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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우다, 공식 한국어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지음, 양희승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과학 기술이 발달되면서 인간은 예전보다 편하고 안락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난 커피포트에서 걸러진 커피를 홀짝이며, 인터넷을 통해 앉은 자리에서 세상 돌아가는 모든 일들을 보고, 또 이렇게 틈틈히 즐거운 블로깅을 하고 있다. 아무리 복잡한 계산과 정리라 하더라도 컴퓨터 하나로 간단히 해결되고, 이메일이나 메신저 하나로 세계 곳곳과 연결하여 통화가 가능하다. 얼마나 간편한 세상인가? 세상이 빠르고 간편해졌다는 의미에서의 진보라고 한다면 상상을 초월할 만큼 확실한 발전을 이루었다. 하지만 발전된 진보가 시간이 빨라진 만큼 사람들로부터 시간을 빼앗아버린다는 것을 우리는 종종 잊고 있는 것 같다.;; 우린 늘 시간에 쫒기는 생활을 하고 있지 않은가?(나만 그런가 ;ㅋ)
과연 우리는 예전에 비해 편해지고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사내 메신저로 오더가 내려오고, 모든 업무가 내가 직접 움직이지 않아도 전자와 네트웍으로 신속하게 처리되지만, 메신저는 편리함을 넘어선 사원들을 하나의 네트웍으로 통제하는 강력한 철창이다. 이메일로 간단히 외국의 친구와 서신을 교환할 수 있지만 손수 글을 써서 우편으로 보내는 것에 비해 정겹고 따뜻한 맛은 떨어진다. 이밖에도 현대사회의 기술발달과 문명에 대해 설명할 것들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사회가 진보하고 발달되었다면, 우린 전보다 여유롭고 안락한 생활을 누려야하지만 실상 우린 전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전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또한 기계를 통한 교류는 인간관계를 더욱 단절시키고 있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진보인가?
전에 리프킨의 '엔트로피'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는 엔트로피로 세상의 이치를 정의하며, 세계는 점점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고, 결국 세상은 카오스의 세계, 즉 혼란과 파멸로 가고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사회의 저엔트로피 방향을 모색하자고 주장한다. 난 이 책에서 리프킨의 이론과 논리는 이해가 되었지만 '과연 저엔트로피로의 방향 전환이 가능할까?' 라는 의심을 접을 수가 없었다. 이론적으로는 타당한 것 같지만 '실제적 적용이 가능한가'에 대한 의심이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진보를 거꾸로 돌리자는 이야긴 것인데..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단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책 <오래된 미래>를 통해 저엔트로피로의 방향 가능성을 조금이나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가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일부 사회에선 자연스럽게 그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예를 들면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식문화나 주거문화 같은 것들이 자연친화적인 방향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유기농 식생활, 흙을 이용한 주거환경 개선 등등.. 각종 인스턴트 식품과 그것도 모자라 유전자 조작 식품까지 판치는 요즘 세상에 이런 자연친화적인 방향으로의 모색은 확실히 저엔트로피로의 전환 가능성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이 책을 쓴 작가가 주장하는 바도 결국 낭비를 지양하고 자연을 효율적으로 절약하며, 자연친화적인 삶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이 책의 작가 헬레나 노르베르는 라다크란 나라에서 십수년을 살면서, 그곳 사람들의 생활, 습성, 문화를 모두 습득하고 경험했다. 라다크는 히말라아 지역을 넘어 카라코람의 하부에 위치한 2000피트에 이르는 고봉과 계곡으로 이루어진 나라다. 자급자족하는 농경생활을 하며, 자연을 아끼고 검약의 중요성을 생활화하며 살아가는 민족이다. 그 검약 속엔 불교의 가르침이 존재한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 못한 생활이지만 자연 속에서 늘 여유있고, 행복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많은 수의 미개발 지역 사람들은 자연과의 친밀성이라는 측면에서 문명사회보다 더 강한 힘과 심리적 안정감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70년대 중반 그들 앞에 관광 지역과 경제 개발이란 이름으로 현대 문명이 침투하면서 라다크 사회는 변화한다. 인간들이 변하고, 사회도 점점 각박하게 바뀌어 간다. 이 모든 변화를 지켜보며 작가는 진정한 의미의 진보와 행복한 삶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행복하게 살던 라디크 사람들은 서구의 규범을 따르기 시작하면서부터 오래도록 유지해온 평온함을 잃어버렸다. 서구 문물 유입 속에 자신들이 낙후되고 가난하단 생각을 하게 되었고, 자신의 고유 문화에 대해 열등의식에 사로잡혔다. 물질적인 욕구에 크게 개의치 않았던 소박한 사람들이 돈에 사리사욕을 챙기기 시작했고, 빈부격차가 커졌다. 생활 속도는 빨려졌고, 사회적 유동 경향이 증가하면서 친밀했던 인간관계가 소원해졌다.
소위 말하는 글로벌경제와 증대되는 과학기술의 영향력은 자연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인간 관계를 단절시킬 뿐만아니라 자연과 문화의 다양성도 파괴한다. 서구사회의 획일적 문화는 강력한 강제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인간의 폭넓은 자아개념과 문화까지도 말살시킨다. 작가는 인간과 자연의 생명들 사이의 연결고리가 완전히 파괴되는 바로 그 지점에서 경제활동이라는 의미의 성장이라는 단어가 미화되어 사용된다는 현실이 참 아이러니컬하다고 하였다. 제3세계 국가의 환경문제와 기아문제는 현재 경제개발의 모델에 뭔가 잘못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작가는 꼭 사회적, 생태학적 균형을 희생하지 않고서도 그들의 삶의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작가는 제3세계 국가가 스스로 미래에 대한 자율적인 결정을 할 수 있는 '반개발'과 기술의 획일성에 반대하는 것과 함께 지역자원의 지식, 기술의 최대한 활용을 장려해야한다고 말한다. 또 경제와 에너지 부분에 있어서도 탈중심화가 필요하며, 농업의 합당한 권위를 복원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불필요한 무역을 줄일 것을 시사하고 있다. 그것은 보수주의를 고수하는 차원이 아니라 세계 전역의 자원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그 활용에 있어 평등함을 유지하기 위함이라 말한다.
앞서 내가 생각한 것처럼, 현대 사람들은 현대의 진보를 과거로 절대 돌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자연 그리고 인간의 본성과 조화를 이루는 근원적인 패턴으로 바꾸려는 노력을 해 볼 수 있다. 라다크의 원시 사회에서 배울 점은 바로 그런 것들이다. 인간 중심의 자연 친화적인 새로운 운동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이런 운동은 '새로운'이 아니라 라다크 그리고 훨씬 그 이전부터 우리 사회가 해오던 오래된 것들이다. 머지 않은 미래에 바로 이런 숭고한 가치를 재발견하고 새로운 전환점을 모색하는 일들이 곧 일어난다. 아니 이미 시작되었다. 그것이 바로 '오래된 미래'이며, 이것이 작가가 이 책을 통해 그리고 라다크로부터 우리에게 깨우쳐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