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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배반하는 과학 - 과학을 둘러싼 오해와 편견 100가지
에른스트 페터 피셔 지음, 전대호 옮김 / 해나무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난 과학을 좋아했고, 과학을 공부했으며, 과학을 하고 있다. 내가 과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실험과 연구를 통해 얻어낸 명확하고 확실한 결과와 무엇보다 객관적이고 미래를 향한 학문이라는 것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오히려 알 듯 모를 듯 애매한 학문이란 것을 느낀다. 길버트 체스터턴은 "무언가를 많이 보면 볼수록 그것을 더 조금 이해한다"고 했다. 어떤 것이 든지 조금 깊이 들어가면 사실 그것에 대해 뭔가 더 깊이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알게된 작은 진실이 그동안 내가 알고 있었던 어떤 체계를 흔들어 놓음으로써 정말 그것을 알기 전보다 더 모르게 되는 경우가 흔히 있다.
얼마 전 읽었던 <지상 최대의 과학 사기극>처럼, 진리로 믿어왔던 것들에 의심이 가기 시작하면 그 의심은 그동안 쌓아온 나의 지식체계를 단번에 흐트러트린다. 이 책 속에는 그레이엄 벨 이외에도 멘델이나, 페니실린을 발견한 플레밍 조차 과학 사기극의 한 일면으로 말한다. 멘델 법칙으로 유명한 멘델은 정작 그 법칙을 만든 사람이 아니고 플레밍의 경우는 페니실린의 각주에 들어갈만한 거의 관계없는 인물이란다. 과학적 마케팅이 성공적으로 먹힌 사례라 들 수 있다. 정작 진실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 것인지 찜찜하다. 과학이야 말로 절대적 지식이며, 그 어떤 학문보다 명확하다고 믿어왔던 나의 과학에 대한 막연한 어린시절의 동경이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과학이란 학문을 맹신하는 경향이 있다. 과학적 지식이야말로 고차원적이고 획기적이며, 늘 진보를 향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틀린말은 아니다. 그래서 노벨상에 대한 것도 문학이나 다른 분야에 대해선 후보발표 때부터 수상까지 늘 논란이 있어왔지만 과학 분야 만큼은 거의 깔끔하다. 그들이 인류의 발전을 위해 뭔가 대단한 발견을 해냈다는 것에 경의를 표한다. 하지만 관심은 거기까지다. 특별히 과학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작년 누가 노벨화학상을 받고, 물리학상을 받았는지 아무도 모른다. 문학상은 몇년 째 끊임없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지 않는가...
그만큼 과학은 웬지 일반인들보다 조금 위에 떨어진 동떨어진 학문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과학을 잘못 이해하고 오해하여 잘못 쓰는 경우도 많다.이 책에서 일반 사람들의 과학적 남용에 대한 재밌는 '양자도약'에 대한 예를 소개한다. 경제학 분야에서 획기적인 매출의 상승을 이룩하고자 할때 '양자도약'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물리학적으로 이야기하면 양자도약은 반대의 의미일 수도 있다. 원자가 양자 도약을 하면 빛을 방출하는데, 원자는 위로 뛰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 뛰기 때문에 대부분 기저상태에 이르고 이어 움직이지 않고 그 상태로 머물기 때문이다. 이런 잘못 사용되는 오류가 굉장히 많다. 이 책은 과학에 대한 많은 편견과 오해에 대해 지적하고 또 풍자도 하며,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많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래 발전적인 과학, 그리고 시대의 혁신을 일으키는 과학의 긍정적인 면보다는 대중을 호도하고, 불안을 야기시키며, 상상력을 꺾는 현대 과학의 어두운 점을 끄집어내어 알리고, 깊이없이 과학의 한 일면만으로 전체를 조장하여 대중을 혼란시키는 매스미디어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리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당연하다는 듯이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 "정반대로 생각해보기"를 하며 편견의 틀을 깨버린다. 가장 인상적으로 읽었던 부분은 지구 온난화가 지구 기온 하강의 원인이 된다는 주장이었다. 얼핏 이해가 안가는 문구지만 이글을 통해 보면 충분히 납득이 간다.
또 오랫동안 갈등을 일으켜왔던 종교와 과학, 철학과 과학, 그리고 현대 우리 사회에서 윤리 문제에 대한 과학과의 갈등에 대한 여러가지 사례와 다양한 학자들의 의견을 제시하고 설명한다. 또한 서양이 동양보다 과학이 발달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윤리적 차이의 근거를 들어 설명한다.
이 책을 통해 과학의 다양한 부분에 대한 오류와 편견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냥 무조건 절대적 지식이라고 믿어왔던 나의 편견의 틀을 깨인 계기가 되었다. 생각의 틀을 한쪽 방향으로만 흐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생각해보면 여러가지 정반대의 결과을 얻을 수 있다. 그 정반대의 결과가 사실은 진리일 수도 있다. 실제 과거에 절대적 지식으로 오랫동안 믿어왔던 진리가 사실은 정반대로 밝혀진 경우도 많았다. 과학 또한 많은 부분에 있어서 절대적 지식이 아니었으며, 때론 이것일수도 저것일수도 있는 알 수 없는 것이 될 때도 많았다. 또 '정보에서 존재로'가 아니라 '존재에서 정보로(it from bit)'라는 물리학자 존 휠러의 말이 이제서야 이해가 갔다.
과학 인문서를 이책저책 몇권 읽고 또 읽다 팽개친 책들도 많았지만 이책만큼 통쾌하고 재밌는 과학서는 간만이었다. 과학의 부정적인 측면을 많이 다루고 있어서 처음엔 조금 실망했지만 과학에 대한 편견의 틀을 거꾸로 생각하여 깨가는 과정은 정말 즐거웠다. 또한 무엇보다 마음에 든 것은 다양한 주제를 다루되 그것이 수페이지를 넘지 않게 담아내어 자칫 어렵고 지루해질 수 있는 부분을 간결하게 처리하여 집중도를 높였고, 보통 책보다 조금 작은 사이즈는 손안에 들고 넘겨읽기에 딱 맞춤이었다. 보통 책 사이즈도 조금 작아졌으면 좋겠다. 두께는 상관없다. 가방에 쏙, 손안에 쏙, 정말 맘에 든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