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인 섹스 - 일하는 뇌와 사랑하는 뇌의 남녀 차이
앤 무어.데이비드 제슬 지음, 곽윤정 옮김 / 북스넛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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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여자답다' 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여자답다는 것'이 뭔데? 특히나 어릴 때부터 어른들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귀에 딱지가 앉도록 지금까지도 혼나고 잔소리 듣는 말이기에 이젠 질렸다. '기집애가 기집애다운 맛이 없다는 둥' ' 저렇게 자라서 큰일이라는 둥' '무슨 여자애가 그러냐 는 둥' ' 너 여자 맞느냐는 둥' 등등...이런 소리는 이제 질림을 넘어서 그 말자체를 초월했다. 더 이상 그 잔소리는 내게 어떤 반응도 일으키지 않는다. 내가 그런 소리를 자주 듣는다는 것은 내 자신이 여성성으로서 가지고 있어야할 보편성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이고, 사회에서 요구하는 여성향에서와도 거리가 멀다는 것일 꺼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편적으로 이야기하는 여성성과 남성성은 어떤 것일까?  난 오래전부터 관습적으로 내려오는 인위적인 틀이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했다. '자고로 여자는 어때야 하고 남자는 어때야 한다'는 말과 같이...  그 여성성과 남성성의 성향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고정시켜놓은 듯한....물론 여성성이나 남성성이란 것이 어느 정도 본능적인 성향이 있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난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회가 원하는 방향으로 그 이분법적 성향이 점차 굳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여성은 여성답게, 남성은 남성답게 길들여지고 키워진 것이라 여겼다.

 

내가 보편적 여성적 성향에 드러맞지 않는 이유도 있지만, 난 그런 이분법적 편견을 싫어한다. 그래서 사실 이런 책들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화성남자 금성여자를 비롯하여, 여성과 남성이 다름을 보여주는 많은 책들말이다. 사회는 점차 성의 분화가 모호해지고, 특별한 성을 요구하는 직업또한 점차 사라지고 있다. 언제까지 우린 남성과 여성을 딱 나누어 그 이분법적 성향을 고집해야하는가? 이런 나의 생각은 나의 '되먹지못한 여성성'을 나름 사회적 생물학적으로 시대 흐름에 맞게 진보한 개체라고 말도 안되는 억지스런 나의 이론으로 정당화시키고 있었다. ㅎㅎ

 

하지만 분명 여자와 남자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생물학적으로도 물론 다르고, 능력이나 성향이 발현되는 분야가 다르다. 후천적으로 '~~답게' 길러지기도 하고, 능력을 개선시킬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여성이 남성을 그리고 남성이 여성을 뛰어넘지 못하는 분야가 있다.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책은 좀더 과학적인 분석방법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좀더 해부학적으로 근본적인 차이점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봐오던 여성성과 남성성의 외부적인 차이를 읆는 다른 책들과는 달랐다. 또한 이 책에서 밝히고 있는 것은 후천척인 사회적 영향은 거의 미미하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우리에게 부여된 남성성과 여성성은 엄마의 자궁속에서부터 이미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뇌 자체가 성에 따라 다르게 발현된다는 것이다.

 

흔히 생물학적으로 이야기하는 XX,와 XY가 남녀의 구분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여성성과 남성성을 구분짓는 원인은 유전자가 아니라 호르몬이며, 호르몬은 결국 뇌의 영향을 받는 것이다. 호르몬의 메커니즘은 극단적으로 다른 여성과 남성의 뇌를 형성하게 한다. 따라서 만일 XY를 가진 태아라도 여성호르몬의 영향을 받으면, 여자 같은 남자로 태어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여성과 남성의 전혀 다른 호르몬과 뇌의 메커니즘은 동일한 환경, 동일한 자극에도 서로 다르게 반응한다. 남녀의 성향이 달라지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전제는 모든 성염색체 이상의 병증이나 동성애 성향까지도 모두 설명이 가능하다.

