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부르는 숲 - 미국 애팔래치아 산길 2,100마일에서 만난 우정과 대자연, 최신개정판
빌 브라이슨 지음, 홍은택 옮김 / 동아일보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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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부르는 숲~!

이 제목이 왠지 설레였다. 십년 이상 운동이라곤 시도조차 해본 적이 없는 내가 한달 사이 세번이나 산에 올랐다. 서울 근교의 산이었지만, 각각의 산마다 몇개의 봉우리와 골짜기를 넘어 능선을 따라 두손으로 암벽을 올랐다. 힘들었지만 내 눈과 몸으로 직접 체험한 그 경험들은...지금까지 그저 정상을 오르기 위해 두발로 묵묵히 걸었던 산행과는 확실히 다른 경험이었다. 고작 세번 산에 오르고 숲이 나를 부르네..설레이네..라고 말하긴 좀 뭐하지만, 산에 가는 기쁨을 그 어느 때보다 지금 생생하게 느끼기에 이 책을 읽는 내내 그 감흥을 곱씹어 볼 수 있었다.

 

내가 올랐던 산과 브라이슨이 종주했던 애팰래치아 트레일(AT)은 말로 하기 민망할 정도로 규모면에서 어마어마한 차이가 난다. 하지만 자연을 마주 대한다는 의미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일상의 번잡함에서 잠시 벗어나 산세의 나무와 숲을 보고, 바람이 나무에 부딪치는 소리와 물소리 새소리를 듣고....또 땀흘린 후 맞는 서늘한 바람은 그 무엇보다 상쾌하다. 나 또한 자연의 일부가 된 느낌..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나를 찾은 느낌이다. 이 기쁨을 알기에 산이 주는 설레임을 지금 내 가슴에 품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빌 브라이슨이 애팰래치아 트레일(AT)에 도전한 종주 기록이다. AT는 조지아주에서 메인주까지 14개주를 관통하는 등산로로 6개월 이상 걸리는 대장정이다.(2,100마일, 3520km)  해마다 2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도전하지만 성공률은 10% 미만이란다. 이 힘든 산행을 결심한 브라이슨은 우여곡절 끝에 25년 전 유럽 여행길에서 그에게  600달러를 빗지고 갚지 않은 카츠라는 친구와 여행길에 오르게 된다. 카츠는 저자와 25년 동안 한번도 만난적이 없고, 코카인 소지로 체포된 경험이 있는 전과자에다가 못말리는 먹보에 뚱뚱한 체격을 가진 느믈느믈(?)한 사내였다. 등산 동반자로서는 최악의 파트너인 셈이다. 카츠와 함께하면서 고생도 더 많이 하고 여러가지 일들도 많이 겪게 되지만, 카츠 때문에 책을 읽는 난 얼마나 많이 웃었는지 모른다.

 

그들의 험난한 여정은 끝이 없어보였다. 밤이면 곰의 위혐으로부터 몸을 사려야했고, 눈에 갇히고, 비에 젖고, 대피소에서는 쥐들과 한바탕 혈전을 치뤄야했다. 또 무엇보다 가장 힘든 것은 하루에 수십킬로를 18kg이나 되는 베낭을 지고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먹을 것을 잔뜩 챙겨 짐을 꾸렸던 카츠는 중간에 하나씩 하나씩 물건들을 다 버리고 급기야 커피 필터까지 버린다.(커피 필터가 무슨 무게가 나가느냐고 저자가 따져묻자 "던지기에는 안성맞춤이거든, 펄럭거리며 천천히 추락하니깐" 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했던 카츠의 모습에 다시한번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들의 여정이 꽤 힘들어 보였지만 솔직히 책을 읽는 내겐 그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수가 없었다. 하루 7시간 동안의 등산 경험은 있지만, 그들과 같은 종주의 경험이 없기 때문에 ’그저 힘들겠거니’ 예상할 뿐이다. 이것이 간접경험의 한계인 것 같다. ^^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즐거웠다. 혼자 낄낄대며 읽었다. 브라이슨은 그들의 종주기록을 매우 재미있게 풀어놨다. 



