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모른다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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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읽은 안나카레니나의 첫 구절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라는 말이 문득 떠오른다. 이 책은 행복해보이지 않는 한 가정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이 가족이 불행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 가족은 이혼, 재혼, 다문화, 배다른 형제 등 평범하지 않은 복잡한 문제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가 있다고 다 불행한 가정은 아니다. 이 가족의 근본적인 불행은 그들 각각 구성원의 소통의 부재에 있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한집에 묶여 살고 있을 뿐, 이들의 관계는 타인보다 더 허술하고 차갑다.

 

아버지는 자신이 실제 무슨 사업을 하는지 가족들에게 숨기고 있다. 화교 출신 새어머니는 대만에 오래된 애인이 있으며 지금까지도 연락을 끊지 못하고 있다. 큰딸은 부모의 이혼으로 반항적인 문제아로 성장해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고 밖으로만 떠돈다. 아들은 큰딸과 달리 자신을 억누르고 겉으로는 얌전하게 순응하며 살았지만, 학교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이따금 충동적인 방화로 자신의 내면을 표출한다. 새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초등학생 막내딸은 자신의 존재감에 대한 방황으로 어린나이지만 웃음도 잃고, 암울한 아이로 성장한다.

 

이 책은 어느 일요일 오전 한강변에서 어떤 남자의 표류한 시체가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이 시체가 누구인지, 책속 가정과 무슨 관계인지 모른다. 하지만 초등학생 막내딸이 실종되고, 연관 없을 것 같은 두 사건의 관계가 조금씩 좁혀지면서 이 가족의 복잡한 실상 또한 서서히 드러나게 된다. 가족이란 틀속에 타인과 다름없는 삶을 살다가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인해 그들 각각은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게 되고,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치부를 가리기 위한 위선적인 행동들은 나의 마음을 참 안타깝게 만들었다. 하지만 실종 기간이 길어지고, 딸을 찾고자 하는 가족들의 마음이 한마음으로 절박해지면서 소원했던 가족들이 뭉치고 마음을 트게 된다. 그렇게 틀어지고 골이 깊었던 관계가 하루아침에 해결되긴 어렵겠으나 '아~ 가족이란 이런거구나...'마음 한켠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정이현씨 작품은 처음이다. 그냥 별 생각없이 집어 읽은 책이었는데. 시간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다. 이 작품은 내게 꽤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단순히 한 가족이 어떤 사건을 계기로 화합하는 이야기를 그렸다면 조금 싱거웠을 것 같다. 또 가족간의 사랑이 역시 중요하다는 메세지만을 담았다면 그것 또한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 것 같다. 이 책에서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이기적인 생각이 앞서는 서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 과정은 서로에게 또 상처를 준다. 이 책의 전체적인 느낌은 사실 조금 차갑다. 하지만 이 모든 불편한 상황들이 가족이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서로를 감싸고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해피앤딩이 좋긴 하지만, 그 과정들을 담담하게 억지스럽지 않게 마무리되어 좋았다. 내 마음 한켠이 따뜻하다고 느낀건 바로 그런 점 때문이다. 희망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 책속에서는 직접적인 화합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저 희망으로의 한발을 내딛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너는 모른다'라는 이 짧은 제목에서 느끼는 점은 참 많다. '너를 모른다'가 아니라 '너는 모른다'이다. 그 뉘앙스의 차이는 크다. 내가 마음의 문을 닫고 있는 한 상대 '너'는 절대 '나'를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상대를 알기 위해서는 내 마음의 문부터 조금 열고 상대에게 다가서야 한다. 그래야 네가 날 알 수 있고, 나는 너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타인과 교류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가족조차도 소원해질 정도로 우리 사이에 개인주의와 단절의 문제는 심각한 것 같다.

작가 정이현씨는 이 책을 통해 한 가족의 단절을 사건과 더불어 극단적으로 다루고 있지만, 이 책을 통해 나와 나의 가족,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했다.

