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러블 스쿨보이 2 카를라 3부작 2
존 르 카레 지음, 허진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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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러블 스쿨보이 2

존 르 카레 장편소설 | 허진 옮김 | 열린책들

존 르 카레의 첩보소설은 무척이나 진지하다. 그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지구상 어딘가에 꼭 이런 작전에 펼쳐지는 것만 같다. 그가 바로 첩보 전쟁의 일선에 선 산 증인이었다는 말은 바로 이런 실화적인 현실을 구사하는 능력에서 입증되는 순간들이다. 현대전은 물론 이런 양상보다 더 진화된 양식인 것같다. 탱크와 지상군이 왔다 가는 것도 전쟁의 대표적인 모습이지만 더욱 중요한 전쟁은 첩보전에서 시작되며 그 거대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게 패배하는 이유 또한 강한 군사력 보다 정보력, 그리고 그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러시아가 이번 전쟁으로 가스 장사를 해서 막대한 이익을 남겼다는 것은 무척 씁쓸한 사실이지만 말이다.

오너러블 스쿨보이 두번째 권의 시작... 첫번째 권에서는 스마일리가 돈세탁의 움직임을 포착해서 제리를 최일선으로 불러오는 것이었다면 두번째 권은 제리의 눈부신 활약상에 있다. 책 두권의 표지가 첫번째 권은 안경, 두번째 권은 신발이다. 왠지 전자는 스마일리의 안경을 상징하고, 두번째는 제리의 신발을 보여주는 듯하다. 재미있게 봤던 영화 [팅거 ,테일러,숄저, 스파이] 역시 영화 포스터에서 게리 올드만이 안경을 치켜든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었으니까... 안경은 스마일리의 상징으로 발로 뛰는 인물 제리는 신발을 상징하는 인물이리라...... .

돈세탁과 러시아 정보부와의 연결성을 찾아 스마일리는 제리가 보내주는 정보를 바탕으로 추적에 추적을 더한다. 제리 역시 그의 반경을 캄보디아에서 홍콩, 태국, 라오스 까지 넓히면서 사방 팔방 동남아시아를 누빈다. 그가 밝혀야할 진실... 그리고 숨어있는 진실...과연 드레이크 코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러시아의 자금이 모두 홍콩의 유력인사인 그에게로 몰리는 지금 이 모든 진실을 파해치는 것은 실로 목숨을 담보하는 일이다.

드레이크 코에게는 동생 넬슨이 있다. 공산주의 사상에 심취한 그는 러시아 정부를 위해 일한다. 그는 카를라 조직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일명 두더지일까? 드레이크 코에게 연인 리카르도의 목숨을 살려주는 대가로 대신 자신을 바친 여성 리지... 그녀는 기꺼이 드레이크 코의 연인이 된다. 사실 어쩔 수 없이... 이래저래 그를 거부하는 것은 죽은 목숨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제리는 아니다. 제리가 그녀에게 느끼는 연민... 그것이 무척 위험하다. 과연 제리의 거래는 성공할 수 있을까? 그것은 정말이지 무척이나 위험해보인다. 한걸음 더 나아가 스파이라면 당연히 하지 말아야할 금기를 건드리는 것같다.

과연 이 첩보작전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작전이란 어떻게 보면 통쾌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하다. 내것 하나를 내주어야만 남의 것 하나의 얻는 거래의 원칙을 따져봤을때 첩보란 명확한 거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내 것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스마일리가 자신의 소중한 동료를 과연 지킬 수 있을 것인가? 한가지는 분명하다. 제리 웨스터비는 고결한 스파이였다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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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클 사일러스
조셉 셰리던 르 파누 지음, 장용준 옮김 / 고딕서가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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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클 사일러스

셰리던 르 파누 지음 | 장용준 옮김 | 고딕서가

빅토리아 시대의 소설은 항상 그렇지만, 늘 흥미롭다. 책의 주인공 이름이 모드인 고로, 전에 읽었던 소설 사라워터스의 [핑거 스미스]가 계속 생각이 났다. 기괴한 삼촌인 사일러스는 핑거 스미스의 삼촌과도 닮아있다. 그 소양이 괴상하고 사이코적 특성도 엿보이는 고로 말이다.

