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약속
로맹 가리 지음, 심민화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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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맹가리의 작품을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자기 앞의 생>,<새들은 페루에가서 죽다>라는 두 작품을 보며 굉장히 아름답다라는 생각을 했다. 작품 속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결코 행복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그가 이야기 하는 풍경과 느낌은 비극과 절망도 아름답게 보인다. 여자도 떠나고 새들조차 죽어 있는 더 이상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는 한적한 바닷가의 카페조차 서글픈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그것은 아마도 그가 작품 속에서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붙잡고 있는 '희망'이란 끈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불행한 유년 시기를 보냈지만 사랑의 마음을 가슴에 품고 사는 '모모' 가 아름답게 기억되는 이유도 바로 살아갈 이유를 찾은 그 사랑 속의 '희망' 때문이리라.
 

이 책속에도 절망을 모르는 모자(母子)가 등장한다. 바로 로맹가리와 그의 어머니이다. 이 소설은 로맹가리의 자전적인 소설로, 44살의 로맹가리가 8년 전 타계한 그의 어머니를 추억하며 자신의 30년 인생을 회상하는 내용이다. 유대인으로서 프랑스인의 긍지를 갖고 살아가는 어머니는 어린 로맹가리에게 끊임없이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프랑스인으로 살아갈 것, 장교가 될 것, 예술가가 될 것. 대사관이 될 것...등등...러시아에서 이름없는 배우로 생활했던 어머니는 자신의 열정과 꿈을 어린 자식에게 끊임없이 인식시킨다. 어떤 어려운 순간에도 자식에 대한 긍지와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던 어머니의 현세적인 소망을 이뤄주기 위해 로맹은 노력했고, 그는 실제로 프랑스의 위대한 외교관이자 예술가로 거듭나게 된다.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어머니와,어머니의 열정과 꿈의 대상으로서 삶을 살아갔던 로맹.. 두 모자의 관계는 서로의 삶을 살게하는 원동력이자 끊을 수 없는 삶의 굴레였다. 어머니는 로맹을 이 세상에 맞서 당당히 걸어나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었다. 어머니와의 희망에 대한 약속은 1,2차 세계대전의 죽음의 그늘 속에서도 그를 살아남게 했고, 전쟁의 고통 속에서도 글을 쓰는 데 몰두하게 했다. 그렇게 이 세상 속에 빛을 드러낸 작품이 바로 <유럽식 교육>이다. 이 책속에는 그가 작품을 쓰게 된 배경과 상황들이 모두 소개되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몇 가지 작품을 통해 단편적으로 알고 있었던 로맹가리란 작가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가 여러가지 필명을 사용한 것과, 불행하게 인생을 마감해야했던 그의 슬픈 운명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십 줄에 들어서야 나는 겨우 그것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그토록 어려서, 그토록 일찍, 그토록 사랑받는다는 것은 좋지 못한 일이다. 나쁜 버릇을 들여주기 때문이다.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어디에나 다 있는 일인 줄 알고, 또다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지나치게 요구하게 된다. 바라보고 갈망하고 기다린다.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 인생은 그 여명기에, 결코 지켜지 않을 약속을 당신에게 주는 것이다.<p.36>

 

나는 깨끗하게 패배하지 못하였다....... 횃불 때문에 내 손을 잃었을지언정, 그것을 잡을 준비가 되어 있는 모든 손들, 아직은 발휘되지 않은 숨겨진 우리의 힘, 잠재적이고 맏 태어나고 있는 힘, 모든 미래의 힘들을 생각하며, 나는 희망과 기대에 미소를 짓는다. 나는 끝에서 어떤 교훈도 어떤 체념도 이끌어내지 않았다. 나는 내 자신만을 포기할 뿐이며, 사실 그렇게 하여도 그다지 큰 지장은 없다. 아마도 내게 우정이 모자랐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단 한 존재만을 사랑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설령 그 존재가 자신의 어머니라 할지라도 <p.410>

 

어머니는 로맹의 인생의 모든 것이었다. 어머니를 잃은 로맹은 인생에 있어 삶의 이유와 희망을 상실하였을지도 모르겠다.

소설의 시작과 끝의 동일한 장소...어머니를 회상하는 그 빅서 해안에서 수천마리의 새들과 물개들을 바라보며 누워 있는 그의 모습은 마치 <새들은 페루에가서 죽다>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것처럼 서글픈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그의 소설같은 인생과 그가 쓴 작품들, 그의 사랑, 그의 희망...그의 삶이 이 책 한권에 모두 담겨있다. 한편의 영화를 본 것처럼 애틋하다. 웬만한 책을 읽고 울지 않는 내가 이 책의 마지막 장면을 보곤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절로 눈물이 떨어졌다.

아름다운 풍경, 아름다운 문장, 그리고 아름다운 이야기.... 로맹가리가 또 다시 나를 매혹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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