나는 애팔래치아 트레일 종주의 백미가 상실에 있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모든 경험이 바로 스스로를 철저히 일상생활의 편리함에서 격리시키는 것. 코카콜라 한 잔에 마치 처음 마셔보는 음료수인 것처럼 넋이 나갔고, 흰 빵으로는 거의 오르가슴을 느낄 뻔했다. <p.91>

 

그가 행복해하는 이유는 곧 밝혀졌는데, 쥐를 일곱 마리나 잡았고 게다가 그것을 흡족하게 - 꼭 검투사라도 된 듯한 기분이라고는 말할 수 없어도 - 여겼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물을 마시려고 물병을 들어 올릴 때 물병 바닥에 털과 분홍빛의 살점 같은 것들이 아직도 달라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트레일에선 사람들이 얼마나 비정상적이 될 수 있는지가 나를 때때로 불편하게 했다. <p.157> 

 

나는 그에게 지도를 보여 주었다..... 우리가 지금껏 경험하고 극복해 온 것 - 모든 노력과 수고, 고통, 습기, 산들, 지긋지긋한 국수, 눈보라, 메리 앨런과의 지겨운 밤, 끊임없이, 지루하게, 끈덕지게 쌓아 온 마일리지- 이 고작 5센티미터였다. 머리카락도 그보다는 더 자랐을 것이다. <p.169>


 

이 책에는 그들의 종주 기록과 더불어 그들이 지나온 아름다운 대자연과 중간중간 만난 마음씨 좋은 여러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한다. 또 지층과 관련된 과학적 분석과 식물종의 이동, 미국 역사, 미국 관리국의 현실과 환경 문제 등에까지 광범위한 설명이 포함되어 있다.  내 리뷰를 읽다보면 자칫 웃긴 여행에세이가 아닐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속에는 심각하고 진지한 내용도 많이 담고 있다. 자연보호 정책과 트레일의 열악한 관리에 대한 행정당국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꽤 엿보인다. 빌 브라이슨이 진정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종주의 과정에서 해프닝보단 어쩌면 이런 내용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들은 결국 1329km까지 마치고 중간에 포기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실패가 결코 실망스럽지 않았다. 그런 종주를 결심한 그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전문 산악인도 아니고 게다가 카츠는 그 무거운 몸을 이끌고 그 많은 길을 걸었다는 것이 대단했다. 나로선 죽기 전에 시도조차 하지 못할 일들을 그들은 시작했다는 것이다. 또 무엇보다 힘든 상황에서도 유머와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았던 두 친구의 우정이 감동적이었다. 

 

어쨌든 나에게는 숲속에서 느끼는 시원한 바람같은 책이었다. 애팰래치아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볼 수 있는 사진이 수록되어 있지 않은 아쉬움이 있었지만 읽는 내내 상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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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동문선 현대신서 102
미셸 슈나이더 지음, 이창실 옮김 / 동문선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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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울한 열정의 피아니스트... 
한순간에 확 타오르는 불꽃처럼 짧은 열정을 쏟아부었가가 금새 사그라드는 연기처럼...
우리에게 어느날 갑자기 나타났다가 불현 듯 사라졌다.
1964년 32세의 젊은 나이에 마지막 연주를 끝으로 죽을 때까지 대중 앞에서의 연주를 완전히 그만두게 된다.
왜 그는 그렇게 무대 뒤로 떠나가야 했을까?
주체못할 만큼 타오르는 천재적인 광기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대중들 사이에서 괴리감에 빠졌던 것일까?


평생을 우울증에 시달렸던 괴짜 피아니스트..
그가 내게 남긴 이미지는 부시시한 모습으로 피아노에 빨려들 듯이 깊게 고개를 숙이고 앉아 허밍을 흥얼거리며 연주하는 모습이다. 순수한 피아노의 열정이라고 하기엔 범상치 않은 광기(?)까지 느껴지는... 그의 깊은 내면의 예술세계를 이해하기엔 나 역시 그의 음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일반 대중의 한 사람일 뿐이었다.