소설은 한 소녀의 성장소설로 내게는 읽혀졌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도 못하고 그의 강압적인 성품에 순종만을 강요받아야 했던 소녀 모드는 그보다 더 한 환경으로 내쳐지면서 살기위해, 살아남기위해 변해야했다. 소녀 모드의 성장 소설과도 비슷한 [엉클 사일러스]는 초기에는 호의적으로 않게 그려진 인물이 후에는 호의적으로, 반면 첫인상에서는 호감을 주는 인물이 나중에 알고보면 희대의 사이코패스였다는 인물 설정이 흥미롭다. 그 인물들은 한마디로 모드의 마음가는대로 움직인다. 그만큼 소설 속 여러 인물들은 살아있다. 독자는 모드의 시선에서 모든 관계를 파악하며 그들의 동기, 선하거나 악한 동기를 재빨리 캐치해야한다. 유독 그럴 필요가 없었던 인물 두명이 있다면 바로 모드의 가정교사로 나온 마담 드 라 루지에르와 사일런스 삼촌의 아들 더들리가 그러하다. 그 둘은 처음부터 어떤 인상인지 파악된 인물로 모드의 경계대상이자 독자의 경계대상이 된 인물들 이었으니 말이다.

모드는 전형적인 가부장제의 희생양이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병을 그녀에게 철저히 숨겼으며 비밀이 들은 캐비닛도 그 안에 도대체 무엇이 있는지 정확히 알려주지 않는다. 그는 방백처럼 속삭이다가, 모드가 아들이길 바라는 말도 했다가 결국 비명횡사하고 말았다. 이미 예견된 죽음이었지만 모드에게는 그야말로 청천벽력같은 일이었다.

그 후 모드는 아버지의 유언대로 그녀가 어린시절 나고 놀았던 영지 놀을 떠나 낯선 땅으로 가야만했다. 바로 엉클 사일런스가 있는 바트램 호프로 말이다. 아버지의 죽음 전에 그녀에게 유독 두려운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닥터 브라이얼리라는 손님이었다. 아버지의 이상한 종교 스베덴보리 역시 생소했으며 강림술같은 것도 그녀에게는 다소 무서운 것이었다. 모든 첫 인상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그녀가 바트램 호프로 떠날때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것은 하녀인 메리 퀸스 뿐이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날카로운 촉으로 경고해주는 고모 모니카....

고모 모니카는 사일런스의 어떤 비밀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그녀는 또 마담 드 라 루리에르에 대해서도 경고하는 말을 서슴치않게 한다. 그녀와 절대 단둘이 있지말고, 그녀에게 음식을 맡기지 말라는 것.... 마담은 그 흉칙한 모습과 행동 등이 절대 악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끊임없이 모드를 교란한다.


모드는 과연 아버지가 뿌리내린 가부장제에서 삼촌이 덫을 친 어둠의 세계... 둘 다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인가? 도망이라는 것도 쳐본 적도 없는 순진무구한 소녀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사실 그 무엇이라도 해야한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은 사실 모드 그녀 자신의 생명이 달린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 인간의 초인적인 힘이 나오기 마련이다. 독자는 모드를 응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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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습관 - 글쓰기가 어려운 너에게
이시카와 유키 지음, 이현욱 옮김 / 뜨인돌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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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습관

이시카와 유키 지음 | 이현욱 옮김 | 뜨인돌

오랜만에 글쓰기에 관련된 책을 읽은 듯하다. 사실 이런 류의 서적은 000해야한다. 000해서는 안된다는 등 당위적인 표현이 많아서 (그런 책만 읽어서인가? ㅎㅎ) 다소 부담이 갔었는데, 이 책은 전혀 부담없이 술술 읽혔다. 쉬운 요리법을 알려주는 책 같다고나 할까... 그냥 썰고, 굽고, 올리면 끝인 간편한 쓰기의 밀키트같은 느낌이다. ㅎㅎ

