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노 아일랜드 - 희귀 원고 도난 사건
존 그리샴 지음, 남명성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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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노 아일랜드

존 그리샴 장편소설 | 남명성 옮김 | 하빌리스

눈으로 보는 듯이 생생하게 묘사하는 능력이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존 그리샴의 소설들이 영화화되어 성공하고 그의 책들의 판권이 영화 시장에서 불티나게 팔리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닐 것이다. 영상을 글로 옮기는 능력에 못지않게, 글을 영상처럼 쓰고 독자에게 생생한 풍경을 불러일으키는 일... 역시 존 그리샴만의 특출한 재능임이 틀림없다. 최근 우리나라 웹툰이나 웹 소설들이 영화화되고 드라마화되는 이유 역시 작가들이 글을 눈으로 보는 듯이 생생하게 그려내기 때문이리라... 어쩌면 순수문학이라는 길만을 오롯이 걸은 이들에게는 이러한 경향이 불편해 보일 수도 있겠으나 세상에 이런저런 글들과 새로운 시도의 문학이 다양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고도 기대되는 일이리라...... .

책 [카미노 아일랜드]는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의 희귀 원고 도난 사건을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일 중 하나가 이런 도난 사건이다. 모두가, 아니 온 세상이 아는 유물이나 보물을 훔치는 사람들, 어차피 모두가 장물임을 아는 상황이고 처분할 시 톡톡한 대가를 치른다는 것 또한 알 텐데 버젓이 훔치고 파는 사람들은 과연 누구일까? 더욱더 나쁜 사람은 아마도 그것을 사주는 사람일 것이다. 사주는 이들은 몹시도 부유한 이들일 테니 말이다. 도난 사건이 잠잠해질 때까지 고이 장물을 모셔두었다가 조용해지면 세상에 내놓는 이들... 하지만 그것은 엄연한 도둑질이다.

실제로 프리스턴 대학교 도서관에서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원고가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아마 존 그리샴은 그것을 보고 이 거대한 사건을 상상해 낸 것이리라. 스콧 피츠제럴드의 원고는 과연 어디로 사라졌을까? 완벽하리만큼 철저히 준비했던 도둑들은 어리숙하게도 어이없는 실수로 그 꼬리가 밟히고 만다. 하지만 이미 원고는 어디로 갔는지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때 올해의 서점에도 오른 브루스의 서점이 뭔가 수상하다. 특히 브루스란 사람이... 머서는 희귀 도난본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수사를 의뢰받고 왠지 모르게 정말 수상한 브루스에게로 접근한다. 하지만 이 사람, 어쩜 이리 매력적이란 말인가? 과연 머서는 자신의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까?

존 그리샴의 강점은 수사물에서 빛을 발한다. 그의 기존 베스트셀러들이 모두 범죄, 법정 수사물이라는 점 역시 그것을 입증한다. 하지만 이 수사물과 로맨스의 환상적인 결합은? 그의 진가가 이제는 로맨스에서도 드러나는가? 싶다. 그만의 달달한 로맨스물을 앞으로의 소설에서도 기대해도 될 듯싶다.

피츠제럴드의 원고 역시 궁금하지만 개인적으로 꼭 보고 싶은 작가의 원고는 버지니아 울프이다. 그녀의 필체가 왠지 그녀의 모습을 닮아있는 듯하다. 아마도 존 그리샴이 프리스턴 대학교에서 피츠제럴드의 원고를 보는 대신 다른 것을 먼저 보았다면 어땠을까? 이 작가의 상상력은 어디까지 일지 궁금하다. 다음에 궁금한 것은 역시 그의 작품인 카미노 윈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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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 (일러스트판)
브램 스토커 지음, 페르난도 비센테 그림,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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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