 

'나는 진정 상대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으며, 상대는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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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 - 톨스토이와 안나 카레니나, 그리고 인생
석영중 지음 / 예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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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문학의 거장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작가이지만, 내겐 그가 매우 생소했다. 부끄럽지만 그의 작품 중에 읽은 것이 하나도 없었고, 최근 몇년 전까지 만해도 문학과는 거의 동떨어진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전 그의 <크로이체르 소나타>란 단편을 처음 읽게 되었다. 톨스토이에 대해 사전 지식이 전혀 없었던 내겐 그 작품이 굉장히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톨스토이가 어떤 마음으로 이런 작품을 쓰게 되었는지 그의 사상에 의심이 생겼다.

흔히 말하길 소설은 어디까지나 소설이므로 현실과 허구를 적당히 구별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어떤 작품이든지 예술가의 사상이나 내면이 조금은 녹아들게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한 사람의 작품은 어느정도 그 사람만의 '성향'이란 것을 갖게 되며, 예술가와 작품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떠오르게 된다. 미술이든, 음악이든, 책이든 단순히 작품의 외면적인 감상도 즐겁지만 예술가의 마음을 알게되면 그 작품이 더 쉽게 이해된다. 특히 소설은 글로써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에 더욱 그 마음이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다. 소설 속 인물들이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 중에는 작가의 마음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으며, 특히 톨스토이의 소설은 작가의 성향이 더 짙게 나타나는 것 같다. <안나카레니나>의 소설 속 인물 '레빈'의 결벽증적인 도덕성과 권위주의적 성격, 농업에 대한 견해 등을 보면 마치 톨스토이 분신처럼 느껴진다.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 >
이 제목이 처음에는 매우 격양적이고 부정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물론 그의 <크로이체르 소나타>란 작품을 읽고 그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 그다지 좋지 못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도덕에 미친 노인' 톨스토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이 책은 '미치다'라는 격양된 제목처럼 톨스토이를 비판하는 책은 아니다. 그의 사상이 많이 드러난 안나카레니나라는 작품을 분석하고, 톨스토이의 인생관과 삶에 대해 알아보는 내용이다. 또 그의 삶과 생각이 작품 속에 어떻게 영향을 주고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설명되어 있다. 그의 인생과 생각은 작품을 읽는 것보다 더 흥미로웠다.
 

<안나 카레니나>를 막 읽은 직후 이 책을 집어들었기에 그 감회는 더욱 짙었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의문을 가졌던 장면,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들이 마치 퍼즐맞추기 처럼 끼워지면서 톨스토이의 안나카레니나라는 거대한 작품이 내 속에 완벽하게 스며들었다. 또한 문학의 거장 톨스토이란 인물이 강렬하게 각인되었다. 그냥 별생각없이 지나쳤던 구절구절들이 톨스토이의 사상과 맞물려 다시한번 곱씹어졌다. 90권 이상의 방대한 작품을 남겼다는 톨스토이...그의 작품 중 고작 두권을 읽고 그를 모두 알았다고 하기엔 너무 비약적인 이야기 같지만, 이젠 톨스토이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톨스토이의 삶은 소설 못지 않게 극적이다. 귀족으로서 방탕한 생활을 했던 그는 중년을 넘기면서 급격하게 금욕주의 현자로 거듭나게 된다. 그는 육체적 쾌락을 즐기면서도 육체적 사랑에 병적인 혐오감을 갖고 있었고, 합법적인 성관계를 위해 결혼하였지만 결혼하지 말것을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90권이나 책을 썼지만 말을 믿지 않았고,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였지만 지성을 증오했다. 시골에서 살아야 하고, 육체노동을 해야하며, 곡물과 채소를 먹어야 한다고 했다. 또 예술을 증오했으며, 죽음을 생각하는 삶을 살았다. 그의 이중적 성격과 병적일 정도의 도덕성에 대한 집착은 가정생활의 안정을 깼고, 결혼 생활에도 불행을 초래했다. 아내와의 불화는 말년까지 끊임없이 이어졌다.