우연히 인터넷을 서핑하다가 습관 잡기 프로그램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폭풍검색에 들어가서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앱을 찾고 설치했다. 밑미, 챌린저스 등 등이 있지만 요즘 내가 하는 것은 바로 챌린저스~ ㅎㅎ 미라클 모닝, 만보걷기에서 부터 소소하게 핸드크림 바르기, 팩하기 등 여러가지 도전 프로그램이 있다. 물론 글쓰기 프로그램도 있는데 이 역시 인기가 많은 도전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매일 5줄 일기를 쓰는 것에서부터 그날 하루 계획을 세우는 일, 블로그 쓰기 등 등이다. 또 다른 앱 밑미는 작가와 함께하는 보다 전문적인 프로그램이 있다.

이 책 [쓰는 습관]에서도 지인들과 여럿이 글쓰기 모임을 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나와있는데, 이렇게 온라인 프로그램을 활용해도 습관 잡기가 훨씬 수월할 듯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느 정도 일정금액을 내고 하는 도전이기에 승부욕도 생긴다. 손해 보는 것은 무척 싫어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 아니던가?

[쓰는 습관]에서 가장 인상적인 말은 딱 5분만이라는 단어였다. 흔히들 이것은 꼭 해야해, 오늘 끝내야해...등 등의 당위성을 스스로에게 지우면서 몰아붙이다보면 금새 싫증나고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왜냐면 인간은 본래 구속을 싫어하는 동물이기에 어느 정도 스스로의 자유를 허용함으로서 융통성을 발휘해야지만 결심이 오래 지속될 수 있다. 오늘 책 백 페이지 읽기가 목표라면 그 목표를 설정하되 시작은 단순하게 하는 것이 좋다. 아... 하기 싫어가 아니라 5분만 집중해서 읽어볼까? 스파게티 면이 익을 8분 동안 타이머를 맞춰두고 읽자... 등 등의 자신만의 일상 속 브레이크를 만드는 것이다. 이는 쓰기에도 해당한다. 저자는 짜투리 시간에 글을 쓰고, 5분만 하자 하는 결심이 10분이 되고 30분이 되는 기적을 보면서 많은 성과를 이뤄낼 수 있다고 한다. 아마 5분만...하다가 시간 가기의 기적이 펼쳐질 일이다.

비밀일기를 쓰는 것 역시 중요하다. 아무런 의식없이 스스로의 마음의 소리를 그대로 써내려가는 것... 그러다보면 마음의 찌꺼기까지 묻어나온다. 아...시원하다. 는 말이 절로 나올 것이다. 정기적으로 목욕탕에서 몸의 때를 밀어내듯이 마음의 때를 밀어내는 방법 중에서는 글쓰기 만큼 효과적인 수단도 없는 듯하다.

글은 사람을 연결시킨다. 어떻게든 써놓은 글은 누군가가 읽게 마련이다. 행여 자신의 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하면서 글쓰기를 망설이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쓰는 사람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몫이다. 저자 역시 이 점을 강조하다. 그래서 글을 쓸때는 누구나가 아는 사실이 아니라 내가 아는 사실이 중요하다고...바로 스스로의 생각이 중요한 법이다. 이 글을 읽고 누구든 쓰는 마음이 생겼으면 좋겠다. 당신의 생각...아무도 궁금하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누구 한사람에게라도 와 닿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된 것이다. 스스로 글을 쓸 이유를 열심히 만들자... 생활 기록자가 되자, 당신의 이야기는 당신 스스로가 가장 전문가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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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사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12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이동렬 옮김 / 민음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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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사건

오노레 드 발자크 | 이동렬 옮김 | 민음사

언제나 정치 이야기는 노잼이라고 생각해왔지만 최소한의 관심이라도 두지 않는다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도 그것을 막을 명분조차 없다는 생각에 할 수 있는 한 작은 관심이라고 기울이자고 생각했다. 사실 학창시절, 아니 20대 초반만해도 정치는 나와 상관없는 세계였고, 뉴스는 재미없는 프로그램의 하나라고만 여겼으니 말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름과 동시에 관심사도 변하고, 그 재미없는 정치가 사실 우리네 일상을 변화시키는 근본이라는 사실을 안 지금은 어쩔 수 없다. 그 한복판에 있음을 인정해야만한다.