브램 스토커 장편소설 | 페르난도 비센테 그림 |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아는 만큼 보인다고해야하나? 아니면 알려고 노력할 수록 그 이면의 것들이 다시 보인다고 해야하나? 내게 열린책들에서 나온 [드라큘라]는 그렇게 다가왔다. 그동안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새롭게 보였고, 몰랐던 그 이면의 세계가 다시금 확장되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그것은 유려한 번역과 소설 중간 중간 등장한는 삽화들이 몰입감을 더해서 그렇게 느껴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드라큘라는 흔히들 환상문학, 공포문학의 최고봉이라고 한다. 지금은 공포문학을 확장시킨 SF의 시초처럼 여겨지는 프랑켄슈타인과 비교해서도 말이다. 하지만 나는 드라큘라야 말로 새로운 여성성의 재발견한 페미니즘 소설이라 말하고 싶다. 분명 화자는 여러명이었지만 이 극을 전체적으로 끌고가는 캐릭터는 여성인 미나로서 그녀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소설은 다른 세계를 창조하고 급기야는 절대 악으로 상징되는 드라큘라를 소멸시키는 데 까지 나아간다. 물론 그 소멸에의 중심에는 조너선 하커가 있었지만 누구도 미나의 활약으로 거기까지 갔다는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드라큘라 백작으로 상징되는 인물의 시대적 배경에 대해서는 소설에서는 나와있지 않지만 미나가 마지막 순간에 목격한 그의 말로, 평온했다고 느껴지는 마지막으로 보아 그도 본인의 의지로 악의 상징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가 유혹한 많은 인물이 주로 여성들이었고, 불면증과 몽유병을 이용해서 조종하고 마지막에 온전히 기력이 다했을때 치명적인 일격을 날리는 등 그 행위는 지극히 여성만을 노린, 어찌보면 비열하기까지 하지만 말이다.

미나의 각성은 루시의 죽음에서 시작한다. 루시에 대한 사랑과 염려로 그녀에 대해 걱정하지만 결국 루시는 뱀파이어로 변하고, 그녀는 존 수어드 박사와 반헬싱 박사를 만나게 된다. 여기에 루시의 약혼자인 아서 홈우드와 친구 퀸시 모리스의 합류는 조너선 하커와 더불어서 어벤져스를 이룬다. 일명 뱀파이어 절멸 어벤져스 말이다.

루시는 불행히도 결국 뱀파이어로 변해 비참하게 죽었지만 그 다음은 미나의 차례였다. 미나에게는 어떤 기운이 있었다. 그것은 소설 중간 중간 언급되는데 그녀가 다른 여성들과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일명 신여성이라고 언급되는데, 미나는 남성과 여성 그 중간지점에 속해 자신의 행할 바를 명석하게 깨닫는 역할을 하며 결국에는 어벤져스에 선봉에 서서 이끄는 역할을 담당한다. 결국 드라큘라의 의식이 자신의 의식과 연결됨을 깨닫고 그의 향방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되니까 말이다. 유독 그녀의 진가를 알아보고 칭찬을 아끼지 않은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판 헬싱 박사이다. 영국인들 사이에서 유일한 외국인인 네덜란드인이었던 그는 뱀파이어에 대한 생태와 특질을 누구보다 정확히 파악하고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아... 드라큘라라는 소설에서 신여성 미나를 발견한 것은 커다란 행운이었다. 그녀에 대한 속편을 기대하지만 그럴 수 없는 일이니 맘껏 상상의 나래나 펼쳐야겠다. 앞으로의 시대에 등장할 더 멋진 여성들의 활약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과연 미래의 여성, 신여성은 어떤 모습일까? 나름의 몽상에 빠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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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을 위한 변론 - 무자비하고 매력적이며 경이로운 식물 본성에 대한 탐구
맷 칸데이아스 지음, 조은영 옮김 / 타인의사유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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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을 위한 변론