석영중 교수님의 이책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에서는 그가 주장한 나쁜 삶과 좋은 삶이 무엇인지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방탕한 젋은 시절의 나쁜 삶과 도덕적인 삶을 살고자 했던 중년 이후의 삶을 그대로 이야기하는 바로 톨스토이의 극적인 삶 자체인 듯하다. 그의 작품 <안나카레니나>에서 안나가 비극적 결말을 이룰 수 밖에 없어던 이유는 단순히 그녀의 사랑이 불륜이라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톨스토이는 안나를 죽임으로 인해 상류층 사회의 모든 생활 방식과 습관, 사랑과 연예 등 모든 것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귀족으로 태어나 성공한 작가로 살면서도 끊임없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했던 톨스토이..그가 주장한 내용의 일부는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그는 인간의 진정한 가치를 위해 고민했던 것이리라...또한 그 고민을 진정 실천코자 하였던 부분도 높이 살만하다. 그의 삶 자체가 소설이고, 톨스토이란 인간 자체가 극적이다. 앞으로 그의 또 다른 작품들을 읽을 때는 그의 인생관과 더불어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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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를 노려보는 사람들
존 론슨 지음, 정미나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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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봤던 외화 시리즈 V에서는 초능력을 가진 소녀가 나온다.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그 소녀가 어느 한곳을 집중해서 쳐다보거나 생각하면, 벽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나가 떨어지고 하던 장면이 생각난다. 굉장히 흥미진진하게 봤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가끔 초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텔레비젼에 나와 쇼를 하는 것을 본다. 숟가락을 구부리고, 상대의 생각을 알아맞추고, 벽을 통과하는 등 상식적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신기한 일들을 눈앞에서 펼쳐 보인다. '저건 다 조작극이고, 뻥일거야.'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시키는대로 진지하게 따라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또한 초능력이란 것에 대해 관심이 생긴다.

 

친한 친구 중에 물리학도 친구가 있는데, 어떤 것을 이야기하거나 볼 때, 그 친구는 마치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듯한 시선으로 생각하거나 말을 한다. 내가 굳이 물리학이란 것을 말한 이유는, 내 주위의 물리학도들은 조금씩 이런 골때리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내 주위만 이상한 건지 모르겠지만...;;(친구들은 끼리끼리 모인다고 너도 꽤 골때리거든?? 하며 다른 친구가 나더러 그런 말을 하더라;;) 암튼;; 모든 물리학도들을 싸잡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칭찬을 하고 있는거다. 그 친구 때문에  이런 초능력, UFO, 외계인 등에 대한 소재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각종 음모설이나 조작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으며, 모든 의심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편에서는 초능력이나, UFO, 외계인 등에 대해 믿고 있는 나 자신을 알게 되었다. X파일이나 외래 생명체에 대한 엉뚱한 이야기는 너무너무 재밌다.

 

염소를 노려보는 사람들.... 이거 제목부터 확 당겼다. 염소를 노려보면 염소의 심장을 멈추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금 소름끼치는 내용이긴 하지만, 어쨌든 초능력과 관계된 흥미진진한 사건들을 기대하고 이 책을 펼쳐들었다. 하지만...내가 주절주절 늘어놓은 앞선 말과 같이, 이런 관심으로 이 책을 펼쳐들다간 크게 실망하게 된다. 이 책은 생각보다 암울하고, 그다지 흥미롭지 않으며, ' 아 이건..쫌 아닌데...'라는 생각과 함께 나의 기대는 우주밖으로 멀리 날아가버렸다. 솔직히 책장을 넘기기 힘들 정도로 읽기가 싫어졌다.

 

이 책은 미 육군 정보부를 토대로 미국의 '초능력부대'에 대한 개발 음모를 파혜친 책으로, 그와 관계된 여러 인물들을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된 실제 이야기이다. 초능력이라는 흥미진진한 쇼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인간을 죽이기 위한 초능력 살상 인력을 훈련하고 계발하는 실상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1970년대, 미국 내 최고 인재들에 의해 어떤 비밀부대가 창설되었는데, 이들은 초능력이나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여 살상하는 인력을 양성하는 부대로, 실제 테러와의 전쟁 이면에서 싸우기도 했다. 이 비밀부대를 추적하는 내용을 보면 이 특수부대가 지난 30년간  벌어진 기상천외한 활동들에 놀라게 된다. 왜 이라크 포로들에게 하루종일 메탈리카 노래와 보라색 공룡 바니의 노래를 크게 틀어놓는지, 100마리 염소들이 울음소리를 못내게 처리되어 특수부대 사령부에 은밀하게 들여지는지, 비밀리에 양성되는 제다이 전사들의 정체는 무엇인지..등등 .. 몇년 전 떠들썩했던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의 이라크 포로들의 성적 학대 사건 또한 이면에 군정보부나 이런 초능력부대도 관여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또한 지금도 그런 기묘한 일들이 계속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전쟁 이면에 미국이란 나라의 광기가 어디까지 갈껀지, 기묘한 군사훈련과 중심부에 감춰진 기상청외한 사건들을 폭로하고 있었다. 또한 미국 CIA 또한 사람을 죽이는 조직이라는 새삼스럽지 않은 내용도 담고 있었다.

