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이체르 소나타 (반양장) 펭귄클래식 3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기주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톨스토이 단편 작품의 제목인 <크로이체르 소나타>는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9번인, 익숙한 발음으로 <크로이처 소나타>에서 따온 것이다. 제목에서 느껴져 오는 친근함과 (크로이처 소나타는 내가 좋아하는 바이올린 소나타 중 하나이다.) 내게 거의 불모지인 러시아 문학에 대한 호기심으로 톨스토이의 단편집을 선택했다. 단편집으로 가볍게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지만, 생각보다 무겁고 충격적인 내용에 조금 당황스러웠고, 화려하고 낭만적이라 여겼던 <크로이처 소나타>가 톨스토이에겐 끔찍하게 느껴진 음악이었다는 것이 더 당황스러웠다.

 

이 책은 <가정의 행복><크로이체르 소나타><악마><세르게이 신부>의 4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4편의 단편은 모두 사랑을 다루고 있지만, 각각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사랑에 대한 느낌은 너무 다르다. 그 내용과 관점의 변화는 한 작가가 썼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복이 심하고, 무엇보다 그것이 톨스토이 자신의 내면을 반영한 것이기에 작품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그의 인생관에도 관심이 생겼다. <가정의 행복>은 그의 초창기 작품으로 사랑에 대해 다소 냉소적인 경향이 있긴 하지만 비교적 안정적이고 순수하다. 하지만 뒤의 세 작품에서는 그 내용도 그렇지만, 성과 사랑에 대한 톨스토이의 가차없는 관념들에 더욱 충격을 받았다.  특히 <크로이체르 소나타>는 내용에 담긴 성 묘사가 노골적이라는 이유로 1890년 금서가 됐었다고 한다.

 

그럼 4가지 작품 중 <크로이체르 소나타>에 대한 인상만 조금 더 남겨 본다.

이 작품은 주인공인 내가 기차 안에서 만난 포조드니셰프라는 이름의 남자로부터 그가 자신의 아내를 살해하는 과정의 이야기를 듣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의 본질, 섹스의 추악함, 아내에 대한 의심, 그리고 살인에 이르는 이 남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어찌나 차갑고 극단적인지, 포조니드셰프와 톨스토이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아직 톨스토이란 작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그가 왠지 거북하게 느껴졌다. 작품 하나로 작가에 대한 선입관을 가지는 것은 아니지만, 톨스토이 자신도 이 소설의 후기에서 그 자신이 포즈드니셰프와 같은 의견임을 선언했다고 한다.

 

포조드니셰프는 낭만적인 사랑을 비난하고, 사랑은 육체적 쾌락일 뿐이며, 성욕만 왕성한 사회를 비판한다. 모든 수단을 다 이용해서 남자를 유혹하는 여성은 창녀와 일반 여성이 다를 게 없으며, 남자들은 그저 여자를 사고 쾌락만 추구함으로서 인간적인 상호관계를 피한다고 지적한다. 도덕적 관계 없이 쾌락만 쫒은 것은 가작 큰 죄악이며, 따라서 인류는 멸망해야한다는 충격적인 말을 한다. 인류 모두가 금욕을 실천하면 삶의 목적을 이미 성취한 것으로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포조드니셰프는 도덕적으로 추잡한 삶을 살면서도, 안정된 계층의 예의바른 아내를 맞아 결혼을 한다. 그는 결혼 자체를 사기극이라 생각하였고, 아내에게 기대하는 것은 오로지 성적 쾌락 뿐이었다. 하지만 자신은 방탕할 망정 아내는 정숙하고 순종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늘 질투의 감정에 사로잡혀 괴로운 결혼생활을 보냈다. 아내는 다섯 아이를 키우며, 작은 취미 생활로 바이올린을 연주하였는데, 어느날 바이올리니스트인 한 남자가 나타나면서 상황은 더 나빠진다. 아내와 그 남자가 베토벤의 크로이처 소나타를 함께 연주하는 것을 보고 질투심에 사로잡혀, 끝내는 아내를 살해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사상, 내용, 줄거리, 결말 모두가 충격적인 이 작품.... 이것이 안타깝게(?)도 내가 처음 읽은 톨스토이의 작품이기에, 왠지 톨스토이란 인물에 대해 이상한 선입관이 생겨버렸다. 일일히 책속 대화의 내용을 인용하지 않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더욱 신랄하고, 차가우며, 무섭기까지하다. 책의 주인공 포조드니셰프, 아니 톨스토이란 사람 뒤틀려도 너무 뒤틀린 것 아냐?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크로이체르 소나타>가 가장 충격적이었지만, 나머지 작품들 또한 만만치 않다. 이 모든 내용들이 작가 톨스토이의 인생관을 많이 반영하고 있다는 후기 내용을 읽고, 톨스토이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호기심과 왠지 모를 거부감이 동시에 생겼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겨우 한 작품 읽었고, <안나카레니나>라는 거대한 작품을 바로 눈앞에 모셔두고 있다. 이 작품 또한 톨스토이 인생관이 많이 녹아있다 한다. 조금씩 조금씩 더 읽다보면 그에 대한 선입관도 바뀌리라 생각된다. 문학의 거장이며,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들을 즐겨 읽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고작 내 수준의 문학적 소양으로 그의 전 작품에 대한 섣부른 생각은 접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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