9세의 나이에 처음 무대에 올랐고, 독일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바흐 음악 콩쿨에서 1위에 입상하였으며, 29세의 어린 나이에 7장의 앨범을 발표하였다. 그의 바흐 연주는 너무나 유명하다. ’레가토’를 철저히 배재한 ’스타카토’를 지향하는 피아니스트... 그의 건반위를 날라다니는 손가락 위에 울려퍼지는 바흐의 파르티타들은 독특한 그만의 매력으로 다른 연주자들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그에게 명성을 준 작품은 바흐의 <골드베르그 변주곡>인데, 동일한 레퍼토리 녹음을 꺼려하는 그가 이 곡만큼은 55년에 녹음하고 81년에 다시 디지탈 녹음을 하였다. 55년도 연주할 때는 엄청난 속도로 그 곡을 38분 17초만에 연주했지만, 81년 연주는 어찌나 느려터지게 표현했는지 51분 14초에 연주했다. 같은 곡을 같은 사람이 이렇게 차이나게 연주할 수 있다니.. <골드베르그 변주곡>은 그의 이름을 따 <굴드베르그 변주곡>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의 음악성만큼이나 괴벽은 유명하다. 보통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그의 습성들은 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일례로 1955년도 골드베르그 음반의 녹음 당시 한여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코트와 머플러, 장갑까지 끼고 녹음실에 나타났다. 뉴욕의 물이 마시기 적당하지 않다고 캐나다에서 물과 다섯병의 약병까지 가지고 왔다. 또 녹음하기 전에 뜨거운 물에 손과 팔꿈치까지 20분이나 담갔다 꺼냈다. 또 그가 직접 가지고 온 매우 낮은 피아노 의자에 앉아 구부정한 자세로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했다. 또한 음악을 연주하면서 몸을 흔들어대고 표정을 쉴 새 없이 바꿔가며, 게다가 흥얼흥얼 거리는 그의 모습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우리에게 기묘한 모습으로 각인되었다.

하지만 그는 숨막힐 정도의 열기를 찾으며 감기에 걸릴까봐 강박증적으로 두려워하면서도 북극의 추위를 사랑했고, 청중 앞에서 연주하는 것보다 녹음 기술을 신뢰했던 그였지만, 녹음 기술로 제거될 수 있는 몸 동작의 자취, 잡음, 삐걱거리는 의자소리를 그대로 남겨두었다. 그가 피아노를 연주하며 입으로 따라부르는 허밍은 음반 녹음을 하는 데 골칫거리였다. 하지만 그의 독특한 음반은 지금까지 우리 귀에 그만의 매력이자 트레이드 마크로 우리에게 기억된다.


이 책은 작가 미셸 슈나이더가 글렌 굴드의 인생과 음악과 영혼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기록이다. 그의 일대기를 보통 전기문처럼 사실과 시간의 흐름에 입각하여 써나갔다기보다 예술가의 독특한 정신세계와 열정을 쫓아가는 기록이었다. 그의 글 속에는 굴드에 대한 애정과 그의 음악에 대한 동경들이 묻어나 있으며, 미셸 슈나이더 본인의 음악에 대한 열정도 느낄 수 있었다. 예술과 미학이라는 다소 난해한  철학적 서술이 많아서 읽기 쉬운 내용은 아니었지만, 굴드와 그의 음악에 대한 나의 관심과 열정으로 개인적으로는 매우 즐겁게 읽은 책이었다.