인간을 철저하게 파괴하는 것을 육체보다 정신이 더 한 것 같다. 육체적 고통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수도 있지만, 정신적 충격은 평생 치유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앞으로의 살상무기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원격조정하여 인간의 정신을 파괴하고, 염력으로 대량으로 학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염소를 노려보는 사람들'이란 우스꽝스러운 제목과 표지가 더이상 내게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그저 섬짓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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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하는 공포 산책자 에쎄 시리즈 2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함규진 옮김 / 산책자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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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릴 때는 악몽, 성적, 전쟁, 죽음 등에 대한 다소 구체적이고 비교적 단순한 문제에 대한 공포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고 여러가지 경험을 하면서, 내가 느끼는 공포는 딱히 꼬집어서 뭐 때문에 불안하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넘쳐났다. 가장 큰 불안과 공포는 알 수 없는 나의 미래일에 대한 것이겠지만, 그것은 단순히 내 문제만을 포함한 것이 아니다. 범죄, 고용불안, 경기침체, 주식폭락, 환경재난, 질병, 테러 등의 문제는 한 국가 사회를 넘어 전세계적인 문제로 확장된다. 뉴스나 신문을 보면 온통 그런 기사들로 도배되어 있다. 그런 모든 일들이 나만 피해가란 보장이 있는가?

 

바우만은 공포가 가장 무서울 때는 그것이 불분명하고, 불확실하며, 포착이 불가능할 때라고 하였다. 대처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야말고 가장 큰 공포일 것이다. 공포의 본질을 꽤뚫어 볼 수 없기 때문에, 공포를 퇴치하려 한 일들이 더 큰 공포를 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미국은 테러에 대한 공포 때문에 먼저 선제공격을 쏟아붓는 일들을 저질렀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전세계적으로 더 큰 테러의 위협을 야기시켰다. 우리가 세균을 퇴치하기 위해 쏟아부은 강력한 항생제들은 오히려 인간의 면역력을 떨어뜨려 또 다른 질병의 위협에 노출되게 만들었다. 이렇게 공포는 또 다른 공포를 파생시키며, 우린 각종 공포 속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각종 공포의 유형에 대해 새롭게 조명한 책이다. 조금은 심리학적이거나 구체적인 어떤 것을 예상했던 난 다소 난해하고 모호하며, 포괄적인고 거대한(?) 내용이 처음에 쉽게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바우만이 말하는 '유동적 공포'의 유형이 단순히 개인의 심리적인 문제가 아닌 전세계적인 글로벌 공포로서의 접근과 공포의 근원을 근대사회와 연결하여 파헤친 점들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바우만에 따르면 근대는 인간이 신과 자연과의 유대를 끊고, 인간 스스로 인간의 삶을 통제하기 시작한 세상이라 하였다. 그 통제의 힘은 합리성을 추구하는 '이성'이다. 하지만 그 합리성이 문제의 본질을 꽤뚫는 목적합리성이 아니라 일시적인 해결에 급급한 도구적합리성이 되었기 때문에 근대사회가 유동적이 되었다고 말한다.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공포를 극복하고자 이룬 근대문명의 도구적 이성은 '우회(detour)'라고 표현하였다. 즉, 장애물에 부딪칠 때마다 우회해 온 것이 근대적 발전이었으며, 이러한 유동적 근대와 기술 문명의 이면에 숨어 있는 불확정성과 통제 불능성에서 오는 공포가 바로 유동적 공포(liquid fear)이다. 유동적(liquid)이란 의미는 물처럼 구석구석마다, 틈마다, 흠마다, 스며드는 것이다. 유동적 공포라는 말은 상상을 초월하는 언제 어디서 예고도 없이 터질지도 모르는 가장 무시무시한 공포인 것이다.