 

결국 우리의 뇌가 구성되어 있는 방식 때문에 서로 다르게 문제를 인식하여 다른 가치를 부여하면서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본다는 것이다. 이 책은 남녀의 정서, 능력, 감각, 대인관계의 모든 차이를 바로 뇌를 형성하는 호르몬과 그 메커니즘으로 설명하고 있다. 모체에 이상이 생겨 스트레스를 받으면 호르몬의 불균형이 생길 수도 있고, 모체의 임신중독증이나 당뇨의 발병을 약화시키기 위해 투여한 호르몬이 태아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그래서 실제 태아의 유전자와 다른 호르몬의 영향으로 다른 성향의 뇌가 발현된다. 또한 이 책엔 태아의 여성성과 남성성을 호르몬을 인위적으로 조절하여 다르게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한다. 태아의 성향을 인위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나의 뇌도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어떤 호르몬의 영향으로 다소 여성적인 어떤 보편성을 잃어버렸을 가능성이 있다.ㅋ 이 책에 나오는 보통 남성들의 보편성이 내게 많이 적용된다는 것과 간단한 뇌의 성별테스트의 결과에서도 여성성이 아니라 여성과 남성의 중간 형태의 결과가 나온다는 것은 크게 놀랄일도 아니다. ㅎㅎ 결국 난 태어날때부터 그렇게 생겨먹은 것이기 때문에 그 성향이 부모님이 잔소리하신다고 쉽게 고쳐질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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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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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알고 있다는 것과 믿는다는 것의 차이는 뭘까...

그 둘다 모두 진실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을 진실이라 생각하고  타인에게 말한다.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런 일들 사이에 우리는 수많은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적당한 선에서 이해하고, 타협하기도 하며, 용서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적당한 선'이란 것이 어디까지일까?

이 소설을 읽으면 이 많은 것들을 떠올리게 된다.

나 또한 한순간 나도 모르는 이기적 마음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깊게 상처를 주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중요한 것은, 내 마음 속 믿음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타인에 대한 배려와 사랑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자기가 본 것을 진실이라 믿는 13살 소녀 브리오니...소녀는 어떤 사건에 대해 자기 입장대로 해석해서 그것을 진실이라 말해버렸다. 그 당시엔 그렇게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철부지 어린 소녀의 무책임한 말한마디로 두 성인 남녀의 삶은 철저하게 파괴된다. 한창 빛나는 미래를 꿈꾸던 의대 지망생 로비는 감옥에 가고 그 죄로 전쟁터로 징집됐으며, 언니 세실리아는 동생과 부모에 대한 원망으로 가족과의 관계를 단절한채 떠나버린다. 어린소녀의 한 순간 실수라고 하기엔 너무나 치명적인 결과가 따랐다.

 

끔찍한 전쟁터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는 로비, 그리고 로비가 돌아올 때까지 사랑하는 남자를 기다리며 사는 세실리아.. 두 남녀의 짓밟힌 인생을 보며 브리오니는 자신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점차 깨닫게 된다. 소설가가 된 브리오니는 속죄의 마음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쓰며 그동안 누구에게도 표현하지 못했던 자신의 마음 속 내밀한 이야기와 진실을 담아낸다. 이것이 바로 이 소설 속 이야기이다.

 

인간의 마음이란 것이 얼마나 나약하며 쉽게 상처받기 쉬운 것인지.. 또한 얼마나 쉽게 남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것인지...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순진한 브리오니의 한순간 상상력은 그녀의 삶 또한 평생 씻을 수 없는 죄책감 속에 고통을 받게 만든다. 브리오니만을 탓하기엔 그녀의 삶도 너무나 가혹했기에 미워할 수가 없다. 이 소설 속 주인공 모두가 마음 아프고 애틋하다. 속죄하는 이야기라 했지만 난 이 소설이 슬픈 러브스토리로 기억에 남는다. 이 소설의 여운이 꽤 오래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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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과 일각수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권민정.허진 옮김 / 강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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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작품을 보면, 그림 속의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여러가지 상상을 하게 된다. 몇 가지 미술 에세이를 통해 주워들은 이야기들도 있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작품들은 그저 상상할 수 밖에 없다. '저 여자는 왜 저런 표정을 짓고 있을까?' '저 남자는 왜 저런 포즈를 하고 있을까?' 등등... 이런 상상은 나로 하여금 하나의 작품을  감상하는 데 있어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하지만 나의 상상력은 단순히 그 그림 속에만 한정되어 있다. 눈으로 보여지는 것 이외에 또 다른 것을 떠올리는 능력은 부족하다. 내가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글들을 감탄하는 이유는 바로 그녀의 무한한 상상력 때문이다.

 

그녀의 전작 <진주 귀걸이 소녀>는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소설 중에 손꼽을 정도로 사랑하는 작품이다.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통해 매혹적인 사랑이야기를 꾸몄던 그녀... 그 책속 이야기를 떠올리면 지금도 마음이 꽤 설레인다. 그 소설에서의 감동을 또 다시 떠올려보기 위해 그녀의 다른 작품을 찾게 되었다. 바로 이 소설 <여인과 일각수>이다. 이 작품의 모티브가 된 것은 태피스트리 속의 여인과 일각수 모습이다. 다섯가지 감각(시각, 미각, 후각, 청각, 촉각)을 표현한 그림이다.