맷 칸데이아스 지음 | 조은영 옮김 | 타인의 사유

요 며칠 날이 너무 좋다. 산책하기 좋은 날씨이다. 하지만 그만큼 아무거나 뭘하기도 좋다. 책 읽기에도 이만한 계절이 없다. 야외에서 돗자리를 펴놓고 몇시간씩 앉아서 수다를 떨거나, 가져온 책을 보아도 좋은 그런 날이다. 화창한 어느날 미술관 전시회를 찾았다. 이름하여 미래도시전... 미래의 도시 모습을 상상하거나 현재의 모습을 되비추어보는 시간이 되었다. 어느 한 부스를 찾았는데 일명 가상공간 체험이었다. VR을 머리에 쓰고서 스틱을 이리저리 옮기면 사람의 발자국이 나타난다. 그리고 이어져있는 하얀 계단들... 발자국이 그 하얀 계단을 밟으면 여지없이 계단은 무너졌다. 결국 서 있는 것은 벼랑 끝, 한도 끝도 없는 낭떠러지 앞이었다. 인간이 닿는 발길이 바로 그런 길이라면... 현대의 과학 문명사회가 오직 지구생물의 파괴를 위해서만 존재한다면... 한 종의 번성을 위해 다른 종을 절멸시키는 행위가 그 얼마나 적대적이고 모두 다 멸망케하는 길인지 이제는 우리도 알아가고 있지 않은가?

이 책 [식물을 위한 변론]은 동물 등의 여타의 생명들에 비해 등한시해 온 식물들의 여러가지 모습들을 독자에게 보여준다. 그 결과는 식물들도 나름의 존재로 이 지구상에서 살아가며 그 투쟁은 여타의 다른 생물 못지 않다는 것이다. 그 진화의 과정이란 새삼 놀라울 정도이다. 베르가못은 자신의 꽃의 형태를 벌새에 맞게 유지해서 기가막히게 공생을 해나고 있었고, 어떤 식물들을 스스로 꿀 같은 내어줄 것이 없으면 다른 방식으로 화분을 옮겨 줄 생명들을 불러 모았다. 너무 신기하고 놀라운 식물들의 세계다. 그리고 그 세계가 인간의 세계 등 여타의 세계와 어쩌면 전혀 다를 것이 없다는 것, 알고보면 식물, 동물, 그 분류 자체가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다소 엉뚱한 생각 역시 들었다.

간혹 모기나 파리 등의 여타의 해충이라 일컬어 지는 곤충들을 볼때면 그것의 효용이 무언지를 생각하게 된다. 다른 것은 다 떠나서 그냥 내 곁에서만 사라져주면 좋겠는데, 그것이 안된다면 은근히 그것들의 소멸을 바라는 상상도 하게 된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모든 상상 역시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안다. 모기가 다른 곤충들의 훌륭한 먹잇감이 되며 파리 역시 그들의 소임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일 그들이 사라진다면 나비효과로 인해 얼마나 많은 동식물이 절멸될지 모른다는 것 역시 무서운 일이다. 한 예로 사람이 죽으면 가장 먼저 찾아오는 것이 무엇인줄 아는가? 바로 파리란다. 그것은 기가막히게 먼저 찾아와서 썩은 부위를 핥는다. 현대 과학수사에서 파리를 통해서 꼭 밝혀야할 시체의 사망시간을 추정하는 데 큰 성과를 거둔다고 하니, 이 또한 파리의 효능이라 할 것이다.

어느날 집에 단 하나 남아있던 화분을 엄마집으로 보냈다. 도저히 베란다가 없는 집에서 키울 수 있는 환경이 안되었을 뿐더러 때 맞춰 물을 주고, 분갈이를 하는 일이 생각보다 품도 많이 들고, 신경을 써야할 것이 많았다. 물론 가장 큰 문제는 환경적인 요인이었다. 식물에서 필수불가결한 햇빛과 통풍... 그 두가지는 정말 필수적이다. 어쩌면 우리 인간을 위시한 동물, 그리고 식물들 모두 지구에서 생명을 누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비슷할 지 모르겠다. 누가 태양없이 살 수 있겠으며, 누가 바람없이 살겠는가? 자연이란 모두를 위해 평등하게 주어져야한다. 태양은 결코 인간만을 비추는 것이 아니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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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함과 분노 열린책들 세계문학 280
윌리엄 포크너 지음, 윤교찬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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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함과 분노