 

바우만은 현대인들의 공포를 구체적으로 죽음, 악, 통제불가능한 것, 글로벌, 유동적 이란 것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악과의 공포라는 부분으로, 현대 사회의 인간관계에서 오는 불안과 공포를 조명하고 있었다. 상대에 대해 의심을 품고 혹시 배신할까봐 마음을 놓을 수 없는 불안한 현대인들..그런 이유로 더 넓은 친구과 동지관계의 네트웤 형성에 급급해진다. 휴대폰의 주소 속에 갈수록 더 많은 네트웤을 구축해 나가고, 배신에 대비해 양다리를 걸치는 수법들이 그러하다. 어쩌면 온라인에서의 이 블로그 습관도 인간관계의 불안 속에서 하나의 안정을 찾고 싶은 대비책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의 질적인 결핍을 양적으로 보충하려는 현대인들의 행태를 비판한다.

부의 불균형과 불평등도 사회적 공포를 가중시키는 주요 요인이며, TV나 영화를 통해 보여지는 살인이나 범죄에 대한 감각이 점점 무력해지는 세태도 꼬집는다. 서브프라임, 멜라민, 광우병, SARS 등은 통제 불가능 속에 세계화란 이름으로 전세계적으로 퍼져 나가는 글로벌 공포에 대한 부분도 꽤 흥미롭다. (공포를 흥미롭게 읽었다는 뉘앙스가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꽤 관심을 끄는 부분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공포의 대안은??

바우만은 이 부분에선 조금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솔직히 공포란 자체가 대안이 없음으로 인해 오는 불안감이 가장 큰 공포일 것이다. 대안이 있다면 공포가 야기되는 우려도 줄어들 것이다. 바우만은 공포를 직시하고 문제의 본질을 꽤뚫어 볼 수 있는 '지식인'의 역할에 주목한다. 하지만 단순히 지식인으로서만은 해결이 어렵고 지식인과 민중이 재결합해야하며, 전지구적인 해결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한다.

 

유동하는 공포... 솔직히 내게 읽기 쉬운 책은 아니었다. 밑줄을 하도 많이 그었더니 책이 너덜너덜해졌다.

바우먼..이 사람 같은 말을 왜이렇게 어렵게 쓰는지...내가 이 책을 다시 재번역한다면 쉽게 고치고 싶은 문장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ㅎㅎ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라는 공포가 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느낀 가장 큰 공포였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현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읽어 볼만한 책이다. '공포' 그것은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것이기에..그것의 본질을 한번쯤 이렇게 정리해 둘 필요는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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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이체르 소나타 (반양장) 펭귄클래식 3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기주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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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단편 작품의 제목인 <크로이체르 소나타>는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9번인, 익숙한 발음으로 <크로이처 소나타>에서 따온 것이다. 제목에서 느껴져 오는 친근함과 (크로이처 소나타는 내가 좋아하는 바이올린 소나타 중 하나이다.) 내게 거의 불모지인 러시아 문학에 대한 호기심으로 톨스토이의 단편집을 선택했다. 단편집으로 가볍게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지만, 생각보다 무겁고 충격적인 내용에 조금 당황스러웠고, 화려하고 낭만적이라 여겼던 <크로이처 소나타>가 톨스토이에겐 끔찍하게 느껴진 음악이었다는 것이 더 당황스러웠다.