대중을 꺼려하고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살았던 그의 인생은 다소 어둡게 보이지만, 그의 음악을 통해 내가 느꼈던 첫 인상은 경쾌함과 즐거움이었다. 역시 그에겐 스타카토의 빠른 선율이 잘 어울린다. 그의 선율로 오후의 나름함을 날려버려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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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약속
로맹 가리 지음, 심민화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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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맹가리의 작품을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자기 앞의 생>,<새들은 페루에가서 죽다>라는 두 작품을 보며 굉장히 아름답다라는 생각을 했다. 작품 속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결코 행복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그가 이야기 하는 풍경과 느낌은 비극과 절망도 아름답게 보인다. 여자도 떠나고 새들조차 죽어 있는 더 이상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는 한적한 바닷가의 카페조차 서글픈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그것은 아마도 그가 작품 속에서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붙잡고 있는 '희망'이란 끈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불행한 유년 시기를 보냈지만 사랑의 마음을 가슴에 품고 사는 '모모' 가 아름답게 기억되는 이유도 바로 살아갈 이유를 찾은 그 사랑 속의 '희망' 때문이리라.
 

이 책속에도 절망을 모르는 모자(母子)가 등장한다. 바로 로맹가리와 그의 어머니이다. 이 소설은 로맹가리의 자전적인 소설로, 44살의 로맹가리가 8년 전 타계한 그의 어머니를 추억하며 자신의 30년 인생을 회상하는 내용이다. 유대인으로서 프랑스인의 긍지를 갖고 살아가는 어머니는 어린 로맹가리에게 끊임없이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프랑스인으로 살아갈 것, 장교가 될 것, 예술가가 될 것. 대사관이 될 것...등등...러시아에서 이름없는 배우로 생활했던 어머니는 자신의 열정과 꿈을 어린 자식에게 끊임없이 인식시킨다. 어떤 어려운 순간에도 자식에 대한 긍지와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던 어머니의 현세적인 소망을 이뤄주기 위해 로맹은 노력했고, 그는 실제로 프랑스의 위대한 외교관이자 예술가로 거듭나게 된다.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어머니와,어머니의 열정과 꿈의 대상으로서 삶을 살아갔던 로맹.. 두 모자의 관계는 서로의 삶을 살게하는 원동력이자 끊을 수 없는 삶의 굴레였다. 어머니는 로맹을 이 세상에 맞서 당당히 걸어나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었다. 어머니와의 희망에 대한 약속은 1,2차 세계대전의 죽음의 그늘 속에서도 그를 살아남게 했고, 전쟁의 고통 속에서도 글을 쓰는 데 몰두하게 했다. 그렇게 이 세상 속에 빛을 드러낸 작품이 바로 <유럽식 교육>이다. 이 책속에는 그가 작품을 쓰게 된 배경과 상황들이 모두 소개되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몇 가지 작품을 통해 단편적으로 알고 있었던 로맹가리란 작가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가 여러가지 필명을 사용한 것과, 불행하게 인생을 마감해야했던 그의 슬픈 운명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십 줄에 들어서야 나는 겨우 그것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그토록 어려서, 그토록 일찍, 그토록 사랑받는다는 것은 좋지 못한 일이다. 나쁜 버릇을 들여주기 때문이다.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어디에나 다 있는 일인 줄 알고, 또다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지나치게 요구하게 된다. 바라보고 갈망하고 기다린다.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 인생은 그 여명기에, 결코 지켜지 않을 약속을 당신에게 주는 것이다.<p.36>

 

나는 깨끗하게 패배하지 못하였다....... 횃불 때문에 내 손을 잃었을지언정, 그것을 잡을 준비가 되어 있는 모든 손들, 아직은 발휘되지 않은 숨겨진 우리의 힘, 잠재적이고 맏 태어나고 있는 힘, 모든 미래의 힘들을 생각하며, 나는 희망과 기대에 미소를 짓는다. 나는 끝에서 어떤 교훈도 어떤 체념도 이끌어내지 않았다. 나는 내 자신만을 포기할 뿐이며, 사실 그렇게 하여도 그다지 큰 지장은 없다. 아마도 내게 우정이 모자랐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단 한 존재만을 사랑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설령 그 존재가 자신의 어머니라 할지라도 <p.410>

 

어머니는 로맹의 인생의 모든 것이었다. 어머니를 잃은 로맹은 인생에 있어 삶의 이유와 희망을 상실하였을지도 모르겠다.

