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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사건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12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이동렬 옮김 / 민음사 / 2022년 7월
평점 :
어둠 속의 사건
오노레 드 발자크 | 이동렬 옮김 | 민음사
언제나 정치 이야기는 노잼이라고 생각해왔지만 최소한의 관심이라도 두지 않는다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도 그것을 막을 명분조차 없다는 생각에 할 수 있는 한 작은 관심이라고 기울이자고 생각했다. 사실 학창시절, 아니 20대 초반만해도 정치는 나와 상관없는 세계였고, 뉴스는 재미없는 프로그램의 하나라고만 여겼으니 말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름과 동시에 관심사도 변하고, 그 재미없는 정치가 사실 우리네 일상을 변화시키는 근본이라는 사실을 안 지금은 어쩔 수 없다. 그 한복판에 있음을 인정해야만한다.
발자크의 책 [어둠 속의 사건]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나폴레옹 집권 초기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 어떤 이는 실명으로 거론되어 있고, 어떤 이는 그렇지 않아서 처음에는 다소 소설인지...논픽션인지, 아니면 추리 소설인지 헷갈렸다. 하지만 발자크가 특정 사건을 모티브 삼어 그 사건을 여러모로 취재하면서 얻어낸 소재를 사실적으로 써낸 것이라는 것을 곧 이해할 수 있었다. 일명 정치 소설인 셈이다.
몰락하는 세력과 부흥하는 세력... 그 사이를 약삭바르게 헤엄치는 자들...어디서나 사회 혼란기에는 그런 이들이 존재한다. 공드르빌 영지를 둘러싸고 미쉬와 밀랭 사이에 벌어지는 다툼은 개인적인 투쟁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정치적이다. 혁명기 귀족의 삶, 그리고 대조되는 존재, 신흥 부르주아들... 시뫼즈 후작은 혁명에 저항한 전통 귀족이었다. 그는 혁명 시기에 처형을 당하고 그의 영지를 몰수됨과 동시에 국유 재산으로 매입된다. 그러자 말랭은 그 국유재산을 자신의 소유로 만든다. 변화하는 정치에 순응하면서 요리조리 줄을 대면서 말이다. 그 가운데 의로운 미쉬는 주인 가문을 위하여 영지를 되찾으려는 노력을 하지만 이는 곧 실패하고, 결국 억울한 누명으로 단두대로 향하게 된다.
발자크는 이 소설, 아니 이 사건에서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 몰락한 귀족의 편도, 신흥세력으로 떠오르는 부르주아편은 더더욱 아니다. 그는 변화가 어쩔 수 없고, 그 변화에 순응하여 올바른 길을 가야할 것을 강조한다. 발자크의 견해는 소설 속 도트세르나 샤르주뵈프 후작의 노인들의 말에서 나타난다. 세상은 변화할 수 밖에 없으며 그런 현실을 직시하고 타협해야한다고 말이다. 결코 극단으로 향하는 것만이 구원이 아닌 것이다.
흡사 초기 공산주의 시절을 보는 듯했다. 예의 혁명의 시절이라고 할만한 남과 북이 갈라져서 북과 남이 서로 다른 이념으로 괴로워할때 토박이 지주들은 그들의 땅과 집을 부르주아 타도라는 공산주의 명분으로 모두 빼앗겼다.그것을 가져간 이는 누구인가? 줄을 잘 댄 신흥세력... 청산하지 못한 친일파들이었다. 또 미국의 노예해방 시기는 어떠한가? 미국 남부 지방은 대평야와 소위 노예를 이용해서 그들의 방대한 농업을 이어가는 목화업을 해야했고, 북부 지방은 노예를 해방시켜서 그 노동력으로 기계를 돌려야했다. 서로 다른 이해의 충돌 속에 그들은 전쟁을 시작했고, 결과는 참혹했다.
소설 속 제목은 [어둠 속의 사건]이지만 그 역사적 진실은 이미 만천하에 공포된 거나 다름이 없다. 결코 일어난 사실 그 자체를 주변이 어둡다고 해서 숨길 수는 없다. 드러날 것은 드러나고, 밝혀질 것은 밝혀질 것이다. 당신이 눈을 뜨고 있는 한 말이다. 결코 실패한 혁명은 없다. 목숨을 걸고 한 투쟁은 어디선가 다른 이름으로 그 몫을 살아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