, 합법적으로 그녀를 제거할 기회를 찾던 엘리자베스는 그녀에게 사형을 선고하기에 이른다.

메리 여왕이 결국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녀가 엘리자베스처럼 정치적으로 냉정하지 못했고, 술수에 능하지 못했으며, 정치나 종교적으로 그녀에게 불운한 시대적 상황의 이유도 있지만, 결국 그녀가 가진 섬세하고 감정적인 '사랑'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랑이 아니었다면 그녀가 잉글랜드로 넘어오지도 않았을 뿐더러 죽음에 이르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한 나라의 여왕으로서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스스로 선택하고 사랑이 식은 남편을 냉정하게 제거하는 모진 면도 보였지만, 이 모두는 스스로의 감정에 충실한 것이었고, 그 감정에 충실했던 만큼 주변의 여건을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 치명적인 결점이었다.

조금 앞선 시대 6명의 왕비를 갈아치운 헨리 8세가 떠올랐다. 헨리 8세 또한 자신의 감정과 사랑에 충실했지만, 그 감정이 사라지자 가차없이 사랑했던 왕비를 제거하는 모진 군주였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도 강력한 군주이며, 위엄있는 왕으로 추앙받고 있다. 반면 메리 스튜어트는 스스로 선택한 사랑에 죄를 받고 군주로서 명예를 손상당했으며, 결국 죽음에 이르렀다. 이것은 단순히 정치적 상황이 불운했었다는 설명으로는 뭔가 꺼림직해보였다. 내가 여자이어서 더 그런 느낌을 받는지 모르겠지만, 웬지 메리 스튜어트가 여왕이었기 때문에 더 불행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메리 스튜어트...비운의 여왕...
이 책을 통해 그녀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되어 좋았다. 비록 단두대에서 끔찍하고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지만, 그녀의 열정적 사랑과 끝까지 여왕으로서 위엄을 지키고자 했던 그녀의 모습을 기억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