소설의 시작과 끝의 동일한 장소...어머니를 회상하는 그 빅서 해안에서 수천마리의 새들과 물개들을 바라보며 누워 있는 그의 모습은 마치 <새들은 페루에가서 죽다>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것처럼 서글픈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그의 소설같은 인생과 그가 쓴 작품들, 그의 사랑, 그의 희망...그의 삶이 이 책 한권에 모두 담겨있다. 한편의 영화를 본 것처럼 애틋하다. 웬만한 책을 읽고 울지 않는 내가 이 책의 마지막 장면을 보곤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절로 눈물이 떨어졌다.

아름다운 풍경, 아름다운 문장, 그리고 아름다운 이야기.... 로맹가리가 또 다시 나를 매혹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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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진, 세계 경제를 입다 부키 경제.경영 라이브러리 3
레이철 루이즈 스나이더 지음, 최지향 옮김 / 부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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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바지는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입을 수 있는 의류로 아마 대부분 사람들이 한두벌씩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옷장서랍 한칸이 청바지로 가득 차 있을 정도로 청바지를 즐겨입는다. 스키니를 비롯해 부츠컷, 반바지 등 종류도 다양하다. 너무 쉽게 그리고 옷 중에서 가장 부담스럽지 않기 때문에 마구  입지만, 단 한번도 청바지가 어떻게 내 손에까지 들어오게 되었을까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저 디자인 좋고 싸게 사입을 수 있다면 기뻤고, 지금 갖고 있는 청바지도 모자라서 새로운 상품이 나오면 또 사입을까 기웃거린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 청바지 하나가 내 손에 들어올 때까지 거쳐간 수많은 노동자들의 땀과 고통을 생각하게 되고, 청바지 하나라고 가볍게 생각되지 않는다.

 

이 책은 단순히 청바지의 제조과정이라든가 청바지의 유래 같은 단편적인 이야기만을 다루지 않는다. 그보다 훨씬 폭넓게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옷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이이야기를 취재하여 들려준다. 아제르바이잔에서 목화를 체취하는 소녀에서부터 캄보디아 섬유에서 일하는 노동자, 이탈리아의 원단 제조 업자와 뉴욕의 유명 디자니어에 이르기까지 두루두루 삶의 현장은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다. 전세계 국민들이 즐겨입는 청바지를 통해 작가는 세계 경제의 흐름을 이해하고, 현명한 소비, 책임있는 소비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적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있지 않다면 생산-소비 사슬을 저 아래에 있는 누군가가 대신 부담을 지고 있다는 것이다.

 