 

책속의 니콜라는 테피스트리의 밑그림을 그리는 화가이다. 하지만 그는 타고난 바람둥이에 난봉꾼이다. 매우 잘생기고 예술적으로 타고난 감각은 수많은 여성들을 자신 앞에 굴복시킨다. 어느날 귀족 가문의 태피스트리 제작에 대한 의뢰를 받고 여인과 일각수의 그림 작업에 들어가면서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니콜라는 이 일을 하면서 여러 여인들을 만나게 된다. 귀족 부인, 귀족 부인의 딸, 시녀, 테피스트리를 만드는 장인 부인, 그리고 그 장인 부인의 딸 등... 그 여인들을 유혹하고, 교류함에 따라 그림 속 여인의 모습은 그녀들의 모습으로 점차 수정되어 간다.

 

그녀들을 유혹하며 강한 남성적 역량의 과시한 것은 니콜라였지만, 그 욕망의 주체는 니콜라가 아닌 바로 그녀 자신들이었다. 그녀들이 이 소설 속의 주인공이었고, 그림 속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그 여인들의 욕망과 성격 그리고 고뇌가 니콜라의 감성에 투영되면서 태피스트리의 그림은 점차 완성되어가고....난 그 그림 속에 그리고 이야기 속에 점차 빨려들어갔다.  

 

책속에 나와 있는 태피스트리의 그림들을 몇번이나 다시 들춰봤는지 모른다. 처음에 얼핏 봤을 때의 느낌과 이야기를 읽어 나가면서 나중에 그림을 봤을 때의 느낌이 너무나 다르게 와 닿았다. 일각수와 여인에서 느껴지는 모습들은 소설 속 이야기 만큼이나 굉장히 관능적이었다. 그녀들의 표정, 눈빛, 자태, 손끝 하나하나가 예사로 느껴지지 않았다. 아~ 이것이 바로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무한한 상상력이 불러오는 예술적 카타르시스임을 느꼈다. 소설 속의 줄거리가 꽤 마음에 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태피스트리를 통해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하는 것이다.

 

단순한 이야기를 넘어서 난 태피스트리의 그림 자체에 매혹당했다. 이 작품들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을 날이 올지 모르겠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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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탄생 - 다빈치에서 파인먼까지 창조성을 빛낸 사람들의 13가지 생각도구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외 지음, 박종성 옮김 / 에코의서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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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자율적 사고를 높이는 방향으로 교육정책이 점차 변화하고 있다지만, 아직까지도 입시위주의 획일적 교육은 여전하다. 대학의 문이 넓어졌다곤 하지만 수도권 대학의 입시 경쟁은 여전히 치열하고, 학생들은 대학에 합격하기 위한 지식의 습득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어 사고의 폭을 넓히라 하지만 영어 단어 한자 더 외우고 수학 문제 하나 더 푸는게 더 급하기 때문에 시험에 필요한 소수 필독 도서를 제외하곤 책은 계속 뒷전으로 밀린다.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 학생 본인이 가장 큰 문제이겠지만, 학생들을 너무 입시 위주로 몰고가는 교육 정책과 학교, 학부모들의 태도가 더 문제이다.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은 좋은 대학에 들어갈 것이다. 그 학생들은 수학문제도 잘 풀고, 물리학 공식도 잘 안다. 하지만 그들은 수학과 물리를 그저 답안지에 답을 써야하는 용도 외에는 더 발전된 사고를 하지 못한다. 수학의 미적분학이 물리학 법칙에 왜 이용되는지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공식인 것이고, 그 공식 자체로 머리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조금 더 나아가 배운 것을 실제 생활에 거의 응용하지 못한다. 물리와 수학 문제는 실생활과 전혀 관계 없는 것이라고까지 생각한다. 알고 있는 것과 적용을 연결지어 생각하지 못하며, 실제와 환상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사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이해가 아니라 외워서 알게되는 교육시스템과 창조적 사고의 결여 때문이다.

 

왜 우리는 수학은 풀어야 하는 것이고, 음악은 들어야 하는 것이며, 미술은 봐야하는 것일까? 수학을 느끼고, 음악을 보며, 미술을 들을 수는 없는 것일까? 이 모든 것이 교육 시작단계에서 부터 과목을 별도로 여러 개 나뉘고, 한 과목을 다른 과목과 연결지어 생각할 수 있는 직관적인 생각이 철저하게 무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학은 오로지 '수식 안에서' 음악은 오로지 '음표 안에서' 라는 테두리 속에 사고가 갖혀 있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획일적 사고의 탈피를 촉구하고 열린 생각, 창조적인 생각, 다시 말하면 무한한 상상력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13가지 생각 도구로 제시하고 있다. 관찰, 형상화, 추상화, 패턴인식, 패턴형성, 유추, 몸으로 생각하기, 감정이입, 차원적사고, 모형만들기, 놀이, 변형, 그리고 통합이다.

