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읽었던 조너선 하이트가 쓴 바른 마음을 읽다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윤리적 사회를 건설하는 데 가장 중요한 원칙은 다름아닌 모든 사람이 항상 자신의 평판을 목숨걸고 관리하도록 만드는 것"
이라는 구절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윌리엄 제임스는 마음에 접근할 때는 '기능주의자' 입장을 취하고 그것이 곧 어떤 것을 탐구하고자 할 때는 그것이 더 커다란 체계안에서 어떤일을 하는 지 살펴보라는 것이다.
하여 사고는 무엇을 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렇다면 도덕적 추론의 기능은 무엇일까?
도덕적 추론이 자연선택에 의하여 형성되고 다듬어지고 정교해진 까닭은 무엇을까?
우리에게 진실을 찾아주려고, 즉 우리에게 올바르게 행동할 길을 알려주고, 잘못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비난하게 하기 위해서 였을 까?
내 생각은 도덕적추론이 발달한 것은 우리가 사회생활의 전략적 목표를 이루는 데 두움을 주기 위히서, 즉 우리의 평판을 관리하거나 논쟁에서 상대방을 설득하여 그를 내편, 혹은 우리편으로 끌어들이기위해서란 논리가 내게 더 다가 온다.
프란츠 드발이 뜬 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을 읽다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행정지구는 인간이 살아가기에 알맞은 온도를 유지하기 위하여 태양에서 적절한 거리를 위치하고, 지구의 대기에 포함된 산소는 이상적인 농도를 유지한다라며 우주가 우리 인간이 살기에 특별히 적합하도록 만들어졌다는 인간 중심원리을 역으로꼬아 드 발은 인간이라는 종이 지구의 환경에 얼마나 잘 적응하였는지에 대한 증거"라는 구절이 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란 말을 자주 듣는다, 인간이라는 단어 란 자체도 사람간의 관계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지 않는가?
드발의 책이나 조너선 하이트의 책을 읽으면서 나라는 존재가 60억 지구의 나이에 세월의 흔적들이 내 몸안에 누적되어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만든다.
나는 누구인가, 50대 중반의 나이로 이제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다.
살다보니 이런 구절이 내맘에 확 꽂힌다.
"윤리적 사회를 건설하는데 가장 중요한 원칙은 모든 사람이 항상 자신의 평판을 목숨걸고 관리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최근에 엘리언 워런슨의 책에 또 빠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