발자크의 책 [어둠 속의 사건]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나폴레옹 집권 초기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 어떤 이는 실명으로 거론되어 있고, 어떤 이는 그렇지 않아서 처음에는 다소 소설인지...논픽션인지, 아니면 추리 소설인지 헷갈렸다. 하지만 발자크가 특정 사건을 모티브 삼어 그 사건을 여러모로 취재하면서 얻어낸 소재를 사실적으로 써낸 것이라는 것을 곧 이해할 수 있었다. 일명 정치 소설인 셈이다.

몰락하는 세력과 부흥하는 세력... 그 사이를 약삭바르게 헤엄치는 자들...어디서나 사회 혼란기에는 그런 이들이 존재한다. 공드르빌 영지를 둘러싸고 미쉬와 밀랭 사이에 벌어지는 다툼은 개인적인 투쟁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정치적이다. 혁명기 귀족의 삶, 그리고 대조되는 존재, 신흥 부르주아들... 시뫼즈 후작은 혁명에 저항한 전통 귀족이었다. 그는 혁명 시기에 처형을 당하고 그의 영지를 몰수됨과 동시에 국유 재산으로 매입된다. 그러자 말랭은 그 국유재산을 자신의 소유로 만든다. 변화하는 정치에 순응하면서 요리조리 줄을 대면서 말이다. 그 가운데 의로운 미쉬는 주인 가문을 위하여 영지를 되찾으려는 노력을 하지만 이는 곧 실패하고, 결국 억울한 누명으로 단두대로 향하게 된다.

발자크는 이 소설, 아니 이 사건에서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 몰락한 귀족의 편도, 신흥세력으로 떠오르는 부르주아편은 더더욱 아니다. 그는 변화가 어쩔 수 없고, 그 변화에 순응하여 올바른 길을 가야할 것을 강조한다. 발자크의 견해는 소설 속 도트세르나 샤르주뵈프 후작의 노인들의 말에서 나타난다. 세상은 변화할 수 밖에 없으며 그런 현실을 직시하고 타협해야한다고 말이다. 결코 극단으로 향하는 것만이 구원이 아닌 것이다.

흡사 초기 공산주의 시절을 보는 듯했다. 예의 혁명의 시절이라고 할만한 남과 북이 갈라져서 북과 남이 서로 다른 이념으로 괴로워할때 토박이 지주들은 그들의 땅과 집을 부르주아 타도라는 공산주의 명분으로 모두 빼앗겼다.그것을 가져간 이는 누구인가? 줄을 잘 댄 신흥세력... 청산하지 못한 친일파들이었다. 또 미국의 노예해방 시기는 어떠한가? 미국 남부 지방은 대평야와 소위 노예를 이용해서 그들의 방대한 농업을 이어가는 목화업을 해야했고, 북부 지방은 노예를 해방시켜서 그 노동력으로 기계를 돌려야했다. 서로 다른 이해의 충돌 속에 그들은 전쟁을 시작했고, 결과는 참혹했다.

소설 속 제목은 [어둠 속의 사건]이지만 그 역사적 진실은 이미 만천하에 공포된 거나 다름이 없다. 결코 일어난 사실 그 자체를 주변이 어둡다고 해서 숨길 수는 없다. 드러날 것은 드러나고, 밝혀질 것은 밝혀질 것이다. 당신이 눈을 뜨고 있는 한 말이다. 결코 실패한 혁명은 없다. 목숨을 걸고 한 투쟁은 어디선가 다른 이름으로 그 몫을 살아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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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1
임레 케르테스 지음, 이상동 옮김 / 민음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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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

임레 케르테스 지음 | 이상동 옮김 | 민음사

행복이란 어쩌면 너무 단순한 것이어서, 그것에 대해서라면 아무것도 쓸 수 없을 것이다.