청바지를 통해 세계 경제, 국제 경제 시스템, 자유무역의 논리와 모순 등으로 인해 세계화된 시장에서 소외받는 약소국의 경제 현실과 열악한 노동 환경 대해 이야기하고, 더 나아가 환경 문제, 노동자의 인권 문제까지 폭넓게 전해준다. 세계 경제 동향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청바지 산업의 문제와 관세를 피하고 생산비 절약을 위해 이나라 저나라 돌다보니 청바지에 붙은 원산지의 표기가 무색할 정도이다. 또한 중국이 경제 시장에 부상함에 따라 값싼 노동시장을 찾는 각국의 경제 동향은 더욱 빠르게 변화한다. 이런 문제는 비단 청바지뿐만은 아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현대 우리나라 사회에 살고 있는 내 자신이 다행이다 생각되면서, 한편으론 너무 쉽게 사고, 쉽게 쓰고, 쉽게 버리는 우리의 소비 문화에 대해 생각해봤다. 청바지의 원료가 되는 목화를 얻기 위해 목화밭에서 땀흘리고 병들도록 일해도 제대로 된 노동의 대가를 못받아 청바지 하나도 사입을 형편이 안돼는 어린 소년, 소녀들의 얼굴을 떠올리면, 내가 입고 있는 청바지가 무거워진다. 또 청바지에 사용되는 염료가 얼마나 환경을 오염시키며, 또 그것을 제작하는 사람들의 건강을 해치는지 우리는 제대로 알고 입어야 할 것이다. 화학 약품을 뺀 유기농 청바지와 노동환경을 개선한 추가 비용들이 청바지에 포함된다면 가격은 당연히 올라갈 것이다. 무조건 값싼 상품을 좋아할 것이 아니라,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소비하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할 것이며, 그 이전에 과소비 욕망을 자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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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교사
재니스 Y. K. 리 지음, 김안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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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한가한 주말 오후 이책을 펼쳐들었다. 우울한 현재의 하늘 만큼 어두운 잿빛 느낌의 책이었다. '단순한 사랑이야기겠거니, 음악 이야기도 조금 더해지려나?' 라고 생각했던 나의 선입견은 전쟁이라는 소재와 더불어 금새 휘발되어 날아가버리고, 안타까운 마음과 무거운 후유증만이 남았다. 사랑의 마음까지 약하게 만들 정도의 참혹한 전쟁.. 절박한 상황에서 선택해야 했던 운명...그 선택 때문에 평생 괴로움에 빠진 남자...또 사랑 때문에 자신의 결혼을 파괴할 준비가 되어 있는 여자... 왜 등장하는 세 남녀 모두가 이렇게 어긋난 사랑을 하고 있는 건지..

 

배경은 2차세계대전 즈음의 홍콩이다. 전쟁 직전 그리고 전쟁 이후의 화려함과 전쟁의 참혹함이 교차하고, 1940년대와 1950년대가 교차한다. 그 둘의 시간적, 공간적 차이는 뚜렷하게 대조되어 홍콩 사회를 각인시킨다. 마치 전쟁으로 인해 변하는 사회구조와 인간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처럼...

 


1940년대 초, 영국인인 윌 트루스데일은 홍콩에서 매력적인 트루디와 사랑에 빠진다. 트루디는 유럽계혼혈이지만, 당시 홍콩의 상류층을 주름잡던 강하고 자존심 강한 여성이다. 그 둘의 행복했던 시간도 잠시....곧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두 남녀는 비극적 종말을 맞는다. 시대는 10년 후인 1950년대로 흐른다. 영국 시골마을에서 남편을 따라 홍콩에 온 클레어는 상류층 중국인 가정의 피아노 교사를 하며, 상류층 사회를 동경하며 따라가게 된다. 거기서 윌 트루스데일과 불륜스런 사랑에 빠진다. 이 세 남녀의 엇갈린 운명과 사랑이 이 책의 내용이다.

 

결국 사랑 이야기지만, 이 책을 통해 더 많이 느끼고 알게 된 것은 전쟁의 참혹함과 그 속에서 변하는 인간들의 모습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모반과 변절이 끊이지 않았고, 배신하는 인간들의 모습은 전쟁보다 더 비참했다. 트루디는 사회적 상황에 굴복하여 자존심을 버렸으며, 윌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트루디를 버렸다. 결국 상황이 인간의 마음을 약하게 했고, 사랑마저도 저버렸다. 전쟁 때문이라고 했지만 결국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나약함인 것이다.

 

"때로는 자기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경우도 있어." <p.447>

 

다행히 이 소설은 어두운 과거를 뒤로하고 어떤 희망적 암시를 주면서 끝이 난다.

이 소설을 통해 현재의 화려한 홍콩 뒤에 숨은 암울한 전쟁의 그림자를 봤고, 그 시대 홍콩 상류계급의 삶도 엿볼 수 있었다. 전쟁은 참혹하게 마련이지만, 이 소설 속에는 그 시대 홍콩의 실상이 너무나 자세히 그려져 있어서, 전쟁이라는 비극이 이땅에서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것임을 새삼 깨닫게 했다. 시대를 넘나드는 큰 스케일의 사랑 이야기 또한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이책으로 인해 마음은 조금 무겁지만 이런 소설을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더군다나 작가가 한인 2세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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