 

13가지의 생각 도구라는 제목 하에 수학, 과학, 예술,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여러 사람들의 경험과 내용을 소개하며, 창조적 사고의 필요성과 생각하는 방법을 논리정연하게 설명한다. 이 모든 것들 중엔 내 학교 생활 18년동안 어떤 선생님으로부터도 한번도 들은 적이 없었던 내용도 많다. 또 실제로 적용해보지 못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 때 이르기까지 오로지 시험을 잘보기 위한 공부만 했다. 창조적 생각이란 것, 따지고 보면 우리와 그리 멀게 있는 것도 아니고, 하기 힘든 것도 아닌데, 왜 한번도 체계적으로 노력해 보지 않았는지...그리고 왜 학교에서는 한번도 학생들의 자율적 사고를 독려하기 위한 열린 교육을 시키지 않았는지...오로지 시험에 나오는 것과 안나오는 것을 구별하는 교육밖에 생각이 안난다.

 

창조적 사고란 것이 분명 학생들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이 책은 더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학생들의 사고가 트이고, 그런 학생들이 사회에 나온다면 분명 우리 사회는 좀더 발전된 형태로 달라지리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획일화된 교육에서 획일화된 사고로 졸업해 나온 수많은 '무늬만 지성인'들이 국가 정책이나 사회에 획일적으로 아무 생각없이 동조하거나 무관심하게 반응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상들을 많이 봐왔다.

 

물론 나 또한 누굴 비판할 만큼 생각이 트이지 못했다. 나도 획일화된 교육 정책과 입시 경쟁에서 공산품처럼 찍혀 나온 사람 중의 한명이다. 게다가 학창시절엔 교과서 이외의 책이라곤 거의 손에 들어본 적이 없다.  또한 뭔가 새로운 것을 생각해낸다는 자체에 스트레스를 받고 노력조차 안했다. 수업도 레포트도 그냥 모든 것을 쉽게 생각하고 대충 떼웠다. 딱딱하게 굳어져 버린 머리와 생각은 쉽게 개선되지 않는다. 이제서야 생각의 지표를 넓혀주는 독서의 중요성과 재미를 알고 이것저것 책을 많이 보려 하지만, 한번 굳어진 생각이라는 것이 쉽게 말랑말랑해지지 않더라.. 창조적 생각이란 것은 습관화되고, 생활화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습관화되기 위해서는 이 책에 나온 것과 같은 노력과 훈련이 필요하다.

 

내가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는 점은 이제서라도 책을 가까이 하게 되어, 나의 좁은 생각과 감성의 테두리가 조금은 넓어졌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또 이렇게 책의 리뷰를 쓰는 것도 책을 통한 나의 느낌을 재창조하는 것이라 보면, 창조적 사고의 바탕이 될 수 있다. 책으로 알게 된 지식을 통해 예술 작품을 마음으로 느끼기 시작했으며, 음악 또한 보이기 시작했다. 또 습관화된 독서는 이런 책을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주었다. 창조적 사고 그리고 무한한 상상력의 바탕은 우선 독서에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책을 멀리하고 계신 분들께 독서의 기쁨과 보람을 전하고 싶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면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없으며,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묘사하고 있는 세계에 머물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된다면 자신의 눈이 아닌 다른 사람의 눈으로 실재를 보게 된다.

- Paul Horg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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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킨스의 신 - 리처드 도킨스 뒤집기
알리스터 맥그래스 지음, 김태완 옮김 / SFC출판부(학생신앙운동출판부)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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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도킨스란 인물에 너무 빠져 들고 있는 것 같다. 내 자신이 철저한 다윈주의자도 아니지만, 그의 이론들은 웬지 나의 관심을 끌어당겼다. 그의 이론과 논리를 백퍼센트 옳다고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의 <만들어진 신>을 읽은 후에는 그의 다소 격양되고 감정적인 듯한 논리에 조금 거부감이 들었다. 한가지 이론에 너무 심취하게 되면 심각한 편견에 빠질 수 있다. 그래서 내가 또 다시 고른 책은 '리처드 도킨스 뒤집기'라고 하는 알리스터 맥그라스의 또 다른 책이다. <도킨스의 신>이라고 해서 도킨스가 말했던 신적 가설... 즉, <만들어진 신>이나 더 나아가 진화론에 대한 비판인줄 알았는데.. 이 책은 진화론이 아니라 도킨스 자체를 비판하는 책이다.