케르테스

최근에 어느 유튜브를 보다가 한류는 실패했다는 말을 들었다. 한국 문화가 K 컬쳐라는 이름으로 세계로 뻗어나가 나름 국제적인 위상을 떨치고 있다지만 그렇다면 그 한국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하는데, 가까운 일본을 보면 그렇지 않으니 말이다. 오히려 역사를 왜곡하고, 숨기고, 우익 분자들은 더 기를 쓰고 활개를 치며 혐한을 부축인다. 겨울연가가 들어와 일본 아주머니들이 그토록 한국 남성에 대한 호감이 생겼고, 한국을 찾아왔지만 그 자녀들에게 자신들의 역사를 정확히 보는 눈을 키워주는 일은 실패한 듯하다. 즉, 역사는 역사이고 문화는 문화일 뿐이다. 오직 소비되는, 시류에 의해서 이리저리 휩쓸리는, 변화무쌍한 소비상품일 뿐인 듯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지 말아야할 것들이 있다. 바로 고통스런 역사의 기억이다. 인간이 인류에게 저지른 끔찍한 폭력의 기억은 더 이상 되풀이 되서는 안된다. 이 책의 제목이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인 것도 바로 그런 연유이다. 오히려 태중의 태가 복되다는 의미... 세상 끔찍한 뉴스를 볼때마다 느낀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참혹한 상황을 겪지 않아도 됐을텐데...하는 비극의 순간들 말이다.

케르테스는 청소년기에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가게 된다. 그 수용소는 나치가 철저히 비밀에 붙인 절멸 수용소라고 한다. 다른 포로 수용소와는 달리 오직 유대인의 절멸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수용시설... 그 안에서 차마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어떤 범죄가 끊임없이 되풀이 됐는지는 상상하기도 싫다. 우리 나라 역시 그런 고통이 존재하지 않는가... 일본이 여전히 부인하고 있는 위안부들의 실체, 광산 노동자들의 상황, 731부대로 대표되는 생체실험 등... 전쟁은 인간성의 말살을 통해 또 다른 종의 부활을 꿈꾼다. 그 종이란 오로지 자신만을 부흥을 목적으로 처참하게 같은 피를 흐르는 사람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집함으로 스스로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케르테스는 자신을 어머니에 의해서 거세당한 아들로 묘사한다. 그의 신경증은 물론 수용소 생활에서 촉발됐을 지라도 그의 뿌리는 유대인으로 나왔고, 어머니에게서 나왔으니 말이다. 그는 유독 신경증이 발발할때 쓰는 존재로 의미를 찾는다. 평온한 시기에 그는 아무런 쓰기의 욕망도 나오지 않는다. 그의 아내가 글을 쓰는 것이 성공하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었냐고 묻자, 그는 아무 대답도 못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에게는 운명과도 같은 것이기에...즉, 이 지독한 불안증으로 벗어나기위해서 쓰지 않고서는 못 견디는 것이다.

케르테스가 자신들을 해방시킬 군인들이 점령한 짧은 수용소 시절에 어느날 홀로 화장실을 찾았다가 독일군 병사를 보고 순간 얼어붙어서 오줌을 지린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그가 돌아왔다는 것... 독일군이 언제든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에게는 공포 그 자체였다. 그 독일군 병사는 그저 세면대를 닦고 있었을 뿐이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는 아파트를 사는 지옥을 포기하고, 대신 아파트 없는 지옥을 선택한다. 자신의 집을 포기하는 선택...일평생 셋방살이로 떠도는 삶... 왜냐면 언제는 독일군은 다시 돌아올 수 있을 터이고, 그 평화는 깨질 것이니까... 언제든 시한 폭탄을 옆에 두고 사는 셈이다. 그에게 독일, 아우슈비츠란 이미 뼈 속깊이 새겨진 문신과도 같은 것이었다.

기도한다. 이미 미래의 죗값을 다 치뤘다는 헝가리 기도에 빗대어 앞으로 올 미래,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이 살아갈 내일은 이와 같지 않기를... 뜨거운 피가 흐르는 한 모두 동등하기를... 기한 있는 생을 사는 동안은 모두 평화롭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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