윌리엄 포크너 장편소설 | 윤교찬 옮김 | 열린책들

한 가족상의 모습을 보면 그 나라의 축소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라의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시대상의 분위기가 어떠한지를 가족의 모습을 통해 알 수 있다니, 참 인간의 세상이란 묘하다는 생각이다. 때는 제 1차 세계대전 직후 산업혁명의 시기이다. 노예제도를 기반으로 성장한 미국의 남부지방은 산업화를 기점으로 몰락하기 시작한다. 이 시점 발판 삼아 시대에 발 맞춰 재빠르게 변화한 사람은 성공이라는 기회를 움켜줬지만, 망연자실 흘러가는 세월만 붙잡으려고 한 사람은 시대의 망령에 사로잡혀서 쇠락의 길로 떠밀려갔다. 책 [고함과 분노]에 등장하는 콤슨 가문에 벌어진 일도 후자와 유사하다.

아이를 양육하기를 저버린 어머니, 장남에게 막대한 짐을 지우고서 나머지 가족들을 나몰라라한 아버지, 부모가 있어도 부재의 아픔을 느끼면서 캐디에 대한 감정의 혼란으로 끝내 잘못된 선택의 길로 내몰린 장남 퀜틴, 막내 벤지에게 살가운 어머니 역할을 대신하면서 정작 스스로는 돌보지 않았던 장녀 캐디, 오직 돈과 현실에만 집착하는 삶을 살게된 차남 제이슨, 선천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서 오로지 세상을 감각적으로 인지하게 된 막내 벤지, 그리고 그 집안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이해하고 있는 하녀 딜지, 모두가 콤슨 가의 한 가운데서 살아온, 그 시대를 온 몸으로 느끼면서 지내온 이들이다.

책의 제목은 포크너가 멕베드의 한 장면에서 연상해서 차용해온 거라고 하는데, 여기서 의미하는 사운드가 막연한 의미가 있는 소리가 아닌 막연한 소음, 의미없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러기에 어떤 책에서는 사운드를 소리로, 음향으로 번역하기도 하는데, 열린책들에서는 고함으로 번역해놓은 듯하다. 의미없는 메아리... 만약 나라면 어떻게 사운드의 의미를 해석했을까? 비명? 울부짐? 아... 역시 어렵다.

책은 전부 4부로 구성되어있는데, 첫 장에서는 벤지의 시선으로, 두번째 장은 장남인 퀜틴의 시선, 세번째는 차남인 제이슨의 시선, 마지막 장은 다른 장과는 달리 3인칭의 관점으로 쓰여진 딜지의 입장에서 콤슨 가에 대해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 첫 장이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벤지의 입장으로 다시 생각해 보니 오히려 수월한 면이 있었다. 가장 괴로웠던 장은 아무래도 장남 퀜틴의 시선에서 씌인 둘째 장이었다. 콤슨 가의 사남매 중 유일하게 자신의 장을 갖지 못한 인물은 장녀 캐디인데, 그녀는 곳곳에서 그녀를 관찰한 이들이 캐디에 대해 묘사해주고 있었다. 벤지에게 캐디는 엄마와 같았고, 퀜틴에게 캐디는 연인이었으며, 제이슨에게 캐디는 타락한 누이였다.

소설에서 말하는 고함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모두가 어떤 것을 말하고자하지만 그것이 소리로 전달되지 못하고 각자의 가슴안에서만 우물거리는 느낌, 소리치는 느낌이 든다. 뭔가 답답하고 막연하고 억울하지만 그것의 정확한 의미를 못 잡는 것같은 것.... 여기 콤슨 가 가족의 비극의 원인은 무엇보다 어머니의 부재, 아버지의 부재였다. 아이들 역시 아이의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그들 스스로 부모가 되려고 했다. 어머니의 자리, 아버지의 자리에 어린 자신들을 끼워맞춰야했으니 그 가족이 제대로 설 리가 없다. 고함이 제대로 된 소리로 울리고, 분노의 자리가 제 자리를 잘 찾아서 울릴때 소통이 가능하리라...... . 여기에 희망이 있을까? 어떤 웅얼거림이 제대로 된 소리로 울릴 수가 있을까? 비극은 기가막히게 되물림되지만, 그 비극을 끊는 길도 무척 간단하다. 가족 중 한사람이라도 제대로 된 자리를 지키고 있을때 가족이란 울타리는 그것만으로도 지켜진다. 한 사람, 단 한 사람이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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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여자들
메리 쿠비카 지음, 신솔잎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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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여자들