 

이 책은 <이기적 유전자>와 <만들어진 신> 등 도킨스의 전작이나 이론을 읽은 후가 아니라면 이 책을 읽는 의미가 전혀 없다. 특히 <이기적 유전자>만큼은 읽고 난 이후라야 맥그라스의 설명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난 오래 전에 <이기적 유전자>를 읽었지만 사실 처음에 너무 어렵게 읽어서 그의 이론을 반이나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도킨스를 비판한 이 책을 통해 비로소 도킨스의 이론의 모든 것이 제대로 와 닿았다. 물론 이 책을 읽으면서 <이기적 유전자>를 다시 들춰보기도 했지만, 도킨스를 비판한 이 책을 통해 비로소 도킨스가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도킨스는 알려지다시피 진화론자이자 무신론자이다. 그의 진화론을 관철시키기 위해 철저하게 무신론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밝히는 도킨스의 오류 첫번째는 진화론이 곧 무신론이란 그의 이론에 대한 반박이다. 도킨스는 다윈주의 아니면 신 둘중 하나에만 절대 구분선을 두고 엄격히 구별하고 있다. 사실 진화론을 주장하는 유신론자도 많다는 사실이다. 이 이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다윈은 과연 무신론자였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이 책에 따르면 다윈이 전통적인 기독교적 신앙을 거부한 것을 사실이지만, 무신론을 수용한 것은 아니며, 오히려 불가지론자였을 것으로 추론한다. 다윈주의의 진화론은 필연적으로 무신론적이라는 제안은 자연과학의 능력을 넘어서는 판단이며, 과학적 방법이 적용될 수 없는 영역으로 빠져들고 있는 모습이란다. 즉, 도킨스는 과학적 방법을 잘못 적용한 것이다.

 

신에 대한 문제는 결코 과학적인 방법을 토대로 작업해서 해결할 수 없으며, 도킨스가 말했던 '설명 가설로서의 신'의 논증에도 결함이 있음을 주장한다. 즉, 그 주장에는 도킨스 자신이 자연에는 없다고 주장했던 목적성을 가짐에 따라 그 논증의 결과는 실패라는 것이다. 또 도킨스의 주장에는 말로만 설계, 혹은 목적이 없을 뿐이지 실제로는 창조론에서 제기하는 목적성과 설계가 도킨스의 주장 속에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도킨스가 주장한 무신론의 근거를 부정하며, 도킨스가 <만들어진 신>을 통해 부정했던 신에 대한 비판 하나하나에 반론을 제기한다. 또한 무신론도 도킨스가 비판한 유신론처럼 다분히 폭력성을 띠며, 그 무엇보다 강제 주입적 성격을 띤다고 비판한다.

 

또한 <이기적 유전자>에서 제기했던 '밈(mim)'에 대한 이론도 조목조목 비판하며, 밈의 존재 여부에 대해 강한 불신을 나타낸다. 도킨스조차 무신론이 어떻게 퍼져 나가는지 '밈'이론으로 설명하지 못하며, '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도킨스는 '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신자와 똑같단다. 이 부분은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최고로 황당하고 어이없게 웃을 수 있었던 즐거움을 주었다. 또 이 책은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서 '이기적'이란 말 자체를 있을 수 없는 것이라 부정한다. '이기적'이란 것은 행동가능한 생물체에 적용되는 언어이고, 유전자 자체에 '이기성'이라는 속성을 부여하는 것은 인간중심적 사고를 보여 준다는 것이다. 다시말하면 유전자 자체는 이기적일 수 없단다.

 

이 책을 읽으면서 뭔가 새로운 논리나 이론을 기대했던 내겐 조금 실망이었다. 도킨스의 이론을 조목조목 비판하긴 했지만, 비판한 의견에 대한 새로운 대안이나 주장하는 이론이 명확하지 않았다. 물론 비판은 필요하다. 하지만 비판이 비판에서 끝난다면 그것은 또다른 반목을 불러일으킬 뿐 더 이상의 발전이 없다. 이책은 다소 차분한 어조로 도킨스의 이론과 논리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따진다. 다소 격양되어 흥분된 어투로 이것저것 마구 자신의 이론을 쏟아내는 도킨스와는 조금 다른 느낌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도킨스는 일관되게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확고한 논지가 있었다. 그 논지를 펼치기 위해 다소 감정적인 부분도 꽤 포함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은 도킨스를 비판한 것 외에 남는 것이 없었다. 단순한 비판이 아닌 다른 이론을 펼치는 책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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