 

이 책은 <가정의 행복><크로이체르 소나타><악마><세르게이 신부>의 4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4편의 단편은 모두 사랑을 다루고 있지만, 각각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사랑에 대한 느낌은 너무 다르다. 그 내용과 관점의 변화는 한 작가가 썼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복이 심하고, 무엇보다 그것이 톨스토이 자신의 내면을 반영한 것이기에 작품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그의 인생관에도 관심이 생겼다. <가정의 행복>은 그의 초창기 작품으로 사랑에 대해 다소 냉소적인 경향이 있긴 하지만 비교적 안정적이고 순수하다. 하지만 뒤의 세 작품에서는 그 내용도 그렇지만, 성과 사랑에 대한 톨스토이의 가차없는 관념들에 더욱 충격을 받았다.  특히 <크로이체르 소나타>는 내용에 담긴 성 묘사가 노골적이라는 이유로 1890년 금서가 됐었다고 한다.

 

그럼 4가지 작품 중 <크로이체르 소나타>에 대한 인상만 조금 더 남겨 본다.

이 작품은 주인공인 내가 기차 안에서 만난 포조드니셰프라는 이름의 남자로부터 그가 자신의 아내를 살해하는 과정의 이야기를 듣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의 본질, 섹스의 추악함, 아내에 대한 의심, 그리고 살인에 이르는 이 남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어찌나 차갑고 극단적인지, 포조니드셰프와 톨스토이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아직 톨스토이란 작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그가 왠지 거북하게 느껴졌다. 작품 하나로 작가에 대한 선입관을 가지는 것은 아니지만, 톨스토이 자신도 이 소설의 후기에서 그 자신이 포즈드니셰프와 같은 의견임을 선언했다고 한다.

 

포조드니셰프는 낭만적인 사랑을 비난하고, 사랑은 육체적 쾌락일 뿐이며, 성욕만 왕성한 사회를 비판한다. 모든 수단을 다 이용해서 남자를 유혹하는 여성은 창녀와 일반 여성이 다를 게 없으며, 남자들은 그저 여자를 사고 쾌락만 추구함으로서 인간적인 상호관계를 피한다고 지적한다. 도덕적 관계 없이 쾌락만 쫒은 것은 가작 큰 죄악이며, 따라서 인류는 멸망해야한다는 충격적인 말을 한다. 인류 모두가 금욕을 실천하면 삶의 목적을 이미 성취한 것으로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포조드니셰프는 도덕적으로 추잡한 삶을 살면서도, 안정된 계층의 예의바른 아내를 맞아 결혼을 한다. 그는 결혼 자체를 사기극이라 생각하였고, 아내에게 기대하는 것은 오로지 성적 쾌락 뿐이었다. 하지만 자신은 방탕할 망정 아내는 정숙하고 순종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늘 질투의 감정에 사로잡혀 괴로운 결혼생활을 보냈다. 아내는 다섯 아이를 키우며, 작은 취미 생활로 바이올린을 연주하였는데, 어느날 바이올리니스트인 한 남자가 나타나면서 상황은 더 나빠진다. 아내와 그 남자가 베토벤의 크로이처 소나타를 함께 연주하는 것을 보고 질투심에 사로잡혀, 끝내는 아내를 살해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사상, 내용, 줄거리, 결말 모두가 충격적인 이 작품.... 이것이 안타깝게(?)도 내가 처음 읽은 톨스토이의 작품이기에, 왠지 톨스토이란 인물에 대해 이상한 선입관이 생겨버렸다. 일일히 책속 대화의 내용을 인용하지 않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더욱 신랄하고, 차가우며, 무섭기까지하다. 책의 주인공 포조드니셰프, 아니 톨스토이란 사람 뒤틀려도 너무 뒤틀린 것 아냐?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크로이체르 소나타>가 가장 충격적이었지만, 나머지 작품들 또한 만만치 않다. 이 모든 내용들이 작가 톨스토이의 인생관을 많이 반영하고 있다는 후기 내용을 읽고, 톨스토이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호기심과 왠지 모를 거부감이 동시에 생겼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겨우 한 작품 읽었고, <안나카레니나>라는 거대한 작품을 바로 눈앞에 모셔두고 있다. 이 작품 또한 톨스토이 인생관이 많이 녹아있다 한다. 조금씩 조금씩 더 읽다보면 그에 대한 선입관도 바뀌리라 생각된다. 문학의 거장이며,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들을 즐겨 읽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고작 내 수준의 문학적 소양으로 그의 전 작품에 대한 섣부른 생각은 접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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