메리 쿠비카 장편소설 | 신솔잎 옮김 | 해피북스투유

잘못된 결정으로 인해 순식간에 불행해져 버린 사람들이 나온다. 한 순간의 욱하는 감정, 아니면 이것만 아니면 괜찮아 하는 눈감고 아웅하는 식의 감정처리로 그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나락으로 떨어진다. 고작 그것뿐이었는데,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으면 그만인것을... 그리고 그 죄라는 것이 순간의 우발적인 것이라면 정상참작이라는 것도 있을텐데... 여기 이 소설에서는 그 모든 것을 뒤로 한채 한 가정을 파멸시키는 것을 선택하는 어리석은 자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소설 속의 인물들의 시점이 여러겹 겹쳐지고 소설의 양상은 11년 전과 후로 빠르게 그려졌다. 그리고 읽기 힘들었던 장면들도 있었다. 아동학대로 일컬어지는 묘사는 시종일관 불편했지만 정말로 사이코 패스라면 그보다 더한 짓도 했을 지도 모르므로, 불편하지만 알아야할 진실이라는 생각으로 눈쌀을 찌푸리며 아이의 고통에 공감하면서 읽어내려갔다.

누구보다 행복한 가정에서 남편의 사랑을 듬뿍 받고 소중한 가정을 이끌어간 메러디스의 잘못된 결말은 과연 어디서 부터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과연 셸비와의 일로 엃히게 된 출산 중 사고때문일까? 아니면 그냥 취기어린 그리고 오지랖이 넓었던 그녀만의 개인 사정때문이었을까? 문제는 언젠가는 벌어지게 되어있고, 터질 것은 터진다. 메러디스는 아마 그렇게 안 될 수도 있었다. 그 날 그 사건을 다른 식으로 처리했더라면 말이다.

가장 불쌍한 것은 순식간에 엄마를 잃은 아이와 학대받는 아이이지 않았을까? 어둠을 벗삼아 살아가야했던 그리고 소년을 불어내어서 스스로의 생에 의지를 만들어내야했던 유괴된 소녀... 그리고 메러디스의 딸 딜라일라, 또 그들의 실종과 죽음을 목격하면서 생기를 잃어갔던 메러디스의 남편 조시와 메러디스의 아들 레오, 누명이 씌워져서 억울한 옥살이를 10년 넘게 하고야 마는 셸비의 남편... 한 여자의 선택으로 말미암아 그들 모두, 마을 이웃 모두가 한 순간에 불행해졌다. 행복은 차츰 차츰 전파되지만 불행은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순식간에 빨아들인다. 불행의 파급력은 폭탄과도 같다. 그리고 그 파편 역시 어디로 튈 줄 모르는 것이다.

메리 쿠비카의 소설들을 하나 둘 읽으면서 그녀가 만들어낼 세계가 몹시도 궁금해졌다. 그녀의 세계는 바로 이웃의 세계이다. 내 이웃, 내 사람, 내 주변의 이야기를 이렇게 멋진 한편의 추리소설로 옮길 수 있다니 몹시도 놀랍다. 간혹 좋은 이웃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도 느끼게 되고, 그런 이웃을 두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도 느낀다. 또 반면 잘못된 인연을 맺어 평생 고통받는 사람들도 있으니, 역시 인연이란 하늘이 내려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책을 보면서 한가지 드는 생각은 이러하다. 좋은 인연을 만드는 일이란 항상 감사하면서 주변을 돌아보고 사는 일이라는 것 말이다. 그리고 잘못된 일이라고 판단이 들면 어떤 유혹이 와도 절대 타협하지 않는 것이다. 모든 것에는 항상 그것에 걸맞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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