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부르는 숲 - 미국 애팔래치아 산길 2,100마일에서 만난 우정과 대자연, 최신개정판
빌 브라이슨 지음, 홍은택 옮김 / 동아일보사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나를 부르는 숲~!

이 제목이 왠지 설레였다. 십년 이상 운동이라곤 시도조차 해본 적이 없는 내가 한달 사이 세번이나 산에 올랐다. 서울 근교의 산이었지만, 각각의 산마다 몇개의 봉우리와 골짜기를 넘어 능선을 따라 두손으로 암벽을 올랐다. 힘들었지만 내 눈과 몸으로 직접 체험한 그 경험들은...지금까지 그저 정상을 오르기 위해 두발로 묵묵히 걸었던 산행과는 확실히 다른 경험이었다. 고작 세번 산에 오르고 숲이 나를 부르네..설레이네..라고 말하긴 좀 뭐하지만, 산에 가는 기쁨을 그 어느 때보다 지금 생생하게 느끼기에 이 책을 읽는 내내 그 감흥을 곱씹어 볼 수 있었다.

 

내가 올랐던 산과 브라이슨이 종주했던 애팰래치아 트레일(AT)은 말로 하기 민망할 정도로 규모면에서 어마어마한 차이가 난다. 하지만 자연을 마주 대한다는 의미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일상의 번잡함에서 잠시 벗어나 산세의 나무와 숲을 보고, 바람이 나무에 부딪치는 소리와 물소리 새소리를 듣고....또 땀흘린 후 맞는 서늘한 바람은 그 무엇보다 상쾌하다. 나 또한 자연의 일부가 된 느낌..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나를 찾은 느낌이다. 이 기쁨을 알기에 산이 주는 설레임을 지금 내 가슴에 품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빌 브라이슨이 애팰래치아 트레일(AT)에 도전한 종주 기록이다. AT는 조지아주에서 메인주까지 14개주를 관통하는 등산로로 6개월 이상 걸리는 대장정이다.(2,100마일, 3520km)  해마다 2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도전하지만 성공률은 10% 미만이란다. 이 힘든 산행을 결심한 브라이슨은 우여곡절 끝에 25년 전 유럽 여행길에서 그에게  600달러를 빗지고 갚지 않은 카츠라는 친구와 여행길에 오르게 된다. 카츠는 저자와 25년 동안 한번도 만난적이 없고, 코카인 소지로 체포된 경험이 있는 전과자에다가 못말리는 먹보에 뚱뚱한 체격을 가진 느믈느믈(?)한 사내였다. 등산 동반자로서는 최악의 파트너인 셈이다. 카츠와 함께하면서 고생도 더 많이 하고 여러가지 일들도 많이 겪게 되지만, 카츠 때문에 책을 읽는 난 얼마나 많이 웃었는지 모른다.

 

그들의 험난한 여정은 끝이 없어보였다. 밤이면 곰의 위혐으로부터 몸을 사려야했고, 눈에 갇히고, 비에 젖고, 대피소에서는 쥐들과 한바탕 혈전을 치뤄야했다. 또 무엇보다 가장 힘든 것은 하루에 수십킬로를 18kg이나 되는 베낭을 지고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먹을 것을 잔뜩 챙겨 짐을 꾸렸던 카츠는 중간에 하나씩 하나씩 물건들을 다 버리고 급기야 커피 필터까지 버린다.(커피 필터가 무슨 무게가 나가느냐고 저자가 따져묻자 "던지기에는 안성맞춤이거든, 펄럭거리며 천천히 추락하니깐" 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했던 카츠의 모습에 다시한번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들의 여정이 꽤 힘들어 보였지만 솔직히 책을 읽는 내겐 그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수가 없었다. 하루 7시간 동안의 등산 경험은 있지만, 그들과 같은 종주의 경험이 없기 때문에 ’그저 힘들겠거니’ 예상할 뿐이다. 이것이 간접경험의 한계인 것 같다. ^^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즐거웠다. 혼자 낄낄대며 읽었다. 브라이슨은 그들의 종주기록을 매우 재미있게 풀어놨다. 



나는 애팔래치아 트레일 종주의 백미가 상실에 있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모든 경험이 바로 스스로를 철저히 일상생활의 편리함에서 격리시키는 것. 코카콜라 한 잔에 마치 처음 마셔보는 음료수인 것처럼 넋이 나갔고, 흰 빵으로는 거의 오르가슴을 느낄 뻔했다. <p.91>

 

그가 행복해하는 이유는 곧 밝혀졌는데, 쥐를 일곱 마리나 잡았고 게다가 그것을 흡족하게 - 꼭 검투사라도 된 듯한 기분이라고는 말할 수 없어도 - 여겼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물을 마시려고 물병을 들어 올릴 때 물병 바닥에 털과 분홍빛의 살점 같은 것들이 아직도 달라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트레일에선 사람들이 얼마나 비정상적이 될 수 있는지가 나를 때때로 불편하게 했다. <p.157> 

 

나는 그에게 지도를 보여 주었다..... 우리가 지금껏 경험하고 극복해 온 것 - 모든 노력과 수고, 고통, 습기, 산들, 지긋지긋한 국수, 눈보라, 메리 앨런과의 지겨운 밤, 끊임없이, 지루하게, 끈덕지게 쌓아 온 마일리지- 이 고작 5센티미터였다. 머리카락도 그보다는 더 자랐을 것이다. <p.169>


 

이 책에는 그들의 종주 기록과 더불어 그들이 지나온 아름다운 대자연과 중간중간 만난 마음씨 좋은 여러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한다. 또 지층과 관련된 과학적 분석과 식물종의 이동, 미국 역사, 미국 관리국의 현실과 환경 문제 등에까지 광범위한 설명이 포함되어 있다.  내 리뷰를 읽다보면 자칫 웃긴 여행에세이가 아닐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속에는 심각하고 진지한 내용도 많이 담고 있다. 자연보호 정책과 트레일의 열악한 관리에 대한 행정당국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꽤 엿보인다. 빌 브라이슨이 진정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종주의 과정에서 해프닝보단 어쩌면 이런 내용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들은 결국 1329km까지 마치고 중간에 포기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실패가 결코 실망스럽지 않았다. 그런 종주를 결심한 그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전문 산악인도 아니고 게다가 카츠는 그 무거운 몸을 이끌고 그 많은 길을 걸었다는 것이 대단했다. 나로선 죽기 전에 시도조차 하지 못할 일들을 그들은 시작했다는 것이다. 또 무엇보다 힘든 상황에서도 유머와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았던 두 친구의 우정이 감동적이었다. 

 

어쨌든 나에게는 숲속에서 느끼는 시원한 바람같은 책이었다. 애팰래치아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볼 수 있는 사진이 수록되어 있지 않은 아쉬움이 있었지만 읽는 내내 상쾌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